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삼성 이재용이 자사에서 오래 일하다 사망한 환경미화원을 조문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 요란한 행차가 아니라, 일행 없이 혼자 조용히 방문해서 유족을 만나고 장례비까지 사비로 지원했다니, 가뜩이나 반도체 호황과 주가 급등으로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이 집중되는 재벌 총수로서는 의외의 행동에 훈훈한 미담이라 여겨진 듯하다.


이전에도 커피를 선물한 알바생에게 몇 배로 사례하고, 떡볶이와 오뎅을 맛있게 먹어치우는 등 소탈하고도 너그러운 면모가 부각되는 것을 보면, 은둔형에 카리스마적 경영자였던 부친과 달리 친근한 이미지로의 전환이 유용함을 깨달은 모양이다. 어쩌면 여러 해 동안 재판과 투옥을 경험하면서, 내심은 몰라도 외양만큼은 변화가 필요함을 실감한 까닭은 아니려나.


심지어 이재용의 '메르스 사과문'은 진심 어린 사과문의 모범으로 간주되어, 최근의 정용진처럼 누군가가 미진한 사과를 내놓을 때마다 비교 대상으로 언급될 정도이다. 마침 반도체 호황과 주가 급등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어서, 설령 카리나가 전화를 걸어 오더라도 차단하고 이재용을 만나러 가겠다는 사람이 대다수일 듯하니, 본인이나 회사나 인기가 최고조이다.


이재용에 대한 여론이 항상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반도체 생산과 기술 개발에 대담하게 뛰어들었던 부친 이건희의 결단이 혜안으로 평가되는 반면, 편법 상속 논란까지 불사하며 모든 것을 물려받고도 손 대는 것마다 헛발질만 계속하다 뇌물 공여로 감옥 신세까지 졌던 아들 이재용이야말로 이른바 '호부견자'의 대표적인 사레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삼성에 적대적이었던 여론이며, 심지어 삼성이 조만간 망할 것이라는 악담이 팽배했었다. 특히 거액을 투자했어도 대만에 밀리고 중국에 밀리는 반도체 사업이 장차 삼성의 아킬레스건이 되리라는 예측마저 나왔는데, 지금은 역대급 실적을 갱신하고 노조가 요구하는 억대 성과급도 선뜻 내놓으면서 모두가 '삼전닉스'만 바라보게 되었다.


주식이건 뭐건 '삼성 반도체'와는 아무 연관 없는 나귀님이지만, 여전히 그 이름을 들으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백혈병 사망자' 사건이다. 회사에서 우수한 고졸 사원을 선발해 공장에 보냈는데, 알고 보니 발암 물질 가득한 반도체 제작 시설에서 특수 약품으로 청소하는 것이 업무였다나. 급기야 해당 업무를 맡은 직원 중 백혈병 환자가 이상하게 늘어났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소송을 제기하며 잠시나마 관심이 일었지만, 삼성전자와 정부 모두의 외면 속에 해결이 지지부진하다가 10여 년 뒤에야 사측이 사과와 보상을 내놓았다고 전해들었다. 이른바 '세계 일류'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그럴싸한 구호를 내걸었던 재계 1위 대기업에서 드러내는 매몰차고도 비인간적인 면모에 당시 크게 공분이 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삼스레 이 사건에 대해 환기하게 된 계기는 며칠 전에 무슨 책을 찾으려고 바깥양반 책장을 뒤지다가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 많은 바깥양반이니, 그때에도 '저쪽' 운동 하는 친구들의 요청으로 관련 행사에도 참석하고 책도 얻어오고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당시에 삼성전자의 태도는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고압적이었다. 반도체 호황으로 억대 성과급을 노조에 선뜻 내주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울러 알바생과 환경미화원에게도 너그럽고 호감인 이미지를 쌓아올린 이재용의 행보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물론 그때는 호황도 아니었고 이재용이 전권을 장악하지도 않았다는 변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백혈병 사태 당시에도 메르스 사태 때에 나온 것과 같은 사과문이 나왔어야 맞지 않았을까? 20년간 근무하다 사망한 환경미화원의 빈소를 방문했듯이 진정한 추모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물론 백혈병 사태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삼성은 공익 기금 수백억을 내놓았다니, 사태는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뭔가 미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20년 전 일을 이제 와서 다시 꺼내 삼성을 욕하고 불매하고 주가도 폭락시키자는 건 아니다. 다만 백혈병 사태며 비자금 조성을 비롯해 삼성의 여러 가지 '덩치에 걸맞지 않은' 야비한 행동을 여지껏 기억하는 나귀님으로선 최근의 '삼전닉스' 열풍에, 심지어 이재용의 개인적 인기까지 지켜보면서 여러 모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툭하면 일본을 향해 '용서는 하되 기억도 하자'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용서보다 기억이 앞서는 듯하다. 반면 삼성에 대해서는 기억보다 용서가 더 앞서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심지어 '좌파 코스프레'를 좋아해서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알라딘이 다른 신용카드는 모조리 물리치고 유독 삼성카드에만 각종 혜택을 쏟아 부으며 광고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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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사이에 드디어 <자불어>를 완독했다.(번역서 제목은 <청나라 귀신요괴전>이지만, 지난번에 이야기했듯이 쓸데없이 길기만 하고 멋대가리 없는 제목이어서 원제로 지칭한다). 그 서문에 등장하는 "귀거"(鬼車) 관련 황당한 오역과 엉터리 역주를 지적하는 글을 올린 때가 2023년 연말이었으니, 그때부터 계산해도 무려 2년 반만에야 간신히 완독한 셈이다. 


