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니 최근 전세 사기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 자살했는데 그 사연이 참으로 기구했다. 사건이 터지자 전면에 나서서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해결을 모색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한 사람이라는데, 정작 정부의 피해자 구제 대책에서는 몇 가지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탈락하고 말았다.


급기야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며 여차 하면 보증금 전액을 날릴 수 있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정말 비통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점은 그가 사망한 당일 오후에 가서야 생전에 제기했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구제 대상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통보가 도착했다는 점이다.


최대한 속도 내서 처리했는데도 그랬는지, 아니면 고의적이거나 비고의적이거나 간에 각종 실수와 태만과 무심과 악의가 겹치고 겹치면서 시일이 지체되어 그랬는지, 우리로선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남들에게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을 법한 몇 시간 차이로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는 결과만 알 뿐이다.


어쩐지 이 대목에서 발터 벤야민의 불운한 최후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프랑스까지 점령하자 유대인으로 체포 위협에 직면한 그는 국외 탈출을 도모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은 안내인을 따라 프랑스 국경을 넘고 스페인을 통과해 중립국 포르투갈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미완성 원고를 넣은 무거운 트렁크를 가지고 악전고투 끝에 산길을 지나 스페인의 작은 해안 마을 포르부에 도착한 도망자 일행은 경찰에 체포되어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게 된다. 불법 입국자를 내일 다시 프랑스로 돌려보낼 예정이라는 것이다. 절망한 벤야민은 그날 밤 숙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역시나 비통하고도 아이러니한 점은 그가 사망한 직후에 스페인 당국이 태도를 바꿔 프랑스에서 온 불법 입국자를 자국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그토록 성급한 판단만 없었더라면, 수개월 뒤 역시나 스페인을 지나 탈출에 성공한 한나 아렌트처럼 벤야민에게도 해외 도피의 희망이 생겼을 터이다.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사례 모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이토록 잔인한 운명의 장난이 사람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는 점이 딱할 뿐이다. 특히 현재의 사례에서는 나쁜 정책이 사람을 우울하게, 절망하게, 심지어 자살하게 만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현 정부뿐만 아니라 전 정부의 책임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다닐 만큼 두꺼운 얼음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침 전 정부의 임대차 3법 시행 4년째를 맞아 전세 보증금이 크게 오를 것 같다는 뉴스가 하루종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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