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들어온 바깥양반이 아침 일찍 극장 가서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왔다기에, 과연 어느 정도로 원작과 다르게 각색이 되었나 궁금해서 몇 가지 기억나는 대로 질문을 던져 (예를 들어 '아르고스를 연기한 배우는 누구인가?') 답변을 들어 보니, 현대적 해석이 상당 부분 가미되며 사실상 원작 훼손 수준의 변형이 이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오디세이아>는 완전한 비극만도 아니고, 오디세우스 역시 완벽한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현대식 해석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려면 제신과 마법을 완전히 배제한 청동기 시대 야만인들의 생존 투쟁기로 묘사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과격한 수준까지 각색이 이루어졌다면 복식 고증이나 배우 섭외 등에서의 논란도 애초부터 안 생기지 않았을까.


이번 영화의 고증 논란은 보르헤스가 지적한 '투명인간'의 난점을 연상시킨다. 고대의 플라톤은 '기게스의 반지'를 설명하면서 그런 마법 반지가 있었다고 말하고 넘어가면 끝이지만, 현대의 웰스는 '투명인간'의 사실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구구절절 들어야 하니 힘들었단 거다. 평소 사실성을 중요시한 영화 감독이니 고증 논란도 자연히 따라붙은 것이 아닐까.


배우 섭외 관련 논란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엘리엇 페이지이다. 트랜스젠더인 탓에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왜곡 시비가 벌어질 것 같더니만 결국 원작에는 없었던 배역을 담당한 듯하다. 나귀님 생각에는 이 배우야말로 남녀 양성 모두로 살아보았다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역할에 안성맞춤이었을 것 같은데, 어째서 그 역할을 안 맡겼는지 의아할 뿐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간교한 영웅이다. 거짓말과 시치미는 기본이고, 자만한 행동으로 위기도 자초하니, 마블 영화로 치면 시종 진지한 캡틴보다는 깐죽대는 아이언맨과 더 유사하다. 긴 여정에서 동료들을 모두 잃고 감금당했지만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목표를 위해서는 굴욕조차 받아들이니, 그를 무조건 지치고 힘든 인물로만 묘사한 것은 절반만 본 셈이다.


현실의 전쟁을 의식한 까닭인지, 이번 영화는 <오디세이아>를 너무 어둡게만 그리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감독의 이름값 때문인지 흥행과 평론 모두 호평 일색이지만, 좀 더 객관적인 평가는 더 기다려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호프> 논란에서도 유사하게 전개되듯이, 관객의 반응이 기껏해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색이라면 걸작까진 아닐 수 있으니까.


나귀님이 이제껏 본 그리스 신화 영상화의 최고봉은 <이아손과 아르고호 원정대>(1963)이다. 고증 따위는 가뿐히 씹어버리고 순수한 재미로 승부하는 영화인데, 특히 레이 해리하우젠이 전설적인 스톱모션 특수 효과로 구현한 청동상과 해골의 모습은 지금 봐도 충분히 신기하다. 작품성으로 따질 수는 없어도 오락성으로 따지자면 가히 최고의 영화라고 할 만하다.


그나저나 <오디세이아> 이야기가 나왔으니, 엉뚱하게도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대목에서 그 작품이 언급된 것이 생각난다. 작년엔가 예능 프로 <케냐 간 세끼>를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꺼낸 책인데, 왜냐하면 저자인 이사크 디네센(카렌 블릭센)이 한때 케냐에서 커피 농장을 운영했고, 그 기억을 더듬은 회고록이 훗날 영화로도 유명해진 이 책이기 때문이다.


그중 한 대목에서는 저자가 책을 쓴다며 타자기를 두들기자, 옆에서 지켜보던 원주민 하인 소년이 나름대로 논리정연한 반론을 제기한다. 즉 책장에서 꺼낸 책 한 권을 보여주며 '책이란 이렇게 한데 묶인 것이지만, 주인님의 글은 낱장으로 떨어져 있어서 책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원고(낱장)와 제본서(책)의 차이를 오해한 것뿐이다.


