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알라딘 서재에 접속했더니 지난번까지는 없었던 '2025년 서재의 달인' 엠블럼이 첫 화면에 나타난다. 영 눈에 거슬리는 물건이어서 없애려고 '서재관리 > 레이아웃/메뉴 > 사이드바이미지 설정' 메뉴로 들어가 보았더니, 앞서 선정된 2008년, 2014년, 2015년 엠블럼은 공개 여부 선택 메뉴가 있지만, 이번에 선정된 2025년 엠블럼은 그런 메뉴 자체가 없다.


애초에 설정 자체가 없었다면 모를까, 원래 있었는데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사용이 불가능하다니 뭔가 이상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세월일 것이다. 알라딘 서재가 생긴 지도 20년이 넘었고, 이른바 '서재 2.0'이라는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진 지도 20년이 다 되어 가는 상황이니 낡은 부분도 많을 것이고, 오랫동안 방치된 부분도 많을 것이다. 


알라딘 서재 자체의 가치 하락도 원인이지 않을까. 딱히 황금알을 낳아주는 곳도 아니니 유지비가 아까울 법하다. 블로그 전문 사이트들도 이미 문 닫은 곳이 여럿이니, 여차 하면 알라딘도 블로그 문 닫기를 고민할 상황에서 열심히 업데이트할 이유가 없을 듯하다. 스마트폰이 도래하며 북플 사용을 권장하는 추세더니만, 결국 서재는 자연스레 찬밥이 된 걸까.


물론 스마트폰으로도 알라딘 서재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원래 PC에 특화된 디자인이다 보니 '서재관리' 같은 설정은 여전히 웹사이트로 재접속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앞서 말한 엠블럼 공개 여부처럼 이제 와서는 유명무실해진 기능도 많아지니, 이쯤 되면 제대로 관리되기는커녕 사실상 폐쇄까지 염두에 둔 방치 상태에 놓인 것은 아닌가 의문마저 드는 것이다.


아니면, 이건 좀 더 섬뜩한 상상이지만, 알라딘 서재 자체는 오래 전 이미 사라졌고, 나귀님처럼 순진한 극소수 사용자를 제외하면 모조리 AI봇으로 대체된 상태에서 일종의 사회 실험이 진행 중인 것일 수도 있다. 최근 올라오는 게시물 대부분이 각종 이벤트며 서평단의 엇비슷한 홍보글임을 감안하면, 이런 의심마저 지나친 상상이라 일축하지는 못할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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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우주점에 오에 겐자부로의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의 구판본이 있기에 구입했다. 흔치 않은 절판본이지만 최근에 신판도 나와 희귀본 대접까지는 받지 못한 까닭인지, 어영부영 요령 없는 나귀님 손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으니 희한한 일이다. 딱히 애호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이면 하나씩 구입하다 보니 구판 전집을 하나 빼고 다 모으게 되었다.

 

고려원의 "오에 겐자부로 소설문학전집"은 전24권(마지막 권은 하스미 시게히코의 <오에 겐자부로론>으로 예정되었으니, 오에의 저서는 총23권뿐이다)으로 추진되었지만,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전체의 5분의 3인 열다섯 권만 간행하고 출판사 부도로 중단되었는데, 간행 개시 시점에서 최신작 위주로 간행하다 보니 대부분 뒷번호의 중후기 작품 위주로만 나왔다.


그나마도 출판사가 있던 시절에는 교보문고 등에서 할인 행사를 해도 '완간되면 한꺼번에 사자'고 외면했고, 출판사가 망하고 나서는 헌책방에 워낙 많이 굴러다니기에 '천천히 사도 되겠지' 싶어서 무시했는데, 뒤늦게야 본격적으로 읽어볼까 싶어 찾아보니, 그 많던 책이 다 어디 갔는지 안 보이고,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 아차 싶기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했다.


