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 황의 허드슨 강변 중국사 에세이를 계속 읽다 보니, 풍도라는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 대목이 있었다. "전통적인 역사가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안다. 그리고 천지의 많은 일들을 모두 동일한 도덕 기준으로 측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편협한 역사관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예외의 일도 있으니, 풍도와 같은 사람이 이에 해당된다 하겠다"(325쪽)
그제야 <풍도의 길>이라는 책을 예전에 사다 놓은 것이 기억나서 책장에서 꺼내 놓았는데, 차일피일 하다가 이번 주말에 다시 생각나서 결국 완독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레이 황의 평가를 통해 그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 까닭이고, 또 한편으로는 대통령과 총리가 줄줄이 탄핵된 상황에서 대행의 대행을 맡아 사상 최악의 여객기 사고 등 각종 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어느 불운한 관료가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풍도의 길>은 제목 그대로 중국 오대의 관료 풍도(882-954)의 전기인데, 구입 당시에는 그 소재보다 저자며 작품 자체의 이력이 더욱 흥미로웠다. 저자 도나미 마모루는 교토 대학에서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제자였으며, 대학원 졸업 직후인 30세 때에 "중국인물총서"라는 전집에 들어갈 풍도의 전기를 저술했다. 이후 그 내용을 보완해 문고본으로 재간행한 것이 <풍도의 길>의 번역 대본인 <풍도: 난세의 재상>이라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진순신 등이 공저한 <영웅의 역사>(전10권)가 번역되었는데, 과거 일본에서는 이런 식의 중국사 인물 전기 시리즈가 유행한 모양이다. <풍도의 길> 초판이 포함된 "중국인물총서"도 그중 하나로서 1966-1967년에 전24권으로 간행되었고, 유방과 항우부터 강희제와 모택동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을 망라했다. 그중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수양제>와 카노 나오사다의 <제갈공명>은 우리나라에도 나왔다.
풍도는 중국의 당송 왕조 전환기에 해당하는 오대십국 시대(907-979)에 살았던 사람으로, 이른바 '오대'에 해당하는 "다섯 왕조, 여덟 성씨, 열한 군주"[五朝八姓十一帝]를 연이어 섬긴 유별난 이력으로 유명한 관료이다. 70대까지 장수하면서 무려 50년간이나 고위 관직을 역임했고, 그중 20년간은 오늘날의 총리 격인 재상으로 재직했으니, 이처럼 남다른 이력만 놓고 보아도 상당히 특이한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대의 여러 왕조는 변방의 유목 민족 출신으로 무력을 중시한 까닭에 군신간에는 물론이고 가족간에도 유혈 사태가 그치지 않았을 만큼 난폭했었으니, 한인 풍도의 장기 재직은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급기야 후세의 역사가 중에서도 의리를 중시한 쪽에서는 아첨꾼이자 기회주의자라 혹평하고, 실리를 중시한 쪽에서는 성실하고 유능한 인재라 호평하는 등, 풍도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역시 극과 극을 달렸다.
물론 풍도가 실력 없이 아첨에만 능한 사람이었다면 그처럼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아무와도 다투지 않고, 뇌물을 일체 거절했으며, 겸손한 언행을 유지하고, 군사 정책에 관여하지 않고,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기에 힘썼다. 이단적 사상가로 유명한 이탁오는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는 맹자의 말을 빌려 풍도의 소신을 요약했는데, 전쟁이 지속되는 세상에서는 참으로 귀한 태도였다.
오대 다섯 왕조를 거치며 권좌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도 풍도는 사회 안정을 위해 가급적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하려 노력했다. 그중에는 출판과 관련된 사업도 있었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내용이 들쑥날쑥해서 통일되지 않은 구경(九經)의 교정본을 인쇄 간행한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무려 21년에 걸쳐 진행된 이 사업을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이룩한 업적에 버금간다고 바라보기도 하는 모양이다.
물론 풍도라고 해서 항상 옳기만 했던 것까지는 아니었다. 성격상 매사에 온건한 해결을 도모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무리하지 않으려다 보니 항상 남의 눈치를 볼 수 없었고, 때로는 군주나 군대의 불의와 난폭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군주를 섬긴 것 역시 보기에 따라서는 보신과 배신을 거듭했다는 비판이 충분히 가능했을 터이니, 지조를 중시했던 선비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는 것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풍도의 유명한 일화를 살펴보면 역시나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승전 기념으로 약탈을 허락한 거란의 군주에게 '부처도 할 수 없는 일을 전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간언하여 무고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막았던 일이다. 일신의 안락만을 도모했다는 한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와서는 풍도의 실리주의 노선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법하다.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의 중국 관료는 그렇다 치고, 이쯤 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또 다른 관료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무려 '대통령 대행 겸 국무총리 대행 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어마어마한 직함을 가진 인물인데,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갑작스레 급변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떠밀려서 마지못해 국가의 수장 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가시방석이 아니겠는가.
일각에서는 박근혜와 윤석열 정부 모두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갑작스레 탄핵 역풍을 두 번이나 맞았으니 지독히 관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나오는 모양인데, 설상가상으로 대행의 대행이 되자마자 초대형 사고까지 터졌으니 그런 하마평조차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판이다. 이제 좋건 싫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으니, 이런 그가 과연 통치자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한 풍도의 소신을 따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글을 마무리하고 나서 검색해 보니, 풍도가 처세술에 대해서 적은 글인 "영고감"을 번역 해설한 <소인경>이라는 책이 나오는데, 원문과 번역보다 해설이 너덧 배는 더 많은 것으로 미루어 '풍도'보다는 '처세'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부 내용은 살짝 의아하기도 하다. 서문에서는 풍도의 호 "장락로"(長樂老)를 "오래도록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노인"(7쪽)이라고 해석했던데, 도나미 마모루의 설명에 따르면 풍도의 가문이 시평(始平)과 장락(長樂)이라는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장락 출신의 노인"이라는 뜻일 뿐이라기 때문이다. <풍도의 길>은 아쉽게도 현재 절판인데 나중에라도 개정판이 나오면 좋겠다. 오대십국 시기에 대한 단행본 자체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이한 참고 자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아울러 초판에서 빈번했던 초보적인 수준의 오타는 제발 좀 고쳐졌으면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