가짜 경감 듀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피터 러브시 지음, 이동윤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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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얼마나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문구인가. 그리고 책 표지에 써 있는 "깨알같은 재미가 톡톡튀는 선상 미스터리" 란 설명과 '영국추리작가협회 골드대거상 수상작'이란 자랑스런 타이틀.  

『가짜 경감 듀』.  예전부터 익히 명성을 들어오고 관심을 가져오던 책이다. 하지만 진지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내게 왠지 가볍고 러브스토리가 가미된 코믹 추리소설 느낌이 들어 책을 읽기에 일말의 망설임이 있었다. 가끔 구립도서관에 들렀을 때도 은연중에 이 책을 집어들고 빌릴까말까 망설이기도 여러번...그러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미스터리 책장' 엘릭시르란 브랜드로 이 작품을 최신판으로 새롭게 출시했다. 그래서 약간의 고민끝에 과감히 구매했다. 과연 나의 선택은 성공할 것인가...

'플롯의 제왕'이란 작가의 별명답게 정말 플롯은 훌륭하다. 책 시작부터 깔리는 복선은 나중에 책을 다 읽고는 감탄의 무릎을 치게 한다. 한 여자의 애끓는 순애보와 한 남자의 수동적인 미래에 대한 거부감이 결합되서 일어나는 계획된 살인. 하지만 사건의 전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꼬여만 가고...

살인자인 주인공이 졸지에 명탐정으로 둔갑, 선상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단 5일만에 해결한다는 기막힌 설정도 재밌고, 그 엉터리(?) 탐정이 소 뒷걸음치다 쥐잡는 식으로 살인사건을 완벽히 해결해 나가는 과정 역시 무척이나 명쾌하고 논리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 역시 작품의 명성에 걸맞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여러 남녀 주인공들의 얽히고설킨 이중, 3중의 러브스토리가 소설의 뼈대를 이룬 가운데 대부호부터 사기꾼,  소매치기까지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복잡, 풍부하게 만든다. 메인 배경이 되는 호화 유람선 포함 1920년대 격변기의 영국의 시대상을 철저한 고증과 자료 조사를 통해 훌륭히 묘사했고 중간중간 들어간 삽화들 (수하물 태그, 고급 자동차 등) 역시 당시 생활상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를 높여준다.  

모든 것이 좋다. 하지만 문제는 분위기다. 이 책은 아주 느긋하고 낭만적이다. 마치 호화 유람선 연회에서 젊은 남녀가 행복한 얼굴로 무도회를 즐기는 것처럼 또는 1등급  손님들이 호와로운 식사후에 흡연실에 모여 맛있게 여송연을 태우거나 카드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그렇게 느긋하고 낭만적으로 흘러간다.

탈출이 불가능한 망망대해 선상에서 살인사건과 살인미수가 행해지지만 탑승자들은 누구하나 공포에 떨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듀 경감에게 맡긴 채 예정된 가면무도회에 태연히 참가하고 남녀간의 오고가는 러브스토리는 중단됨이 없다. 시종일관 흐르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말해주듯 추리소설이 주는 묵직한 긴장감은 없다. 한마디로 연애와 추리가 정교한 플롯으로 기막히게 결합된 너무나 느긋하고 낭만적인 연애추리소설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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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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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름다운 여성이 한 남자에 의해 폭행, 납치되고 급기야는 모종의 장소에서 공중에 매달린 자그만 궤짝안에 알몸으로 갇힙니다. 마치 새장의 새처럼 말이죠. 남자는 그저 그녀가 말라비틀어 죽기를 바랄 뿐 영문도 모른 채 궤짝안에 짐승처럼 갇힌 그녀는 하루하루를 죽음의 공포와 싸웁니다. 그녀의 이름은 알렉스... 

 

