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윌리엄 샤이러의 <제3제국의 흥망>이 새로 나온 모양이다. 원서가 1960년에 나왔으니 무려 환갑이 넘은 셈인데 아직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노인 학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이 용어는 최근 아이패드2를 초기화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놈의 물건이 iOS 9.3.5 업데이트 이후로는 계속 버벅대서 주로 고전 에로책 읽기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저장 공간 부족 메시지가 나와 구글링해 보니 초기화밖에 방법이 없어 보였다. 초기화를 해보니 의외로 쌩쌩 잘 돌아가기에 결국 노후 기기 수명 연장, 일명 "노인 학대"에 성공하긴 했는데, 문제는 백업을 안 해놓는 바람에 에로책이 모두 날아갔다는...)


이미 에디터 구판본 전4권도 갖고 있는데, 이건 일본어 중역에 오타도 많아서 읽기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기억한다. 페이퍼백 원서도 하나 갖고 있는데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고, 같은 저자의 <베를린 일기> 원서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역시나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최초의 번역서인 안동림 번역본도 예전에 어디선가 기념 삼아 구입해 놓았던 기억이 나서 책장을 뒤적뒤적 해 보았더니... 세상에! 아직 남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참 별놈의 책을 다 안 버리고 갖고 있었구나 싶어서 나 스스로가 살짝 징그러워졌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런 징그러움 덕분에 또 하나 끄적끄적 적어볼 수 있게 된 셈이기는 하지만.


안동림 번역본은 원서가 간행된 이듬해인 1961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했는데, 다섯 권이 한꺼번에 나온 것이 아니라 3개월마다 순차적으로 간행되었다. 즉 1권은 1961년 6월, 2권은 1961년 9월, 3권은 1961년 12월, 4권은 1962년 3월, 5권은 1962년 6월에 간행되었으니 완간에 딱 1년 걸린 셈이다. 내가 가진 책은 다섯 권을 박스 하나에 한꺼번에 담아 놓은 세트인데, 결국 완간된 1962년 6월 이후에나 제작된 물건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1-2권의 표지 디자인이 3-5권과는 다르다는 점인데, 아마 간행 도중에 변경되지 않았을까 싶다. 아울러 1권은 1962년 6월의 재판본, 4권은 1962년 11월의 재판본이다.


안동림 번역본은 분권 형식과 디자인부터 십중팔구 1961년에 간행된 일본어 번역본의 중역으로 추정되는데, 구글링해 보니 일본에서도 반세기가 다 되었던 2008년에 새로운 번역본이 간행되었으니, 이래저래 "노인 학대"는 어느 나라에서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도서관에서 검색해 보면 안동림 번역본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출판사를 옮겨 간행된 적이 있었다고도 나오는데, 이건 나도 실물을 구경한 적은 없다. 에디터 번역본은 단어 선택과 문장 구조가 대동소이하고 심지어 오역한 부분조차 똑같다는 점에서 정황상 안동림 번역본을 베낀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드는데, 물론 확증까지는 없고 그저 심증일 뿐이다.


윌리엄 샤이러는 히틀러가 한창 대두하던 시절에 베를린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이력의 소유자로 (그 시절의 이야기가 바로 <베를린 일기>라고 알고 있다), 전후에 미군이 노획한 대량의 독일어 문서를 토대로 <제3제국의 흥망>을 저술했다고 알고 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학술적인 차원에서 (아울러 비판자의 여러 가지 입장을 반영하여) 여러 가지 내용상의 단점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이 저술 자체가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이미 저자 스스로도 서문에서 시인한 바 있으니 크게 비난할 거리가 되지는 못하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그 "노인 학대" 급의 지속적인 인기야말로 "현대의 고전"의 다른 표현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나저나 새로 나온 번역본은 무려 7만 원짜리이다 보니 선뜻 손이 나가지도 않을 뿐더러, 과연 제대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설 수밖에 없다. 이런 의구심은 알라딘 미리보기로 대조한 몇 군데 번역문에서 살짝 미심쩍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데, 공짜 알바해 줄 생각은 없으니 가장 확실한 실수 두 가지만 일단 지적질하고 넘어가 보도록 하자. 첫째는 "역사서로 손꼽히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9쪽)라는 대목인데, 원서와 대조해 보니 "위대한 역사서로 손꼽히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라고 되어야 정확하다. 교정 중에 단어가 하나 달아난 모양인데, 안동림/에디터 중역본 모두에서는 정확히 옮긴 대목이기도 하다.


