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의 이력 중에는 1968년에 페르난도 아라발의 희곡 <환도와 리스>의 영화판에서 감독을 맡은 것도 있었다. 원작도 <고도를 기다리며> 유형의 난해한 부조리극이었는데, 영화는 한 술 더 떠서 갖가지 기괴한 이미지를 등장시킨 까닭인지 흥행은 고사하고 비평 면에서도 참패를 면하지 못하며 한동안 호도로프스키의 흑역사가 되었다.


페르난도 아라발(1932년생)은 에스파냐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극작가이며,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극' 유파에서 영향을 받은 '공황극' 운동을 1962년 호도로프스키 등과 함께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훗날 컬트로 추앙된 호도로프스키의 <엘 토포>와 <신성한 산> 같은 영화며, <잉칼> 같은 만화도 어쩌면 '공황극'의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지도 모른다.


<환도와 리스>는 예전에 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 <세계희곡선 3: 현대편>에 수록된 김정옥 번역으로 처음 읽었는데, 워낙 부조리한 내용이다 보니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다른 선집에서 다른 작품도 몇 편 읽어보았는데, 나중에 장정일의 희곡을 읽어보니 아라발 작품의 영향이 두드러진 느낌이 나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헌책방에서 세로쓰기로 간행된 <아라발 희곡집>(구글링해 보니 1권은 1975년에 한국연극사, 2-3권은 1981년에 유림사에서 각각 간행되었다고 나온다)을 발견해 구입해서 읽었는데, 나중에 미번역 작품까지 포함해서 <아라발 희곡 전집>(전7권, 고글, 1998)이 재간행되었기에 구입하고 구판은 헌책방에다 처분했다.(자료 가치를 생각하면 그냥 둘 걸 그랬나).


아라발의 <희곡집>과 <희곡 전집> 모두 동의대 불문과 교수 김미라가 번역했다. 대학생 시절인 1975년에 아라발의 연극을 보고 매료되어 아예 전공하게 되었으며, 저자를 여러 차례 직접 만나기도 했다고 전한다. <희곡 전집> 서두에는 자기 작품의 한국어 판권을 김미라 교수에게 위임한다는 아라발의 친필 편지가 나오는데, 당시에는 그게 일종의 판권 계약이었다.


김미라 교수는 1975-1981년에 아라발의 희곡 23편을 번역해서 <희곡집>(전3권)으로 간행했고, 1998년에 희곡 32편을 수록한 <번역 전집>(전7권)을 간행했다.(역자 서문에서는 50편이라 했는데, 부록의 편수까지 합친 듯하다). 동의대 퇴임 이후에는 '김라'라는 예명으로 단편 영화 제작 및 지원에 전념했다 하는데, 안타깝게도 2025년 2월 10일 별세하고 말았다.


구글링해 보니 김미라의 남편인 동의대 영문과 교수 김창호와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그는 1989년에 대학 입시 비리를 폭로해 해직되었는데, 그 여파로 그해 5월 3일에 '동의대 사태'가 벌어져서 농성 중인 동의대 학생들을 진압하러 들어간 경찰관 7명이 화재로 사망했다. 나귀님도 여전히 '동의대' 하면 이 사건을 떠올릴 만큼 사회적 파장이 컸었다.


김창호는 해직 17년 만인 2006년에야 복직했는데, 독문과 교수였던 장희창도 함께 해직되었다가 역시나 함께 복직했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장희창의 번역서를 보면 이력에 현직 교수까진 아닌 것으로 나오기에 무슨 사연일까 궁금했는데,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김창호의 번역인 테리 이글턴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도 해직 기간 중의 작업인 듯하고.


나귀님이야 아라발의 열혈 독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여느 극작가보다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소장하고 읽어볼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김미라 교수의 노력이 일찍부터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알라딘에 등록된 "아라발 희곡전집 (전)7권"의 서지 정보에도 "김미라"라는 이름은 나와 있지 않은 것이 민망하여 뒤늦게나마 두서없이 적어본다.




[*] "아라발 희곡 전집"(전7권, 김미라 옮김, 고글, 1998) 목차


제1권

백색의 사랑

네 개의 입방체

빨간 풍선

질투의 스트립 쇼

사랑의 삽화

구름 위의 염소

신이 미쳐 버렸나?