한편 카미유 베르호벤 형사반장은 목격자의 제보에 따라 납치범의 신원과 피해자가 갇힌 장소를 찾기위해 두 부하와 급히 수사에 착수합니다. 마침내 감금 장소를 찾아내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탈출한 후였고 납치범과의 관계에 따른 그녀의 예전 행적을 추적하다보니 피해자인줄로만 알았던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범죄의 냄새를 맡게됩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형사 반장 카미유 베르호벤 3부작'중 두 번째 작품으로 알렉스라는 연쇄살인범의 얘기를 다룬 추리 스릴러물입니다. 530여쪽의 두툼한 분량이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납치를 당하는 알렉스와 납치범을 쫒는 수사팀의 애기가 그려지고 2부에서는 단순 피해자인줄 알았던 알렉스란 여성의 무시무시한 연쇄살인 행각이 이어집니다. 과연 무슨 이유로 이 아름다운 아가씨는 계속해서 신원을 바꾸면서 그러한 잔인한 연쇄살인을 벌이는 걸까요. 그 충격적인 실체와 결말은 마지막 3부 카미유 반장팀의 끈질긴 수사와 날카로운 추리로 밝혀집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두 명입니다. 한 명은 바로 피해자이자 연쇄살인마인 그녀 알렉스 그리고 또 한 명은 추리소설 역사상 최단신 캐릭터인 145cm의 형사반장 카미유 베르호벤입니다. 책은 사건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연쇄살인을 일으키는 알렉스의 시점과 그러한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카미유 반장의 시점으로 교차 서술됩니다.  그리고 전혀 안닮은 것 같은 두 주인공에게는 과거 가족사로부터 치유할 수 없는 커다란 상처와 고통이 있다는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작가는 프랑스 문학과 영문학을 강의하는 교수답게 프랑스 문학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추리 스릴러물을 탄생시킵니다.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알렉스란 여성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아내를 범죄로 잃은 카미유 반장의 일상적 고뇌를 훌륭하게 그려냅니다. 과거 어린 시절의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인이 돼서 어떻게 표출되는가를 보여주는 섬뜩한 드라마네요. 마지막 3부에서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면 지금까지의 알렉스의 행동에 대한 충분한 공감과 연민의 정이 밀려옵니다.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2,3부에 비해 알렉스가 위기에 처한 1부가 너무 세밀히 서술되어 조금 속도감이 처지는 점, 아마도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세밀한 작업』의 연장선상의 내용인듯한 카미유 반장의 죽은 부인과 어머니의 미술품 얘기등이 약간 몰입을 방해한 점을 제외하고는 어릴적 잔인하고 악마스런 성범죄가 한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를 추리 스릴러물로 잘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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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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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과 북스피어의 합동 프로젝트인 세이초 월드의 일환으로 모비딕이 펴낼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컬렉션 총 여섯 권중 그 첫 번째입니다. 1955년 <소설 신쵸> 12월호에 발표한 작가의 첫 추리소설인 『잠복』을 표제작으로 '일본탐정작가 클럽상' 수상작인 『얼굴』등 1955년~1957년 사이에 발표한 여덟 편의 초기 추리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이초는 (당시 유행하던) 트릭과 반전만을 위한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설정의 본격 추리물에 염증을 느껴 작가 스스로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나는 상황과 인물들로 인간미 넘치는 추리소설을 쓰게 됩니다.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나 그릇된 사회적 동기등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에는 파멸의 길을 걷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추리소설로 그려냅니다. 일명 '사회파 추리'의 시작이죠. 

 

단편들을 읽어보니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제목만큼이나 간결한 문체입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불필요한 곁가지없이 간결하고 정제된 문체로 딱 필요한 이야기만 글에 담습니다. 그 단순하고 절제된 문장에 작가의 모든 철학과 사상이 응축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또한 등장 인물을 최소화하고 시점을 단순화해서 몰입감을 극대화합니다. 이야기에 꼭 필요한 소수의 등장인물만 등장하고 메인 주인공의 단일화된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흐름이 일관성있고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그래서인지 몰입감이 뛰어나며 술술 읽힙니다. 등장인물 역시 사회파 추리소설답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본격 추리물이 트릭과 반전에 중점을 두느라 범행의 동기 부분을 등한시한다면 세이초의 '사회파 추리' 작품들은 범행이 시작되는 동기의 발생 과정과 필연성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합니다. 극히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범죄의 늪에 발을 담그게 되는 사회적 환경이나 개인의 처지, 주변 인간 관계등을 세밀히 묘사하며 이것이 독자의 공감대를 끝어냅니다.  

 

수록된 여덟 편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그중에서도 범죄와 무관한 여인에 대한 형사의 배려심이 돋보이는 『잠복』과 추리와 반전 포인트가 빛나는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1년 반만 기다려』그리고 무소불위의 지방 시의원과 청렴한 토목 과장의 알력을 다룬 사건『투영』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세이초 작품은 딱히 자극적이거나 허황되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범죄 이야기를 미스터리 방식으로 인간미 넘치게 그려냅니다.『잠복』은 1950년대 배경의 초기 단편 모음이지만 지금 읽어도 낡은 느낌이 전혀 들지않을뿐더러 이 작품만으로도 작가의 작품 세계와 매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비딕에서 준비하는 두 번째 추리 단편선인 『역로』 역시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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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 2012 올해의 추리소설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강형원 외 지음 / 청어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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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작가협회 '2012 올해의 추리소설'로서 한국 추리 문학을 대표하는 16인 작가의 작품이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550쪽의 두툼한 분량에 본격 추리, 사회파, 스릴러, 스파이물등 다양한 장르와 테마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간략평입니다.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권경희) 피멍이 든 알몸의 중년 피해 여성과 강간 미수범으로 몰린 트럭 운전사.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인간의 추악한 면을 정의로운 검사의 눈을 통해 짧은 단편안에 잘 그려낸 사회파 추리물. 수작. (읽어보니 검사는 형수의 밥으로 살더군요^^)

 

매장 (김경로) : 상대편의 중간 보스를 파묻고 다시 파헤치고 또 숨어도망다니는 한 조직원의 쫓기는 심리와 숨막히는 서스펜스를 간결한 문체와 스피디한 전개로 잘 그려냈다. 소수의 등장인물과 한정된 이야기로 몰입감이 뛰어나며 으스스한 분위기가 제대로 묻어난다.