이때 소년이 꺼낸 책이란 바로 <오디세이아>였는데, 저자가 내친 김에 그 내용을 설명하며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양을 이용해 탈출했다고 말하자, 소년은 그 양이 자기가 본 양과 비슷한 것인 듯하다고 단언한다. 허구 속의 대상을 자기 주변의 대상과 연결지어 이해하는 특이한 사고방식은 백인과 원주민의 접촉을 다룬 책에서 흔히 등장하곤 했었다.


이번에 뒤적여 본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열린책들의 '미스터노' 페이퍼백 판본인데, 뒤표지를 보면 "국내 최초 번역"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하지만 그보다 20년쯤 전에 나온 <아웃 오브 아프리카>(위미숙 옮김, 포커스, 1991)라는 번역본도 있었다. 생각난 김에 그것도 꺼내 대조해 보니 전5장 중 단상 위주인 제4장(어느 이민자의 노트)를 제외하고 번역했다.


포커스 판본은 예를 들어 개 이름 "더스크"(dusk)를 "다스크"로 표기하는 등, 고유명사 표기가 어색한 것으로 미루어 일어 중역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거꾸로 포커스 판본이 더 이해하기 쉬운 경우도 있었다. 예전에 저자의 하인이었던 원주민이 보낸 안부 편지에서 상대방을 "암사자"라고, 즉 "암사자 블릭센"과 "존귀하신 암사자님께"로 호칭한 대목이 그러했다.


열린책들 판본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넘어간 반면, 포커스 판본에서는 저 원주민의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까닭에 '남작부인'(Baroness)을 '암사자'(Lioness)라고 잘못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역주가 붙어 있다.(문득 국문학자 양주동의 일화에서 어느 제자가 보낸 안부 편지를 보니 "恩師(은사)"를 "鬼帥[귀신 장수]"라 잘못 적었더라던 대목이 떠오른다). 


그래도 과거에 포커스 판본이 반가웠던 까닭은 '영화 소설'이 아니어서였다.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2000년대 이전의 간행물 중에는 어떤 외국 영화가 개봉되면 그 원작이 아니라 영화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가 소설로 각색하고 영화 포스터를 표지에 붙인 조악한 출판물이 범람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도 영화 개봉 후에 그런 책들이 여러 종 나왔다고 기억한다.


아울러 포커스 판본의 또 한 가지 장점은 저자와 주요 인물의 사진이 흑백으로나마 몇 가지 수록되었다는 점인데, 이에 비해 열린책들 판본은 도판이 전무하다. '포커스'라는 출판사 발행인이 사진작가 김용범이고, 뒷날개에 그의 아프리카 사진집도 선전하는 것으로 미루어, <아웃 오브 아프리카> 원작 번역서도 아프리카에 대한 개인적 관심의 연장이었던 걸까.


앞서 언급한 원주민 소년은 케냐 총인구의 20퍼센트에 달하는 키쿠유족이었다. 외계 행성에 아프리카 같은 자연 환경을 만들어 전통 문화를 유지한다는 묘한 내용인 <키리냐가>의 주인공도 바로 키쿠유족이었다. 유명한 고고학자 루이스 리키의 아들인 리처드 리키도 어려서부터 키쿠유족과 생활해서 그 부족 특유의 성인식(!)까지 치렀다는 이야기가 문득 기억난다.