한편으로는 상하권 합쳐 19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버거워서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짧은 일화를 모아놓은 작품의 특성상 몇 편 읽고 덮어놓고, 한참 뒤에 다시 펼쳐 몇 편 읽고 도로 덮어놓는 식으로 읽어나갔기 때문이다. 번역과 편집 모두 그리 좋지는 않아서 종종 알듯말듯 모호한 문장이 등장하고 오타가 빈발한 것 역시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소였다.


<자불어(子不語)>는 <논어> "술이"편에 나온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에서 착안한 제목이다. 즉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으셨다"라는 문장에서 "공자께서는 ... 말하지 않으셨다"를 가져와 제목으로 삼았으니, 결국 "괴력난신"에 관한 내용이란 뜻이다. 역시나 청대의 작품인 <요재지이>처럼 귀신, 괴물, 불가사의 등에 대한 일화를 두루 모았다.


다만 문학성 면에서는 한 세기 더 먼저 나온 <요재지이>보다 아무래도 한 수 아래로 보이기도 한다. <요재지이>가 본격적인 소설에 가깝다면 <자불어>는 여전히 필기(수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수신기>나 <이견지> 같은 더 이전 시대 필기류의 간략하고 단순한 서술에 비하자면 많이 발전했다고 할 수 있지만, 뭔가 미진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고전 괴담의 주요 유형 중 하나는 신원(伸寃), 즉 억울함을 해소하는 내용이다. <자불어>에서도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원혼이 되어 직접 복수하거나 관헌에 호소해 간접 복수하고, 인간이 아니라 요괴에게 당한 경우에는 성황신 같은 상급신에게 민원을 제기하여 정의를 구현한다. 심지어 최근 논란인 '보완 수사'와 유사한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보전에서의 억울한 옥살이"(9권 7편)에서는 어머니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아들이 끌려가며 성황신에게 호소하자 신상이 움직여 앞길을 막는 바람에 결국 재조사가 이루어져 누명을 벗는다. 사실은 이에 앞서 상급 관리가 수사 결과에 뭔가 미진한 데가 있다고 여기고 '보완 수사'를 명령했지만, 하급 관리가 이에 따르지 않으려다가 성황신의 분노를 산 것이다.


"정녀가 억울함을 하소연하다"(22권 29편)에서는 강간 살인 피해자인 여성의 원혼이 <장화홍련전>의 줄거리와 유사하게 한밤중에 상급 관리를 찾아온다. 자기 부모와 하급 관리 모두 가해자에게 뇌물을 받고 사건을 축소했다며 눈물로 호소하자, 상급 관리는 날이 밝자마자 하급 관리에게 '보완 수사'를 지시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준다.


