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이 사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이며 캐나다와의 호수 전쟁(?)으로 한창 바쁜 와중에도 굳이 짬을 내서 일주일간의 조기 게양을 명령했다는 것은 살짝 뜬금 없지만, 그만큼 미국 내에서 영향력이 큰 연예인이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정작 코로나 백신이며 동성애자를 대하던 파튼의 태도는 트럼프와 정반대였었는데도.
미국의 컨트리라면 한국의 트로트와도 유사하게 골수 팬이 많아서, 비록 세계적인 인기는 뒤떨어지더라도 판매량은 어마어마하다고 알고 있다. 돌리 파튼도 1980년대 초의 전성기 이후로는 줄곧 하향세라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겠지만, 유작 앨범 <록스타>의 참여자들만 봐도 대중 음악계에서는 '큰할머니' 대접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1980년대에는 크로스오버를 통해 빌보드 메인 차트와 컨트리 차트 모두를 석권한 컨트리 가수가 여럿 나온 바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라이오넬 리치 작곡의 "레이디"로 인기를 끈 케니 로저스이고, 또 한 명의 사례가 "나인 투 파이브"로 인기를 끈 돌리 파튼이다.(아울러 두 사람이 함께 부른 "해류 속의 섬"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나인 투 파이브"는 동명 영화의 주제가인데, 돌리 파튼은 영화에서 악질 상사에게 반기를 든 여직원 3인방 중 하나로 출연했다. 다른 출연작으로는 샐리 필드, 줄리아 로버츠, 셜리 맥클레인, 대릴 해나와 함께 나온 <철목련>이 있다. 여기서는 주인공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미용실 원장으로 나왔는데, 극작가 샘 셰퍼드(!)가 남편으로 나온다는 점도 특이했다.
파튼의 출연작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것이라면 <텍사스 최고의 갈봇집>이라는 1982년 영화가 있다. 제목 그대로 20세기에 텍사스 라그레인지에 실제로 있었던 '치킨 랜치'라는 성매매 업소(!)를 소재로 했는데, 본래 그곳에 관한 탐사 보도 기사가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면서 뮤지컬이 먼저 제작되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영화까지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치킨 랜치'는 대공황 시절 쪼들리는 손님들에게 닭 한 마리씩을 화대로 받고, 아예 그 닭들을 이용한 양계장을 부업으로 삼으며 생겨난 별명이다. 여성 포주가 종사자의 위생을 철저히 관리하고, 수익금 일부를 지역에 기부금으로 내놓고, 지역 상점에서 물품을 구매하고, 심지어 운영 중 얻은 정보를 경찰에 제공하는 등 여러 모로 상생 협력(?)을 지속해 나갔다.
그래봤자 성적 착취에 불법 영업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겠지만, <괴짜 경제학> 류의 연구에서 드러났듯 해적부터 마약 밀매 조직에 이르는 범법자들의 무리 역시 나름대로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문화를 구축하게 마련이므로, '치킨 랜치'와 '머스탱 랜치' 같은 유명 성매매 업소가 사회학이나 인류학의 주목 대상이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치킨 랜치'는 당대의 여타 성매매 업소에 비해 진일보한 편이었다는 평가마저 나오니, 어쩌면 여성사 분야에서도 또 하나의 빈칸을 채우기 위한 시도로서 해당 업소에 대한 재조명과 재평가를 시도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잭 더 리퍼의 희생자인 빅토리아 시대 성매매 종사자들에 대해서도 최근 유사한 맥락에서의 재조명이 이루어지는 듯하니까.