[*] 루이스 리키에 관한 이야기는 제인 구달에 이어 비루테 갈디카스까지 타계함으로써 '어쩐지 모두 세상을 떠난 세 딸들'에 대한 글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자. 물론 '나스타샤 킨스키 4종 세트'나 '마리루이제 플라이써의 길고 화려한 극작가 생활'처럼 머릿속에는 다 들어 있지만 막상 옮겨 적으려니 귀찮아서 어영부영하다 결국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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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무려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 하와이대저택의 세네카 편역서를 살펴보다 보니, 언제부턴가 '성공론' 저자들이 이 스토아 철학자의 저서를 앞다투어 이용하고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보통 '인생론'으로 지칭되는 그의 대화편이 섭리, 분노, 행복, 평상심, 시간, 죽음 등의 주제를 다룬다는 점 때문에 자기계발 분야에도 적격이라 여기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세네카의 인기 요인은 그보다 먼저 자기계발 분야에서 인기를 끌었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경우와도 유사하지 않나 짐작된다. 각종 금언을 창작하고 시간 계획을 세우는 등,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성공한 인물이라는 이유 때문에 각별히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 프랭클린은 원래부터 천재라서 성공한 것이지 근면만으로 성공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프랭클린을 좋아해 저서 제목도 <가난한 찰리의 연감>인 투자자 찰리 멍거도 마찬가지인데, 동업자 워런 버핏처럼 원래부터 똑똑한 사람이었으니 성공했을 뿐이다. 그러니 같은 국정교과서로 공부해도 1등과 꼴등이 생기듯, 일반인이 이들의 조언을 마음에 새긴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깐부치킨 좌석에 앉는다고 누구나 젠슨 황이 될 수는 없듯이 말이다.


만약 오늘날의 독자가 세네카에게서 어떤 교훈을 얻어내려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그의 비참한 최후에서 얻는 반면교사뿐이 아닐까. 그는 뛰어난 철학자였고 정치인이었고, 여러 '대화편'에 드러난 것처럼 내면에서는 갖가지 사색과 통찰이 넘쳐났지만, 부와 권력에 과도하게 집착한 까닭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이야말로 과유불급의 사례이다.


나귀님이 보기에는 차라리 군주를 잘 섬겨 대업을 이루고도 '토사구팽'이란 명언을 남기고 잠적해 천수를 누린 도주공(범려)이 세네카보다 한 수 위인 듯하지만, 주식에서도 고점에서 익절하기는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고들 하니, 빠져나올 때를 아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앎을 서슴없이 실천에 옮기는 것만 해도 예나 지금이나 이미 일반인의 역량을 넘어서는 듯하다.


사실 천병희와 김남우 등의 원전 번역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세네카는 중역의 피해를 종종 입은 작가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심각한 번역서 2종을 소개하자면, 1980년대부터 간행된 범우사의 <행복론>(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저서와 합본되어 지금도 <명상록/행복론>으로 간행 중이다)과 2000년대 들어 간행된 동서문화사의 <세네카 인생론>이 있다.


우선 범우사의 <행복론>은 세네카의 원저가 아니다! 17세기 영국인 로저 레스트레인지(Roger L'estrange, 1616-1704)의 편저 <세네카의 도덕론: 요약본(Seneca's Morals: By Way of Abstract)>(1678)에 수록된 "행복한 삶에 관하여"(Of a Happy Life)를 옮긴 것인데, 편저자의 서문에 따르면 세네카의 여러 저서에 흩어져 있는 내용을 주제별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네카의 '대화편' 중에도 "행복한 삶에 관하여"(De Vita Beata)가 있어서 마치 같은 작품이겠거니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두 가지를 비교해 보면, 세네카의 "행복한 삶"은 총28장(미완)인 반면, 레스트레인지의 "행복한 삶"은 총25장이고 내용도 더 많으며, 세네카의 동명 대화편의 내용뿐만 아니라 <도덕 서한>의 내용도 군데군데 조합해 놓았다.


출전 표시가 전무해서 각 문단의 유래를 확인할 수 없다는 가장 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요약본조차도 이미 옛날 책이니 지금에 와서는 고전으로 대접받을 만하지만, 출판사가 오랫동안 독자를 기만했다는 점은 괘씸할 수밖에 없다.(어쩌면 번역자나 출판사는 이 책이 세네카의 온전한 저술까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지 모르지만, 책에는 일언반구도 없다).