둘째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소도시 브라우나우 암 인의 수수한 집에서 태어났다"(22쪽)고 옮긴 대목인데, 안동림 중역본에는 "수수한 집에서"를 "수수한 여관 가스토프 줌 포메르에서"라고 (에디터는 "수수한 여인숙에서"라고) 옮겼기에, 원서를 대조해 보니 후자가 정확한 번역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간행된 존 톨랜드의 히틀러 전기에서도 세관원이었던 아돌프의 아버지가 당시 부임지의 "포메르 여관"에 머물고 있었다고 서술한 바 있었으니, 이것 역시 사소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누락/오역이라고 지적할 만한 부분이다. 이밖에도 몇 가지 문맥을 착각한 듯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귀찮아서 더 이상은 파고들지 않기로 하고 말았다.


물론 투키디데스의 저술을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대목에서 해당 역사서를 소설책이라 오독할 독자가 생길 리는 없을 것이며, 히틀러가 "여관"이 아닌 "집"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 대목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승리로 끝났다는 잘못된 인상을 받을 독자가 생길 리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안동림/에디터 중역본이 "거리명"으로 오역한 "브라우나우암인"을 "도시명"으로 정확히 옮긴 것은 확실히 더 나아진 점이다. 하지만 7만 원이라는 가격을 감안해 보면, 아울러 "정식으로 완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정확하고 깔끔한 번역"이라는 출판사의 자평을 감안해 보면, 뭔가 어울리지 않는 잔실수같아 해 보는 말이다.



[*] 그나저나 이번 책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나온 나치 관련서에서 표지에 하켄크로이츠를 턱하니 박아 놓은 것을 보면, 새삼스레 일본 욱일기에 대한 그간이 여론몰이/선동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실감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쪽과 서쪽에서 저마다 악명을 떨쳤던 전범국의 상징인데, 우리가 기분 나쁘니까 너네도 욱일기는 쓰지 말라고 지랄발광을 하면서도, 정작 저쪽에서 기분 나빠할 만한 하켄크로이츠는 스스럼없이 써먹기도 하고, 심지어 골빈 연예인들 중에는 나치 경례며 군복까지 입는 경우가 없지 않았으니 말이다. 심지어 독일 내에서는 오랜 세월 간행조차도 금지되었던 <나의 투쟁>을 "고전"이라는 미명으로 오래 전부터 간행해 온 나라가 바로 이 잘난 대한민국이다. 위안부며 징용이며 각종 전쟁 범죄는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유대인의 음모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갖가지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조차도 없는 것이 이놈의 나라이다. 따지고 보면 욱일기에 대한 양놈들의 인식은 하켄크로이츠에 대한 조선놈들의 인식과 대동소이하다고 봐야 무방할 것이다. 즉 어떤 나라나 정권이나 시대를 상징하는 것뿐이지, 그걸 쓴다고 해서 그 나라나 정권이나 시대를 지지하고 옹호한다는 뜻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그리고 심지어는 욱일기도 아니고 그냥 태양광선 묘사에 불과한 경우인데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흔하다). 자기네는 남의 역사에 아무 관심도 없고 심지어 왜곡이나 폄하까지도 서슴없이 행하면서도, 전혀 상관도 없는 동네까지 찾아가서 결의안이니 소녀상이니로 수요 없는 K-역사를 공급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K-모순이자 K-위선이 아니고 무엇이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스카우트는 그 명칭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군대에서 유래했다. 영어 “스카우트”(scout)가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상황을 파악하는 “정찰병”이나 “척후병”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운동의 창시자 로버트 베이든파월도 그 교본인 <소년을 위한 스카우트 활동>에서 자신이 군 복무 중에 거느렸던 “소년 하사관대”가 보이스카우트의 기원임을 밝히고 있다.


