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책들의 상인
마르첼로 시모니 지음, 윤병언 옮김 / 작은씨앗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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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 마르첼로 시모니의 2011년 데뷔작으로 중세 유럽 수도원을 배경으로 충격적인 비밀을 담고 있는 한 권의 책을 추적하며 벌어지는 역사 스릴러물이다. 『저주받은 책들의 상인』은 3부작중 첫 권으로 유럽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방카렐라상을 수상했으며 두 번째 작품인『연금술사의 잃어버린 도서관』이 최근 출시됐다고 한다. 근데 이 방카렐라상의 탄생이 흥미롭다. 이탈리아의 권위있는 70명의 책방 주인들이 1953년에 만든 문학상이라고 한다.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도나토 카리시의 특급 스릴러『속삭이는 자』등이 이 상 수상작이다. 

 

AD 1218년경 중세 유럽의 수도원이 배경이라 그 당시 유럽의 역사, 종교, 신분, 계급, 문헌, 언어, 풍습 등 낯선 부분이 많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스페인의 유골 상인 이냐시오 톨레도가 한 귀족의 부탁을 받고 천사를 부르는 비밀이 담겨있다는 『우테르 벤토룸(라틴어로 바람 주머니)』이란 책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얘기이다. 주인공 이냐시오에게는 프랑스인 윌라름과 보조수사 출신의 소년 우베르토라는 조력자가 있다. 스릴러물에 악의 무리가 없으면 안되는 법. '생 베므'라는 무소불위 비밀법정 집단의 우두머리인 '붉은 가면' 도미누스와 그의 충복 기사인 슬라브니크가 주인공 일행을 뒤쫒는다.

 

책 초반부는 키우자 디 산 미켈레 수도원, 비비엔 드 나르본 신부등 긴 이탈리아식 이름과 중세 유럽의 낯선 배경등으로 천천히 긴장해서 읽었다면 이냐시오 일행과 생 베므 무리의 쫒고 쫒기는 추격신이 본격화되는 중반부부터는 조금씩 속도감이 올라간다. 비록 중세 유럽 지도와 지형 그리고 역사에 문외한지라 수도원과 수도원을 넘나드는 수개월에 걸친 그들의 기나긴 여정의 경로를 정확히 따라잡기는 어려웠지만. 

 

이 책의 기본 얼개는 쫒고 쫒기는 추격신을 그린 스릴러물이지만 추리적 요소도 상당히 많다. 비밀의 책은 모두 네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각의 책을 찾는 과정에서 언어학적 기호로 숨겨진 암호들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히브리어, 프로방스어등 전혀 생소한 중세 유럽의 언어들인지라 이냐시오가 암호를 해독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추리적 재미를 맛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추리적 재미가 본격화된다. 책 표지가 암시하는 '붉은 가면' 도미누스의 진짜 정체부터 이냐시오 일행이 책을 찾아나서게된 숨겨진 진상, 사건의 실질적인 배후 그리고 이냐시오의 숨겨진 가족사등 놀라운 반전이 잇달아 터진다.

 

박학다식에 냉철하고 무술에도 능한 주인공 이냐시오도 매력적인 캐릭터이지만 그를 쫒는 기사 슬라브니크가 기억에 남는다. 정의로운 기사를 꿈꾸다 도미누스의 꾐에 빠져 악의 집단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그가 후반부에 보여주는 심경과 행동의 변화에 연민을 느낀다.

 

책 하단을 장식하는 200개의 빽빽한 주석을 보니 번역가가 수고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떤 페이지는 본문보다 주석 분량이 훨씬 많다. 처음에는 일일이 주석을 찾아가며 읽었으나 굳이 주석을 안봐도 책 전체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18쪽의 두건을 쓴 외부인이 언급되는 부분, 84쪽의 몸을 구부린 우베르토에게 "일어나게, 청년"이라고 하는 말, 85쪽 아래의 '이곳에서'라는 어색한 문장은 번역상의 오류로 보인다.  

 

중세 유럽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수도원을 배경으로 비밀의 책 한 권의 행방을 놓고 벌이는 권력의 암투, 음모와 배신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냐시오 일행의 모험을 통해 역사 추리 스릴러물로 재밌게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마치 내 자신이 옆구리에 칼을 차고 붉은 가면을 쓴 채 긴 망토를 휘날리며 중세 유럽 어느 외딴 언덕에 고즈넉히 위치한 수도원을 찾아 넓디너른 평원을 말을 타고 달리는 상상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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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술래잡기 스토리콜렉터 14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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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매 - 산마 - 잘린머리로 이어지는 방랑환상소설가 도조 겐야 시리즈와 데뷔작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의 작가 시리즈로 잘 알려진 미쓰다 신조의 국내 다섯 번째 출간작이다. 미쓰다 신조는 본격 미스터리에 민속학, 괴담등을 덧붙여 본인만의 독창적인 호러 미스터리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로 스탠드얼론의 현대물인 『일곱 명의 술래잡기』는 2011년 3월 발표된 최신작이다.