오히려 그 사이에 오에 겐자부로의 에세이나 대담집을 짬짬이 구해 읽으면서도 소설을 외면했던 까닭은 뭔가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특유의 현학적 내용이 거슬렸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이른바 '백치 아들 서사'를 중심으로 한 사소설이 반복되는 듯해서 본인의 '사연팔이' 이외에 작가의 능력이 있는지도 살짝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백치 아들 서사'라는 표현은 오에 겐자부로와 히카리 부자를 다룬 린즐리 캐머런의 논픽션 <빛의 음악>에서 처음 접했는데, 저 소설가를 연구하는 비평가 사이에서는 종종 통용되는 듯하다. 십중팔구 자폐증이면서도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작곡가로도 활동했던 히카리가 이른바 "백치 석학"(idiot savant), 흔히 말하는 "서번트"임에 착안한 표현이 아닐까.


이번에 구입한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도 외관상 회고록 형식의 소설이지만, 내용 중에 역시나 '백치 아들 서사'를 포함한 저자의 실제 체험과 작품 활동 관련 일화가 등장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전적인 내용이 아닐까 싶은 인상을 주게 된다. 현학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여서 수시로 각종 작품과 인명과 이론이 언급되어 뭔가 정신사나운 느낌마저 없지 않다.


물론 사소설이나 자전소설도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므로, 이를 수기나 자서전과 혼동하면 곤란할 것이다. 오에 역시 자신의 작품 속 내용을 독자와 언론이 실제 사실로 혼동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낸 적이 여러 번이라고도 전한다. 하지만 애초에 본인과 저서가 실명으로 등장하는 상황에서 '이건 어디까지나 허구'라고 강조하는 셈이니 설득력은 떨어진다.


이처럼 소설에서는 '장애아를 둔 진보 성향의 전업 작가'인 주인공이 거듭 등장하고, 에세이에서도 본인의 주장보다는 독서나 교유에서 얻은 바를 옮겨서 말하는 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과연 이 작가에게는 독창성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는 걸까, 어찌 보면 가족사의 비극과 그 극복 노력이라는 특징이 과대평가된 것은 아닐까 의구심도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구입하면서 내친 김에 이전에 구입한 그의 초기작까지 꺼내 일별해 보니, 초기의 오에 겐자부로는 내가 알던 모습과 상당히 '다른' 작가임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물론 여기서도 '아이의 눈으로 본 폭력과 부조리의 세상'이라는 주제가 반복되기는 하지만, 이후의 현학성과 상반되는 상당히 거칠고 사나운 느낌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 <오에 겐자부로>의 제1부 "초기 단편"에 수록된 "기묘한 아르바이트", "사자의 잘난 척", "남의 다리", "사육", "인간 양", "돌연한 벙어리", "세븐틴", "공중 괴물 아구이"와 문지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첫 장편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이다. 고려원 전집에서는 1-3권으로 예정되었지만 간행 불발된 작품들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중 맨 처음 읽은 것이 중앙일보사 "오늘의 세계문학" 전집에 수록된 중편 "성적 인간"이었다. 이른바 '취미로 치한을 하는 사람'인 청년과 중년이 그 업계(?)에 첫 발을 담근 소년을 만나 가르침을 베푼다는 상당히 기괴한 내용이다 보니, 나중에 바로 그 작가가 무려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처음 읽은 작품의 대담함과 의외성이 마음에 들어 중후기 장편도 집어들었지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자전적 '작가 소설'의 반복인 듯해서 금세 흥미를 잃고 말았는데,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초기 단편과 장편에서는 예전의 그 거친 느낌이 생생히 살아 있어서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반대로 중후기 장편을 먼저 접했던 독자라면 이질감마저 느끼지 않을까.