영국 태생의 베이든파월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식민지 인도와 남아프리카에서 근무했는데, 제2차 보어 전쟁 당시 대령 계급으로 남아프리카의 소도시 마페킹(현재 명칭은 “마피켕”이다)에서 217일 동안 포위 공격을 견디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사실 이 방어전이 큰 승리나 결정적 전환점까지는 아니었지만, 사기 진작 차원에서 후하게 포상했다는 후일담도 있다).


마페킹 방어전 당시 영국군은 현저한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12세부터 15세까지의 소년들을 모아 “소년 하사관대”를 창설했고, 주로 자전거를 타고 오가며 전령과 보초 등의 비교적 가벼운 임무를 담당하게 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베이든파월은 이때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소년 정찰병”, 즉 “보이스카우트”라고 이름붙인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베이든파월이 애초부터 염두에 두었던 “보이스카우트”의 모범은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소설 <킴>에 나오는 동명의 주인공 소년이었다. 심지어 보이스카우트 교본에서도 “킴”의 사례는 마페킹의 “소년 하사관대”보다도 먼저 언급될 정도인데, 이것이야말로 베이든파월이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스카우트”(정찰병)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키플링의 작품에서 킴은 인도에 사는 아일랜드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인도인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현지 언어는 물론이고 풍습에도 정통한 것으로 나온다. 이후 그는 티베트에서 온 승려를 따라 일종의 안내인으로 인도 각지를 여행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영국군의 의뢰를 받아 다양한 첩보 수집 및 전달 활동에 관여하게 된다.


줄거리만 보면 제법 흥미로운 모험 소설 같지만 (실제로도 상당히 재미있다!) 비슷한 식민지 체험을 지닌 우리나라의 근대사에 대입해 놓고 보면 살짝 거시기한 부분도 없지는 않다. 말하자면 조선 거주 일본인의 아들이 조선어와 조선 문화에 정통하다는 특기를 살려 총독부의 밀정 노릇을 하며 중국에서 온 스님을 따라 조선 팔도를 돌아다닌다는 내용의 소설인 거니까.


소설에서 킴은 두뇌 회전이 빠르고, 관찰력과 말솜씨가 뛰어나며, 임기응변 능력도 탁월하고, 상황에 따라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영악한 꼬마로 묘사되는데, 베이든파월은 그를 “보이스카우트 대원의 훌륭한 본보기”라면서 추켜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이와 유사한 능력을 체득해서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을 마치 보이스카우트의 이상적인 목표인 것처럼 내세운다.[*]


이쯤 되면 보이스카우트 운동 자체가 과거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의 제국주의적 야욕과 식민주의적 탐욕과 애국주의적 맹목의 총합이라도 되는 것 같지만, 여기에다가 오늘날 보이스카우트의 특징이 된 야영과 생존 기술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은 의외의 인물이 있었으니, 원래는 화가였지만 나중에는 <동물기>의 저자로 더 유명해진 미국의 작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었다.


시튼이라면 오늘날에는 커럼포의 늑대 로보 이야기를 비롯해 갖가지 실화에 근거한 동물 이야기를 지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인디언 고유 문화에도 상당히 큰 관심을 보인 인물이다. 시튼은 보이스카우트보다 한 발 앞서 우드크래프트 인디언스라는 청소년 야영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나중에는 이 단체를 미국 보이스카우트 연맹과 합병하고 교본을 집필하기도 했다.


시튼은 불 피우기, 움막 짓기, 발자국 뒤쫓기, 식량 구하기 같은 인디언의 고유한 야영 기술 습득을 권장했는데,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생존(서바이벌) 기법”에 해당하는 이 내용을 정리한 논픽션이 <시튼의 숲>이란 번역서이고, 소설 각색으로는 <작은 인디언의 숲>이 있다. 베이든파월은 보이스카우트의 정식 출범 직전에 시튼을 만나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보이스카우트 교본의 첫머리에서 베이든파월은 “전쟁 스카우트 이외에도 평화 스카우트가 있으며, 이들은 평화 시 군대의 척후병 못지않게 민첩하고 기지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해나간다. 이들이 곧 세계의 개척자들이다”라고 정의한 다음, 각종 사냥꾼과 탐험가와 선교사(?)처럼 모험심과 아울러 오지에서의 생존 능력을 갖춘 인물들을 “평화 스카우트”로 열거한다.