다음으로 동서문화사의 <세네카 인생론>이 있는데, 무려 970쪽에 달해 지금까지 나온 세네카 번역서 중 최대 분량이다. 세네카의 대화편 전10편, <도덕 서한집> 전124편 중 65편, <자연의 의문들> 전6편에, 심지어 풍자 산문 "아포콜로킨토시스"와 위작으로 간주된 "불행의 치료에 대하여"까지 들어 있어서, 사실상 희곡을 제외한 그의 작품 대부분을 수록한 셈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동서문화사 번역서와 마찬가지로 일어 중역으로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고유명사부터 "마르쿠스 카토"(Marcus Cato)를 "마르크스 카트", "라엘리우스"(Laelius)를 "라에리우스", 베르길리우스"(Vergilius)를 "웰기리우스"로 틀리게 썼는데, 하나같이 가타가나로 표기된 라틴어를 잘못 옮기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형적인 실수이다.


그런데 이 책의 또 다른 부분에서는 위의 인명이 "마르쿠스 카토"와 "베르길리우스"라고 제대로 표기되어 있으니, 이쯤 되면 번역도 문제지만 편집도 문제임을 짐작하게 된다. 지금은 그나마도 절판되어 '대화편'은 <세네카 인생철학이야기>로 재간행되고, '도덕 서한'은 <세네카 삶의 지혜를 위한 편지>로 재간행되었으나, "자연의 의문들"과 다른 저술은 사라졌다.


C. S. 루이스는 고전 독서에 관한 조언에서 '플라톤 해설서를 읽는 것보다는 플라톤을 읽는 것이 더 쉽다'고 말했다. 세네카도 마찬가지이니, 맥락도 결여되고 왜곡도 의심되는 갖가지 '성공론' 류의 편역서를 읽기보다는 원전 번역서를 읽는 편이 더 유익할 것이다. 약간의 인내와 관심은 필요하겠지만, 그건 하다못해 일일 연속극을 보더라도 필요한 자세 아닐까.


원전 번역서로 추천할 만한 것은 당연히 천병희의 <세네카의 행복론>으로 '대화편' 중 4편의 완역이다. 김남우 등이 옮긴 <세네카의 대화: 인생에 관하여>는 '대화편' 전12(10)편을 한 권으로 완역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다른 원전 번역서도 몇 가지 더 나온 것 같은데 수준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이런 몇 가지를 빼면 나머지는 중역본에 편역서라 추천할 수 없겠다. 



[*] 나귀님이 보기에 지금까지 나온 세네카 편역서 중에서 최악의 제목은 <사형당했지만 이 편지는 주고 싶습니다>이다. 언젠가 뉴스에서 최근 출판계에서 몇몇 베스트셀러의 제목을 무작정 따라하는 유행이 있다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그 대표 사례로 들어서 황당하다 싶었는데, 저 제목을 보고 나니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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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베이크웰의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는 후주와 참고문헌을 링크로 대체한 것 때문에 논란이 벌어져서, 현재 기존 판본은 판매가 중지되고 부록을 복원하기 위한 추가 제작이 진행 중인 것으로 짐작된다. 나귀님으로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조치인데, 뒤늦게 출판사 측의 소개글을 읽어보니 "가격을 크게 낮추고 부피를 가볍게 했다"는 구절이 눈에 띈다. 


결국 원서에도 들어 있고, 구판에도 들어 있던 후주와 참고문헌을 굳이 빼버린 것은 가격 인하를 위한 출판사 측의 고심 때문이었던 걸까? 하지만 나귀님이 알기로 일반 단행본 서적의 부록은 전체 쪽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기에 책값을 좌우하는 요소까지는 되지 못하는 듯하니, 출판사의 주장은 뭔가 착오이거나 아니면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서 문득 예전 조지 오웰이 '책값이 비싸서 독서를 못한다'는 통념을 반박하기 위해 직접 계산기를 두들겼던 것이 생각나기에 (결론은 담배보다 책이 더 싸니, 결국 책이 비싸서 안 읽는 게 아니라 읽기 싫어 안 읽는다는 것이었다) 나귀님도 해당 출판사의 신간 중 부록 달린 것 몇 가지를 골라서 면수, 가격, 부록이 차지하는 비율 등을 간단히 계산해 봤다.