 

도깨비 탈 (김주동) 사라진 여동생을 찾아 빛핓 투혼을 펼치는 오빠의 활약상을 그린 추리 스릴러물. 초반부의 긴박감에 비해 후반부가 좀 어수선한 느낌.

 

유령 여기자 (김재성) 『노끈』, 『사람과 로봇실종사건』에 이은 윌셔 홈즈와 라왓슨 콤비 제3탄. 하지만『로봇실종사건』때의 불만사항을 이번에도 답습한다. 독자는 추리에 동참못하고 두 콤비의 일방적인 수사와 해결과정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짧은 분량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끈』같은 깔끔한 수작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래도 본격추리물은 늘 재밌다.

 

조국을 등진 사나이 (강형원) 유럽을 배경으로 파리 주재 한국인 공작원과 파리 마피아간의 쫓고쫒기는 추격전을 그린 스파이 스릴러. 속도감있는 전개는 좋으나 딱히 내 취향은 아니다.

 

VIRUS (설인효) 신종 플루로 야기된 '인류에게 바이러스란 무엇인가'란 문제를 심도있게 그린 작품. 거창한 주제와 문제 제기, 그것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이론과 학문등은 인상적이나 잦은 시점의 변화 포함 미스터리적 요소가 부족한게 아쉽다. 

 

계간 미스터리 살인사건 (손선영) 과거와 현재, 1인칭과 3인칭 시점으로 교묘히 교차 서술되는 이야기가 마지막 하나의 놀라운 사실로 귀결된다. 특히 '나'와 '장안동 귀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에서 오싹했다. 마지막에 '독자에게의 도전' 퀴즈도 나오니 함 도전해보시길...수작.

 

5층 여자 (송시우) 빌라 여주인의 추락사를 두고 5층 사는 여자와 그녀의 애견 그리고 형사들의 좌충우돌을 재미나게 그렸다. 시트콤 느낌이 묻어나는 수사물.

 

탐정학원 살인사건 (이상우) 사립탐정학원의 설립과 모바일 전용 어플인 '사립탐정앱'의 개발이란 소재는 참신하고 흥미로웠으나 정작 살인사건이 차지하는 분량이 넘 짧아서 아쉽다. 마지막 밝혀지는 의외의 범인에 깜놀!했으나 합당한 논거가 없는지라 거창한 제목에 비해 왠지 콩트로 마무리된 느낌.

 

바람은 왜 부는가 (이수광) 아빠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딸과 극구 부인하는 아빠...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10대 아이들 세태를 풍자한(?)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며 담담한 필체와 여검사의 분위기에서 작가의 연륜이 느껴진다.

 

좀비를 인정하는 심리의 5단계 (정가일) 좀비(?) 아내를 살해하려는 남편의 어설픈(?) 작전과 잦은 실패에 따른 체념적 심리 변화 그리고 그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려는 아내의 밀고당기는 두뇌 싸움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4월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 (정혁)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기고 간 의문의 시적인 유서. 아내를 사랑하고 자신을 잊지말라는 남편의 뜻이 담긴 유서에 숨겨진 수십억대의 보물찾기가 그려진 감성적 소설

 

오를라 (조동신) 지구종말이 오고 자신이 감시를 당한다는 등 알 수 없는 수기와 함께 직장과 가정을 내팽게치고 산속에서 칩거에 들어간 친구를 찾아나선 주인공... 하지만 그러한 반전은 전혀 예상치못했다.  

 

비밀 누설 금지 (최종철) 빚에 허덕이는 날건달 건축업자가 돈많고 나이많은 시골 과부를 꼬셔 한 탕을 노리는 작전은 거의 성공 직전에 들어가는데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터진다. 뜬금없는 반전이 재미난 작품.

 

핏빛 인연 (홍성호) 『위험한 호기심』과 『B사감 하늘을 날다』에 이은 홍성호 작가의 본격추리물 3탄. 일진 관련 어린 학생들의 도를 넘은 추악한 세태를 추리 작품으로 잘 승화시켰다. 작가의 장편이 기다려진다. 수작. 