검붉은 여명

달걀 속의 협주곡

20세기의 대 시사극


"공황 연극"(훼르난도 아라발)

"<검붉은 여명>의 초연에 대한 연극평"(J. GX)

"아라발 희곡에 나타난 악몽의 이미지"(김미라)

"아라발의 전기"(김미라)


제2권

기도

천년 전쟁

피살된 흑인을 위한 의식

게르니까

오늘의 젊은 야만들


"천년 전쟁"(훼르난도 아라발)

"천년 전쟁"(조르주 라벨리)

"분노의 연극"(에스피나스 호랑좌스)[인터뷰]

"표현의 불꽃"(알랭 쉬프르)[인터뷰]


제3권

유령 기차의 발라드

사형수의 자전거

건축사와 아씨리 황제


"연극의 르네쌍스"(훼르난도 아라발)

"아라발의 <혼돈>의 의식"(알랭 쉬프르)

"아라발과의 인터뷰: 아라발과 감옥"(알베르 쉐노 & 엔헬 베렌구에르)


제4권

바벨 탑

싸움터의 산책

대관식


"바벨 탑"(도미니끄 쎄르벵)

"아라발의 낮과 밤"(김미라)

"신과 성의 문제"(김미라)


제5권

환도와 리스

삼륜자전거

페가서스의 바이올린

쾌락의 정원


"쾌락의 정원"(꺄미이으 아마리)

"아라발과의 인터뷰: 훼르난도 아라발의 연극 세계"(김미라)


제6권

...그리고 그들은 꽃에 수갑을 채웠다

미궁

장엄한 예식


"아라발의 신화"(삐에르 마르까브뤼)

"아라발의 세계"[1992년 60세 기념 전시회의 헌사 모음]

나는 왜 아라발을 좋아하는가 (이오네스코)

눈이 날카로운 안경 장사 (미쉘 비토르)

천재적인 악마 (베르나르 앙리 레비)

그림 같은 천사 (조르쥬 라벨리)

현상 (밀란 쿤데라)

밤의 발굴자 (김미라)


제7권

예수, 마르크스, 셰익스피어가 얻은 의외의 성과

두 사람의 사형집행인

도스토예프스키란 이름의 거북이

자동차 묘지


"희곡의 새로운 형태"(즈느비에브 쎄로)

"작가 아라발"(프랑스어문학 사전, 보르다스 출판사)

"작품연보 및 참고도서"


[**] <희곡 전집> 각 권 말미에는 아라발 본인의 글을 비롯해서 저자와 작품에 관한 비평 같은 참고 자료가 덧붙었는데, 그중 6권 말미에 수록된 아라발의 60세 기념 전시회 당시 이오네스코가 보내 온 헌사가 흥미로워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왜 아라발을 좋아하는가?"(이오네스코)



프랑코 장군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아라발은 자기가 태어난 스페인에 가 볼 생각이었다. 그래 그곳에 갔다. 그리고 자기 책에 증정 사인을 했다. 프랑코 장군한테는 모욕이었다. 누가 프랑코에게 책을 갖다주었는지 모르겠다. 그는 아라발을 감옥에 가두었다. 바로 그 감옥에서 아라발이 나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내 아내가 아라발의 석방을 위해 이름 있는 작가들이 탄원 서명서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내었다.


당연히 사르트르나 다른 극좌파 작가들한테서 서명받기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내는 장 아누이와 프랑수아 모리악(가톨릭 신자였기에)과 몇몇 작가들에게 달려갔다. 가브리엘 마르셀한테도 청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아라발이 감옥에 있기 때문에 서명할 뿐이다. 나는 아라발의 연극을 좋아하지 않아서 한 손으로만 서명을 한다." 한 손으로든 두 손으로든 가브리엘 마르셀도 서명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진심으로 서명했다. 서명서는 스페인에 보내졌다. 우익 작가들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이 서명을 한 덕에 아라발은 석방될 수 있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나는 아라발을 무척 좋아한다. 서명이 좌익이든 우익이든 중간이든 무엇이든 간에 나는 또 서명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다신 없어야 한다.


내가 왜 아라발을 좋아하는지, 어째서 그의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그의 바로크적인 정신을 좋아하는지, 해박한 그의 문화 정신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무엇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지를 한 번은 얘기하고 싶다.


1992. 6.


(김미라 번역, <아라발 희곡 전집> 제6권, 286-287쪽)




[***] 마르셀이 아라발에 대해 분개한(?)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해 구글링해 보니 <뉴욕 타임스> 1982년 3월 28일자 기사 "페르난도 아라발의 귀환"에 희한한 일화가 소개된다. 한 번은 마르셀이 아라발의 희곡 <자동차 묘지>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중간에 벌거벗은 여배우가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객석으로 떨어져 마르셀의 무릎 위에 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 양반, 공연 끝나고 고해성사하러 갔지요." 아라발은 이렇게 말했지만, 그의 평소 기질이며 인터뷰 분위기를 보면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알 수 없겠다. 


이 기사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기고자가 파리에 있는 저 극작가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한국 여성 두 명이 그의 희곡 전집 번역에 참고할 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다"기 때문이다. 혹시 김미라 일행이었을까? 기사에 따르면 아라발은 두 여성을 친절하게 대했으며, 그들이 가져온 한국어 번역본이 세로쓰기라는 사실에 흥미를 보이며 농담까지 했다고 전한다.(나중에 김미라가 아라발의 아파트로 찾아가 인터뷰하며 보니, 자기가 번역한 <작품집> 세 권이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더라 한다). 