초기의 작품이므로 여기서도 몇 가지 유사한 주제가 반복된다. 예를 들어 "기묘한 아르바이트"와 "사자의 잘난 척"과 "공중 괴물 아구이"는 외관상 무해해 보이는 '일'이 의외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남의 다리", "사육", "돌연한 벙어리"와 <새싹 뽑기>는 폐쇄 공간 거주자의 경계와 불신이 공감과 애정으로 변모되다 역시 의외의 결과로 맺어지는 내용이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역시나 최연소 아쿠다가와상 수상 기록을 세운 중편 "사육"이다. 전쟁 중 고립된 산간 마을에 미군 비행기가 떨어지며 흑인 병사가 생포되고, 주인공 소년이 사는 집에 쇠사슬로 묶인 채 제목 그대로 '사육'을 당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 비하면 최근 아쿠다가와상 수상작이라는 "괴테" 어쩌구는 솔직히 애들 장난 같은 느낌이다.


<새싹 뽑기>도 전쟁 중에 외딴 산간 마을로 피난한 소년원 아이들이 뜻하지 않은 고립 생활을 하면서 불신과 적의, 음모와 죽음으로 점철된 어른들의 어두운 세계를 엿보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아이들만의 나라'라는 이상과 현실의 충돌과 파국이라는 점에서는 <십오 소년 표류기>에서부터 <파리 대왕>을 비롯한 갖가지 유사한 소재의 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극우 사상에 경도되어 좌파 정치인을 살해한 열일곱 살짜리 소년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세븐틴" 역시 인상적이었고, 어찌 보면 민주화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 중에 극우 동조자가 늘어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주목할 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 작품과 이후 더 큰 논란을 빚은 속편 때문에 한동안 극우 지지자의 표적이 되었다 한다.


급기야 극우 지지자가 오에 겐자부로의 자폐증 아들을 납치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는데, 재발을 우려해 차마 공개하지도 못했던 이 사건의 충격이 컸던지, 이후의 '백치 아들 서사'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여러 번 반복되었던 모양이다. 약력상 1961년 아들 히카리의 출생 시점부터 대략 작가 경력의 중기가 시작되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대표 장편소설이 이즈음 발표된다.


이때부터 반복된 사소설과 현학성이 저자 나름대로는 불행한 가정사를 숙고하고 반추하며 일종의 해답을 찾으려는 몸부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기의 거칠고 예리한, 심지어 폭력과 엽기가 돋보인 소재와 내용에 비하면 아무래도 필봉이 무뎌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사상이나 인간으로서는 더 성숙해졌을지 몰라도 이야기꾼으로서는 영 아쉬워졌다고나 할까.


고려원 전집이 중단된 이래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은 한동안 에세이 위주로만 간행되는 듯하더니, 여러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간행하면서 이제 다시 대표 장편이 재간행되고 있다. 고려원에서 나왔던 것은 물론이고 근간 예고만 되고 못 나온 것도 간행되었으니, 잘만 하면 전작 번역도 가능하겠지만, 일부는 또 그 사이에 다시 절판된 모양이니 쉽지는 않겠다.


아울러 작품 수도 많은 데다, 일본은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인지도에 비해 대중성은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작가이니, 어찌저찌 대표작이 간행되더라도 초기작보다는 중후기의 작품 위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우후죽순으로 나왔던 번역서도 대부분 중후기에 편중되었고 초기 작품은 비교적 드물었던 것도 그래서였나.


이런 현실을 감안하고 보자면, 초기 대표작을 여럿 수록한 저자의 자선(自選) 중단편집의 번역서인 현대문학의 <오에 겐자부로>는 이 저자의 초기 활동을 알 수 있는 상당히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이 작가의 역량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 왔던 나귀님으로서는 특히나 속이 다 시원한 느낌이다. 물론 중후기 장편은 아직 그리 끌리지 않는다만서도...