보이스카우트 교본에서는 스카우트의 기본 소양으로 야외 생활, 생존 기술, 기사도, 인명 구조, 인내심, 애국심, 절제력 등을 열거하며, 생존 기술 중에는 길 찾기, 헤엄치기, 보트 사용법, 신호법, 매듭법, 움막 짓기, 나무 베기, 거리와 높이 측정, 야영법, 관찰법, 추적과 잠행법, 동식물학, 운동과 청결 유지법, 사고 대비 및 응급 처치법 등을 개략적으로나마 설명한다.


물론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일부 고리타분한 내용도 있는데, 특히 “자기 개선”에 관한 장에서 “절제 생활” 항목의 경우가 그렇다. 베이든파월은 “많은 소년을 사로잡는 이 은밀한 악습에 대한 한 마디의 충고”를 한다면서, 상스러운 “이야기나 하고, 쓸모 없는 책이나 읽고, 외설 그림이나 보는 것은 지각없는 소년을 자위행위로 유혹하며 이끌어 가기 쉽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이와 같은 것은 건강과 정신을 다 같이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런 욕구는 영양 과다나 더운 잠자리에서 비롯되므로 냉수욕이나 체조가 도움이 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자위행위보다 더 큰 문제는 보이스카우트 내부에 만연한 성폭력이 아니었을까. 미국 보이스카우트 연맹에만 해도 2020년까지 9만 건 이상의 관련 신고가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한때 전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보이스카우트 운동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 부분 폄하를 당한 것도 사실이었다. 근저에 남아 있는 군대 요소는 물론이고, 예절과 선행을 앞세우다 보니 종종 순진한 녀석의 대명사가 되어서, 급기야 슈퍼히어로물에서는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자경단을 향해서도 알량한 선악 개념을 강요하는 “보이스카우트”로 폄하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보이스카우트 활동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람도 없지는 않다. 얼마 전 타계한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겸 개미 전문가인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이 대표적이다. 자서전 <자연주의자>에서 윌슨은 부모의 이혼과 잦은 이사와 부분 실명 등의 악재가 겹치며 변변한 친구도 없이 외로운 유년기를 보내다가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비로소 자신감을 얻었다고 회고한다.


“미국의 보이스카우트란 조직은 바로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윌슨은 보이스카우트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야영과 등산과 동식물학처럼 이때까지 학교나 교회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새롭고도 다양한 자연 지식을 터득했고, 그것이야말로 자기에게는 명문 과학고에 다닌 것에 버금가는 중요한 경험이었다고 훗날까지도 여전히 애정을 드러내며 회고했다.[**]


오래 전에 아름다운가게에서 500원 주고 구입한 <소년을 위한 스카우트 활동>(베이든 포우엘 지음, 김규영 옮김,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1977 초판; 1983 2쇄)을 이제 와서 다시 꺼내 보게 된 계기는 당연히 최근 논란이 된 새만금 세계 잼버리 대회 때문이다. 개막 전부터 준비 부실로 뉴스에서 여러 번 언급되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역대급 실패 사례로 끝나는 모양새다.


그 책임 소재를 놓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전 정권과 현 정권, 몇몇 인사가 언급되고 있는데, 보이스카우트의 구호가 저 유명한 “차리고 있다”(Always Prepared), 즉 언제라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임을 감안하면 더욱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에나 한국 보이스카우트 연맹에나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걸까?


