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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적한 호숫가 별장. 아이들의 방학을 맞아 네 가족과 선생 한 명이 모인다. 그리고 3박 4일의 합숙에 들어간다. 이곳은 명문 사립 중학교를 가기 위한 합숙 과외 현장이다. 아이들은 빌린 별장에서 강도높은 수업을 듣고, 네 가족은 인근에 있는 한 가족의 별장에 머물며 그런 아이들을 측면 지원한다.
네 가족중 어찌보면 불청객(?)인 슌스케가 뒤늦게 합류하고, 그의 내연녀가 예고없이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막이 오른다. 남편과 헤어지라는 내연녀의 요구에 격분한 아내는 내연녀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의기투합해서 사건을 은폐한다. 단순히 자기 부인에 대한 호의로만 생각했던 슌스케는 필요 이상으로 보이는 그들의 단단한 결속과 단합, 은근히 내비치는 불안정한 속내 등 수상쩍은 행동에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
이 책은 2005년에 출간한 <호숫가 살인사건>의 리커버 개정판이다. 출간 당시 인상 깊게 읽었지만 다시 읽어도 그 재미와 임팩트는 여전하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서부터 시체를 호수 바닥에 유기하고, 내연녀의 짐을 원래 도쿄 집에 되돌려놓고, 태연히 내연내인양 체크아웃하는, 그런 내연녀의 흔적을 없애는 일련의 은폐 과정이 마치 007 영화를 보는 듯 긴박하고 스릴감 넘친다.
하지만 주인공 슌스케가 도를 넘게 아내를 감싸며 사건을 덮으려는 그들의 미심쩍은 행동을 의심하면서부터 본격 추리의 형태를 띤다. 그리고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들이 그래야만 했던 그런 피치 못할(?) 사정이 숨어있다니...적극적인 진실 규명보다는 '혹시 내 가족이?'라는 소심한 불안감이 공동체 의식을 키워 결국 추악한 음모를 탄생시킨 배경이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걱정한 편협적인 결정이었다고나 할까...
명문 사립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합숙 과외를 하고, 입시 관계자(브로커)를 통해 교직원에게 뒷돈을 주고, 그것도 모자라 계약의 증거로 더한 일까지 서슴지않는 부모들의 빗나간 자식 사랑과 도덕 불감증을 보니 학력 우선 사회의 뿌리깊은 폐해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흔들리는 부부간의 가치관과 도덕성, 성적 자기 억제력을 상실한 문란한 이성 관계는 덤으로 파생되는 응분의 대가이다.
내가 만약 저 모임의 한 부모였다면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할까. 나 역시 그들의 생각에 동조해 한 배를 탈지, 아니면 나만의 신념으로 독자적으로 행동할지, 솔직히 어떤 방향이 나와 가족의 안녕을 위한 올바른 선택일지 섣불리 판단할 자신이 없다. 부끄럽지만 법은 그다음 문제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전개, 긴장감 넘치는 밀도있는 스토리, 놀라운 결말과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강렬한 메시지까지...히가시노 게이고 엔터테인먼트 문학의 정수이자 본격 추리와 서늘한 서스펜스가 잘 어우러진 수작이다. 175쪽 중간, "그래, 세키타니 씨는 뭐라고 합니까?"의 세키타니는 사카자키의 잘못이다. 이 훌륭한 작품의 유일한 옥에 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