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황의 허드슨 강변 중국사 에세이를 계속 읽다 보니, 풍도라는 인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 대목이 있었다. "전통적인 역사가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안다. 그리고 천지의 많은 일들을 모두 동일한 도덕 기준으로 측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편협한 역사관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예외의 일도 있으니, 풍도와 같은 사람이 이에 해당된다 하겠다"(325쪽)


그제야 <풍도의 길>이라는 책을 예전에 사다 놓은 것이 기억나서 책장에서 꺼내 놓았는데, 차일피일 하다가 이번 주말에 다시 생각나서 결국 완독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레이 황의 평가를 통해 그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 까닭이고, 또 한편으로는 대통령과 총리가 줄줄이 탄핵된 상황에서 대행의 대행을 맡아 사상 최악의 여객기 사고 등 각종 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어느 불운한 관료가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풍도의 길>은 제목 그대로 중국 오대의 관료 풍도(882-954)의 전기인데, 구입 당시에는 그 소재보다 저자며 작품 자체의 이력이 더욱 흥미로웠다. 저자 도나미 마모루는 교토 대학에서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제자였으며, 대학원 졸업 직후인 30세 때에 "중국인물총서"라는 전집에 들어갈 풍도의 전기를 저술했다. 이후 그 내용을 보완해 문고본으로 재간행한 것이 <풍도의 길>의 번역 대본인 <풍도: 난세의 재상>이라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진순신 등이 공저한 <영웅의 역사>(전10권)가 번역되었는데, 과거 일본에서는 이런 식의 중국사 인물 전기 시리즈가 유행한 모양이다. <풍도의 길> 초판이 포함된 "중국인물총서"도 그중 하나로서 1966-1967년에 전24권으로 간행되었고, 유방과 항우부터 강희제와 모택동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을 망라했다. 그중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수양제>와 카노 나오사다의 <제갈공명>은 우리나라에도 나왔다.


풍도는 중국의 당송 왕조 전환기에 해당하는 오대십국 시대(907-979)에 살았던 사람으로, 이른바 '오대'에 해당하는 "다섯 왕조, 여덟 성씨, 열한 군주"[五朝八姓十一帝]를 연이어 섬긴 유별난 이력으로 유명한 관료이다. 70대까지 장수하면서 무려 50년간이나 고위 관직을 역임했고, 그중 20년간은 오늘날의 총리 격인 재상으로 재직했으니, 이처럼 남다른 이력만 놓고 보아도 상당히 특이한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대의 여러 왕조는 변방의 유목 민족 출신으로 무력을 중시한 까닭에 군신간에는 물론이고 가족간에도 유혈 사태가 그치지 않았을 만큼 난폭했었으니, 한인 풍도의 장기 재직은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급기야 후세의 역사가 중에서도 의리를 중시한 쪽에서는 아첨꾼이자 기회주의자라 혹평하고, 실리를 중시한 쪽에서는 성실하고 유능한 인재라 호평하는 등, 풍도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 역시 극과 극을 달렸다.


물론 풍도가 실력 없이 아첨에만 능한 사람이었다면 그처럼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아무와도 다투지 않고, 뇌물을 일체 거절했으며, 겸손한 언행을 유지하고, 군사 정책에 관여하지 않고,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기에 힘썼다. 이단적 사상가로 유명한 이탁오는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는 맹자의 말을 빌려 풍도의 소신을 요약했는데, 전쟁이 지속되는 세상에서는 참으로 귀한 태도였다.


오대 다섯 왕조를 거치며 권좌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도 풍도는 사회 안정을 위해 가급적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하려 노력했다. 그중에는 출판과 관련된 사업도 있었으니, 그때까지만 해도 내용이 들쑥날쑥해서 통일되지 않은 구경(九經)의 교정본을 인쇄 간행한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무려 21년에 걸쳐 진행된 이 사업을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이룩한 업적에 버금간다고 바라보기도 하는 모양이다.