“‘차리고 있다’라는 여러분의 표어를 기억하라.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에 접하여 할 바를 사전에 알아 둠으로써 사고에 대한 준비를 하여야 한다.” 베이든파월은 구호의 뜻을 이렇게 설명한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또 무엇을 하고 있건 간에 ‘여기서는 어떤 사고가 일어날까?’ 그리고 ‘그런 사고가 났을 때 나의 임무는 무엇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어서 그는 한 여성이 물에 빠졌는데도 주위 사람이 수수방관하는 바람에 결국 사망하고 말았던 일화를 거론하며 같이 덧붙인다. “그곳에 스카우트가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이야기는 달라졌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태원 압사 사고에 뒤이어 또 다른 전세계적 “K-개망신”의 사례로 등극한 이번 새만금 잼버리 행사에 대해서도 아마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 가만 보면 키플링은 이처럼 영악한 소년을 애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당장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도 이에 못지않게 영악한 꼬마이고, <용감한 선장들>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의 등장인물은 원래 미국의 철도 재벌의 외아들이라서 워낙 싸가지가 없는 녀석인데, 사고로 여객선에서 떨어져 죽을 뻔하다가 대구잡이 어선에 구사일생으로 구조된다. 하지만 구조된 후에도 그 성질머리를 버리지 못하고 "내가 누군지 알아?"를 시전하다가 어선 선장에게 두들겨 맞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조업이 끝날 때까지 어선의 막내 선원으로 일하며 몸도 생각도 크게 변화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싸가지가 없다 뿐이지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어서, 선원으로 일하면서부터는 눈치 빠르게 적응해서 한 사람 몫을 톡톡히 해내는 것으로 나온다.


[**] 물론 그 당시 보이스카우트에 만연했던 성과 인종차별에 대한 보수적이고 양면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윌슨도 일침을 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에서 또다시 중고 매장 할인 럭키백 이벤트를 시작한 모양인데, 결국 할인을 미끼로 에코백을 하나 더 사라는 이야기가 되고 보니 적잖이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럭키백 이벤트 때마다 꼬박꼬박 구입한 까닭에 16주년 에코백 하나, (지금까지 구입한 것 중에 제일 마음에 들었던) 모래고양이 에코백 하나, 저 악명 높은 "빨간물" 에코백 둘 (원래 구입한 "캐리" 에코백에다가 나중에 추가 배송된 정상 제품도 있으니까), 그리고 작년에 정말정말정말 디자인 구려서 진짜진짜진짜 사기 싫었는데 억지로 샀던 초록색 에코백까지 해서, 알라딘 에코백만 무려 다섯 개에 달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요즘 들어 에코백을 사은품으로 주는 곳이 워낙 많다 보니, 굳이 내 돈을 주고 구입하지 않아도 정말 처치곤란 수준으로 집에 많다는 거다. 심지어 이마트 "수달" 가방 같은 비닐 백도 흔히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비록 재사용이 가능하다 치더라도 과연 저게 환경 보호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에코백의 본래 의도는 환경 보호였다고 (따라서 처음에는 플래카드처럼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을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기억하는데, 지금은 본래 의도와 달리 에코백 자체가 유행처럼 된 것 같기도 하고, 그 제작에 필요한 자원과 비용을 따지면 오히려 "안티-에코 백" 같기도 하다.


당장 알라딘 박스만 뜯어 보아도 이런저런 비닐 포장재가 수두룩한데, 무려 20년 묵었다고 자랑하는 이 회사에서 정말 환경을 생각했다면, 에코백을 팔 시간에 차라리 자기네가 담아 보내는 이 비닐 쓰레기를 재활용할 방법이나 (하다못해 고객이 비닐 포장재를 가까운 중고 매장으로 다시 가져오면 받아서 재활용한다거나) 고민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여하간 상기한 이유로 해서 올해는 처음으로 알라딘 럭키백을 구입하지 않을 작정이다. 에코백이라면 이미 많고,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도 의심스러우며, 다른 무엇보다도 가격이 무려 1만 3천 원이나 하는데 겨우 5만 원밖에 할인이 안 되니까...



