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북펀드를 보니 휴머니스트에서 <시누헤 이야기>라는 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문득 예전에 헌책방에서 산 영역본 고대 이집트 문헌 선집(ANCIENT EGYPTIAN LITERATURE by Miriam Lichtheim. 3 vol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1-1978)이 기억나서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보았다.
구입 당시에는 표지가 밋밋해서 복사본인 줄 알았더니만, 다시 보니 종이 상태라든지 인쇄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미루어 원서 보급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절판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당장 고대 이집트 문헌에 대해 검색하면 맨 먼저 나오는 책 가운데 하나이니 신뢰할 만해 보인다.
뒤늦게 저자 이력을 검색해 보니 뜻밖의 사실도 드러난다. 루카치 전기를 비롯해서 사회주의 관련 저술을 여럿 내놓았던 저술가 G. 리히트하임(독일계 유대인이지만 런던 태생이므로 '게오르크'나 '게오르게'가 아니라 그냥 '조지'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의 여동생이 미리암 리히트하임이었던 거다.
남매의 아버지 리하르트 리히트하임은 독일 태생의 유대인으로 시온주의 운동에 깊이 관여하면서 여러 나라를 전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미리암은 오빠와 달리 이스탄불 태생이며, 히브리 대학을 거쳐 시카고 대학에서 이집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UCLA에서 근동 문헌학 강사로 활동했다.
그의 대표작 <고대 이집트 문헌 선집>은 1971년에 1권 "고왕국과 중왕국 시기", 1974년에 2권 "신왕국 시기", 1978년에 3권 "나중 시기"가 간행되었다. 전체 분량은 700쪽이며, <시누헤 이야기>처럼 짧은 작품은 전문을 수록했지만, <사자의 서>처럼 긴 작품은 일부 내용을 발췌해서 수록한 모양이다.
무려 기원전 19세기의 작품인 <시누헤 이야기>는 이 선집에서 제1권 말미에 다른 산문 작품들과 함께 들어 있는데, 본문만 계산하면 겨우 10쪽 분량이다. 이집트 국왕이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해외 원정 중인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서 다급하게 측근들과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때 왕자의 신하인 시누헤는 국왕 승하 소식을 우연히 엿듣고, 장차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야기될 혼란을 우려해 몰래 도망친다. 오늘날의 시리아에 도착한 그는 그곳 왕의 신하가 되고 결혼하여 자녀도 얻지만, 향수를 이기지 못하고 이집트의 왕(옛 상관인 왕자)에게 사면받아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대 문학임을 감안해도 상당히 짧고 심심한 내용이니, 막상 읽어보면 실망하는 독자도 없지 않을 듯하다. 북펀드 광고만 놓고 보면 마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2번째 책' 같지만, 단적으로 <길가메시 서사시>만큼 재미있진 않으니 그냥 보기 드문 원전 번역이라는 의의에만 주목하는 게 낫겠다.
한때 <람세스>라는 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비슷한 작품들이 몇 가지 따라 나왔었는데, 그중에 무려 <시누헤>라는 소설도 있었다. 지금 확인해 보니 동명의 가공 인물을 내세운 소설이라 이번의 번역서와는 무관해 보이지만, 이것도 무려 1945년 작이라니 <람세스>의 선배인 동시에 나름 고전인 셈이다.
<시누헤 이야기>라는 그림책도 나와 있다기에 확인해 보니, 이것도 이집트학 전공자가 원전 번역을 한 것까지는 맞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린이용으로 추가 각색까지 한 모양이다. 심지어 '파피루스 속의 이야기 보따리'라는 시리즈로 비슷한 원전 번역 이집트 그림책이 다섯 권이나 나와 있었다!
<람세스> 열풍 이후로도 한동안 극소수 개인 연구자를 제외하면 이집트학 전문가가 국내에 없었던 모양인데 (오죽하면 이집트학 분야 개론서를 비전공자가 번역한 것도 모자라 유사역사학을 덧칠하는 참사가 벌어졌을까!) 지금은 최소한 두 명 이상 활동하는 모양이니 이래저래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