여하간 이래저래 민망한 소재와 내용일 수밖에 없는 이 영화의 삽입곡 중 하나가 돌리 파튼이 직접 작사작곡한 "당신을 언제나 사랑할 거에요"인데, 본래 1974년에 발표되었다가 1982년 이 영화 덕분에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훗날 휘트니 휴스턴이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가로 리메이크하여 지금까지 전세계 사람이 다 아는 '앤다이아~'가 되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파튼은 성매매 업소의 여주인으로 나왔는데, 본인도 인정한 평소의 "싼티 나는 이미지"에 딱 어울렸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목청과 커다란 가슴(!)으로도 유명했으니, 유명한 '바니' 복장으로 <플레이보이> 표지에 등장하는가 하면, 젖샘세포를 이용한 세계 최초 체세포 복제양 '돌리'의 이름 유래가 된 것 역시 그런 이미지의 연장이었다.
요즘 같으면 성희롱에 성상품화라는 비판 여론이 나오고도 남았을 법하지만, 정작 파튼 본인은 이 모두를 유쾌한 농담쯤으로 여긴 듯하다. 언젠가 조이스 캐롤 오츠도 <플레이보이>에 기고한 것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페미니스트 진영을 향해 '내가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다고 해서 그 매체의 모든 주장에 동조한 것이겠는가?'라면서 일침을 놓은 것이 떠오른다.
그나저나 이쯤 되면 '제목에서 언급한 헤밍웨이 소설과 돌리 파튼이 도대체 무슨 관계냐?'는 질문도 나올 만하겠다. 대답은 이렇다. 앞에서 언급한 파튼과 로저스의 듀엣곡 "해류 속의 섬들"의 제목이 헤밍웨이의 사후에 여러 권 간행된 유작 중 최초인 동명 소설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다른 유작으로는 <에덴 동산>(1986)과 <여명의 진실>(1999)이 있다).
파튼과 로저스의 "해류 속의 섬들"은 훗날 랩 음악에 샘플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던데, 김진태의 만화 <호텔 캘리포니아>에선 컨트리 팬인 백인 교도소장이 툭하면 '힙합 정신'을 외치는 흑인 죄수들을 향해 '오, 그 노래도 원곡은 컨트리였지!' 하면서 흥을 깨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었다.(한동안 네이버에도 연재하던 김진태인데 요즘은 뭘 하는지 궁금해진다).
헤밍웨이의 소설 <해류 속의 섬들>은 특이하게도 일본 만화 <바나나 피쉬>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주인공의 스승인 해결사가 좋아하는 소설이어서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는 것으로 나왔었다. 만화 제목인 "바나나 피쉬"부터 샐린저의 단편에서 따온 것이라니, 어쩌면 만화가 본인이 영미 현대 문학 애독자인지도 모를 일이다.
<해류 속의 섬들>은 1970년에 현암사에서 번역되었다가 절판되었고, 이후 무려 반세기 만인 2022년에 '고유명사'라는 출판사에서 새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신간의 소개글에는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 <해류 속의 섬들>은 1970년 한자가 뒤섞인 세로읽기 판(현암사)으로 출간된 이후, 무려 53년동안 번역이 안된 채 미출간 상태로 남아있었다"는 의아한 구절이 있다.
왜 의아한가 하면, 현암사 구판이 "세로읽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자가 뒤섞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제목만 <海流 속의 섬들>로 한자가 들어갔을 뿐, 본문에서 한자 노출은 '二개'나 '五주' 같은 숫자 표기뿐이고, 단어의 경우에는 '유목(流木)'처럼 한글과 병기했다. 결국 번역자나 출판사는 "한자가 뒤섞인" 책 표지만 보고 지레짐작한 것 아닐까?
따라서 현암사 구판을 굳이 "한자가 뒤섞인" 책이라 지칭한다면, 고유명사 신판은 '한자' 十六 대신 '아라비아 숫자' 16을 사용했다는 점에 착안해 "아랍 문자 뒤섞인 책"이라 해도 무방할 법하다. 신판은 구판의 오역을 바로잡은 바람직한 면도 일부 있지만, 이처럼 사실과 다른 내용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떨어진다. 물론 그나마도 이젠 절판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