 

불완전변태 (황세연) 전작 『개티즌』에 이어 무분별한 인터넷 동영상 유포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 범죄의 실행 단계가 의구심과 참신함을 동시에 수반한다.

 

16번의 설레임과 16번의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저 나름의 취향과 기준이 있는지라 모든 작품에 만족한 것은 아닙니다만 작가들의 강한 개성이 담긴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추리 단편들을 읽다보니 한여름 무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입니다. 재미도 있고 만족도도 괜찮네요. 『2013 올해의 추리소설』에는 또 어떤 재미난 작품들이 실릴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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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
도바 순이치 지음, 나계영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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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이상적인 스포츠는 심판의 역할이 최소화된 경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판의 역할이 단순 조력자나 진행요원 수준에 그쳐야한다는 말이지요. 그런 면에서 (비록 인기는 많지만) 심판의 역할과 비중이 경기의 절대치(?)를 차지하는 야구와 축구등은 결코 이상적인 스포츠가 될 수가 없습니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는 투수의 투구를 인간인 심판의 눈으로 그 미세한 공 하나 차이를 일일이 스트라이크와 볼로 판정하는 것이 '신사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야구를 안합니다.(비가 많이 내려 안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심판이 경기중 감독들과 언쟁할 때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바로 "당신 어디서 야구했어?"입니다. 운동을 (부상등으로) 중간에 그만둬서 차선책으로(?) 심판이 된 사람의 상처와 자존심을 거드리는 비수같은 말이죠. 어쨌든 야구란 스포츠는 심판(특히 주심)이 시합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운동입니다. 그리고 이 책 『오심』은 바로 그러한 심판과 투수간의 고도의 심리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본인 투수 다치바나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성공한 뒤 꿈에 그리던 미국 메이저리그에 데뷔, 보스턴 레드삭스에 둥지를 튼  메이저리그 1년차 투수입니다. 반면 고등학교와 대학교 직속 선배인 다케모토는 대학시절까지 천재 소리를 들었던 투수였지만 불운의 어깨사고로 낙마, 운동을 그만둔 뒤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와 10년의 밑바닥 마이너 심판 생활을 견뎌내고 드디어 메이저리그 심판 데뷔를 합니다.

 

과거 학창시절 여자 문제 포함 갖은 악연으로 맺어진 두 일본인 선후배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와 심판이라는 각기 다른 입장에서 운명의 조우를 하게되는거지요. 후배 다치바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뿌리고 선배 다케모토는 주심을 맡아 후배의 투구를 매의 눈으로 판정합니다. 과연 다케모토 심판은 사심없이 객관적인 판정을 내릴까요 그리고 둘 사이의 점철된 악연의 고리는 어떤 결말을 불러일으킬까요.

 

한순간에 나락에 떨어진 뒤 겪은 갖은 시련과 고행의 세월을 보상받기위해 선수위에 절대적으로 군림하려는 비뚤어진 사고 방식의 심판 다케모토와 메이저리그 데뷔 1년차에 안정적으로 팀에 정착하려는 투수 다치바나의 불꽃튀는 심리전이 볼만합니다. 거기에 다치바나의 주변 인물들인 다혈질인 보스톤 감독과 에이스 투수, 아름다운 부인, 일본인 통역사와 에이전트, 기자 친구 그리고 다케모토의 심판장과 심판 위원등 생동감있는 주변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흡사 진짜 야구중계를 보는듯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섬세한 경기 장면의 서술은 긴장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 선수와 기자와의 공생관계, 동료간의 미묘한 경쟁 심리, 매스컴을 대하는 구단의 태도, 늘 희생양을 찾는 열혈 지역 언론과 보수 팬들등 경기외적인 흥미진진한 얘기들이 넘쳐납니다. 보스톤 레드삭스, 뉴욕 양키스, 발티모아 오리올스, 시애틀 매리너스, 토론토 블루 제이스등 각 구장만이 갖는 역사와 특색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에 펜웨이 파크, 그린 몬스터, 베이브 루스, 랜디 존슨등 실제 메이저리그 구장의 명소들과 유명 선수 이름이 등장해서 현장감과 사실성을 높여줍니다.

 

『 오심』은 책 마지막에 가벼운 미스터리 요소가 등장하지만 한마디로 본격 스포츠(야구) 엔터테인먼트 소설입니다. 도바 순이치는 생소한 작가입니다만 약력을 보니 추리, 경찰, 스포츠 소설등을 약 60여편이나 발표한 나름 중견 작가네요. 야구를 전혀 모르는 분이라면 사실 이 책을 즐기기가 조금은 어렵다는 생각입니다만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에 관한 기초 지식이 있으신 분이라면 본격 야구 소설로서의 재미를 충분히 만끽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스포츠계의 유명한 속설을 끝으로 글을 마칩니다^^

 

"오심(誤審)도 경기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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