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크룸프레스라는, 아직까지는 생소한 출판사에서 앙리 보스코의 <이아생트>를 내놓았다.
이 소설의 제목은, 내가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된 소설 <반바지 입은 당나귀>에 나오는 (나중에는 <반바지 당나귀>라고 제목과 표지를 바꿔서 다시 나오기도 했는데) 신비스러운 소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저자는 <반바지 입은 당나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계속 나오는 소설을 두 편 더 썼는데, <이아생트>와 <이아생트의 정원>이라고 해서 양쪽 모두 "이아생트"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후에 우연히 접한 <집을 떠난 빠스깔레>(김영철, 김태호 옮김, 청년사, 1990)라는 작품에서도 이아생트와 "반바지 입은 당나귀"가 잠깐 등장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 작품의 원제는 <아이와 강>인데, 김화영의 번역으로 1978년 처음 소개되었다가 지금은 역시나 같은 역자의 번역으로 민음사에서 재출간되었다.(그 외에도 중앙일보사 "오늘의 세계문학"으로 소개된 <말리크로와>가 역시 보스코의 작품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꺼내 보았더니 <집을 떠난 빠스깔레>와 <아이와 강>은 같은 내용이지만 삽화가는 서로 다르며, 특히 전자에는 "반바지 입은 당나귀"의 귀여운 모습이 묘사된 삽화도 있어서 각별한 재미를 전해준다. 반면 후자에는 "파스칼레의 노트"라는 제목으로 이 책에 나오는 주요 동물과 도구에 관한 삽화가 들어 있는데, 이것 역시 민음사 판본에만 있는 깜짝 선물이다. 오랜만에 책을 꺼내 뒤적이며, <반바지 입은 당나귀>가 무려 지금으로부터 사반세기 전인 1988년에 처음 소개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물론 내가 이 작품을 접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요즘은 이래저래 책을 펼칠 때마다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반세기 만에 다시 만난 이아생트가 한편으로는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서먹한 이유도 아마 그때문이리라.
[추가] 2014년 11월 초에 <반바지 입은 당나귀>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한 권으로 재간행되었다. 세 번째 갈아입은 옷인데, 이번에는 좀 더 오랜 수명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추추가] 10년이 더 지난 2024년 5월에 <반바지 입은 당나귀> 3부작의 마지막 권인 <이아생트의 정원>이 문지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다시 한 번 책장을 뒤져야 하나 싶어 난감하던 차에 딱 10년 전에 써 놓은 글이 있기에 다시 살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