[24. 01. 30. 추가] 이후로도 알라딘에서는 계속해서 "에코 백"이라는 미명 하에 "안티-에코 백"을 만들아낼 뿐만 아니라, "사은품"이나 "한정판"이라는 명목 하에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말 동안 곤충화가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1647-1717)에 관한 책을 읽었다. 바깥양반이 오전에 책을 읽기에, 배경 음악 삼으라고 실비우스 레오폴드 바이스의 류트 작품집 ARS MELANCHOLIAE 를 꺼내 틀어준 게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 재킷을 보니 어디서 본 듯한 꽃과 나비 그림이 있었다. 혹시 얼마 전에 구입한 독일 여류 화가의 작품인가 싶어서 책장을 뒤져 <곤충 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태>(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 윤효진 옮김, 양문, 2004)를 도로 꺼내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중 하나인 ‘자단나무’ 그림이었다. 구입해 놓고 아직 읽을 기회가 없었기에, 이참에 본격적으로 읽어보자 싶어서 나카노 교코의 메리안 전기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김성기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3)와 함께 꺼내놓았다.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에 제법 이름을 날리던 화가 겸 출판인이었으며, 훗날 마리아가 남편의 성 대신에 아버지의 성을 드러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어머니는 화가 메리안의 후처로 들어가 딸과 아들을 낳고 남편과 사별했으며, 이후 또 다른 화가 겸 출판인과 재혼했다. 마리아는 새아버지의 관심과 후원 속에서 그림 및 동판화를 비롯한 출판 업무를 배웠으며 (오늘날로 따지자면 대략 아버지가 운영하던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격이었다) 이후 역시나 화가로 함께 일하던 남편과 결혼해서 뉘른베르크로 진출했다. 하지만 남편이 사업과 가정 모두를 등한시하고 바깥으로 나돌자, 마리아는 가사뿐만 아니라 출판과 그림 교습 등을 통해서 생계까지 떠맡게 되었다.


마리아는 개인적으로 각별히 관심을 두던 꽃과 곤충을 묘사한 화집을 여러 권 간행해서 주목을 받았으며, 30대 후반에 남편을 떠나 의붓오빠가 머물던 라바디파 신앙 공동체에 한동안 몸담으며, 남편과의 재결합을 한사코 거부한 끝에 결국 이혼에 성공했다. 훗날 독일 경건주의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는 프랑스의 신비주의자 장 드 라바디의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이 공동체는 결국 와해되고 말았지만, 마리아가 머물던 공동체의 후원자가 마침 수리남 총독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낯선 열대 땅을 직접 밟고 그곳의 자연을 관찰하려는 열망을 품었다. 길고 어려운 교섭 끝에 그녀는 1699년에 둘째딸을 데리고 수리남에 가서 1년여 동안 현지의 자연을 관찰했고, 귀국 후 역작인 <수리남 곤충의 변태>를 간행해서 격찬을 얻었다.


마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곤충을 좋아했으며, 특히 애벌레가 성충으로 변모하는 ‘변태’ 과정에 각별히 관심을 가졌다. “나는 소녀시절부터 곤충 연구에 몰두했다. 고향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으로 누에 관찰을 시작한 후, 나는 다른 애벌레에서 이보다 훨씬 아름다운 나비와 나방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차츰 모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유충을 채집했다. 나는 어떤 사교 모임에도 눈 돌리지 않고 오로지 이 연구에 매달렸다. 동시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 위해 끊임없이 그림 연습에 열중했다.”(<곤충 책>, 10쪽) 바로 이 점에서 마리아의 행동은 12세기 일본의 단편 소설집 <쓰쓰미추나곤 모노가타리>에 나온 “벌레를 좋아하는 아가씨”와도 유사하다. 여기서 주인공인 대갓집 아가씨는 곤충, 특히 애벌레를 취미로 수집한다:


 

“세상 사람들은 꽃이다 나비다 하며 추켜세우는데 정말 어리석고 바보 같은 생각이야. 인간이라면 진실한 마음으로 사물의 근본을 알려고 해야 기품이 있는 게지.” 그녀는 온갖 징그러운 벌레를 채집하여 관찰용 상자에 넣게 하였다. “이게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봐야겠어.” “송충이가 속이 깊어 보이는 것이 운치가 있네.” 앞머리는 기품 없는 부인네처럼 귀 뒤로 넘긴 채 아침저녁으로 손바닥에 송충이를 올려놓고 관찰하였다.(48쪽)

 

 