인터넷 시대가 되고 구글 세상이 되니까 이런 옛날 기사도 클릭 한 번에 검색되는구나 싶다. 김미라 교수도 생전에 이 기사를 보았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타계 전에 만나볼 기회가 있었다면 아라발의 작품이며 일화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볼 게 많았을 텐데. 그 와중에 1932년생으로 김미라보다 20세 연상인 페르난도 아라발은 93세로 아직 생존 중이며, 2025년에는 한때 옥살이까지 당했던 모국 스페인에서 최고 수준의 수훈인 왕실 훈장을 받는 등, 그 명성에서 비롯된 영예를 한껏 누리는 중이라고도 전한다.




[****] 김미라(김라)가 자택을 매각하고 연금까지 바쳐 가며 운영했다던 부산 광안리의 문화 공간 '공간나라'는 결국 김 교수의 타계와 함께 운영을 종료한 모양이다. 아쉽지만 유튜브로 검색해 보면 고인의 생전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지는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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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교황 레오 11세의 가우디 성가족성당 방문 실황을 유튜브로 살펴보니, 미사를 마치고 아예 밖으로 나가서 성당을 바라보며 축복식을 거행하는 장면도 나온다. 144년간 이어진 공사가 막바지에 도달한 상황에서 건축가를 기린 행사였으니 참으로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주책맞은 나귀님은 그 모습을 본 순간 장 클로드 갈의 만화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죽음의 행군>에 수록된 그 단편에서는 중세의 한 위대한 건축가가 가톨릭 대주교에게 사로잡혀 억지로 대성당을 만들게 된다. <콰이 강의 다리>의 줄거리와 유사하게, 함께 붙잡힌 자국민 포로들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대주교의 명령을 선뜻 받아들인 건축가였지만, 정작 강제 노동에 시달리게 된 포로들은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며 건축가를 원망했다고 전한다.


대주교는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건축물을 요구하고, 이에 건축가는 신기하게도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대성당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기뻐하던 대주교가 완공된 대성당 앞 제단에 놓인 술잔을 집어들자, 이제껏 저 육중한 돌덩어리를 물 위에 띄워 놓았던 교묘한 균형이 깨어지며 대성당과 대주교와 건축가 모두 바다에 수장된다.


가우디의 성가족성당만 해도 일반적인 종교 건축물과는 상당히 다른 외관 때문에 마치 아웃사이더 아트마냥 뚜렷한 계획 없이 임기응변으로 석재를 쌓아올려 만들어내기라도 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쉬운데, 실제로는 그 거대하고 색다른 구조물에 최적의 균형을 찾아내고자 축소 모형에 모래 주머니를 잔뜩 매달아서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죽음의 행군>에 수록된 작품은 가상의 중세를 배경으로 삼는데, 그중에서도 "아른의 복수" 같은 것은 영화 <야만인 코난>과도 비슷한 느낌이 두드러진다. 물론 시기상으로는 장 클로드 갈의 만화가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미국 영화보다 살짝 빨랐다지만, 영화의 원작인 로버트 하워드의 소설 시리즈는 훨씬 더 먼저 나왔기 때문에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장 클로드 갈이 그린 또 다른 작품으로는 <디오자망트의 열정>이란 것도 번역되었다. <죽음의 행군>에 묘사된 것과 유사한 가상의 중세를 배경으로, 미모와 지혜 못지않게 무력과 육욕도 어마어마한 야만인 나라의 여왕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방랑길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제목의 "열정"(passion)은 "시련"이나 "수난"을 가리키는 중의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디오자망트의 열정>의 글쓴이가 무려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라는 것이다.(예전에는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라고 표기하다 보니, 지금도 알라딘에는 그 표기로만 검색되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컬트 영화 감독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만화 분야에서도 꾸준히 활동해서 <잉칼>, <테크노 사제>, <라마 블랑> 등의 작품에서 스토리를 담당했다.


호도로프스키의 영화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난해하다는 소문이 있어서 굳이 찾아서 보지는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구글링해 보니 그의 작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일종의 '필수 요소'가 눈에 띄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고행이며 해탈과도 유사한 상황 전개인데, 나귀님이 본 만화 몇 종에서도 물론이고 아직 보지 못한 영화에서도 이런 내용이 반복되는 듯하다. 


저 유명한 <잉칼>을 예로 들어 보자면, 평범한 주인공이 뜻하지 않게 거대한 힘을 손에 넣게 되자 그를 돕거나 저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단합하여 사건 해결을 위한 탐색에 나서고, 물질 세계에서 시작된 여정이 영적 차원으로 접어들면서 일행은 각자의 욕망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아까지 완전히 내버리는 과정을 거친 끝에야 우주적 존재와 합일을 이룩한다.