1. <아비투스>

372면, 22,000원, 부록(감사의 말, 주석, 참고문헌: 350-372면)

==> 면당 59원, 부록(23면) 1357원(정가의 6%)


2. <공기의 세계>

632쪽, 33,000원, 부록(감사의 글, 참고문헌, 미주: 584-632면)

==> 면당 52원, 부록(49면) 2548원(정가의 7%)


3. <공존한다는 착각>

424면, 23,000원, 부록(주, 참고문헌 및 감사의 말: 410-424면)

==> 면당 54원, 부록(15쪽) 810원(정가의 3%)


4. <지구의 짧은 역사>

312면, 20,000원, 부록(감사의 말, 옮기고 나서, 참고문헌, 그림 출처, 찾아보기: 281-312면)

==> 면당 64원, 부록(32면) 2048원(정가의 10%)


5. <불안사회>

172면, 16,800원, 부록(주, 색인: 162-172면)

==> 면당 97원, 부록(11면) 1067원(정가의 6%)



위의 사례만 보면 책에서 부록의 비율은 대략 6-7% 내외, 아무리 많아야 10% 수준이므로, 종이에 찍건 링크로 대체하건 책값에서 큰 차이는 없을 듯하다.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 신판은 544면, 정가 26,000원, 면당 47원이고, 구판은 648면, 정가 38,000원, 면당 58원에다 부록(등장인물, 감사의 글, 주, 주요 참고도서, 찾아보기)이 120쪽(18%)으로 제법 많다.


신판은 구판의 부록 중 '후주'와 '참고문헌'만 링크했는데, 구판 기준으로는 92면(14%)으로 역시나 제법 많은 편이다. 역산해 보면, 신판에서 링크로 대체된 부분이 추가될 경우, 정가 26,000원에서 3,640원(14%)어치가 늘어나 29,640원이 되지 않을까. 쪽수도 544면에서 632쪽으로 늘어나니, 이쯤 되면 30,000원 이상의 정가를 책정해도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결국 부록을 링크로 대체하여 인하된 가격이 3,640원쯤이라면 정가 대비로는 적지 않더라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조금 '짜치는' 금액이기도 하다. 차라리 화끈하게 10,000원쯤 빼준다면 몰라도, 현재 물가 기준으로 포장 음식 배달비며 저가 커피 한 잔 가격에 해당하는 3,640원을 빼주며 "가격을 크게 낮추"었다는 출판사의 주장은 아무래도 과장 아닐까. 


마침 같은 출판사에서 먼저 펴낸 세라 베이크웰의 전작인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이 652면에 정가 33,000원이고, 그중 부록(감사의 말, 휴머니즘 선언문, 미주, 그림 출처)이 95면으로 전체의 14%를 차지하고 있으니,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 신판도 후주와 참고문헌을 포함해서 간행했다면 대략 전작과 유사한 분량과 가격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은 다산초당에서 조만간 간행한다며 한창 북펀드를 진행 중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회고록 <어제의 세계>가 600면에 33,000원인 반면, 지식공작소에서 간행되었던 구판은 분량이 596면으로 비슷한데도 가격은 절반 수준인 18,000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는 판권 계약비라도 들어가지, 츠바이크는 판권 계약이 없는데도.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에 적용되었던 논리대로라면 <어제의 세계>도 가격을 낮추고 부피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츠바이크 회고록은 오히려 "초판 한정으로 각양장, 금박 등 고급스러운 사양과 디자인을 더해 소장 가치를 높였다"고 주장하니, 세라 베이크웰의 책과는 정반대로 책값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모양새다.