물론 풍도라고 해서 항상 옳기만 했던 것까지는 아니었다. 성격상 매사에 온건한 해결을 도모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무리하지 않으려다 보니 항상 남의 눈치를 볼 수 없었고, 때로는 군주나 군대의 불의와 난폭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군주를 섬긴 것 역시 보기에 따라서는 보신과 배신을 거듭했다는 비판이 충분히 가능했을 터이니, 지조를 중시했던 선비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는 것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풍도의 유명한 일화를 살펴보면 역시나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승전 기념으로 약탈을 허락한 거란의 군주에게 '부처도 할 수 없는 일을 전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간언하여 무고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막았던 일이다. 일신의 안락만을 도모했다는 한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와서는 풍도의 실리주의 노선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법하다.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의 중국 관료는 그렇다 치고, 이쯤 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또 다른 관료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무려 '대통령 대행 겸 국무총리 대행 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어마어마한 직함을 가진 인물인데,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갑작스레 급변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떠밀려서 마지못해 국가의 수장 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가시방석이 아니겠는가.


일각에서는 박근혜와 윤석열 정부 모두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갑작스레 탄핵 역풍을 두 번이나 맞았으니 지독히 관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나오는 모양인데, 설상가상으로 대행의 대행이 되자마자 초대형 사고까지 터졌으니 그런 하마평조차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판이다. 이제 좋건 싫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으니, 이런 그가 과연 통치자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한 풍도의 소신을 따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 글을 마무리하고 나서 검색해 보니, 풍도가 처세술에 대해서 적은 글인 "영고감"을 번역 해설한 <소인경>이라는 책이 나오는데, 원문과 번역보다 해설이 너덧 배는 더 많은 것으로 미루어 '풍도'보다는 '처세'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부 내용은 살짝 의아하기도 하다. 서문에서는 풍도의 호 "장락로"(長樂老)를 "오래도록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노인"(7쪽)이라고 해석했던데, 도나미 마모루의 설명에 따르면 풍도의 가문이 시평(始平)과 장락(長樂)이라는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장락 출신의 노인"이라는 뜻일 뿐이라기 때문이다. <풍도의 길>은 아쉽게도 현재 절판인데 나중에라도 개정판이 나오면 좋겠다. 오대십국 시기에 대한 단행본 자체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이한 참고 자료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아울러 초판에서 빈번했던 초보적인 수준의 오타는 제발 좀 고쳐졌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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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예배에 가서 새벽에 들어온다는 바깥양반을 기다리며 새해 벽두에 카프카의 초단편 "법의 문 앞에서"를 읽어보았다. 여당이며 야당이며 저마다 법을 내세우며 대치 중인 시국이라, 일반인은 물론이고 전문가마저 과연 어떤 법이 어떤 법을 누를 수 있는지조차 설왕설래하는 상황이니, 도대체 법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은 까닭이다.


물론 카프카의 작품답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한 남자가 법의 문 앞에 다가섰는데, 문지기에게 입장을 요구하지만 들어주지 않는다. 힘으로 통과하더라도 그 안에는 더 많은 문지기가 있다는 말에 남자는 포기하고, 이후 오랜 시간 법의 문 앞에 앉아서 문지기를 설득하며, 언젠가는 그곳을 통과하고 말겠다는 희망인지 착각인지에 빠져 오랜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가 결국 노쇠하여 숨을 거두기 직전에야 그는 '왜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이 법의 문을 통과하러 오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고, 마치 그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던 듯한 문지기로부터 '왜냐하면 이 법의 문은 오로지 당신만이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곧 죽을 예정이므로 나는 이제 이 문을 닫아 걸겠다'는 답변을 얻는다.


젊어서 읽었을 때에는 카프카 특유의 역설과 부조리가 담긴 작품 중 하나로 간과하고 넘어갔는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일단 법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만 놓고 보아도 이래저래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이 본래 미완성작 <소송>에 등장하는 작중작이었다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제목에서 가리키는 사법 절차가 줄곧 헛바퀴만 돌기 때문이다.