<테크노 사제>는 <잉칼>에서 주인공을 뒤쫓는 세력 가운데 하나인 '테크노 교단'을 소재로 한 외전으로 (우리나라에는 1권만 나왔다) 저 교단에 입회한 소년이 수련 끝에 대사제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고, <라마 블랑>은 티벳 성자 밀라래파의 고행과 해탈에 대한 유명한 일화에 백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화이트워싱일까?) 불교의 가르침을 아예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 중에서도 <성스러운 산>의 줄거리는 <잉칼>과도 유사해 보이니, 결국 불교의 고행과 해탈, 힌두교의 우주적 존재와의 합일 같은 동양 사상을 호도르프스키가 유독 선호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그의 작품들을 다 보진 못했으니 이게 전부라고 단언하기는 곤란하겠지만, 적어도 나귀님이 본 작품들은 일종의 '수난극'이나 '고행담'으로 요약되는 듯하니까.


호도로프스키의 이력을 보면 페르난도 아라발과 '공황극' 운동을 시작한 것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부조리극의 전통을 계승하고, 또 한편으로는 20세기 중반 서양의 동양 사상 및 종교 열풍을 반영하여 나름대로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것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전부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나귀님이 본 작품들에서는 그런 경향이 뚜렷해 보이니.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호도로프스키가 거듭해서 말하려는 내용이 정작 동양권 독자들에게는 친숙하다 못해 심지어 진부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동양 사상 및 종교가 서양에서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변용되어 인기를 끌었을 때, 막상 그 내용을 보면 불교와 도교 등 우리에게는 체화되다시피 친숙한 내용이어서 살짝 실망스러웠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지금 와서는 한자를 모르는 세대도 많고, 서양식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세대도 많다니, 불교 박람회가 신기하고 서울도서전도 신기하게 느껴지듯, 호도로프스키의 작품 내용조차도 새삼스럽게 대단히 신기하고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마치 '박카스'가 바다를 두어 번 건너자 '레드불'이 되어 돌아오더라는 일각의 주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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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중에 로런스 스턴의 <감성 여행>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같은 저자의 대표작 <트리스트럼 샌디>야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어느새 번역서가 무려 3종이나 중복 간행되어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지만, 어쨌거나 후속편이자 미완성작이기 때문에 비교적 주목도 덜 받는 <감성 여행>까지 번역될 수 있으리라고는 애초부터 기대조차 안 했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트리스트럼 샌디>의 번역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소설 이론서를 뒤적일 때마다 파격적인 구성과 서사의 대표 사례로 언급되기에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브리태니커 그레이트북스의 영어판을 어찌어찌 한 권 얻어 놓고도 과연 어디서부터 파먹어 들어가야 할지 막막한 느낌에, 한동안 갖고만 있다가 문지 번역본을 구하고서야 처분했나 그랬다.


쉽게 말해 '라떼는' 제목만 들어 보았을 뿐, 번역서는 고사하고 원서를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고전이 즐비했는데, 지금은 <톰 존스>며 <숫코양이 무어>며 하다못해 <소돔 120일>도 번역본이 여러 종이니 그저 격세지감일 뿐이다. 비록 완간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듯한 상황이기는 해도 <마하바라타>조차 원문 완역이 진행 중이니 정말 세상 참 좋아졌구나 싶다.


예전에 바깥양반이 주로 술자리에서 만나 친해진 철학과 교수님의 대학원 수업을 청강하는데, 하루는 이분이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요놈들아, 이렇게 좋은 책을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인데, 왜 공부들을 열심히 안 하느냐'면서, 당신이 출근길에 교보문고 들러서 사온 책 한 권을 보여주시는데, 바로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 소유> 영역본이었다 한다.


그래서 바깥양반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 궁금하기에 집에 오는 길에 교보문고 들러서 바로 그 책을 사왔는데, 어차피 자기 전공도 아니니 금세 관심을 잃어버렸다. 나귀님도 그간 발췌문만 접했을 뿐 비록 영역본이라도 전문은 구경도 못한 상태라 반가웠지만, 역시나 당장 긴요한 내용은 아니니 언젠가 읽어보려고 쌓아만 두었다가 세월만 흘러 먼지만 쌓였다.


지금은 <유일자와 그 소유>도 번역서가 2종이나 나왔고, 심지어 출간 당시의 논쟁에 대해서 저자가 직접 반박한 책까지 번역되었다니 또다시 격세지감이다. 대중적 글쓰기나 오만 데 나서기보다는 본인 전공 분야의 공부와 집필에만 전념하던 저 교수님도 정년 퇴임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돌아가셨다 전해 들었으니, 새삼스레 인생이란 참 짧고 허무하구나 싶다.


그나저나 로런스 스턴의 대표작 <트리스트럼 샌디>와 <감성 여행>이 모두 번역되었으니, 그렇다면 이제는 저 이상한 그림책도 다시 한 번 꺼내 펼쳐볼 만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이상한 그림책'은 에디시옹 장물랭에서 나온 <끝없는 여행>으로, <골리앗>과 <카프카와 함께 빵을>처럼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인 만화를 그린 톰 골드의 작품이다.


이 책은 형식부터 파격적이다. 오늘날 일반화된 코덱스 형태가 아니라 낱장 카드 여러 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귀님은 알라딘 중고샵에서 저자 이름만 보고 무작정 주문했었는데, 별다른 사전 정보가 없었던 상태이다 보니 실물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상자를 열자마자 무슨 연필 케이스 같은 것이 나와서 '사은품인가' 싶었는데, 그게 바로 그림책이었다!


