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에 한 치킨집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삼성의 이재용, 현대자동차의 정의선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공개되어 화제였다. 이후로 셋이 앉았던 자리에 나도 한 번 앉아보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서, 해당 좌석의 이용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했다고도 전한다. 세 사람이 사용한 식탁에 각 기업 로고와 이름 명패도 붙였으니, 이쯤 되면 현대판 성유물인 셈이다.
여기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저 세 사람이 반도체와 자동차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주도적인 기업들의 대표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현대 기술의 상징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좋은 기운'을 받겠다는 미신적인 이유로 그 좌석을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니, 새삼스레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달까.
다만 셋 중 두 명은 자기 능력보다 혈통 덕분에 그 자리에 갔음을 감안한다면,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저 '기운'의 실체도 대략 짐작된다. 개인 역량과는 무관하게 순수한 우연을 통해 부잣집에 태어나 3대째 재벌로 행세하는 사람들이니, 그 행운이 전염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주 잘못까진 아닌 듯하고, 미신적 추구의 대상인 현대의 성유물이 충분히 될 만해 보인다.
성유물이란 불교의 사리처럼 명성이 높은 종교인의 사후에 남은 유해나 유품을 가리킨다. 서양에서는 가톨릭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모양인데, 특히 중세에는 '짝퉁' 성유물이 하도 많아서 예수의 '진품' 십자가만 수십 개에 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종교개혁가 칼뱅의 "성해론(성물론)"은 이런 부조리에 대해 합리적인 차원에서의 반박을 시도한 글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던 수도사가 사망하자 모두들 그 시신이 썩지 않고 향기를 풍길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정작 반나절도 되지 않아 시신이 썩으며 물이 줄줄 흐르자 '그렇다면 저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 위선자였던 건가?' 하고 다들 '현타'를 느끼는 장면이 나오는데, 역시나 성유물에 대한 미신적 집착을 꼬집는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법력이 높으면 사리가 많다'는 믿음이 팽배해서 성철 같은 저명한 고승이 사망하면 그 사리 수습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바 있다. 불교계에서도 이를 미신이라 간주해서인지 법정의 사례에서처럼 지금은 사리 수습 없이 다비식을 마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리가 많이 나왔다'는 소문은 암암리에 퍼지는 듯하지만).
칼뱅이 비판했던 예수의 각종 '진품' 성유물과 비슷하게, 불교에서도 부처의 시신 일부인 '진신사리'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진신사리를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사찰이 여러 군데인데, 이 경우에는 진짜 부처를 모신 까닭에 불상을 놓아두지는 않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 마침 바깥양반도 얼마 전 여행 중에 그런 절에 다녀왔다기에 의외로 많구나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최근 화제가 된 저 치킨집의 성유물은 과연 진짜일까. 만약 앞서 다녀간 세 사람의 능력과 행운 덕분에 누구나 그 자리에 앉기만 해도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치면, 당장 치킨집 주인부터 그 식탁과 의자를 가져다가 자기 집에 놓고 혼자만 이용하지 않을까. 아니, 당장 치킨집 본사에서 가져다가 사장실에 놓아두고 정말 뽕을 뽑으려 하지 않을까.
혹시 나중에 그 치킨집이 문을 닫기라도 하면, 그 식탁과 의자의 행방은 어떻게 될까? 미국 기록보관소에서 가져다 보관한다는 태프트의 대형 욕조처럼 이것도 21세기 한국과 세계 경제의 결정적 장면의 소품으로 인정되어 삼성전자 박물관이나 현대자동차 기록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될까? 아니면 그냥 폐기물로 분류되어 쓰레기장 신세로 전락할까?
문득 언젠가 어느 KFC 지점에서 커널 샌더스 입상을 내다버린 모습을 본 것이 기억난다. 지점 앞 길가에 세워 놓고 등짝에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붙여 놓은 것을 본 바깥양반이 노인 공경을 하지 않는다며 분기탱천했는데, 여기저기 낡고 도색이 벗겨진 모습을 보니 제아무리 친근하고 상징적인 물건이라도 용도가 다하면 결국 플라스틱 쓰레기에 불과함을 느꼈다.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 이야기가 나오니, 문득 세월호 사고 직후 체육관에 모인 실종자 가족들의 일화도 떠오른다. 나중에는 시신이라도 빨리 찾으려는 마음에, 옆사람이 시신을 수습해 나가면 얼른 그 자리로 옮겨 앉으며 행운을 바랐다는 일화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것 역시 존 디디온의 말처럼 '마술적 사고'의 한 가지 눈물겨운 사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이 '무안공항 참사'인지 '제주공항 사고'인지의 1주기였다. 마침 지난 주에 김건희 특검의 결과 발표도 있어서 시간 참 빠르다 싶었는데, 특검 시작보다 더 먼저인 이 비행기 사고만큼은 어째서인지 수사도 처벌도 영 지지부진해 보이니 희한한 노릇이다. 유족의 애끓는 심정으로야 저 치킨집에 있다는 '행운의 자리'라도 빌려오고 싶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