관련 자료를 구글링해 보니,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서는 힘 없는 개인에게 불친절한 법의 부조리를 비판했다는 해석이 대부분인 모양이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원칙적으로야 주인공의 입장을 허가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주인공의 입장을 불허하는 저 불가해한 문의 성격마냥 법 자체가 모순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며칠 전에 생중계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 시도를 지켜보니, 마치 카프카의 작품 속 내용과도 유사한 모순과 부조리가 현실에서 펼쳐진 셈은 아닌가 싶어 한심할 수밖에 없었다. 법을 위반한 사람을 법에 의거해 체포하려는 법의 집행자들이 또 다른 법에 의거해 법을 위반한 사람을 지키려는 또 다른 법의 집행자들에게 가로막힌 셈이었으니까.


법의 보호 대상인 대통령을 법의 명령에 따라 체포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아니, 애초부터 법을 수호하기로 약속한 대통령이 법을 어긴 것 자체는 정당한가? 흥미로운 사실은 마치 법의 정의와 한계에 대한 논란처럼 보이는 이런 모순과 대치가 실제로는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의지에서 유래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의지가 법을 왜곡해 모순을 만든 것이다.


현직 대통령은 검사 출신의 법잘알이고, 그를 체포하려는 사법 기관은 물론이고 그를 반대하고 두둔하는 입법 기관의 여야 정치인들조차도 모두 법잘알이다. 저마다 법에 대한 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의견조차도 맞서고 엇갈려서 대치를 이어 나가고 있으니, 카프카의 소설에 나온 남자와 유사한 수많은 법알못의 처지야 굳이 말할 필요조차도 없을 법하다.


비상 계엄 이후 현재까지 법과 법의 대치 상황은 법에 대한 준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의 약점을 보여주는 중대한 사례 가운데 하나로 우리 역사에 기록될 법하다. 물론 이런 대치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다. 가깝게는 트럼프의 지난 임기에 벌어진 미국 의회 공격 사태가 있었고, 멀게는 민주주의의 온상인 고대 그리스에서도 비일비재했으니까.


일각에서는 문자 그대로 민중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상적으로 간주하는 고대 그리스에서조차도 일각의 지적처럼 민주주의는 변덕스럽고 예측불허라 불안정한 체제였다. 애초에 민주주의 자체에 큰 기대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그래서인데, 최근 한 달 간의 한국 정치 상황은 그런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이니 더욱 민망하기 그지없다.


현직 대통령의 관저 앞에서 벌어진 법과 법의 대치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같이 법잘알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들어가려는 사람과 막아서는 사람, 또는 끌어내려는 사람과 나오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나뉘어 벌이는 대결이야말로 카프카가 묘사한 저 법의 문 앞에 섰던 두 사람의 대치 상황 못지않게 기묘하다는 점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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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지쥰의 <조선의 점복과 예언>을 보면, 범죄 발생 시에 그 범인을 색출하는 데 사용하는 점술의 하나인 '고양이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사건과는 무관한 고양이를 데려다 놓고 고문해서 죽이거나, 또는 죽기 직전까지 내몰면, 빡친 고양이가 범인을 찾아가서 복수를 한다는 거다.


고양이를 일반적인 가축과는 차원이 다른 영물로 간주한 옛날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한편, 책에 나온 사례 중에서는 피해자가 고양이점을 계획한다는 사실에 지레 겁을 먹은 가해자가 고양이를 치우려다가 거꾸로 덜미를 잡혀 범죄를 실토했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전한다.


그렇잖아도 지난주부터 알라딘 북펀드에서 개/고양이 대학살 운운 하며 호들갑을 떠는 책을 광고하기에, 내친 김에 로버트 단턴까지 한데 엮어서 뭐라도 한 번 써볼까 생각했는데, 갑작스레 벌어진 역대급 항공기 사고로 심란해진 마음을 가까스로 수습해 보니 어느새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단지 무라야마의 책에 나온 내용뿐만 아니라, 지난 한 달 동안 한국 사회를 뒤집어놓은 대소동의 원인이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며 아마추어 점집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까지도 돌이켜 보면, 올해는 정말이지 문자 그대로의 '주술적 사고'로 마무리되는 셈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주술적 사고'(magical thinking)라고 하면 자연스레 존 디디온의 <상실>이라는 책이 떠오르는데, 이 책의 원제가 "주술적 사고의 해"(The Year of Magical Thinking)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처음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제목을 보고 자기계발 에세이겠거니 오해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의 magical을 일반적 의미의 "마법"이나 "마술"처럼 비교적 좋은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인데, magical thinking은 오히려 "주술적 사고"나"미신적 사고"로 해석해야 한다. 앞서 말한 '고양이점'처럼 문자 그대로 인과성이 없는데도 엉뚱한 데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 이런 사고방식이다.