[*]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해설서가 없는 상황에서는 앞서 언급한 린즐리 캐머런의 책이 '백치 아들 서사'가 지배적인 중후기 작품 세계를 엿보는 창문 역할을 어느 정도 해주지 않나 싶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마저도 절판인 듯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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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치킨집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삼성의 이재용, 현대자동차의 정의선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공개되어 화제였다. 이후로 셋이 앉았던 자리에 나도 한 번 앉아보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서, 해당 좌석의 이용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했다고도 전한다. 세 사람이 사용한 식탁에 각 기업 로고와 이름 명패도 붙였으니, 이쯤 되면 현대판 성유물인 셈이다.


여기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저 세 사람이 반도체와 자동차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주도적인 기업들의 대표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현대 기술의 상징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좋은 기운'을 받겠다는 미신적인 이유로 그 좌석을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니, 새삼스레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달까.


다만 셋 중 두 명은 자기 능력보다 혈통 덕분에 그 자리에 갔음을 감안한다면,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저 '기운'의 실체도 대략 짐작된다. 개인 역량과는 무관하게 순수한 우연을 통해 부잣집에 태어나 3대째 재벌로 행세하는 사람들이니, 그 행운이 전염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주 잘못까진 아닌 듯하고, 미신적 추구의 대상인 현대의 성유물이 충분히 될 만해 보인다. 


성유물이란 불교의 사리처럼 명성이 높은 종교인의 사후에 남은 유해나 유품을 가리킨다. 서양에서는 가톨릭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모양인데, 특히 중세에는 '짝퉁' 성유물이 하도 많아서 예수의 '진품' 십자가만 수십 개에 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종교개혁가 칼뱅의 "성해론(성물론)"은 이런 부조리에 대해 합리적인 차원에서의 반박을 시도한 글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던 수도사가 사망하자 모두들 그 시신이 썩지 않고 향기를 풍길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정작 반나절도 되지 않아 시신이 썩으며 물이 줄줄 흐르자 '그렇다면 저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 위선자였던 건가?' 하고 다들 '현타'를 느끼는 장면이 나오는데, 역시나 성유물에 대한 미신적 집착을 꼬집는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법력이 높으면 사리가 많다'는 믿음이 팽배해서 성철 같은 저명한 고승이 사망하면 그 사리 수습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불교계에서도 이를 미신이라 간주해서인지 법정의 사례에서처럼 지금은 사리 수습 없이 다비식을 마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리가 많이 나왔다'는 소문은 암암리에 퍼지는 듯하지만).


칼뱅이 비판했던 예수의 각종 '진품' 성유물과 비슷하게, 불교에서도 부처의 시신 일부인 '진신사리'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진신사리를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사찰이 여러 군데인데, 이 경우에는 진짜 부처를 모신 까닭에 불상을 놓아두지는 않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 마침 바깥양반도 얼마 전 여행 중에 그런 절에 다녀왔다기에 의외로 많구나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최근 화제가 된 저 치킨집의 성유물은 과연 진짜일까. 만약 앞서 다녀간 세 사람의 능력과 행운 덕분에 누구나 그 자리에 앉기만 해도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치면, 당장 치킨집 주인부터 그 식탁과 의자를 가져다가 자기 집에 놓고 혼자만 이용하지 않을까. 아니, 당장 치킨집 본사에서 가져다가 사장실에 놓아두고 정말 뽕을 뽑으려 하지 않을까.


혹시 나중에 그 치킨집이 문을 닫기라도 하면, 그 식탁과 의자의 행방은 어떻게 될까? 미국 기록보관소에서 가져다 보관한다는 태프트의 대형 욕조처럼 이것도 21세기 한국과 세계 경제의 결정적 장면의 소품으로 인정되어 삼성전자 박물관이나 현대자동차 기록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될까? 아니면 그냥 폐기물로 분류되어 쓰레기장 신세로 전락할까?