나귀님 입장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은 출판사에서 정작 가격과 두께, 양장과 금박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는 반면, 막상 책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의 충실성이나 이용의 편의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싯다르타>의 경우에도 번역본은 많지만, 가격이 싼 책이 더 많이 팔린 것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니 정 가격을 내리고 싶었다면, 차라리 "부록"만 인쇄해서 3,640원에 판매하고 "본문"은 링크로 대체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제작비를 권당 26,000원씩 아낄 수 있으니 어마어마한 이득이고, 출판사 측 선전처럼 "전 세계의 인문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 걸작 논픽션"을 커피 한 잔 값보다 싸게 판매한다면 베스트셀러에 스테디셀러 등극은 따 놓은 당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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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디세이> 개봉에 맞춰서 알라딘에서 개설한 "오뒷세이아" 이벤트 페이지를 보니 알라딘 자체 제작 티셔츠 2종이 나온다. 그중 하나인 "항해" 티셔츠의 범선 그림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해서 지난번에 쓴 글 말미에 지적질했는데, 오늘 다시 생각나서 확인해 보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제의 "항해" 티셔츠는 현재 품절이라서 8월 13일에 재입고된다고 한다.


나귀님의 지적질에 뒤늦게야 실수를 깨닫고서 그림을 수정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항해"가 "투구"보다 더 인기가 많았던 까닭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투구"에 나온 갤리선이 호메로스 서사시의 시대 배경에 어울리는 선박인 반면, "항해"에 나온 범선은 (돛과 돛대의 모습을 보면 '바크선'이라고 해야 할까?) 누가 봐도 근대의 선박이라고 해야 맞을 거다.


서사시의 제목이자 이번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오디세이"(the Odyssey)가 종종 "모험"이나 "방랑"이란 의미로도 사용됨을 감안한다면, 그 영어 단어를 크게 새겨 넣고 바크선인지 클리퍼선인지를 집어넣은 "항해" 티셔츠도 '일반적인 의미의 항해를 뜻했을 뿐'이라고 둘러댈 수 있겠지만, 하필 바로 밑에 저 서사시 원문을 적어 놓았으니 어이없는 실수가 되겠다.


비유하자면 충무공 탄신 기념이랍시고 알라딘에서 티셔츠를 만들었는데, 맨 위에는 "한산대첩"이라고 쓰고, 맨 아래에는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조의 첫 구절을 적은 다음, 막상 그 사이에는 임진왜란과는 무관한 현대식 항공모함 그림을 떡하니 박아놓은 것과 유사한 정도의 고증 오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진짜로 그랬다면 난리가 났겠지).


그나저나 평소에는 둔감한 편인 나귀님께서 남들이야 무심코 지나칠 법한 범선의 모양에 대해서 유독 주목한 까닭은, 마침 며칠 전에 어떤 범선의 정체에 대해 구글링해 보았기 때문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출세작인 영화 <록키>의 저 유명한 "훈련 장면"에서 막판에 부둣가를 질주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옆으로 늘어선 선박들 중에 꽤 큰 범선이 한 척 있었다.


영화가 1976년작인데 과연 그때도 현역인 범선이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져서 구글링해 보니 저 범선은 '모슐루'(Moshulu)호라는 7,000톤급 강철 바크선이라 한다. 1904년 건조되어 곡물 운반선으로 활약하다 1940년대 후반 퇴역했고, 이후 수상 곡물 창고로 사용되다가 <록키> 등장 당시에는 수상 식당으로 개조되었으며, 지금도 필라델피아 항구에 남아 있다 한다.


돛대 네 개짜리 범선이기는 하지만 목재가 아니라 강철 선체인 까닭에 무려 120년 넘도록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었던 것인가 싶기도 하다. 길이가 120미터에 너비가 14미터로 덩치가 워낙 크니 퇴역 후에도 창고며 식당으로 쓸모가 있는 모양이다. 이처럼 퇴역 후 다른 용도로 활용된 선박의 사례라면, 서울 망원동 한강변에 있는 해군 군함 개조 전시관도 생각난다.


외국에는 퇴역 선박을 수상 호텔로 개조한 경우도 있다고 하고 (그 명칭은 '보트 + 호텔 = 보텔'이니, 우리나라 같으면 또 이상한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라며 페미니즘 논문이 한 편 나올 법하다)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는 센 강에 띄운 낡은 바지선을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개조해서 저소득자용 집배로 만든 일화가 유명해서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책까지 나왔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는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추앙되는 르 코르뷔지에도 아줌마들에게는 '뭘 모르는 사람' 취급 받기 십상이란 점이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에 나온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그가 지은 주택은 건축 미학 면에서는 뛰어난 건물인지 몰라도 막상 살기에는 불편해서, 공장 사택 같은 경우에는 애초의 설계와 달리 천차만별로 개조당했단 거다.