존 디디온의 책에서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망 직후, 그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으로도 묘사된다. 예를 들어 죽은 남편의 옷을 왜 버리지 않느냐는 지인의 물음에 저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혹시 살아서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하고 우물거린다.


하느님은 믿지 않아도 지질학은 믿는다고 말할 정도로 평소에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했던 저자이니, 이런 스스로의 어리석은 행동에 적잖이 놀랐을 법하다. 따라서 "주술적 사고의 해"라는 원제는 저자가 겪은 슬픔뿐만 아니라 당혹과 자조까지 담은 절묘한 제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떤 면에서 주술적 사고는 거대하고 냉혹한 현실의 앞도적인 파도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일 수도 있다. 계란으로 내리친들 바위가 꼼짝달싹이나 하겠느냐만, 최소한 그런 넋두리라도 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체념하고 있는 그대로 현실을 인정할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닐까. 


보기에 따라서는 어리석다 할 수도 있지만, 차마 감당 못할 슬픔 앞에서 무너지는 것 역시 인간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개/고양이 대학살처럼 사안을 침소봉대하는 습관이야 고약하지만, 종종 남용되는 바로 그 공감 능력이 있었기에 인간은 개/고양이보다 우월할 수 있었으니까.


여하간 국가 수뇌부의 '주술적 사고'뿐만 아니라, 한 해의 끝자락에 일어난 초대형 사고로 인한 유가족의 '주술적 사고'도 적지 않을 듯하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지난 세월호 사건 때에도 현실을 부정하고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리며 자책을 거듭하는 유가족의 모습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한 해 내내 부음이며 다툼이며 금전 등 각종 사건사고를 경험하다 보니, 최근 있었던 여러 사회적 논란까지 더해서 제발 올 한 해만큼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적어놓고 보니 이런 푸념과 바람 역시 주술적 사고의 일종인 듯해 살짝 민망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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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즌 2가 공개된 모양이다. 이미 잘 끝난 이야기를 장삿속에 굳이 되살려 설정과 인물을 추가해서 여러 시즌 우려먹다가 뜬금없이 끝장내는 미드의 단점을 따라하는 모양새인데, 벌써부터 혹평이 주를 이룬다 하니 이 한국 드라마의 운명도 이미 결정된 듯하다.


나귀님이야 한 번도 제대로 시청한 적은 없는 드라마지만, 하도 주위에서 관련 내용을 나팔 불기에 반강제적으로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나마도 일본 만화나 영화를 대놓고 모방한 듯한 그 설정이나 줄거리에 구멍이 많다고 생각해서 영 별로였는데, 세계적 인기였다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이와 유사하게 평론과 흥행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지만 나귀님으로서는 영 떨떠름했던 작품으로는 영화 <파묘>도 있다. 이것도 일본 설화며 홍콩 영화를 대놓고 모방한 외양에 영 미심쩍었는데, 먼저 보고 왔다는 바깥양반이 일제 쇠말뚝 이야기의 변주라며 혹평하기에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심지어 흑막으로 '무라야마 쥰지'라는 일제 시대 주술사가 언급된다고 하기에 살짝 어이가 없었다. 물론 허구이니 상관없을 법도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했을 때 일본 오컬트 영화에서 바다의 악령 '이신순'이라든지, 악질 테러리스트 '안근중'의 악령이 나오면 우리도 기분 나쁘지 않겠나.


십중팔구 그 인물의 모델이 되었음직한 실존 인물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 1891-1968)은 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조선 민속을 연구한 일본의 학자다. 직접 조사보다 간접 조사에만 치중했다는 이유로 비판도 받지만, 풍수와 귀신과 점복 등에 대한 그 저서는 오늘날 한국학의 필수 자료이다.


