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우디의 유작으로도 유명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가족성당에서 교황 레오 10세가 미사와 축성을 거행했다기에, 1882년에 시작되어 무려 144년째 공사 중인 저 거대한 건축물이 결국 완공된 것인가 싶어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데 더 자세히 알아보니 축성식은 이미 2010년에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거행했고, 성당 자체도 아직 완공은 아니라 한다.


이번 교황의 행차는 해당 성당의 주탑인 '예수 첨탑'이 완공된 것을 기념한 미사 겸 축복식이었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전까지는 똑같은 높이의 첨탑 네 개가 전부였던 성당 한가운데 더 굵고 커다란 탑이 우뚝 솟아올랐다. 마치 凶자 형태로 뭔가 비어 보이던 성당 외관도 주탑이 들어서면서, 마치 幽자 형태처럼 짜임새 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해야 할 듯하다.


다만 성당의 일부분은 여전히 공사 중이고, 가우디의 원래 설계대로라면 텅 비어 있어야 하는 광장 중 일부에 개인 소유 건물이 여럿 자리하고 있어서 그 철거 여부를 놓고서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니, 이래저래 완공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성가족성당이다. 어쩐지 스페인도 중국 못지않게 '만만디' 기질인 듯해서 감탄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만.


그나저나 주탑이 완성되었으니 기존 가우디 도록은 이제 모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닌가, 최소한 대대적 업데이트라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는 좌우 측면의 첨탑 네 개 위로 공사용 크레인이 우뚝 솟은 삭막한 모습이 전부였다면, 앞으로는 주탑을 중심으로 첨탑 네 개가 배열되어 더 멋진 모습을 찍은 사진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친 김에 지금껏 모아 놓은 가우디 도록을 한 번 꺼내 일별하기로 했다. 딱히 어떤 계획에 따른 것은 아니고, 가끔 헌책방에서 눈에 띌 때마다 하나씩 주워 모은 자료들이다 보니 일관성도 통일성도 없지만, 이번 기회에 모조리 꺼내 놓고 대조해 보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비교해 볼 생각이었다. 아울러 도록 중 일부는 저자가 같더라는 특이성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여기서 말하는 저자란 스페인의 건축가 겸 교육자인 후안 바세고다 이 노넬(Juan Bassegoda i Nonell, 1930-2012)인데, 나귀님이 가진 도록 중에서 무려 3종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람의 도록 1종을 나머지 2종이 그대로 베낀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바세고다는 가우디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저자인 동시에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아래 열거한 도록 (라)에 수록된 그의 약력을 보면 카탈로니아 종합기술대학 건축학과 교수 겸 가우디 대학원 학장, 카탈로니아 왕립 미술 아카데미 대표, 가우디 협회 회장이라고 나온다. 한 마디로 가우디 업계(?)에서는 최고 권위자인 듯하니, 1996년과 2000년에 한국에서 열린 가우디 전시회 도록 (라)와 (마)에 그의 인사말이 수록된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심지어 독일의 미술 전문 출판사 타셴(Taschen)에서 간행한 가우디 도록의 저자 라이너 체르프스트(Rainer Zerbst)도 (나)와 (다)에 수록된 '감사의 말'에서 바세고다의 저서가 없었다면 자기는 결코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시인했을 정도이니 그 영향력을 실감할 만하다.(하지만 왜인지 체르프스트의 저서 참고문헌에는 바세고다의 저서가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점은 그토록 영향력이 높았던 바세고다의 가우디 해설서가 스페인이 아니라 일본에서 최초로 간행되었다는 점이다. 체르프스트는 Gaudi: Arte y Arquitectura라는 책이 Rikuyo-sha라는 출판사에서 1978년(초판, 전2권)과 1985년(재판, 단권)에 간행되었다 썼으니, 어쩌면 일본 출판사에서 기획해서 일본어와 스페인어 모두로 간행한 것 아닐까.


바로 그 자료를 번역한 책이 아래의 도록 중 (가)인 듯한데, 예전의 관행대로 번역 대본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판과 재판 중 어떤 것의 번역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일본 책 (카)의 참고문헌에 나온 <가우디의 작품: 예술과 건축(ガウディの作品: 芸術と建築)>(J. 바세고다, R. 로란, 이리에 마사유키 지음, 이시자키 유코 옮김, 六耀社)와 같은 책 아닐지.