문득 언젠가 어느 KFC 지점에서 커널 샌더스 입상을 내다버린 모습을 본 것이 기억난다. 지점 앞 길가에 세워 놓고 등짝에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놓은 것을 본 바깥양반이 노인 공경을 하지 않는다며 분기탱천했는데, 여기저기 낡고 도색이 벗겨진 모습을 보니 제아무리 친근하고 상징적인 물건이라도 용도가 다하면 결국 플라스틱 쓰레기에 불과함을 느꼈다.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 이야기가 나오니, 문득 세월호 사고 직후 체육관에 모인 실종자 가족들의 일화도 떠오른다. 나중에는 시신이라도 빨리 찾으려는 마음에, 옆사람이 시신을 수습해 나가면 얼른 그 자리로 옮겨 앉으며 행운을 바랐다는 일화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것 역시 존 디디온의 말처럼 '마술적 사고'의 한 가지 눈물겨운 사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이 '무안공항 참사'인지 '제주공항 사고'인지의 1주기였다. 마침 지난 주에 김건희 특검의 결과 발표도 있어서 시간 참 빠르다 싶었는데, 특검 시작보다 더 먼저인 이 비행기 사고만큼은 어째서인지 수사도 처벌도 영 지지부진해 보이니 희한한 노릇이다. 유족의 애끓는 심정으로야 저 치킨집에 있다는 '행운의 자리'라도 빌려오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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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다 지난번에 구입한 시어도어 그레이의 <세상의 모든 원소 118>를 다시 꺼내 뒤적여 보니 의외로 오역이 많아서 놀랐다. 제목 그대로 원소 118종의 실물과 가공품을 다양한 사진으로 소개한 화보집이어서 구매 직후 그림만 대강 살펴보고 집어넣었는데, 이번에야 해설과 캡션을 꼼꼼히 읽어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 속출하기에 이상하다 싶었다.


아직 완독한 것까진 아니지만 '마이트너륨은 리제 마이트너가 발견했다' 같은 확실하고도 멍청한 오역 몇 가지만 눈에 띄는 대로 원문을 찾아서 대조해 보았더니 문제가 꽤 심각했다. 툭하면 앞뒤가 안 맞는 문장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정말 생각 없이 옮긴 모양인데, 공짜 알바할 생각은 없으니 알라딘 미리보기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것 두 개만 지적해 보자.


"수소" 장에서 이 원소를 채운 비행선 힌덴부르크호 폭발 사고를 설명한 다음, "그후 연료는 덜 위험한 가솔린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15쪽)고 썼는데, 저 비행선에서 수소의 역할은 연료가 아니라 풍선을 채워 양력(揚力)을 제공한 것이므로 완전 잘못된 설명이다. 정확히 옮기면 "휘발유를 채운 차량보다는 수소를 채운 차량이 오히려 덜 위험하다"는 뜻이다.


비행선 관련 오역은 "헬륨" 장에도 있다. 수소를 헬륨으로 바꿀 경우 "가격이 비싸다는 점과 이 때문에 사용 빈도가 낮다는" 게 문제라며, "이 인기 없는 모델로 함께 드라이브하러 갈 사람?"(17쪽) 하고 뜬금없이 묻는데, 정확히 옮기면 "문제는 가격이 비싸다는 점과 양력(揚力)이 덜하다는 점이다. 높이 날지 못하는 비행선을 굳이 탈 사람이 있을까?"란 뜻이다.


결국 번역자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종종 소설을 써놓은 셈이다. 왜 수소 이야기를 하다 휘발유 이야기가 나오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나아가 수소와 대조적인 헬륨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라도 했다면 의외로 쉽게 정답을 알아내지 않았을까. 결국 숙고도 부족하고 정성도 부족한 채로 부실하게 번역된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2010년에 초판이 간행된 이래 2012년과 2023년에 '개정판'이 두 번이나 나왔다. 하지만 위에 지적했듯이 페이지마다 오역이 한두 개씩 나오는 상황이니, 도대체 뭘 개정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기껏해야 구판의 "2개"를 "두 개"로 바꾸고 "우리가 오늘날"을 "오늘날 우리가"로 수정한 정도이니, 결국 '개정판'은 가격 인상을 위한 핑계에 불과해 보인다.