연구 주제가 워낙 특이한 쪽이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마치 조선의 민족 정기를 끊기 위해 파견된 흑마술사 정도로 오해되는 모양이지만, 무라야마 지쥰은 도쿄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행정 서류와 통계 자료 같은 근대적인 방법을 동원해 조선의 민속을 연구했을 뿐이었다.


이른바 '일제의 민족 정기 훼손설'의 가장 큰 맹점은 이미 근대화를 이룬 일본의 눈에 풍수와 점복 같은 조선의 민속이 비과학적 미신에 불과했음을 간과한 것이다. 그 대표적 연구자인 무라야마 지쥰의 입장도 마찬가지여서, 일부 저서의 서문에서 미신을 비판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관해서는 전남대 일문과의 김희영 교수가 저술한 논문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의 조선인식: 조선총독부 조사 자료를 중심으로"(日本文化學報, 2009, no.43, pp. 323-342)에서 조선에 대한 무라야마 지쥰의 인식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으로 정리해 놓은 대목을 인용해 볼 만하다:


"첫째, 조선의 사상의 근저에는 귀신 신앙이 있고, 조선의 문화는 이 귀신 신앙의 영향 하에 있다. 둘째, 조선인의 민간 신앙은 원시적이며 그로 인한 폐해가 크다. 셋째, 조선인은 소극적 운명론자이며 혈연 중심 가족주의자이다." 애초에 그의 연구에서 민족 정기 따위는 관심도 없었던 셈이다.


물론 무라야마의 연구 자체가 식민지 경영을 돕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그 정당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만하다. 하지만 이 민속학자의 작업 배후에 어떤 오류가 있었다 한들, 그것은 미신을 맹종하는 전근대적 오류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에 맹종하는 근대적 오류에 불과했다.


영화 <파묘>는 근대인 민속학자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뒤집어 전근대인 음양사의 이름으로 차용함으로써 '알고 보니 진짜 귀신'이라는 클리셰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당시에 근대화를 이루면서 미신을 타파했던 일본의 현실을 외면한, 어찌 보면 '한국적으로 편협한' 해석일 뿐이다.


조선총독부에서 귀신과 풍수 같은 민간 신앙을 부정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던 것은 민족 정기의 훼손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간 심성의 파악을 위해서였을 뿐이다. 이런 근대적 연구조차 전근대적 주술이라 오해하는 풍조가 지금껏 계속되는 것이야말로 한국인 특유의 미신적 사고의 연장인 셈이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는 미신적 사고가 맹위를 떨치는 듯하다. 말이야 누가 미신을 믿느냐고 웃어넘기지만, 인터넷 시대에 맨 먼저 온라인화한 것 가운데 하나가 '행운의 편지'를 비롯한 각종 미신이었고, 유튜브 시대가 되자 온갖 무당이 난립하며 갖가지 요설을 늘어놓고 있다.


남녀의 사주풀이나 연말연초의 토정비결은 시들해졌지만, 젊은 세대는 타로에 열광하는 풍조가 지배적이라 한다. 한때 혈액형으로 알아보는 성격 유형에 열광했듯이 지금은 MBTI를 맹신하는 풍조이다. 그저 편의상의 분류에 불과한 것을 마치 절대적인 기준인 것처럼 남발하는 셈이다.


반면 한때 조선총독부에서 파악에 열을 올렸던 전통적인 미신으로부터는 점차 탈피하고 있는 점도 희한하다. 최근 뉴스를 보니 지난 수년간 주요 납골당의 무연고 유골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전국 봉안 시설의 90퍼센트가 포화 상태라서 무연고 유골부터 폐기 방법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가족의 유골조차도 남에게 맡겨놓고 찾아가지도 않는다니. 이쯤 되면 <파묘>에 묘사된 풍수에 대한 믿음은 이미 근대적으로 극복된 걸까. 하지만 단순히 경제 논리에 따른 얄팍한 행동일 뿐이니 애초부터 미신은 핑계임을, 또는 주머니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오락 이외에 미신을 진심으로 신봉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최근 비상 계엄 전후의 상황을 보니 그 위력과 해악이 여전히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정부 고위층이며 심지어 군 수뇌부까지도 무속 행위에 혈안이 되었다니 말이다.