아래에 열거한 도록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사진을 망라하기 때문에, 간혹 촬영 시기에 따라 달라진 모습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엘 공원의 기둥숲에 있는 천장 장식화 가운데 하나를 보면, 1970년대 사진인 타셴의 도록에서는 모자이크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이 뚜렷하게 보이지만, 2000년대 사진인 트라이앵글의 도록에서는 복원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성가족성당 주탑의 완공으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던 이 옛날 도록 중 일부는 나중에 가서도 자료 가치가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14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완공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저 거대한 성당처럼, 가우디의 건축물은 앞으로도 여러 번의 수리와 복원을 거치면서 보전되고, 또 수많은 사람을 매료시키게 될 테니...



나귀님이 갖고 있는 도록은 다음과 같다.(도판이 많지 않은 전기와 기타 편역서는 제외했다):


(가) Antonio Gaudi: Special Edition (Francois Rene Roland 지음, 이인환 옮김, 집문사, 1989). 번역 대본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속표지에 Gaudi: Arte y Arquitectura 라고 적힌 것으로 미루어, 일본의 리쿠요사(Rikuyo-Sha, 六耀社)에서 1978년(초판, 전2권)과 1987년(재판, 단권)에 간행한 책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록 (카)의 참고문헌에 나오는 <가우디의 작품: 예술과 건축(ガウディの作品: 芸術と建築)>(J. 바세고다, R. 로란, 이리에 마사유키 지음, 이시자키 유코 옮김, 六耀社)은 그 일어판으로 짐작된다. (가)의 표지에는 저자 이름 대신 번역자의 이름만 나오고, 판권면에도 Francois Rene Roland이 단독 저자인 것처럼 나와 있지만, "프랑소와 르네 로랑"(프랑수아 르네 롤랑)은 이 책 전반부 "주요 작품 도판"에 수록된 사진을 촬영한 사람이고, 후반부 "해설과 자료"는 "판 바세고다 노네르"(후안 바세고다 노넬)이 저술했기 때문에, 위에 나온 (카)의 참고문헌 표기처럼 바세고다와 롤랑의 공저라고 해야 맞겠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가)는 도판과 해설 모두 풍부하기 때문에 훗날 타셴 도록 (나)와 (다)의 토대가 되었다. 한국에서 개최한 전시회의 도록인 (라)와 (마)도 바세고다의 인사말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사진과 해설 모두 (가)와 완전히 일치하는 것까지는 아니다. 다만 (가)의 가장 큰 단점은 도판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사진 중 일부는 이중 인쇄가 되거나 초점이 나갔으며, 건축물의 이름을 바꿔서 표기한 경우도 있다. 번역 자체도 일본어를 옮길 때에 흔히 나오는 고유명사 오기를 비롯해 갖가지 오류가 등장해서 읽기는 참 괴롭다. 다만 바세고다의 해설 자체는 매우 상세하고, 특히 (일본에서 자체 제작한 듯한) 흑백 평면도와 단면도가 여럿 들어 있어서 도움이 된다. 여하간 이 책의 명성과 영향력을 감안해 보면 번역본의 상태는 영 아쉬울 수밖에 없다.


(나) Gaudi: The Complete Works by Rainer Zerbst & Peter Goessel (Koln: Taschen, 1987; reissue 2022). 1987년에 나온 라이너 체르프스트의 저서를 2022년에 재간행하면서 페터 괴셀이 내용 증보를 담당했다고 나온다. ‘감사의 말’에서 저자는 리쿠요사에서 간행한 후안 바세고다 노넬의 <가우디: 예술과 건축>의 초판(1978)과 개정판(1985)을 크게 참고했다고 언급했지만, 도판은 (가)에서 가져온 것보다 최신 사진으로 교체한 것이 더 많다. 사진은 다양하고 선명하지만, 나귀님이 가진 2022년 재간행본은 B5 크기의 작은 책이다 보니 보는 재미는 살짝 떨어진다.