부모가 꼴사나운 짓을 한다며 나무라자, 아가씨는 오히려 당당하게 반론한다. “세상만사 그 과정을 지켜보고 끝을 봐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옵니다. (...) 사람들이 입는 비단도 결국은 누에에서 나온 거예요. 나비가 되어 버리면 이제 끝이니 쓸모가 없지요.”(50쪽) 이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모두 망측하고도 이상하다고 여기는데, 한 대갓집 아들이 도리어 흥미를 갖고 아가씨를 찾아와서 역시나 아이들을 시켜 애벌레를 채집하기에 바쁜 상대방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재치 있게도 역시나 곤충을 소재로 연시(戀詩)를 써서 보낸다:

 

 

털벌레 같은 그대 모습 본 뒤로 잊을 수 없어

당신을 데리고 가 지켜주고 싶어라


 

그러자 아가씨도 한 술 더 떠서 이런 답장을 보낸다:


 

털벌레처럼 세상 사람과 다른 마음 가진 나

당신 이름 듣고서 그때야 답하리라


 

그러자 남자도 이렇게 답장한다:


 

털벌레처럼 보이는 당신 눈썹 털끝만큼도

당신과 닮은 사람 어디에도 없어요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째서인지 저자는 바로 이 대목에서 “뒷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질 것이다”라면서 뚝 이야기를 끊어 버린다. 어쩐지 독자로선 고도의 낚시질에 걸려든 느낌마저 든다. 여하간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도 만만치 않아서, 어려서는 물론이고 결혼 이후에도 종종 애벌레를 수집해서 변태 과정을 관찰했고, 곤충 표본을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했다. 나카노 교코는 이에 관해 한 가지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는다. “평범한 모습으로 태어난 소녀는 그 눈부신 환생, 드라마틱한 변화에 용기를 얻었을 게 분명하다. 여성이라면 누구든 소녀 시절에는 예쁘고 멋지게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나비만큼 그런 소녀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될 만한 존재가 또 있을까.”(63쪽)


당시의 과학계에서는 곤충 유충과 성충의 관계가 명확히 정립되지는 않았다. 즉 누에에서 나방이 나오는 등의 몇 가지 사례는 사실로 인정되었지만, 그 외의 나머지 곤충은 유충과 변태를 거쳐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오인되었던 것이다. 특히 해충은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악마의 소행으로 간주되었다. 린네보다 두 세대 일찍 태어난 메리안은 관찰과 실험과 그림을 통해서 곤충의 변태가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곤충학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물론 메리안은 정식 과학자가 아니었고, 오히려 예술을 위해 과학을 활용했을 뿐이었기 때문에 종종 잘못된 관찰이나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옥의 티들은 아쉽게도 훗날 그녀의 업적이 부당하게 과소평가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림 면에서 보자면, 한 장의 그림에 곤충의 알과 유충과 성충 모두를 보여주는 방식의 묘사법은 그녀가 처음 창시한 것이며, 오늘날 자연 도감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나카노 교코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한 장의 화폭에 곤충아 알, 유충, 번데기, 성충으로 변태하는 과정, 즉 ‘시간’을 표현했으며, 그것과 더불어 그 곤충의 먹이인 화초도 함께 묘사했다. 그리고 거기에 반드시 각 곤충들의 발견 장소와 변태 기간, 감상 같은 짧은 해설을 곁들였다. 이런 획기적인 작품은 무려 300년 뒤의 곤충 도감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곤충 도감의 기본적인 양식은 그녀가 최초로 고안해 낸 것이다.”(96쪽) 이것만 놓고 보아도 과학과 예술 모두에 걸친 메리안의 업적은 이미 확고히 인정받았다고 해야 맞겠다.


메리안의 화풍은 사실주의에 기반했지만, 종종 핵심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대상의 크기나 실존 기간 등에서 선의의 왜곡이 가해졌다. 한 세기 반 뒤에 탄생한 존 제임스 오듀본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평면적인 느낌이 없지 않지만, 독특한 색감을 자랑하기 때문에 꽤나 인상적이다.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에 지금 나와 있는 관련서에 수록된 도판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이다. <곤충 책>은 <수리남>의 초판 가운데 일부 내용을 빼고 옮긴 것이지만 (저자 사후 2판부터 수록된 악어와 도마뱀 등의 그림은 빠졌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흐리며, 일부 도판은 원서와 비교해서 좌우 반전 상태인데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나카노 교코의 책에는 컬러 도판이 몇 장 수록되어 있지만, 본문의 흑백 도판은 차마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시커멓다.