애초에 그런 몰상식한 인간들은 출세하지 못하도록 주저앉혔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쩌다가 대통령부터 장성이며 기관장까지 하나같이 미신의 신봉자들이 요직을 차지한 걸까. 이쯤 되면 근대인 무라야마 지쥰 앞에서건, 가상의 음양사 무라야마 쥰지 앞에서건 우리도 할 말이 없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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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반세기 만에 돌아온 비상 계엄 사태를 경험하고 보니, 그간 세상이 변화 발전한다는 느낌도 말짱 환상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다. 이건 단순히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미국과 러시아는 신냉전에 접어들었고, 우크라이나며 중동 전쟁에서는 핵 위협까지도 종종 거론된다.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핵 공포가 사라지고 세계 평화가 실현되나 싶더니만, 21세기 내내 전쟁과 테러가 여전하여 지상에는 여전히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민주주의건 자본주의건 끝없는 발전의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이고, 한때 그 대안으로 여겨지던 다른 이념과 체계 역시 매한가지다.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고 여겼던 반세기조차 실상은 제자리걸음에 불과했으니 참으로 허망한 느낌마저 든다. 이런 상황에서 의외로 위안이 되었던 책은 지난번 현직 대통령의 실책 가운데 하나인 사과 가격 파동을 계기로 다시 읽은 역사 에세이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였다.


역사가 레이 황은 중국사의 여러 가지 특수한 사건들을 거론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역사가 장기적으로 합리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격언처럼, 아무리 이상하고 이해불가능하게 보인 사건조차도 결국에는 이치에 맞는다는 걸까.


어쩐지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나, 결국에는 하늘이 사람을 이긴다"는 말도 떠오른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에세이에서 각별히 인상적이었던 인용문인데,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의 시체를 파내서 매질한 오자서를 향해서 복수가 지나치다며 자제와 포용을 당부하던 신포서의 말이었다. 


물론 하늘의 법도나 섭리라는 것이야 애초부터 있지도 않은 허구의 개념에 불과할 것이고, 레이 황이 지적한 역사의 장기적 합리성 역시 무제한의 낙관주의를 깔고 있는 순진한 발전 사관까지는 아닐 것이다. 다만 수명의 장단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인식의 상대성을 지적한 것은 아닐까.


최근 뒤적인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에서는 물질 세계와 문명 건설을 처음부터 분리하여 논의하고 있었다. 왕조와 전쟁 중심의 정치사에 머무른 기존의 역사보다 더 넓은 시야를 도모하려는 것이었을까. 산과 바다처럼 유구함이 특징인 불변의 조건도 실제로 있으니 일리가 있어 보인다.


비록 불변까지는 아니어도 비교적 변화가 적거나 느린 자연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단지 그 위에서 복작대며 흥망을 거듭하는 인간사의 허망함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군웅과 제국의 정치와 군사 활동뿐만 아니라 인간의 문화며 문명이며 하는 것 역시 찰나의 가치밖에는 없는 게 아니려나. 


이쯤 되면 레이 황이 언급한 역사의 합리성도 설득력 있게 보일 수 있다. 그가 예시하는 중국 역사의 여러 사례만 보아도 수십 년의 정체와 퇴보는 가능할지 몰라도, 수백 년의 단위로 보자면 그런 문제점조차도 결국 극복되고 일신되어 문명이 더욱 견고해졌다는 것이 핵심 논지이니 말이다.


참새의 날개짓이 대붕의 날개짓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물론 길어야 칠팔십인 인간의 수명으로 보자면 수백수천 년의 장기 역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를 반복한다'는 인터넷 밈처럼, 순간의 착오로 수십 년간 이어질 차질을 빚는 것도 그래서일까.


그렇게 보면 지난 반세기의 제자리걸음도 수백 수천 년의 견지에서는 결국 역사의 합리성에 희석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될 날이 오려나? 물론 지금의 현실에서는 '교통 사고가 있어야 합리적 교통 정책도 생기는 법'이라는 역사가의 현명한 조언도 아주 큰 위로까지는 되지 못할 법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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