알라딘 서지정보에는 엉뚱하게도 가로세로 길이가 "165x840밀리"라고 잘못 나왔는데, 실제로는 일반적인 책갈피보다 살짝 넓은 가로 7센티에 세로 16.5센티의 카드 12장이 종이 상자에 들어 있다. 카드마다 앞뒤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딱히 순서라고는 없고 좌우에 어떤 카드를 놓더라도 배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진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19세기에 발명된 이런 카드식 그림책을 '미리오마라'라고 하는데, 번역하자면 "수천 개의 풍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톰 골드의 <끝없는 여행>의 경우, 카드 12장 앞뒤로 24개의 장면이 들어 있기 때문에, 배열에 따라 무려 "479,001,600종"의 조합이 가능하다고 한다.(정확한 숫자인지는 나귀님도 직접 계산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만).


형식도 특이하지만 내용은 더 특이한데, 왜냐하면 카드에 묘사된 장면이 로런스 스턴의 소설 속 내용이라기 때문이다. 제목에 "여행"에 들어간 까닭이었는지, 나귀님은 <끝없는 여행>이 <감성 여행>을 그림으로 옮긴 것인가보다 착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다시 살펴보니 <트리스트럼 샌디>를 비롯해서 스턴의 작품에 나오는 대표적인 사건들을 망라한 것이라 한다. 


톰 골드가 저 소설가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그 연구 단체인 '로런스 스턴 협회'에 먼저 연락해서 이런 책을 만들자 제안했다는데, 파격과 실험이라는 단어가 늘 따라다니는 소설가임을 감안하자면 딱 어울리는 헌정품 같기도 하다. 다만 애초부터 스턴을 좋아하는 독자를 겨냥해 만든 물건이다 보니, 그냥 톰 골드가 좋아 이것까지 산 독자들에게는 쉽지 않을 법하다.


나귀님조차도 구입 당시에는 <트리스트럼 샌디>를 읽은 지 워낙 오래이다 보니, 카드 속 장면이 무엇을 묘사한 것인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단지 그 소설뿐만 아니라 스턴의 작품 전반에서 가져온 내용이라고 하니, 십중팔구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감성 여행>이나 다른 저술의 장면도 섞여 있다고 치면, 어쩌면 영영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일단 이처럼 파격적인 내용과 형식의 책을 굳이 번역해서 나귀님의 '괴작' 컬렉션에 또 한 권 더해준 에디시옹 장물랭의 용기와 노력만큼은 칭찬하면서도, '이건 뭐, 갖고만 있지 이해는 불가능한 책 아닌가' 싶어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감성 여행>도 번역되었다 하니 이참에 스턴을 다시 읽고서 <끝없는 여행>도 다시 꺼내보아야 하나 싶은 것이다.


톰 골드 역시 파격과 신선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만화가인데, 아쉽게도 절판된 <골리앗>과 <달과 경찰> 같은 작품에서는 무엇보다 고독 묘사가 훌륭했다고 기억한다. <카프카와 함께 빵을>과 <24카툰>에서는 뛰어난 재치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새만화책>에 수록되었던 "왕국의 파수병들"처럼 단행본에 없는 인상적인 작품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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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우디의 유작으로도 유명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가족성당에서 교황 레오 10세가 미사와 축성을 거행했다기에, 1882년에 시작되어 무려 144년째 공사 중인 저 거대한 건축물이 결국 완공된 것인가 싶어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데 더 자세히 알아보니 축성식은 이미 2010년에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거행했고, 성당 자체도 아직 완공은 아니라 한다.


이번 교황의 행차는 해당 성당의 주탑인 '예수 첨탑'이 완공된 것을 기념한 미사 겸 축복식이었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전까지는 똑같은 높이의 첨탑 네 개가 전부였던 성당 한가운데 더 굵고 커다란 탑이 우뚝 솟아올랐다. 마치 凶자 형태로 뭔가 비어 보이던 성당 외관도 주탑이 들어서면서, 마치 幽자 형태처럼 짜임새 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해야 할 듯하다.


다만 성당의 일부분은 여전히 공사 중이고, 가우디의 원래 설계대로라면 텅 비어 있어야 하는 광장 중 일부에 개인 소유 건물이 여럿 자리하고 있어서 그 철거 여부를 놓고서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니, 이래저래 완공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성가족성당이다. 어쩐지 스페인도 중국 못지않게 '만만디' 기질인 듯해서 감탄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만.


