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야마 지쥰의 <조선의 점복과 예언>을 보면, 범죄 발생 시에 그 범인을 색출하는 데 사용하는 점술의 하나인 '고양이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사건과는 무관한 고양이를 데려다 놓고 고문해서 죽이거나, 또는 죽기 직전까지 내몰면, 빡친 고양이가 범인을 찾아가서 복수를 한다는 거다.


고양이를 일반적인 가축과는 차원이 다른 영물로 간주한 옛날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한편, 책에 나온 사례 중에서는 피해자가 고양이점을 계획한다는 사실에 지레 겁을 먹은 가해자가 고양이를 치우려다가 거꾸로 덜미를 잡혀 범죄를 실토했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전한다.


그렇잖아도 지난주부터 알라딘 북펀드에서 개/고양이 대학살 운운 하며 호들갑을 떠는 책을 광고하기에, 내친 김에 로버트 단턴까지 한데 엮어서 뭐라도 한 번 써볼까 생각했는데, 갑작스레 벌어진 역대급 항공기 사고로 심란해진 마음을 가까스로 수습해 보니 어느새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단지 무라야마의 책에 나온 내용뿐만 아니라, 지난 한 달 동안 한국 사회를 뒤집어놓은 대소동의 원인이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며 아마추어 점집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까지도 돌이켜 보면, 올해는 정말이지 문자 그대로의 '주술적 사고'로 마무리되는 셈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주술적 사고'(magical thinking)라고 하면 자연스레 존 디디온의 <상실>이라는 책이 떠오르는데, 이 책의 원제가 "주술적 사고의 해"(The Year of Magical Thinking)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처음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제목을 보고 자기계발 에세이겠거니 오해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의 magical을 일반적 의미의 "마법"이나 "마술"처럼 비교적 좋은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인데, magical thinking은 오히려 "주술적 사고"나"미신적 사고"로 해석해야 한다. 앞서 말한 '고양이점'처럼 문자 그대로 인과성이 없는데도 엉뚱한 데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 이런 사고방식이다.


존 디디온의 책에서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망 직후, 그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으로도 묘사된다. 예를 들어 죽은 남편의 옷을 왜 버리지 않느냐는 지인의 물음에 저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혹시 살아서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하고 우물거린다.


하느님은 믿지 않아도 지질학은 믿는다고 말할 정도로 평소에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했던 저자이니, 이런 스스로의 어리석은 행동에 적잖이 놀랐을 법하다. 따라서 "주술적 사고의 해"라는 원제는 저자가 겪은 슬픔뿐만 아니라 당혹과 자조까지 담은 절묘한 제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떤 면에서 주술적 사고는 거대하고 냉혹한 현실의 앞도적인 파도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일 수도 있다. 계란으로 내리친들 바위가 꼼짝달싹이나 하겠느냐만, 최소한 그런 넋두리라도 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체념하고 있는 그대로 현실을 인정할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닐까. 


보기에 따라서는 어리석다 할 수도 있지만, 차마 감당 못할 슬픔 앞에서 무너지는 것 역시 인간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개/고양이 대학살처럼 사안을 침소봉대하는 습관이야 고약하지만, 종종 남용되는 바로 그 공감 능력이 있었기에 인간은 개/고양이보다 우월할 수 있었으니까.


여하간 국가 수뇌부의 '주술적 사고'뿐만 아니라, 한 해의 끝자락에 일어난 초대형 사고로 인한 유가족의 '주술적 사고'도 적지 않을 듯하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지난 세월호 사건 때에도 현실을 부정하고 실낱같은 가능성에 매달리며 자책을 거듭하는 유가족의 모습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한 해 내내 부음이며 다툼이며 금전 등 각종 사건사고를 경험하다 보니, 최근 있었던 여러 사회적 논란까지 더해서 제발 올 한 해만큼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적어놓고 보니 이런 푸념과 바람 역시 주술적 사고의 일종인 듯해 살짝 민망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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