메리안에 관한 약전은 <곤충 책>에 수록된 헬무트 데케르트의 “예술과 과학의 경계선에서: 마리아 지뷜라 메리안의 업적”과 내털리 제먼 데이비스의 <주변부의 여성들>에 수록된 "마리아 지빌리 메리안: 변태"가 있다. <무서운 그림>의 저자 나카노 교코의 전기는 비록 일부 내용이 반복되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과 함께 관련 정보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큰 도움이 된다. 그 외에도 그림과 박물학과 여행에 관련된 다른 책에서도 단편적인 서술을 찾을 수 있다. <마술의 그림들>(아니타 알부스 지음, 배진아 옮김, 생각의나무, 2005)과 <위대한 박물학자>(로버트 헉슬리 엮음, 곽명단 옮김, 21세기북스, 2009)와 <역사상 가장 위대한 70가지 여행>(로빈 핸버리 테니슨 엮음, 남경태 옮김, 역사의아침, 2009)가 그런 책들이다.




[24. 01. 30. 추가] 메리안의 저서인 <수리남 곤충의 변태>와 <새로운 꽃 그림책>이 작년 연말에 번역, 간행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어 추가해 본다. <곤충 책>이 절판된 다음이니 반가울 수밖에 없는데, 그 책의 문제점이었던 도판이 이번에는 제대로 인쇄되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 사이에 아동용 전기도 몇 권 나온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좀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니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워크룸프레스라는, 아직까지는 생소한 출판사에서 앙리 보스코의 <이아생트>를 내놓았다.


이 소설의 제목은, 내가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된 소설 <반바지 입은 당나귀>에 나오는 (나중에는 <반바지 당나귀>라고 제목과 표지를 바꿔서 다시 나오기도 했는데) 신비스러운 소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저자는 <반바지 입은 당나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계속 나오는 소설을 두 편 더 썼는데, <이아생트>와 <이아생트의 정원>이라고 해서 양쪽 모두 "이아생트"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후에 우연히 접한 <집을 떠난 빠스깔레>(김영철, 김태호 옮김, 청년사, 1990)라는 작품에서도 이아생트와 "반바지 입은 당나귀"가 잠깐 등장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 작품의 원제는 <아이와 강>인데, 김화영의 번역으로 1978년 처음 소개되었다가 지금은 역시나 같은 역자의 번역으로 민음사에서 재출간되었다.(그 외에도 중앙일보사 "오늘의 세계문학"으로 소개된 <말리크로와>가 역시 보스코의 작품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꺼내 보았더니 <집을 떠난 빠스깔레>와 <아이와 강>은 같은 내용이지만 삽화가는 서로 다르며, 특히 전자에는 "반바지 입은 당나귀"의 귀여운 모습이 묘사된 삽화도 있어서 각별한 재미를 전해준다. 반면 후자에는 "파스칼레의 노트"라는 제목으로 이 책에 나오는 주요 동물과 도구에 관한 삽화가 들어 있는데, 이것 역시 민음사 판본에만 있는 깜짝 선물이다. 오랜만에 책을 꺼내 뒤적이며, <반바지 입은 당나귀>가 무려 지금으로부터 사반세기 전인 1988년에 처음 소개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물론 내가 이 작품을 접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요즘은 이래저래 책을 펼칠 때마다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반세기 만에 다시 만난 이아생트가 한편으로는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서먹한 이유도 아마 그때문이리라.




[추가] 2014년 11월 초에 <반바지 입은 당나귀>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한 권으로 재간행되었다. 세 번째 갈아입은 옷인데, 이번에는 좀 더 오랜 수명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추추가] 10년이 더 지난 2024년 5월에 <반바지 입은 당나귀> 3부작의 마지막 권인 <이아생트의 정원>이 문지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다시 한 번 책장을 뒤져야 하나 싶어 난감하던 차에 딱 10년 전에 써 놓은 글이 있기에 다시 살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