그나저나 주탑이 완성되었으니 기존 가우디 도록은 이제 모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닌가, 최소한 대대적 업데이트라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는 좌우 측면의 첨탑 네 개 위로 공사용 크레인이 우뚝 솟은 삭막한 모습이 전부였다면, 앞으로는 주탑을 중심으로 첨탑 네 개가 배열되어 더 멋진 모습을 찍은 사진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친 김에 지금껏 모아 놓은 가우디 도록을 한 번 꺼내 일별하기로 했다. 딱히 어떤 계획에 따른 것은 아니고, 가끔 헌책방에서 눈에 띌 때마다 하나씩 주워 모은 자료들이다 보니 일관성도 통일성도 없지만, 이번 기회에 모조리 꺼내 놓고 대조해 보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비교해 볼 생각이었다. 아울러 도록 중 일부는 저자가 같더라는 특이성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여기서 말하는 저자란 스페인의 건축가 겸 교육자인 후안 바세고다 이 노넬(Juan Bassegoda i Nonell, 1930-2012)인데, 나귀님이 가진 도록 중에서 무려 3종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람의 도록 1종을 나머지 2종이 그대로 베낀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바세고다는 가우디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저자인 동시에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아래 열거한 도록 (라)에 수록된 그의 약력을 보면 카탈로니아 종합기술대학 건축학과 교수 겸 가우디 대학원 학장, 카탈로니아 왕립 미술 아카데미 대표, 가우디 협회 회장이라고 나온다. 한 마디로 가우디 업계(?)에서는 최고 권위자인 듯하니, 1996년과 2000년에 한국에서 열린 가우디 전시회 도록 (라)와 (마)에 그의 인사말이 수록된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심지어 독일의 미술 전문 출판사 타셴(Taschen)에서 간행한 가우디 도록의 저자 라이너 체르프스트(Rainer Zerbst)도 (나)와 (다)에 수록된 '감사의 말'에서 바세고다의 저서가 없었다면 자기는 결코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시인했을 정도이니 그 영향력을 실감할 만하다.(하지만 왜인지 체르프스트의 저서 참고문헌에는 바세고다의 저서가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그토록 영향력이 높았던 바세고다의 가우디 해설서가 스페인이 아니라 일본에서 최초로 간행되었다는 점이다. 체르프스트는 Gaudi: Arte y Arquitectura라는 책이 Rikuyo-sha라는 출판사에서 1978년(초판, 전2권)과 1985년(재판, 단권)에 간행되었다 썼으니, 어쩌면 일본 출판사에서 기획해서 일본어와 스페인어 모두로 간행한 것 아닐까.


바로 그 자료를 번역한 책이 아래의 도록 중 (가)인 듯한데, 예전의 관행대로 번역 대본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판과 재판 중 어떤 것의 번역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일본 책 (카)의 참고문헌에 나온 <가우디의 작품: 예술과 건축(ガウディの作品: 芸術と建築)>(J. 바세고다, R. 로란, 이리에 마사유키 지음, 이시자키 유코 옮김, 六耀社)와 같은 책 아닐지.


아래에 열거한 도록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사진을 망라하기 때문에, 간혹 촬영 시기에 따라 달라진 모습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엘 공원의 기둥숲에 있는 천장 장식화 가운데 하나를 보면, 1970년대 사진인 타셴의 도록에서는 모자이크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이 뚜렷하게 보이지만, 2000년대 사진인 트라이앵글의 도록에서는 복원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성가족성당 주탑의 완공으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던 이 옛날 도록 중 일부는 나중에 가서도 자료 가치가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14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완공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저 거대한 성당처럼, 가우디의 건축물은 앞으로도 여러 번의 수리와 복원을 거치면서 보전되고, 또 수많은 사람을 매료시키게 될 테니...



나귀님이 갖고 있는 도록은 다음과 같다.(도판이 많지 않은 전기와 기타 편역서는 제외했다):


(가) Antonio Gaudi: Special Edition (Francois Rene Roland 지음, 이인환 옮김, 집문사, 1989). 번역 대본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속표지에 Gaudi: Arte y Arquitectura 라고 적힌 것으로 미루어, 일본의 리쿠요사(Rikuyo-Sha, 六耀社)에서 1978년(초판, 전2권)과 1987년(재판, 단권)에 간행한 책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록 (카)의 참고문헌에 나오는 <가우디의 작품: 예술과 건축(ガウディの作品: 芸術と建築)>(J. 바세고다, R. 로란, 이리에 마사유키 지음, 이시자키 유코 옮김, 六耀社)은 그 일어판으로 짐작된다. (가)의 표지에는 저자 이름 대신 번역자의 이름만 나오고, 판권면에도 Francois Rene Roland이 단독 저자인 것처럼 나와 있지만, "프랑소와 르네 로랑"(프랑수아 르네 롤랑)은 이 책 전반부 "주요 작품 도판"에 수록된 사진을 촬영한 사람이고, 후반부 "해설과 자료"는 "판 바세고다 노네르"(후안 바세고다 노넬)이 저술했기 때문에, 위에 나온 (카)의 참고문헌 표기처럼 바세고다와 롤랑의 공저라고 해야 맞겠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가)는 도판과 해설 모두 풍부하기 때문에 훗날 타셴 도록 (나)와 (다)의 토대가 되었다. 한국에서 개최한 전시회의 도록인 (라)와 (마)도 바세고다의 인사말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사진과 해설 모두 (가)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까지는 아니다. 다만 (가)의 가장 큰 단점은 도판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사진 중 일부는 이중 인쇄가 되거나 초점이 나갔으며, 건축물의 이름을 바꿔서 표기한 경우도 있다. 번역 자체도 일본어를 옮길 때에 흔히 나오는 고유명사 오기를 비롯해 갖가지 오류가 등장해서 읽기는 참 괴롭다. 다만 바세고다의 해설 자체는 매우 상세하고, 특히 (일본에서 자체 제작한 듯한) 흑백 평면도와 단면도가 여럿 들어 있어서 도움이 된다. 여하간 이 책의 명성과 영향력을 감안해 보면 번역본의 상태는 영 아쉬울 수밖에 없다.