(다) Gaudi: The Complete Buildings by Rainer Zerbst (Koln: Taschen, 1988; reissue 2005). 같은 저자의 "작품 전집"(나)에서 건축물만 떼어 놓은 것인데, 역시나 (가)를 크게 참고했다고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리쿠요사의 판권 표시[(c) 1985 Rikuyo-sha Publishing, Inc., Tokyo, Japan]와 사진 작가 프랑수아 르네 롤랑의 이름까지 밝혀놓은 것으로 미루어, (가)에서 도판을 통째로 가져온 것은 아닌가 추정된다.(실제로 겹치는 도판이 많고, 편집 디자인까지도 유사하다). 결국 (나)와 (다)가 같은 저자(체르프스트)의 텍스트를 수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도판만큼은 서로 다른 것이다. 어째서일까? 나귀님의 추측에는 타셴에서 간행한 1987년의 "작품 전집"과 1988년의 "건축 전집" 모두 원래는 리쿠요사의 도판을 그대로 사용했다가, 2022년에 (나)를 재간행하면서 내용 증보가 이루어지며 도판이 대부분 교체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도판 교체 전인 2005년에 재간행된 (다)는 여전히 1980년대의 리쿠요사 도판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하간 이 책은 B4 크기라서 (나)에 비해서는 확실히 보는 재미가 있다.


(라) Gaudi (후안 바세고다 노넬 지음, 조인자 옮김,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 1996). 1996년 10월 22일부터 10일간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KIDP) 전시장에서 개최된 가우디 전시회의 도록으로, 당시 가우디 대학원의 학장 바세고다가 저자로 나오고 축사도 덧붙였다. 바세고다의 텍스트에 롤랑의 사진이 다수 들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가)의 요약판이라 할 수 있고, 역시나 (가)를 크게 참고한 (다)와도 겹치는 도판이 많다. 명목상의 간행처는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이지만, 판권을 보면 미술 전문 출판사 예경이 편집, 제작, 판매를 대행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도판의 품질은 그리 좋지 않고, 뭔가 지나치게 불그죽죽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 Gaudi (경기도/조선일보사, 2000). 2000년 10월 20일부터 15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전시회의 도록이다. 산업도서출판공사라는 곳에서 제작했다고 나온다. (라)처럼 바세고다의 축사가 수록되었지만 (가)나 (라)와 유사한 도판까지는 아니다. 권말에 참고 문헌 16종이 열거된 것으로 미루어, 바세고다의 저서를 비롯한 다른 여러 자료에서 사진을 짜깁기한 것일 수도 있겠다.


(바) Gaudi: An Introduction to His Architecture. Text by Juan-Eduardo Cirlot. Photography by Pere Vivas & Ricard Pla (Barcelona: Triangle Postals, 2001). '2002년 가우디의 해'(Gaudi International Year)에 맞춰서 나온 미니 도록(가로세로 각 16센티미터)이다. 아마도 관광객용 가이드북을 의도한 듯, 16종의 건축물을 소개하고 바르셀로나 지도까지 곁들여 놓았다. 저자 후안 에두아르도 시를로트(1913-1973)는 스페인의 미술 비평가 겸 시인이라고 하며, 1950년대부터 가우디 관련 저서를 내놓은 것으로 검색된다.


(사) Gaudi: Complete Works. Text by Juan-Eduardo Cirlot. Photography by Pere Vivas & Ricard Pla (Barcelona: Triangle Books, 2001). (바)과 같은 판형으로 역시나 16종의 건축물을 소개한다. 제목처럼 건축물 전체를 다룬 것은 아니고, (바)의 내용에 평면도와 단면도 등 추가 도판을 집어넣은 정도이다.


(아) 가우디: 예언자적인 건축가 (필립 티에보 지음, 김주경 옮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22, 2006). 작은 판형이지만 다양한 사진이 들어 있어서 간단한 입문용으로 좋다.


(자) 안토니 가우디 (마리아 안토니에타 크리파 지음, 이영주 옮김, 마로니에북스, 2006). 타셴의 '베이직북스'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인데, 수록된 도판은 (다)보다는 (나)에 가까워서 더 최신의 사진으로 이루어졌다. 


(차) 가우디: 신은 서두르지 않는다 (김용대 지음, 미진사, 2012). 국내 저자의 저서인데, 스페인에 가서 직접 찍은 듯한 사진이 많아서 특이하다. 다만 판권면에 여러 저자 이름을 스치듯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참고 문헌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카) 안토니오 가우디: 지중해가 낳은 천재 건축가 (이리에 마사유키 지음, 김진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7). 색다른 사진이 여럿 들어 있고, 특히 권말에 일본 쪽의 자료에 대한 참고 문헌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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