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 예배에 가서 새벽에 들어온다는 바깥양반을 기다리며 새해 벽두에 카프카의 초단편 "법의 문 앞에서"를 읽어보았다. 여당이며 야당이며 저마다 법을 내세우며 대치 중인 시국이라, 일반인은 물론이고 전문가마저 과연 어떤 법이 어떤 법을 누를 수 있는지조차 설왕설래하는 상황이니, 도대체 법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은 까닭이다.
물론 카프카의 작품답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한 남자가 법의 문 앞에 다가섰는데, 문지기에게 입장을 요구하지만 들어주지 않는다. 힘으로 통과하더라도 그 안에는 더 많은 문지기가 있다는 말에 남자는 포기하고, 이후 오랜 시간 법의 문 앞에 앉아서 문지기를 설득하며, 언젠가는 그곳을 통과하고 말겠다는 희망인지 착각인지에 빠져 오랜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가 결국 노쇠하여 숨을 거두기 직전에야 그는 '왜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이 법의 문을 통과하러 오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고, 마치 그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던 듯한 문지기로부터 '왜냐하면 이 법의 문은 오로지 당신만이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곧 죽을 예정이므로 나는 이제 이 문을 닫아 걸겠다'는 답변을 얻는다.
젊어서 읽었을 때에는 카프카 특유의 역설과 부조리가 담긴 작품 중 하나로 간과하고 넘어갔는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일단 법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만 놓고 보아도 이래저래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이 본래 미완성작 <소송>에 등장하는 작중작이었다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제목에서 가리키는 사법 절차가 줄곧 헛바퀴만 돌기 때문이다.
관련 자료를 구글링해 보니,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서는 힘 없는 개인에게 불친절한 법의 부조리를 비판했다는 해석이 대부분인 모양이다. 이번에 읽으면서는 원칙적으로야 주인공의 입장을 허가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주인공의 입장을 불허하는 저 불가해한 문의 성격마냥 법 자체가 모순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며칠 전에 생중계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 시도를 지켜보니, 마치 카프카의 작품 속 내용과도 유사한 모순과 부조리가 현실에서 펼쳐진 셈은 아닌가 싶어 한심할 수밖에 없었다. 법을 위반한 사람을 법에 의거해 체포하려는 법의 집행자들이 또 다른 법에 의거해 법을 위반한 사람을 지키려는 또 다른 법의 집행자들에게 가로막힌 셈이었으니까.
법의 보호 대상인 대통령을 법의 명령에 따라 체포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아니, 애초부터 법을 수호하기로 약속한 대통령이 법을 어긴 것 자체는 정당한가? 흥미로운 사실은 마치 법의 정의와 한계에 대한 논란처럼 보이는 이런 모순과 대치가 실제로는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의지에서 유래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의지가 법을 왜곡해 모순을 만든 것이다.
현직 대통령은 검사 출신의 법잘알이고, 그를 체포하려는 사법 기관은 물론이고 그를 반대하고 두둔하는 입법 기관의 여야 정치인들조차도 모두 법잘알이다. 저마다 법에 대한 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의견조차도 맞서고 엇갈려서 대치를 이어 나가고 있으니, 카프카의 소설에 나온 남자와 유사한 수많은 법알못의 처지야 굳이 말할 필요조차도 없을 법하다.
비상 계엄 이후 현재까지 법과 법의 대치 상황은 법에 대한 준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의 약점을 보여주는 중대한 사례 가운데 하나로 우리 역사에 기록될 법하다. 물론 이런 대치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다. 가깝게는 트럼프의 지난 임기에 벌어진 미국 의회 공격 사태가 있었고, 멀게는 민주주의의 온상인 고대 그리스에서도 비일비재했으니까.
일각에서는 문자 그대로 민중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상적으로 간주하는 고대 그리스에서조차도 일각의 지적처럼 민주주의는 변덕스럽고 예측불허라 불안정한 체제였다. 애초에 민주주의 자체에 큰 기대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그래서인데, 최근 한 달 간의 한국 정치 상황은 그런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이니 더욱 민망하기 그지없다.
현직 대통령의 관저 앞에서 벌어진 법과 법의 대치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같이 법잘알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들어가려는 사람과 막아서는 사람, 또는 끌어내려는 사람과 나오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나뉘어 벌이는 대결이야말로 카프카가 묘사한 저 법의 문 앞에 섰던 두 사람의 대치 상황 못지않게 기묘하다는 점만큼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