(나) Gaudi: The Complete Works by Rainer Zerbst & Peter Goessel (Koln: Taschen, 1987; reissue 2022). 1987년에 나온 라이너 체르프스트의 저서를 2022년에 재간행하면서 페터 괴셀이 내용 증보를 담당했다고 나온다. ‘감사의 말’에서 저자는 리쿠요사에서 간행한 후안 바세고다 노넬의 <가우디: 예술과 건축>의 초판(1978)과 개정판(1985)을 크게 참고했다고 언급했지만, 도판은 (가)에서 가져온 것보다 최신 사진으로 교체한 것이 더 많다. 사진은 다양하고 선명하지만, 나귀님이 가진 2022년 재간행본은 B5 크기의 작은 책이다 보니 보는 재미는 살짝 떨어진다.


(다) Gaudi: The Complete Buildings by Rainer Zerbst (Koln: Taschen, 1988; reissue 2005). 같은 저자의 "작품 전집"(나)에서 건축물만 떼어 놓은 것인데, 역시나 (가)를 크게 참고했다고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리쿠요사의 판권 표시[(c) 1985 Rikuyo-sha Publishing, Inc., Tokyo, Japan]와 사진 작가 프랑수아 르네 롤랑의 이름까지 밝혀놓은 것으로 미루어, (가)에서 도판을 통째로 가져온 것은 아닌가 추정된다.(실제로 겹치는 도판이 많고, 편집 디자인까지도 유사하다). 결국 (나)와 (다)가 같은 저자(체르프스트)의 텍스트를 수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도판만큼은 서로 다른 것이다. 어째서일까? 나귀님의 추측에는 타셴에서 간행한 1987년의 "작품 전집"과 1988년의 "건축 전집" 모두 원래는 리쿠요사의 도판을 그대로 사용했다가, 2022년에 (나)를 재간행하면서 내용 증보가 이루어지며 도판이 대부분 교체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도판 교체 전인 2005년에 재간행된 (다)는 여전히 1980년대의 리쿠요사 도판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하간 이 책은 B4 크기라서 (나)에 비해서는 확실히 보는 재미가 있다.


(라) Gaudi (후안 바세고다 노넬 지음, 조인자 옮김,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 1996). 1996년 10월 22일부터 10일간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KIDP) 전시장에서 개최된 가우디 전시회의 도록으로, 당시 가우디 대학원의 학장 바세고다가 저자로 나오고 축사도 덧붙였다. 바세고다의 텍스트에 롤랑의 사진이 다수 들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가)의 요약판이라 할 수 있고, 역시나 (가)를 크게 참고한 (다)와도 겹치는 도판이 많다. 명목상의 간행처는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이지만, 판권을 보면 미술 전문 출판사 예경이 편집, 제작, 판매를 대행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도판의 품질은 그리 좋지 않고, 뭔가 지나치게 불그죽죽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 Gaudi (경기도/조선일보사, 2000). 2000년 10월 20일부터 15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전시회의 도록이다. 산업도서출판공사라는 곳에서 제작했다고 나온다. (라)처럼 바세고다의 축사가 수록되었지만 (가)나 (라)와 유사한 도판까지는 아니다. 권말에 참고 문헌 16종이 열거된 것으로 미루어, 바세고다의 저서를 비롯한 다른 여러 자료에서 사진을 짜깁기한 것일 수도 있겠다.


(바) Gaudi: An Introduction to His Architecture. Text by Juan-Eduardo Cirlot. Photography by Pere Vivas & Ricard Pla (Barcelona: Triangle Postals, 2001). '2002년 가우디의 해'(Gaudi International Year)에 맞춰서 나온 미니 도록(가로세로 각 16센티미터)이다. 아마도 관광객용 가이드북을 의도한 듯, 16종의 건축물을 소개하고 바르셀로나 지도까지 곁들여 놓았다. 저자 후안 에두아르도 시를로트(1913-1973)는 스페인의 미술 비평가 겸 시인이라고 하며, 1950년대부터 가우디 관련 저서를 내놓은 것으로 검색된다.