 

생명의 전화 상담원 누마타 야에는 어느날 밤 기이한 전화를 받는다. "다~레마가 죽~였다"라는 어린 아이의 음침하고 속삭이는 소리와 함께 다몬 에이스케라는 중년 남성의 자살을 암시하는 전화가 그것. 그는 몰락한 사업과 빚, 말기암등으로 삶에 비관을 하고 그의 30년전 초등 시절의 술래잡기하던 고향 친구들에게 매일밤 한 명씩 전화를 걸어 만약 안받으면 술래잡기 놀이하던 신사 벚나무에 로프를 걸어 생을 마감하려고 한다.

 

상담원의 노련한 추측과 신속한 대처로 다음날 정신보건 복지센터 직원들이 현장을 방문하지만 남성은 신발과 유류품 그리고 소량의 혈흔만 남긴채 절벽 아래에서 모습을 감춘다. 이 사건을 기폭제로 그의 전화를 받은 30년전 술래잡기 친구들이 차례로 살해당하는 연쇄살인이 발생하고...술래잡기 친구이자 호러 미스터리 작가 하야미 고이치는 사건에 의문을 품고 독자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30년간 봉인됐던 과거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풀리면서 당시의 섬뜩했던 장면들로부터 조금씩 위화감을 느끼는데...과연 30년전 소꿉친구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연쇄살인의 범인과 사건의 숨겨진 진상은 무엇일까.

 

도조 겐야 시리즈와 작가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호러와 미스터리를 접목시키는 작가의 역량이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딱히 잔인한 장면이나 공포스러운 묘사가 없음에도 시종일관 독자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오싹한 분위기는 여전하다. 어린 시절 철들기 전에 일어났던, 그래서 기억에서 멀어져 떠올리기조차 싫은 희미한 과거로의 여행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 안개속을 걷는듯한 모호함, 마치 등 뒤에 누가 있는 것 같은, 그래서 뒤를 돌아보고는 싶은데 돌아보기가 두려운 그러한 오싹한 공포가 책 저변에 잘 스며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사건의 발생부터 수사와 추리 과정 그리고 범행의 동기와 진범의 정체를 밝히는 본격 미스터리의 논리적인 재미 역시 놓치지 않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다루마가 굴렀다"라는 놀이는 우리나라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동일한 놀이라서 무척이나 친숙하게 다가온다. 여섯 명의 소꿉친구들이 어릴적 즐겨했던 놀이에 어느 순간부터 미지의 일곱 번째 멤버가 존재했었다는 섬뜩한 설정은 마치 '우리 반에 한 명이 더 있다'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어나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마지막 장에서 고이치의 추리가 계속해서 바뀌고 이를 도조 겐야 스타일이라 언급하는데서 작가의 귀여운 위트감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서 일일이 되새김질 하듯 조근조근 따져가며 전개되는 추리 과정은 때론 지나치게 디테일한 느낌이 들어 속도감있는 전개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암시나 축약등으로 과감히 건너뛰거나 생략해서 조금 전개가 스피디했으면 좋겠다. 또한 진범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 사건의 정황상 과연 범행이 가능했을까 살짝 의구심이 드는 장면이 생각나기도 한다.

 

기억에서 봉인된 암묵적 합의가 불러온 끔찍한 연쇄살인과 그 저변에 깔린 삼십년의 세월을 두고 이중삼중으로 엮어진 이야기들 그리고 마지막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정교한 추리, 놀라운 반전, 의외의 범인 등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호러적 색채에 본격 미스터리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민속학과 괴담에 등장인물까지 복잡, 난해하게 얽힌 도조 겐야 시리즈에 비해 덜 복잡하고 덜 예스러워서 현대물을 좋아하는 미스터리 독자에게 좀 더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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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심플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피터 제임스 지음, 김정은 옮김 / 살림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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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재밌네요. 정신없이 빠져 읽었습니다. 단순한 스타일 좋아하는 제 취향, 제 입맛에 딱 맞는 소설이네요. 피터 제임스라는 영국 작가는 저같은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꿰뚫어 보는 것 같습니다. 극작가와 영화 제작자라는 경력에 걸맞게 한 편의 웰메이드 스릴러 영화의 완벽한 대본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결혼을 며칠 앞둔 행복한 예비 신랑 마이클 해리슨은 총각파티 도중 친구들의 짖궃은 장난으로 관속에 갇히고 그리고는 땅속에 묻힙니다. 몇 시간 후면 빼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하지만 친구들은 곧바로 불의의 교통사고로 모두 비명횡사하고 아무도 마이클에 처해진 위급한 상황을 모르게 됩니다. 