"하화아"(22권 4편)에서는 남녀의 원혼이 어느 선비를 찾아와 전생의 원한을 갚는다. 과거에 남녀는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 판결을 받았는데, 사건을 담당한 하급 관리가 '보완 수사'의 필요성을 깨닫고 사형 집행을 계속 연기했다. 하지만 선비의 전생 모습인 상급 관리가 하급 관리를 닦달해 사형을 집행한 까닭에 결국 피해자 두 명의 원한을 사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귀신의 세계라고 해서 항상 정의롭고 공정한 것까지는 아니다. 고전 괴담의 또 다른 주요 유형인 '저승 여행'은 주인공이 갑자기 저승사자에게 끌려갔다가, 뒤늦게야 업무 착오로 판명되어 이승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짬을 내어 그곳 사정을 자세하게 구경하고 오는 내용이다. 이때 저승에서도 뇌물이 오가고 사정을 봐주는 등 이승과 다름없는 듯 묘사된다.


중국의 대표적인 괴담집은 대부분 저자의 불우함을 반영했다고 여겨진다. <요재지이>의 저자 포송령은 환갑에야 과거에 합격했고, <자불어>의 저자 원매도 과거에는 합격했지만 한직을 맴돌다가 퇴직하여 창작에 몰두했다. 따라서 이런 창작물 속의 인과응보와 사필귀정은 현실에 대한 불만의 반영일 수 있겠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허구에서라도 그렇기를 바랐달까.


현재 정치권의 가장 큰 논제는 검찰의 보완수사권이라 한다. 경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검찰 수사를 강제하게끔 만든 제도라는데, 이것 역시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의 반영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검찰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없애자고 하는데, 이게 없어질 경우 어떻게 되는지를 최근의 '장윤기 사건'이 보여주었으니, 지금이라도 재논의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검찰 권력의 부작용이야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라면 탄핵을 두 번이나 겪은 대통령 제도야말로 백해무익하다고 간주해서 검찰보다 먼저 척결해야 맞지 않을까. 경찰이라 해서 더 낫지 않음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는데도 굳이 검찰을 '개혁'하겠다면, 아마 딴데 의도가 있진 않을지.


그나저나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여고생 가족이야말로 정말 괴담 내용처럼 죽어서라도 원한을 갚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이 세상에 귀신이란 없다는 것은 앞서 세월호 때며 무안공항 때에 이미 입증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모두의 공분을 자아낸 저 두 가지 사건 때에도 억울한 사람은 분통이 터져도 보복하지 못한 반면, 잘못한 놈들은 다리 뻗고 잤으니까.


과연 이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 <자불어>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서로 싸우는 두 신"(3권 12편)에 따르면, 세상 만사를 소왕(素王: 술수)과 이왕(李王: 이치)이 7대 3의 비율로 나누어 처리하기에 "이치가 술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예부터 그러했다"며 "세상의 인심, 천리, 선악, 시비는 결국 30퍼센트의 정의가 있을 것"이라 전한다.


70퍼센트의 불의와 30퍼센트의 정의라.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정의와 공정은 이상일 뿐 실현되기 힘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까. 그렇다면 공자는 저 30퍼센트를 실현하겠답시고 평생을 허비한 셈인가. 아울러 그가 말하지 않았던 저 70퍼센트의 불의는 괴력난신의 틀을 거쳐 <자불어>나 <요재지이> 같은 기록에 반영되었던 것이고...




[*] <요재지이>의 경우, 비록 소설이기는 하지만 조너선 스펜스의 <왕 여인의 죽음>에서는 당대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저자는 17세기 중국에 살던 한 여성의 억울한 죽음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동시대 작가 포송령의 저 괴담집에 나타난 풍속 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결말 부분에서는 오로지 <요재지이>에서 가져온 인용문만을 열거함으로써 저 살인 사건을 서술하는 희한한 묘기를 부리기까지 한다. 생전의 월터 벤저민도 순수하게 인용문만 가지고 책을 한 편 쓰고 싶다고 했었다니, 어쩌면 스펜스의 저술 속 한 대목도 그런 구상이 현실화된 한 가지 사례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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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중에 <스즈키 이즈미 SF 선집>이라는 것이 있던데, 생소한 작가라서 누군가 싶어 눌러보니 이미 작고한 70년대 인물이다. 검색해 보니 <여자와 여자의 세상>이라는 선집도 이미 간행되었던 모양인데, 표지만 보면 고양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제목만 보면 세상 쓸모없는 페미니즘 책이 또 하나 나왔나 싶기도 해서, SF 작가의 책이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생전에는 주목을 받았지만 사후에 한동안 잊혔다가 최근 들어서 재발굴된 모양인데, 이른바 '남자 없는 세계'나 '여성 우월 사회'에 대한 SF 단편이 대부분인 듯하다. 두 권 모두에서 알라딘 미리보기에 나온 대목만 읽어 보면 그냥저냥하고 딱히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겠던데, 작품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일종의 선구자로서의 의의가 더 높이 평가될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스즈키 이즈미의 이력을 보면 작가 활동은 오히려 부차적이었고, 사진 모델과 영화 배우로도 활약했다고 나온다. 그런데 영화 중 대표작을 보니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라는 것이 있다. 이건 일본 작가 데라야마 슈지의 에세이집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찌어찌 연극과 영화로도 각색했던 모양이고, 스즈키 이즈미는 단역으로 출연한 모양이다.