제아무리 위대한 건축가의 기발한 생각조차도 실생활의 불편함 앞에서는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으니, 길어야 4-5년에 불과한 임기 동안 부동산 정책을 쥐락펴락하려는 대통령이며 국회의원의 삽질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며칠 전에 한 국회의원이 외국에서 노후 선박을 주택으로 개조하듯 노후 버스를 주택으로 개조해 청년층에 공급하자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애꿎은 청년층을 희생양 삼는다며 비난이 빗발치자 재빨리 발언을 철회한 모양이니 한심한 일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 결과물은 외국에서 빈곤층 주거지인 트레일러파크와도 유사할 터이니 반가울 리 없다. 다만 최근 캠핑카 방치가 골치인 지자체도 많다니, 차라리 그걸 다 몰수해 만든 트레일러파크를 헐값 분양하자 제안했다면 반응이 달랐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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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폭염이 한창인 와중에 알라딘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무려 세네카의 책이 1위를 차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중이다. 기후 변화 때문인가, 아니면 또 리센느 때문인가. 이미 붓다와 쇼펜하우어 책이 한 번씩 차지하고 내려간 다음이니 세네카라고 해서 예외로 칠 수는 없겠지만, 여기서의 문제는 그 세네카 책이 뭔가 함량 미달의 편역서로 보인다는 점이다.


문제의 세네카 책은 자기계발 콘텐츠로 구독자 90만 명을 찍었다는 유튜버 하와이대저택이 편저했다. 나름대로는 감명 받은 책이라고 해서 세네카의 저술을 직접 번역하고 재구성했다는데, 문제는 원문에 충실하지도 않고 뚜렷한 의도가 드러나지도 않아 영 애매하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세네카의 책도 아니고, 하와이대저택의 책도 아닌 애매한 물건일 뿐이다.


보통 고전을 편역한다면 완역과 달리 편역자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만약 나귀님더러 세네카의 저술을 편역하라면, 오늘날의 국내 독자에게는 영 생소할 수밖에 없는 로마 제국 당시의 인명과 관직명 같은 각종 고유명사를 모두 발라내고,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충분히 일리가 있을 법한 내용만 선별해서 어느 잘난 꼰대의 조언처럼 꾸며내고 말겠다.


그런데 문제의 책은 완역본인 천병희 번역서와 비교했을 때 내용을 군데군데 덜어내고 다르게 연결해서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일러두기에는 영역본을 대본으로 삼았다고 하지만,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있는 그 원문과 대조하니 그쪽과도 일치하진 않는다. 종종 축약과 첨언이 등장하다 보니 원래의 문맥과 사뭇 달라져 오해를 야기할 만한 부분도 없지 않다.[*]


세네카의 대화편에는 장절 구분이 있어서 편역서라면 그 출처를 표시하게 마련이고, '성공론' 분야의 편역서도 일부에선 이런 규약을 따랐는데, 이 책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분명히 세네카의 말과 비슷하게 시작하지만 곧이어 생소한 문장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이게 과연 다른 부분에 나온 세네카의 말을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편저자의 첨언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세네카의 대화편에도 애초의 문맥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편역서라고 한들 내용을 삭제하거나 순서를 뒤바꾸는 것이 항상 정당화될 수는 없다. 장절로 그 출처를 표시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그래서이니, 이를 통해 편역자가 어떤 의도와 논리로 세네카의 대화편을 재구성했는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저자의 첨언이 과도하게 섞이면 문제다.


편저자의 독창적 해석을 내세울 의도였다면 차라리 해설서를 쓰는 게 맞다. 예를 들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처럼 인용문을 내놓고 해설을 덧붙이는 방식이면 충분했을 텐데, 세네카의 텍스트라고 해놓고서 실제로는 누락과 첨언이 많다는 것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만약 하와이대저택의 유튜브 콘텐츠를 누군가 이처럼 멋대로 편집해 유포하면 수긍할 수 있을까?