 

한편, 사건 해결에 무당의 힘을 빌리려 했다는 이유로 경찰 내부와 언론으로부터 시달리는 영국 서식스 경찰청 범죄수사국의 로이 그레이스 경정은 실종자 사건을 도와달라는 후배 형사의 간청에 8년전 실종된 아내 생각과 맞물려 사건에 관심을 갖고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단순한 장난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관을 묻은 친구들이 모두 사고사를 당하고 거기에 금전과 치정등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담긴 거대한 음모와 흉계가 가세되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갑니다. 관속에 물이 차오르는 등 마이클에게는 시시각각 죽음의 공포가 다가오고 관에 갇힌 실종자를 찾기위한 그레이스 경정의 다급한 수사가 시작됩니다.

 

일단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소재의 참신함입니다. 대부분 영미권 스릴러들이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경찰의 이야기라는 다소 천편일률적인 소재로 조금은 식상한데 반해 이 책은 완전히 색다른 소재로 나름의 차별성을 둡니다. 특히 사람이 관속에 갖히고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른다는 도입부의 설정은 장르 소설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탁월한 출발점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 맘에 드는 점은 짧은 챕터의 전환입니다. 마치 스피디한 영화의 장면장면을 보는듯 챕터의 전환이 무척이나 빠릅니다. 필요한 말만 서술하고는 바로 다음 장면으로 신속히 이동합니다. 511쪽의 방대한 분량에 군더더기 하나 없습니다. 불필요한 묘사나 쓸데없는 곁가지없이 바로 사건의 내부로 깊숙히 침투합니다. 빠른 전개에 속도감이 붙고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과 조금씩 드러나는 사건의 진상에 긴장감과 몰입감 그리고 재미가 배가 됩니다.

 

독특한 소재와 허를 찌르는 치밀한 구성, 스피디한 전개, 마지막 범인과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신 등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흉악스런 범죄를 생사의 갈림길에 선 마이클의 절체절명의 위기와 또 그것을 추적하는 그레이스 경정의 노련한 수사와 맞물려 스릴러물로 잘 만들어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로 만들면 무척 재밌겠네요. 단지 관속에 갖히는 또 다른 주인공 마이클 해리슨 역의 배우만은 무척 고달플테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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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의 쐐기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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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실 경찰소설은 별로 안좋아합니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작가에 유명한 시리즈 그리고 좋아하는 출판사라서 호기심에 믿고 구매했습니다. 경찰소설의 효시(?)라 불리는 에드 맥베인은 필명으로 1956년 발표된 1권 『경찰 혐오』를 시작으로 작가가 암으로 사망한 2005년『Fiddler』까지 총 57편의 '87분서 시리즈'를 남겼습니다. 반세기 동안 시리즈를 이어온 작가의 노력과 역량이 놀랍네요.『살의의 쐐기』는 시리즈 여덟 번째 작품으로 1959년작입니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10월 어느 화창한 금요일 오후 87분서 안에서 한 여인이 경찰들을 담보로 벌이는 반나절의 인질극이고 또 하나는 스티브 카렐라 형사가 단독으로 수사하는 부자 노인의 자살로 위장한 밀실에서의 살인사건입니다. 스릴러와 본격추리물의 결합이랄까요.

 

교도소에서 병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젊은 미망인이 총과 폭탄(니트로글리셀린)으로 무장한 채 남편을 체포한 스티브 카렐라 형사를 죽이겠다는 복수의 일념으로 87분서를 급습합니다. 여성 단신의 몸으로 건장한 경찰 서너 명을 그들의 홈그라운드에서 몇시간 동안 제압, 통제한다는 게 과연 가능하겠는가~하는 의문이 들지만...그러한 그녀에게 힘 한번 못쓰고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며 괜히 비밀스런 대응책을 시도하다 오히려 응징을 당하는 경찰들이 한없이 인간적이고 애처러워 보입니다. 한편, 87분서 내의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과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도 모른채 스티브 카렐라는 부자 노인의 석연치않은 밀실에서의 자살 사건(?)을 단독으로 조사합니다.

 

87분서 소속 경찰들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홈즈같은 천재적 추리나 람보같은 근육질 액션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임신한 약혼녀, 집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는 평범한 우리 이웃들입니다. 이 책의 묘미는 그러한 경찰들이 일상에서 겪는 현장의 상황을 과장된 액션이나 자극적인 묘사없이 리얼하게 드라마로 재현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인질극이 벌어지고 자칫하다간 건물이 통채로 날아가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지만 딱히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주범이 연약한 여자 한 명이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느 순간에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어 해피 엔딩으로 끝날 것 같은 예측가능한 결말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시각 생생하게 묘사되는 현실감있는 상황 전개가 이야기에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마이어 형사가 외부로 몰래 던진 긴급 요청 메세지의 운명을 통해 작가 특유의 위트가 보이고 남편을 잃은 미망인, 가난한 조국을 그리워하는 푸에르토리코 창녀, 위험에 빠진 약혼자를 위해 희생하려는 약혼녀 등 세 여자의 밀고당기는 장면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이 책에서 '쐐기'가 두 가지 용도로 쓰이더군요. 한 가지가 비유적인 의미라면 다른 한 가지는 상당히 직접적이네요. 

