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즌 2가 공개된 모양이다. 이미 잘 끝난 이야기를 장삿속에 굳이 되살려 설정과 인물을 추가해서 여러 시즌 우려먹다가 뜬금없이 끝장내는 미드의 단점을 따라하는 모양새인데, 벌써부터 혹평이 주를 이룬다 하니 이 한국 드라마의 운명도 이미 결정된 듯하다.
나귀님이야 한 번도 제대로 시청한 적은 없는 드라마지만, 하도 주위에서 관련 내용을 나팔 불기에 반강제적으로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나마도 일본 만화나 영화를 대놓고 모방한 듯한 그 설정이나 줄거리에 구멍이 많다고 생각해서 영 별로였는데, 세계적 인기였다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이와 유사하게 평론과 흥행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지만 나귀님으로서는 영 떨떠름했던 작품으로는 영화 <파묘>도 있다. 이것도 일본 설화며 홍콩 영화를 대놓고 모방한 외양에 영 미심쩍었는데, 먼저 보고 왔다는 바깥양반이 일제 쇠말뚝 이야기의 변주라며 혹평하기에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심지어 흑막으로 '무라야마 쥰지'라는 일제 시대 주술사가 언급된다고 하기에 살짝 어이가 없었다. 물론 허구이니 상관없을 법도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했을 때 일본 오컬트 영화에서 바다의 악령 '이신순'이라든지, 악질 테러리스트 '안근중'의 악령이 나오면 우리도 기분 나쁘지 않겠나.
십중팔구 그 인물의 모델이 되었음직한 실존 인물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 1891-1968)은 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조선 민속을 연구한 일본의 학자다. 직접 조사보다 간접 조사에만 치중했다는 이유로 비판도 받지만, 풍수와 귀신과 점복 등에 대한 그 저서는 오늘날 한국학의 필수 자료이다.
연구 주제가 워낙 특이한 쪽이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마치 조선의 민족 정기를 끊기 위해 파견된 흑마술사 정도로 오해되는 모양이지만, 무라야마 지쥰은 도쿄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행정 서류와 통계 자료 같은 근대적인 방법을 동원해 조선의 민속을 연구했을 뿐이었다.
이른바 '일제의 민족 정기 훼손설'의 가장 큰 맹점은 이미 근대화를 이룬 일본의 눈에 풍수와 점복 같은 조선의 민속이 비과학적 미신에 불과했음을 간과한 것이다. 그 대표적 연구자인 무라야마 지쥰의 입장도 마찬가지여서, 일부 저서의 서문에서 미신을 비판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관해서는 전남대 일문과의 김희영 교수가 저술한 논문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의 조선인식: 조선총독부 조사 자료를 중심으로"(日本文化學報, 2009, no.43, pp. 323-342)에서 조선에 대한 무라야마 지쥰의 인식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으로 정리해 놓은 대목을 인용해 볼 만하다:
"첫째, 조선의 사상의 근저에는 귀신 신앙이 있고, 조선의 문화는 이 귀신 신앙의 영향 하에 있다. 둘째, 조선인의 민간 신앙은 원시적이며 그로 인한 폐해가 크다. 셋째, 조선인은 소극적 운명론자이며 혈연 중심 가족주의자이다." 애초에 그의 연구에서 민족 정기 따위는 관심도 없었던 셈이다.
물론 무라야마의 연구 자체가 식민지 경영을 돕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그 정당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만하다. 하지만 이 민속학자의 작업 배후에 어떤 오류가 있었다 한들, 그것은 미신을 맹종하는 전근대적 오류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에 맹종하는 근대적 오류에 불과했다.
영화 <파묘>는 근대인 민속학자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뒤집어 전근대인 음양사의 이름으로 차용함으로써 '알고 보니 진짜 귀신'이라는 클리셰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당시에 근대화를 이루면서 미신을 타파했던 일본의 현실을 외면한, 어찌 보면 '한국적으로 편협한' 해석일 뿐이다.
조선총독부에서 귀신과 풍수 같은 민간 신앙을 부정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던 것은 민족 정기의 훼손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간 심성의 파악을 위해서였을 뿐이다. 이런 근대적 연구조차 전근대적 주술이라 오해하는 풍조가 지금껏 계속되는 것이야말로 한국인 특유의 미신적 사고의 연장인 셈이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는 미신적 사고가 맹위를 떨치는 듯하다. 말이야 누가 미신을 믿느냐고 웃어넘기지만, 인터넷 시대에 맨 먼저 온라인화한 것 가운데 하나가 '행운의 편지'를 비롯한 각종 미신이었고, 유튜브 시대가 되자 온갖 무당이 난립하며 갖가지 요설을 늘어놓고 있다.
남녀의 사주풀이나 연말연초의 토정비결은 시들해졌지만, 젊은 세대는 타로에 열광하는 풍조가 지배적이라 한다. 한때 혈액형으로 알아보는 성격 유형에 열광했듯이 지금은 MBTI를 맹신하는 풍조이다. 그저 편의상의 분류에 불과한 것을 마치 절대적인 기준인 것처럼 남발하는 셈이다.
반면 한때 조선총독부에서 파악에 열을 올렸던 전통적인 미신으로부터는 점차 탈피하고 있는 점도 희한하다. 최근 뉴스를 보니 지난 수년간 주요 납골당의 무연고 유골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전국 봉안 시설의 90퍼센트가 포화 상태라서 무연고 유골부터 폐기 방법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가족의 유골조차도 남에게 맡겨놓고 찾아가지도 않는다니. 이쯤 되면 <파묘>에 묘사된 풍수에 대한 믿음은 이미 근대적으로 극복된 걸까. 하지만 단순히 경제 논리에 따른 얄팍한 행동일 뿐이니 애초부터 미신은 핑계임을, 또는 주머니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오락 이외에 미신을 진심으로 신봉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최근 비상 계엄 전후의 상황을 보니 그 위력과 해악이 여전히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정부 고위층이며 심지어 군 수뇌부까지도 무속 행위에 혈안이 되었다니 말이다.
애초에 그런 몰상식한 인간들은 출세하지 못하도록 주저앉혔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쩌다가 대통령부터 장성이며 기관장까지 하나같이 미신의 신봉자들이 요직을 차지한 걸까. 이쯤 되면 근대인 무라야마 지쥰 앞에서건, 가상의 음양사 무라야마 쥰지 앞에서건 우리도 할 말이 없지 않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