번역자는 한 명이 아니라 '꿈꾸는 과학'이라는 단체이다. 과학자 정재승이 주도한 과학 애호가 모임이라는데, 결과만 보면 사실상 실력도 없는 아마추어들이 좋은 책 하나를 망쳐놓은 셈이 되었으니 괘씸한 일이다. 실력도 정성도 없는 번역자도 문제이지만, 과학 전공자도 아닌 나귀님조차도 쉽게 눈치챈 오류를 15년째 방치한 출판사도 괘씸하긴 마찬가지고...



[*] 시오도어 그레이의 약력을 보니 물리학자 스티븐 울프럼과 함께 울프럼 연구소의 공동 설립자였다는 내용도 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역사를 서술한 <아인슈타인 방의 사람들>을 보면 울프럼은 약관의 나이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천재 소년으로 묘사되는데, 이후 울프럼 연구소를 설립하고 과학 연구용 컴퓨터 프로그램 제작 쪽으로 진출했다고 알고 있다. 무려 1200쪽에 육박하는 저서 <새로운 종류의 과학>이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확인해 보니 그것도 이제 사반세기 전의 일이고, 저자도 모두의 흥분과 기대만큼 혁신적인 돌파구는 아직 만들지 못한 채 60대 노인이 되었으니 사람 앞날은 모를 일이다. 그레이는 이후 울프럼 연구소를 떠나 과학 저술과 원소 수집으로 소일하는 모양이니 재미있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취미로 원소를 수집하는 사람이다' 정도인 셈인데, 자기가 수집한 물건을 책이나 기타 콘텐츠로 재가공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수집가의 바람이자 목표이자 이상이자 '환상의 마로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나저나 원소 책부터 번역이 이렇게 개판이니, 줄줄이 번역된 나머지 책을 펼쳐 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가격이나 싸면 한 번 속아보는 셈이라도 치겠지만, 하나같이 화보집이니, 이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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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바빠서 잘 들르지 못하던 알라딘에서 2025년 '서재의 달인'을 선정했다는 사실을 지난 주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귀님도 선정되긴 했는데, 문제는 지금껏 연락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메일이나 문자로도 통보받지 못했고, 툭하면 장바구니 담은 상품이나 적립금이 삭제될 예정이라며 호들갑인 알라딘 앱 알림으로도 역시나 통보받지 못했다.


혹시 이메일로 보냈는데 나귀님이 무심코 넘겼나 싶어 받은메일함을 확인해 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고, 휴지통이나 스팸메일함으로 자동 분류되었나 싶어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나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와중에 '이달의 마이페이퍼 당첨' 공지나 '개인정보 이용내역' 공지는 멀쩡하게 들어와 있으니, 아무래도 나귀님 쪽에서 뭘 잘못해서 못 받은 것은 아닌 듯하다.


이러다 보니 '서재의 달인'에게 주는 기념품도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이건 선정자가 알라딘의 안내에 따라서 '기념품 받을 주소'를 별도로 입력해야만 받을 수 있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12월 21일까지 신청해야 한다던데, 나귀님은 그 다음날인 22일에 가서야 정말 우연히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미 버스 떠난 정류장에 혼자 남은 셈이었다.


이왕 '서재의 달인'을 선정하려면 제대로 통보라도 하든가, 또 기념품을 주려면 평소 알라딘 상품을 배송받던 바로 그 주소로 그냥 보내든가 하지, 애초부터 통보도 제대로 안 하고 마감 기한까지 정해서 "해당일까지 정보가 입력되지 않은 경우, 당첨이 취소되어 발송 대상에서 제외되며 발송이 불가능합니다"라는 조건까지 걸어 놓은 것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예전에는 이런 번거로운 주소 입력 없이도 각종 기념품과 사은품이 잘만 배송되었다. 심지어 때로는 왜 주는지 알 수도 없는 선물이 날아오는 바람에 오히려 번거로웠을 정도인데, 초기의 '알라딘 굿즈' 가운데 하나인 텀블러가 그러했다. 너무 많이 만들어 처치곤란이었는지, 나중에는 책만 사면 무조건 넣어줘서 나귀님도 열댓 개쯤을 받았다.


