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나저나 교황 레오 11세의 가우디 성가족성당 방문 실황을 유튜브로 살펴보니, 미사를 마치고 아예 밖으로 나가서 성당을 바라보며 축복식을 거행하는 장면도 나온다. 144년간 이어진 공사가 막바지에 도달한 상황에서 건축가를 기린 행사였으니 참으로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주책맞은 나귀님은 그 모습을 본 순간 장 클로드 갈의 만화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죽음의 행군>에 수록된 그 단편에서는 중세의 한 위대한 건축가가 가톨릭 대주교에게 사로잡혀 억지로 대성당을 만들게 된다. <콰이 강의 다리>의 줄거리와 유사하게, 함께 붙잡힌 자국민 포로들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대주교의 명령을 선뜻 받아들인 건축가였지만, 정작 강제 노동에 시달리게 된 포로들은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며 건축가를 원망했다고 전한다.
대주교는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건축물을 요구하고, 이에 건축가는 신기하게도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거대한 대성당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기뻐하던 대주교가 완공된 대성당 앞 제단에 놓인 술잔을 집어들자, 이제껏 저 육중한 돌덩어리를 물 위에 띄워 놓았던 교묘한 균형이 깨어지며 대성당과 대주교와 건축가 모두 바다에 수장된다.
가우디의 성가족성당만 해도 일반적인 종교 건축물과는 상당히 다른 외관 때문에 마치 아웃사이더 아트마냥 뚜렷한 계획 없이 임기응변으로 석재를 쌓아올려 만들어내기라도 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쉬운데, 실제로는 그 거대하고 색다른 구조물에 최적의 균형을 찾아내고자 축소 모형에 모래 주머니를 잔뜩 매달아서 실험에 실험을 거듭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죽음의 행군>에 수록된 작품은 가상의 중세를 배경으로 삼는데, 그중에서도 "아른의 복수" 같은 것은 영화 <야만인 코난>과도 비슷한 느낌이 두드러진다. 물론 시기상으로는 장 클로드 갈의 만화가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미국 영화보다 살짝 빨랐다지만, 영화의 원작인 로버트 하워드의 소설 시리즈는 훨씬 더 먼저 나왔기 때문에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장 클로드 갈이 그린 또 다른 작품으로는 <디오자망트의 열정>이란 것도 번역되었다. <죽음의 행군>에 묘사된 것과 유사한 가상의 중세를 배경으로, 미모와 지혜 못지않게 무력과 육욕도 어마어마한 야만인 나라의 여왕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방랑길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제목의 "열정"(passion)은 "시련"이나 "수난"을 가리키는 중의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디오자망트의 열정>의 글쓴이가 무려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라는 것이다.(예전에는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라고 표기하다 보니, 지금도 알라딘에는 그 표기로만 검색되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컬트 영화 감독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만화 분야에서도 꾸준히 활동해서 <잉칼>, <테크노 사제>, <라마 블랑> 등의 작품에서 스토리를 담당했다.
호도로프스키의 영화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난해하다는 소문이 있어서 굳이 찾아서 보지는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구글링해 보니 그의 작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일종의 '필수 요소'가 눈에 띄었다.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고행이며 해탈과도 유사한 상황 전개인데, 나귀님이 본 만화 몇 종에서도 물론이고 아직 보지 못한 영화에서도 이런 내용이 반복되는 듯하다.
저 유명한 <잉칼>을 예로 들어 보자면, 평범한 주인공이 뜻하지 않게 거대한 힘을 손에 넣게 되자 그를 돕거나 저지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단합하여 사건 해결을 위한 탐색에 나서고, 물질 세계에서 시작된 여정이 영적 차원으로 접어들면서 일행은 각자의 욕망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아까지 완전히 내버리는 과정을 거친 끝에야 우주적 존재와 합일을 이룩한다.
<테크노 사제>는 <잉칼>에서 주인공을 뒤쫓는 세력 가운데 하나인 '테크노 교단'을 소재로 한 외전으로 (우리나라에는 1권만 나왔다) 저 교단에 입회한 소년이 수련 끝에 대사제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고, <라마 블랑>은 티벳 성자 밀라래파의 고행과 해탈에 대한 유명한 일화에 백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화이트워싱일까?) 불교의 가르침을 아예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 중에서도 <성스러운 산>의 줄거리는 <잉칼>과도 유사해 보이니, 결국 불교의 고행과 해탈, 힌두교의 우주적 존재와의 합일 같은 동양 사상을 호도르프스키가 유독 선호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그의 작품들을 다 보진 못했으니 이게 전부라고 단언하기는 곤란하겠지만, 적어도 나귀님이 본 작품들은 일종의 '수난극'이나 '고행담'으로 요약되는 듯하니까.
호도로프스키의 이력을 보면 페르난도 아라발과 '공황극' 운동을 시작한 것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부조리극의 전통을 계승하고, 또 한편으로는 20세기 중반 서양의 동양 사상 및 종교 열풍을 반영하여 나름대로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것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전부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나귀님이 본 작품들에서는 그런 경향이 뚜렷해 보이니.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호도로프스키가 거듭해서 말하려는 내용이 정작 동양권 독자들에게는 친숙하다 못해 심지어 진부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동양 사상 및 종교가 서양에서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변용되어 인기를 끌었을 때, 막상 그 내용을 보면 불교와 도교 등 우리에게는 체화되다시피 친숙한 내용이어서 살짝 실망스러웠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지금 와서는 한자를 모르는 세대도 많고, 서양식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세대도 많다니, 불교 박람회가 신기하고 서울도서전도 신기하게 느껴지듯, 호도로프스키의 작품 내용조차도 새삼스럽게 대단히 신기하고도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마치 '박카스'가 바다를 두어 번 건너자 '레드불'이 되어 돌아오더라는 일각의 주장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