모델 활동에서는 말 많은 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와 협업했다는 것도 특이하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니 예쁘다기보다는 뭔가 기괴한 인상이다.(화장 탓인가?) 나귀님이 가진 아라키의 책은 국내 간행된 에세이 2권과 영어판 풍속업소 사진집뿐인데, 에세이에는 사진도 수록되었으니, 잘 찾아보면 스즈키 이즈미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지난 주말 사이에는 일본 연예인 미와 아키히로(1935-2026)의 사망 소식이 있었다. 역시나 생소한 인물이어서 누군가 알아보니 1950년대부터 가수와 배우로 다방면에서 활동한 '종합 예술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성우로 가장 잘 알려진 모양이다. <원령공주>에서 늑대 두목,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황야의 마녀를 맡았다던가.


가장 특이한 점은 본래 남성이지만 인기를 얻자마자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해서 논란을 일으켰고, 이후 지금까지 남장여자 컨셉으로 활동했다는 점이다.(유튜브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원령공주> 오디션 영상에서도 역시나 여장을 하고 있다). 심지어 미시마 유키오며 데라야마 슈지(또 그 사람이다!)와도 친분이 깊었다고 하니, 이래저래 특이한 사람이다.


그나저나 이쯤 되면 <책을 버리고 거리고 나가자>를 다시 읽어야 하나 싶었다. 지금은 절판되어 중고가도 어마어마하게 올랐으니, 얼른 읽어보고 별 것 아니다 싶으면 내다 파는 게 이익이지 않겠나. 그런데 옥탑방에 올라가 일본 책 쌓아놓은 책더미를 살펴보니, 하필 아래쪽에 깔려있기에 깨끗이 포기하고 도로 내려왔다. 뭐, 어차피 시어서 먹지도 못할 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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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양반이 암베드카르 이야기를 하기에 저서 한 권, 전기 두 권, 만화 한 권을 꺼내 주었더니, 예상대로 그중 가장 얇고 만만해 보이는 <버려진 자들의 영웅>만 집어든다. '다른' 출판사의 만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데, 한때 알라딘에서 정가 인하로 염가 판매할 때 구입했던 물건이다. 지금도 파나 검색해 보니 이미 절판되어서 악성 재고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내용은 좋지만 그림이 영 낯설어서 나귀님도 읽고 나서는 버릴까 말까 고민스러웠던 책인데, 이번에는 어쩐지 예전에 구입한 <나무들의 밤>이라는 책이 떠올라서 꺼내 보았더니만, 두 권 모두 같은 일러스트레이터가 참여한 책이었다. <버려진 자들의 영웅>에서 그림을 담당한 '두르가바이 브얌'이 <나무들의 밤>에도 '두르가 바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의 본명은 '두르가 바이'(Durga Bai)이고, 나중에는 <버려진 자들의 영웅>을 함께 그린 '수바시 브얌'(Subhash Vyam)과 결혼해서 '두르가 바이 브얌'(Durga Bai Vyam)이 된 모양이다. 하지만 한쪽은 '두르가 바이'로 표기하고, 또 한쪽은 '두르가바이 브얌'으로 표기하니, 알라딘에서는 같은 사람으로 등록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무들의 밤>은 두르가 바이의 출신 부족인 인도 곤드족의 전통 그림 기법을 이용해서 수작업으로 제작한 것이라서 책값도 '싯가'로 받는다. 즉 쇄당 2,000부씩 한정본으로 번호를 매겨 제작하며, 이후 물가 상승율(?)을 반영해서 가격이 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귀님이 가진 3쇄본은 정가 41,000원인데, 현재 5쇄본은 45,000원으로 가격이 더 올랐다.


