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남
슈노 마사유키 지음, 정경진 옮김 / 스핑크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성 멘트가 있습니다 ★

6개월 간격으로 두 명의 여고생이 살해되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두 피해자 모두 교살된 채 목에는 날카로운 가위가 꽂혀 있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매스컴에서는 이 연쇄살인마를 '가위남'이라고 부른다. 그런 가위남이 세 번째 여고생 희생자를 찜한다. 그리고 몇날며칠에 걸쳐 먹잇감의 생활 반경과 동선을 신중히 체크한다. 마침내 세 번째 범죄를 결행하려는 순간...아뿔사...그녀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상태. 그것도 자신의 범행과 완벽히 동일한 수법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모방한 것이다. 매스컴에서는 당연히 가위남의 세 번째 범죄라고 호들갑 떨지만, 위기의식을 느낀 가위남은 스스로 진범을 찾아 나선다. 살인귀 탐정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가위남>은 슈노 마사유키 작가의 데뷔작으로, 제13회 메피스토 상 수상작이다. 이 책은  2007년에 국내 출시된 <가위남>을  새로운 번역과 판형으로 재출간한 개정판이다. 당시 <가위남>을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빌려와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2019년판 신작으로 다시 읽으니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이 책은 한마디로, 인간의 선입견을 교묘히 역이용한 작품이다. 모르고 보면 작가의 현란한 테크닉에 제대로 놀아날 것이요, 알고 보면 가위남의 정체를 숨기는 탁월한 기교에 감탄할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고개가 갸웃거리거나 위화감이 드는, 또는 어물쩍 넘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잘만 캐치하면 가위남의 정체를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다. 일단 제목부터가 일종의 암시이자 대범한 도발이요, 최면술이다.

책은 가위남의 시선과 경찰의 수사, 이렇게 두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주요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이다. 과연 가위남은 누구인가, 그리고 가위남을 모방해 여고생을 죽인 범인은 누구인가. 풀어쓰면, 가위남이 모방범을 추적하는 과정과 그런 가위남을 체포하기 위한 경찰의 수사 과정으로 교차 서술된다. 그리고 이 두 방향이 만나는 지점에 한 인물이 등장한다.

신인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에 짜임새가 있고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  본격 추리의 재미는 물론이고 스릴러적 긴장감도 팽팽하다. 가위남의 일상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그의 정체를 교묘하게 숨긴다. 오히려 다른 사람으로 오인하게끔 하는 미스디렉션 장치도 노련하게 마련한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스토리 전개를 완벽히 창출해내는 작가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가위남은 다중 인격 장애자이다. 끊임없이 다른 인격과 대화를 하고, 차분한 일상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주말마다 자살을 꾀하는 불안정한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그런 쾌락살인마의 정신적 심리 상태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범죄심리분석가의 프로파일링이 흥미롭다.

밝혀지는 가위남과 모방범의 정체도 놀라운데 그 이후 발생하는 일련의 마무리 과정이 꽤나 인상적이다. 세간을 흔들었던 가위남 사건이 그렇게 종결되다니...장작 주인공은 예상이나 했을까? 어쨌든 십수 년만에 다시 읽었지만 그 재미와 임팩트는 여전하다. 다시 봐도 대범한 트릭, 유려한 필치,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등 뭐하나 버릴 게 없는 수작이다. 이러한 훌륭한 데뷔작을 쓴 천재 미스터리 작가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 <거울 속은 일요일>이 조만간 출시된다니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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