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창비시선 241
이상국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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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좋아... 시집을 샀다...

[ 벽에 기대어 ]

때로는 벽에 기대어 시무룩하게 바라보면
형님은 또 담배를 붙여 물고
그림자처럼 앉았던 형수는 저것 보라며
슬픈 주먹총을 놓는 거였다

암종 든 한쪽 폐를 병원에 버리고 와서도
담배를 두려워 않는 저이,
뜯어낸 늑골 때문에
생이 자꾸 한쪽으로 기울면
기우는 그 반대편에 삶의 온갖 잡동사니들을 얹어
용케 균형을 잡아가는 늙은 전사

낡은 형광등이 찌르레기처럼 운다
큰조카는 괜히 날이 너무 가물지요 하고
누구에랄 것도 없이 묻고는
그 공허한 뒤끝을 허물려고
연신 손으로 파리를 낚아채는 시늉을 하는데

해 지고 나면
땅거미가 들과 마을을 차례로 덮어오듯
한발 다가오는 거대한 그 무엇과
겁 없이 맞서는 형님의 적막한 싸움을
나는 또 천치처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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