<버려진 자들의 영웅>도 곤드족의 전통 그림 기법을 이용한 작품인데, 아무래도 일반적인 만화의 그림체와는 확연히 다르다 보니 영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차라리 인물 묘사 등에서는 일반적인 만화 그림체를 따르고 배경이나 장식에서만 전통 그림체를 섞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나무들의 밤>의 독자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만하지만.


'다른' 출판사의 만화 시리즈는 동명 애니메이션을 만화로 재구성한 <바시르와 왈츠를>부터 시작해서 에릭 드루커의 <대홍수>까지 제법 흥미로운 작품들을 여럿 간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판매 부진 때문인지 한동안 재정가도서로 떨이 판매를 했었고, 지금은 어느 헌책방마다 몇 권씩 쌓여 있어서 권당 1천 원짜리 악성 재고 취급을 받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바깥양반이 새삼스레 암베드카르를 뒤적인 까닭은 얼마 전 번역된 아룬다티 로이의 <박사와 성자> 때문이다. 간디라면 '성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꽤나 노회한 인물이었다는 평가도 있다고 알고 있다. <간디와 맞선 사람들>이라는 책에 그런 사정이 잘 나왔다고 기억하는데, 암베드카르에 대한 내용도 있다. 그나저나 이 책은 또 어디 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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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 500권 돌파 기념으로 자화자찬하는 책까지 펴내면서 대대적으로 축하하는 듯하기에, 그렇잖아도 잔뜩 벼르던 차에 '이놈들, 잘 걸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세계문학전집 까는 글'이나 써 볼까 생각 중이다. 애초에 '세계문학전집' 자체가 '신성로마제국'만큼이나 실체 없는 퇴행적 출판 관행이니 자축보다 반성이 먼저이지 않을까.


사실은 200권 돌파 때에도 그 기획물 자체에 내재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려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단했었는데, 이제는 그 분량부터 곱절로 늘어나고 보니 기간 도서의 국적/작가별 권수(종수) 통계 같은 기초적인 작업부터 번거롭고 귀찮다. 심지어 민음사가 자사 홈페이지(https://app.minumsa.com/)에 올려놓은 목록부터 자승자박 수준으로 오류가 많다.


맨 먼저 지적할 점은 무려 500권 돌파를 자축하는 상황에서 자사 홈페이지의 세계문학전집 목록에는 497권밖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번호로는 앞서지만 출간은 늦었던 493권 <패싱>과 497-8권 <백치>가 목록에서 빠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옆에 나와 있는 국가별 분류 수치를 참고할 때에도 미국과 러시아의 경우에는 각각 숫자 1과 2를 더해주어야 되겠다.


그런데 국가별 분류에서도 잘못된 점이 적지 않다. 국가별 분류에서 "미국"을 눌러보면 84권이라고 나오지만, 해당 목록에는 제프리 초서와 버지니아 울프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울프의 경우,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4권 중 <자기만의 방>, <등대로>, <댈러웨이 부인>은 정확히 "영국"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버지니아 울프 단편선>만큼은 "미국"으로 분류되었다.


초서와 울프야 단순 실수라고 볼 수도 있지만, '멕시코' 작가 푸엔테스를 굳이 '파나마' 국적으로 분류한 것은 영 의문이다. 파나마 태생은 맞지만 부친이 멕시코 국적 외교관이라서 그랬을 뿐, 이후로는 멕시코 국적을 지닌 것으로 알고 있다. 출생지 기준으로만 국적을 분류하자면 만주 태생인 황석영은 '중국' 작가, 또는 만주국 시절이니 '일본' 작가라 해야 할까.


국가별 분류에서는 '러시아' 작가 불가코프를 굳이 '우크라이나' 작가로 분류했던데, 오늘날의 국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고골도 역시나 '우크라이나' 작가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마찬가지 맥락에서라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국적으로 분류된 카프카나 '로마제국' 국적으로 분류된 오비디우스도 현대 국가 '체코'와 '이탈리아'의 작가로 분류해야 맞을 것이다.


대강 살펴보아도 오류가 속출하니, 이래저래 영 믿을 수 없는 민음사 자체 통계가 되겠다. 단순 오타도 흔해서 고골 번역자 '조주관'을 '조주권'으로 잘못 적고, 심지어 세계문학전집 500권째라는 <압록강은 흐른다>의 소개 글에서는 저자 "이미륵"을 "이미룩"으로 4군데나 잘못 적었다. 결국 자기네가 뭘 펴내는지도 모르고 자화자찬부터 늘어놓았던 셈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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