 

놀라운 반전이나 화끈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손에 땀을 쥐는 스피디한 전개도 없지만 '87분서 시리즈' 명성에 걸맞는 재미는 충분히 맛볼 수 있었습니다. 87분서 소속 모든 경찰이 주인공인지라 시리즈 첨부터 그들과 함께 동화되며 순서대로 읽으면 더욱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87분서 시리즈'에 정통한 편집자의 후기를 보니 시리즈의 탄생부터 집필 과정과 변화, 특성 등 시리즈의 역사와 배경이 잘 요약, 소개되어 있어 이 시리즈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 번에는 제대로(?) 된 범죄자와 맞서는 87분서 경찰들의 활약상을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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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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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기억들』,『심문』등으로 유명한 토머스 H. 쿡의 장편 추리소설입니다. 2006년 작품으로 배리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및 영국 추리작가협회상, 앤서니상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2014년에는 영화로도 개봉 예정이라네요. 원제는 Red Leaves.

 

먼저 눈에 띄는 건 표지입니다. 한 폭의 정물화를 보는듯한 표지 그림은 그냥 종이에 인쇄된게 아니고 음각 형태에 코팅한 느낌으로 세련되게 덧대여 있습니다. 또한 가독성을 해치지않는 범위내에서의 적당히 작은 글씨체는 쓸데없이 지면을 낭비하지않아 맘에 드네요.

 

주인공 에릭 무어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평범한 중년 가장입니다. 그에게는 대학 강사인 부인과 15세난 외아들이 있습니다. 에릭은 아버지가 파산을 하고 어머니는 차량 사고사, 형은 알콜 중독의 무능력자에 여동생을 어릴적 병으로 잃은 아픈 가족사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두 번째 가족에게는 그런 전철이 생기지 않게끔 무척이나 가정적이고 헌신적입니다.

 

하지만...중학생 아들 키이스가 이웃 지오다노 부부의 여덟 살 딸 에이미의 베이비시터로 가면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다음날 아침 에이미는 행방불명되고 모든 의혹의 시선이 전날 마지막으로 에이미를 돌봤던 키이스에게 쏠립니다. 아들이 주요 유괴 용의자로 지목되자 에릭은 자식의 결백을 믿고 지켜내려는 강한 부성애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악화일로로 치닫는 주변 정황들로 인해 그 철썩같은 믿음과 신뢰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 책은 범죄의 진상을 밝혀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소설이 아닙니다. 자식의 무죄를 굳게 믿는 아버지가 주위의 시선, 드러나는 증거들, 사건 당일 아들의 석연찮은 행동등에 의해 조금씩 신뢰가 무너져가고 급기야는 그 의혹과 불신의 파편이 가족과 형제, 아버지 그리고 그 주변에까지 퍼져가면서 서서히 나락으로 치닫는 한 가족의 붕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추리소설 형식을 가미한 순수문학 작품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얼핏 추리소설치고는 평범한 소재이지만 몰입감과 가독성이 상당히 좋습니다. 순문학필의 장르소설을 기피하는 제가 이 책은 단숨에 빠져 읽었습니다. 그만큼 책에 몰입케하는 작가의 필력이 뛰어납니다. 좁혀오는 경찰의 수사망과 평소 살갑게 대하던 이웃 주민들의 의혹어린 시선과 낯선 거리감, 거기에 알콜중독 형과 양로원에 계신 아버지의 불신에 찬 행동까지 더해져 에릭은 지금까지의 가족사에 대한 모든 것에 의혹을 느끼고...작가는 아들이 연루된 사건을 발단으로 급기야는 가족 포함 주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신뢰감이 조금씩 부식되어 가는 에릭의 그러한 고통과 번민의 과정을 뛰어난 필체로 그려냅니다.

 

마지막 밝혀지는 결말은 나름 충격적이면서 비극적입니다. 그러한 결말을 초래한 사소한 오해와 불신, 억측등이 얼마나 커다란 비극을 불러오는지를 생각하며 씁쓸한 여운에 잠깁니다. 어린 꼬마 숙녀의 실종 사건으로 야기된 오해와 불신의 늪이 전염병 옮듯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급기야는 단란했던 한 가정에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는지를 추리소설로 잘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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