물론 알라딘 굿즈가 대부분 그러하듯 실용성 따위는 완전 결여한 물건이어서, 바깥양반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남아 있는 몇 개를 실제로 써 보았더니, 플라스틱 뚜껑이 완전 밀봉되지는 않아서 내용물이 새어나오기 일쑤였고, 테두리도 쉽게 갈라져 오래 못 쓰고 금세 버리고 말았다. 벽장을 살펴보니 아직 세 개나 남아있는데, 이건 또 어떻게 치우나 싶다.


이보다 더 꼴불견인 사은품도 있다. 역시나 초창기 알라딘 굿즈인데, 엉성하기 짝이 없는 투명 플라스틱 물병에다가 알파벳으로 'BORGES'라고 적어 놓고 '보르헤스 물병'이라고 우긴 것이어서 기괴한 느낌마저 든다. 지금은 이보다 더 발전해서 책 표지나 각종 그림까지도 활용하는 듯하지만, '예쁜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본질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듯하다.


물론 알라딘 기념품 중에도 자체 제작 굿즈까진 아닌 물건은 쓸만한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노란색 배트맨 마크 머그컵이라든지, 블루투스 미니 키보드가 그러해서 상당히 유용하게 써먹었고 아직 잘 갖고 있다. 물론 양쪽 모두 왜 받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때에만 해도 알라딘에서는 별도의 신청 과정 없이도 기념품을 알아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번 '서재의 달인' 기념품도 결국에는 어찌어찌 오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해 보기도 했다. 말로는 신청하지 않으면 안 준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그래도 애초에 선정자 몫으로 배정된 수량이 있을 터이니, 신청이 없다는 이유로 창고에 도로 넣기 귀찮아서라도 결국 알라딘에서 연락을 해 오거나, 알아서 발송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하지만 다른 '서재의 달인' 선정자들은 기념품을 받았다는 인증 글을 줄줄이 올린 것으로 보아 배송도 끝난 듯하니, 결국 나귀님 몫은 영영 받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음 주에 갑자기 '퇴사자가 착오로 알라딘 에코백에 넣어 청계천에 갖다 버린 나귀님 사은품'이 발견되었다며 물에 젖은 다이어리와 캘린더가 뒤늦게 날아올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



[*] 그런데 과거 머그컵과 블루투스 키보드 같은 유용한 기념품까지 받아 본 나귀님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기념품인 다이어리와 캘린더는 솔직히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다. 평소 그런 물건을 쓰지 않는 나귀님이나 바깥양반에겐 누가 선물로 줘도 솔직히 처치곤란 상황이니, 차라리 이번에 기념품을 신청하지 못해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일지 모르겠다. 심지어 알라딘에서는 '서재의 달인'과 '북플의 달인' 동시 선정자에게도 달랑 한 가지 기념품만 보내는 인색한 태도를 드러냈고, 축하 카드를 동봉하지 않고 별도 배송하는 바람에 선물 상자는 두 개인데 막상 열어보니 하나는 공갈이라서 사람 황당하고 기분 나쁘게 만드는 멍청한 실수까지 저질렀다고 전한다. 이쯤 되면 나귀님처럼 애초부터 '서재의 달인' 선정 사실을 통보받지 못한 것이야 애교 수준이라고 해야 할 법하니, 이래저래 인심을 쓰려다 뒷말만 무성해진 2025년 '서재의 달인' 선정 행사인 듯하다. 물론 나귀님이 보기에는 이렇게 찝찝하고 어설픈 사은품 배송 역시 알라딘 사측의 지속적인 '알라딘 서재' 홀대의 연장인 듯하니, 이제 와서 딱히 이상하거나 억울하다고 여길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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