(사) Gaudi: Complete Works. Text by Juan-Eduardo Cirlot. Photography by Pere Vivas & Ricard Pla (Barcelona: Triangle Books, 2001). (바)과 같은 판형으로 역시나 16종의 건축물을 소개한다. 제목처럼 건축물 전체를 다룬 것은 아니고, (바)의 내용에 평면도와 단면도 등 추가 도판을 집어넣은 정도이다.


(아) 가우디: 예언자적인 건축가 (필립 티에보 지음, 김주경 옮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22, 2006). 작은 판형이지만 다양한 사진이 들어 있어서 간단한 입문용으로 좋다.


(자) 안토니 가우디 (마리아 안토니에타 크리파 지음, 이영주 옮김, 마로니에북스, 2006). 타셴의 '베이직북스'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인데, 수록된 도판은 (다)보다는 (나)에 가까워서 더 최신의 사진으로 이루어졌다. 


(차) 가우디: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 (김용대 지음, 미진사, 2012). 국내 저자의 저서인데, 스페인에 가서 직접 찍은 듯한 사진이 많아서 특이하다. 다만 판권면에 여러 저자 이름을 스치듯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참고 문헌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카) 안토니오 가우디: 지중해가 낳은 천재 건축가 (이리에 마사유키 지음, 김진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7). 색다른 사진이 여럿 들어 있고, 특히 권말에 일본 쪽의 자료에 대한 참고 문헌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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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펀드 광고에서 <정치의 서>라는 것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출판사 설명에 따르면 "서양의 마키아벨리, 중국의 한비자와 비견되는 니잠 알 물크에 의해 11세기에 집필된 이슬람 정치철학의 고전적 명저"라는데, 어째서 마키아벨리는 '서양'을 대표하는데 한비자는 '중국'만 대표하는지 살짝 의문이기도 하지만, 여하간 대단한 책이라는 의미는 분명해 보인다.


그나저나 옛날 페르시아 정치가라니, 혹시 중동 민담에 나오는 "세 친구" 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서 검색해 보니, 진짜 바로 그 사람이었다! 민담의 내용에 따르면, 동문수학한 친구 세 명이 누구든 먼저 출세하는 쪽이 나머지도 출세하게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훗날 그중 한 명이 자국 총리대신이 되어 다른 두 친구를 수소문해 보았더니 양쪽 모두 도움을 거절했다.


한 친구는 학자이자 시인이 되어 출세를 멀리한 까닭이었고, 또 한 친구는 테러리스트로 전향하여 암약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학자 겸 시인인 친구가 <루바이야트>의 저자 오마르 하이얌이고, 테러리스트인 친구가 악명 높은 암살단 아사신의 창설자 하산 에 사바흐이며, 먼저 출세해 총리대신이 된 친구가 이번에 나올 <정치의 서>의 저자 니잠 알 물크다.


구글링해 보면 "세 친구" 이야기의 원형은 라시드 앗 딘의 "집사"에 처음 언급되었다고 하는데, 시기나 경력을 따져 보면 셋이 실제로 동문수학한 친구 사이였을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십중팔구 동시대의 유명인사 셋의 행적이 대조적이었음에 착안해 창작된 민담이 아닐까. 아민 말루프의 소설 <사마르칸트> 역시 이 민담의 내용을 소설화한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나귀님의 기억으로는 중국인지의 민담에도 이와 유사한 "세 친구" 이야기가 있었던 듯하다. 역시나 동문수학한 세 친구가 재회했더니 하나는 관리, 하나는 도적, 하나는 신선이 되어 있었다던가.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인생의 묘미인 듯하니, 중동의 민담이건 중국의 민담이건 삶의 덧없음을 상기시키려는 것이 목적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외대 이란어과 교수였던 김정위가 편역한 <페르시아어 시집>에 따르면, 과거 이란에서는 뉴스 시작 전에 아나운서가 코란이나 <샤나메>를 한 구절 낭송하곤 했다는데, 생각해 보면 페르시아/이란은 시문학 분야에서도 빛나는 전통을 지닌 나라이다. 여하간 여러 면에서 대단한 역사와 문화와 자원을 보유한 대국인데 어째서 지금은 동네북으로 전락했는지 의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도 페르시아 작품인데, 김정위의 지적에 따르면 오히려 해외의 인기 때문에 자국에서도 재평가되었다 한다. 우리나라에도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영역본을 옮긴 것이 여럿 나와 있고, 페르시아어 원문 번역본도 하나 나왔지만 지금은 절판 상태이다. 나귀님 기억에 가장 특이했던 것은 지질학자(!) 장기홍의 번역본이고.


이번 주엔가 서울국제도서전을 한다던데,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란 부스에서 <루바이야트> 다국어판(페르시아어 원문부터 번역본 20여 종을 하나로 엮었다)을 구입한 기억이 난다. 원래 전시용이라 판매불가라더니, 혹시 또 모르니까(?) 마지막 날 다시 와 보라고 해서 가 보니 슬그머니 내주더라. 나귀님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이란과의 불법(?) 거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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