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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평점 :
『밤의 기억들』,『심문』등으로 유명한 토머스 H. 쿡의 장편 추리소설입니다. 2006년 작품으로 배리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및 영국 추리작가협회상, 앤서니상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2014년에는 영화로도 개봉 예정이라네요. 원제는 Red Leaves.
먼저 눈에 띄는 건 표지입니다. 한 폭의 정물화를 보는듯한 표지 그림은 그냥 종이에 인쇄된게 아니고 음각 형태에 코팅한 느낌으로 세련되게 덧대여 있습니다. 또한 가독성을 해치지않는 범위내에서의 적당히 작은 글씨체는 쓸데없이 지면을 낭비하지않아 맘에 드네요.
주인공 에릭 무어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평범한 중년 가장입니다. 그에게는 대학 강사인 부인과 15세난 외아들이 있습니다. 에릭은 아버지가 파산을 하고 어머니는 차량 사고사, 형은 알콜 중독의 무능력자에 여동생을 어릴적 병으로 잃은 아픈 가족사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두 번째 가족에게는 그런 전철이 생기지 않게끔 무척이나 가정적이고 헌신적입니다.
하지만...중학생 아들 키이스가 이웃 지오다노 부부의 여덟 살 딸 에이미의 베이비시터로 가면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다음날 아침 에이미는 행방불명되고 모든 의혹의 시선이 전날 마지막으로 에이미를 돌봤던 키이스에게 쏠립니다. 아들이 주요 유괴 용의자로 지목되자 에릭은 자식의 결백을 믿고 지켜내려는 강한 부성애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악화일로로 치닫는 주변 정황들로 인해 그 철썩같은 믿음과 신뢰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 책은 범죄의 진상을 밝혀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소설이 아닙니다. 자식의 무죄를 굳게 믿는 아버지가 주위의 시선, 드러나는 증거들, 사건 당일 아들의 석연찮은 행동등에 의해 조금씩 신뢰가 무너져가고 급기야는 그 의혹과 불신의 파편이 가족과 형제, 아버지 그리고 그 주변에까지 퍼져가면서 서서히 나락으로 치닫는 한 가족의 붕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추리소설 형식을 가미한 순수문학 작품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얼핏 추리소설치고는 평범한 소재이지만 몰입감과 가독성이 상당히 좋습니다. 순문학필의 장르소설을 기피하는 제가 이 책은 단숨에 빠져 읽었습니다. 그만큼 책에 몰입케하는 작가의 필력이 뛰어납니다. 좁혀오는 경찰의 수사망과 평소 살갑게 대하던 이웃 주민들의 의혹어린 시선과 낯선 거리감, 거기에 알콜중독 형과 양로원에 계신 아버지의 불신에 찬 행동까지 더해져 에릭은 지금까지의 가족사에 대한 모든 것에 의혹을 느끼고...작가는 아들이 연루된 사건을 발단으로 급기야는 가족 포함 주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신뢰감이 조금씩 부식되어 가는 에릭의 그러한 고통과 번민의 과정을 뛰어난 필체로 그려냅니다.
마지막 밝혀지는 결말은 나름 충격적이면서 비극적입니다. 그러한 결말을 초래한 사소한 오해와 불신, 억측등이 얼마나 커다란 비극을 불러오는지를 생각하며 씁쓸한 여운에 잠깁니다. 어린 꼬마 숙녀의 실종 사건으로 야기된 오해와 불신의 늪이 전염병 옮듯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급기야는 단란했던 한 가정에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는지를 추리소설로 잘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