여하간 나귀님 기준으로는 절대로 세네카의 책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상한 편역서인데, 이런 책을 왜 만들고 왜 사는지 의문이다. 물론 하와이대저택은 '편역'이라는 말로 무사히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지금도 영화 <오디세이> 개봉에 맞춰 각종 '편역서'가 난무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걸 읽은 독자라면 어디 가서 '세네카를 읽었다'고 자부하진 말아야 맞겠다.


이번 일로 인해 또 하나 걱정스러운 점은 앞으로의 부작용이다. 세네카의 말과 편저자의 말이 뒤섞인 책이 무려 베스트셀러씩에 등극했으니, 머지않아 양쪽의 말을 구분할 수 없는 까닭에 원문에는 없었던 편저자의 말이 세네카의 말로 와전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차라리 저 유튜버가 이미 여럿 나온 세네카 원전 번역서를 추천했다면 그 진정성도 인정했을 텐데.


그나저나 나귀님이 보기에 가장 큰 아이러니는 하와이대저택의 세네카 편역서가 무려 16,200원인데 천병희의 대화편 4종 완역본은 15,300원이라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재료도 덜 들어가고 조리도 애매한 음식을 더 비싸게 먹는 셈이니, 결과적으로는 독자만 손해 아닐까. 물론 그 독자가 하와이대저택의 구독자라서 군말 없이 책을 산다면 편저자에게는 이득이겠지만.


나귀님이야 저 편역서를 알라딘 미리보기로만 살펴보았으니 다음 구절도 거기 들어 있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뜬금없는 세네카 책 구매자들이라면 한 번쯤 귀담아 듣기 바란다. "더 나은 것이 다수의 마음에 든다면 좋으련만 인간은 그렇지가 못해요. 군중의 마음에 든다는 것은 곧 그것이 최악이라는 증거니까요."("행복한 삶에 관하여" 2장 1절, 천병희, 169쪽)




[*] 예를 들어 다음 구절에서 << >>로 표시한 대목을 원전 번역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저자가 전달하려는 핵심 내용을 편역자가 빼먹은 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1. 하와이대저택 편역서:


아리스토텔레스조차 자연을 향해 따졌다. 어떤 동물에게는 수백

년을 허락해 놓고, 인간에게는 왜 이토록 짧은 시간만 주었느냐

고.


<< 그러나 전제 자체가 틀렸다.


문제는 시간의 양이 아니다. 쓰임이다. >>


거대한 왕의 재산도 나쁜 주인의 손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흩어진다. (18쪽)



2. 천병희 번역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자연에 대해 철학자답지 않게 시비를 걸었지요

. "자연은 동물에게는 인간보다 다섯 배 또는 열 배나 오래 살도

록 수명을 넉넉히 주었거늘 그토록 많은 일을, 그토록 큰일을 하

도록 태어난 인간에게는 그토록 짧은 수명을 정해놓다니" 하고 

말이오.


<< 그렇지만 우리는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

하고 있는 것이오. 인생은 충분히 길며, 잘 쓰기만 한다면 우리

의 수명은 가장 큰 일을 해내기에도 넉넉하지요. 하지만 인생이

방탕과 무관심 속에서 흘러가버리면, 좋지 못한 일에 인생을 다

소모하고 나면, 그대는 마침내 죽음이라는 마지막 강요에 못 이

겨 인생이 가는 줄도 모르게 지나가버렸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오.


짧은 수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명을 짧게 만들었고, 수

명을 넉넉히 타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수명을 낭비하는 것이라

오. >> 마치 왕에게나 어울릴 넉넉한 재산도 적합하지 않은 주인

을 만나면 금세 탕진되고, 얼마 안 되는 재산도 제 주인을 만나

면 사용함으로써 늘어나듯이, 우리의 수명도 제대로만 배분하면

크게 늘릴 수 있는 것이라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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