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사후에도 연이어 '신작'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며 한 마디 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사실 이런 식으로 저자의 유언을 무시하고 저서를 간행한 사례는 이번 한 번만이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게 되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라면 사망 100주기를 앞둔 카프카를 들 수 있는데, 미완성 원고를 파기하라는 유언을 친구 막스 브로트가 무시함으로써 <성>, <소송>, <아메리카> 등이 빛을 볼 수 있었다.
그에 못지 않게 유명한 사례로는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 출간을 둘러싸고 그 원고를 보관하던 출판사와 미망인이 법정 다툼까지 간 사례가 있다. 랜덤하우스 대표 베네트 서프의 회고에 따르면 저자는 사후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서야 공개하라고 신신당부했다지만, 미망인은 이 유언을 무시하고 저자가 사망하자마자 원고를 빼앗아 가서 다른 출판사에서 유작이라고 간행했다는 것이다.
거꾸로 저자가 간행을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원고를 사후에 유족이나 지인이 임의로 파기하여 논란이 된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이런의 회고록이다. 평소에도 문란한 사생활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니, 과연 어떤 핵폭탄이 들어 있을지 몰라 모두들 긴장했는데, 결국 사후에 유족과 지인이 한 자리에 모여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한 끝에 파기하는 쪽으로 결론내렸다고 전한다.
카프카의 경우, 그 결과만 놓고 보면 브로트가 유언을 무시한 것이 문학적으로는 오히려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육필 원고를 비롯한 카프카의 여러 유고가 브로트 사후 그의 여비서의 소유로 넘어가고, 이후 그녀가 원고며 편지 가운데 일부를 비밀리에 경매로 매각하고 수익금을 챙기면서, 그 윤리성에 대한 논란은 한층 뜨거워지고 말았다.
급기야 이스라엘 정부가 나서서 카프카 유고를 국외 반출하려던 여비서를 억류하는가 하면, 그녀의 사후에 해당 문서를 물려받은 딸들을 상대로 소송까지 걸면서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게 되었다. 결국 정부 승소로 카프카 유고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을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이 가져가게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자료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으니, 향후로도 논란은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 알라딘에서는 카프카 사망 100주기를 앞두고 직접 그린 그림을 수록한 책들에 대해 북펀드가 진행되고 있는데, 아마 그 그림 역시 앞에서 설명한 카프카 유고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차 하면 경매에서 개인에게 팔려나가 또다시 빛을 못 보게 되었던 자료이니 공개된 것이 다행이다 싶다가도, 카프카의 애초 의도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맞게 되는 셈이니 살짝 찜찜한 느낌도 없지 않다.
또 한편으로는 카프카 유고의 기구하고도 기상천외한 여정이야말로 '카프카스러운' 상황의 전형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고구마 잔뜩 먹은 듯한 부조리한 상황 서술이 특징인 저 유명한 소설가의 진정한 '유작' 같다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심지어 이 유작의 서술은 사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또는 전개되고 있으며 이른바 사이다 결말은 요원해 보이니 더욱 놀랍다고 해야 맞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