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소설 분야의 유명 저자 아이작 아시모프는 역시 만만찮은 명성의 동료 작가 로버트 하인라인이 사망한 후에 '유작'이 줄줄이 간행되는 것을 지켜보며 사실상 '죽어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 셈'이라면서 꼬집은 바 있는데, 나귀님이 보기에는 법정 스님 사후에 벌어진 일이야말로 이에 비견할 만하지 않나 싶다.
사후에 저서 절판 유언이 공개되고 잠시 설왕설래가 오가다가 출판사들이 마지못해 거기 따르기로 결정하면서 중고 책값 폭등 사태가 일어났는데, 비록 본인의 독창적인 사상까지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간디 이야기였다!) 손꼽히는 대표작이 저 유명한 에세이 "무소유"임을 감안해 보면 정말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기념 재단인가에서 저서의 전자책을 공개하고, 대중의 관심도 다시 수그러지며 몇 년이 흐르자, 지금은 아무리 절판본이라 해도 타계 직후처럼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는 경우는 드물어진 것 같다. 하긴 원래부터 스테디셀러라 수만, 어쩌면 수십만 부씩 팔린 책이니 그렇게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울 리야 없었으리라.
최근 운동화부터 텀블러며 각종 사은품까지 이른바 한정판을 구매해서 되파는 것이 영리한 재테크 취급을 받는 것처럼, 법정 스님 저서의 일시적인 가격 폭등 현상 역시 고인의 생애를 기리고 정신을 따르는 취지라기보다는 오히려 단기적 이익을 위한 재테크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의심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사실은 나귀님도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기행문과 불경 번역서는 몇 가지 갖고 있었지만, 샘터에서 나온 에세이 전집을 갖고 있지는 않은 상태에서 품절 대란을 겪고 보니 뒤늦게 아차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이전까지는 전국 어느 헌책방에서나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책이어서 급히 구입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신작이 나오면서 디자인도 바뀌기에, 굳이 구입하려면 나중에 (즉 타계 후에) 나오는 최종판으로 한 질쯤 마련해 놓는 편이 오히려 나으리라 생각해서 미뤄두었는데, 갑자기 절판 유언과 가격 폭등 소식을 들으니 뭔가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 갑작스러운 조치가 나왔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고인이 남긴 말마따나 생전의 말빚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면 차라리 재간행을 애초부터 마다하며 조용히 절판시키는 편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대중의 뒷공론을 우려하여 사리 수습도 하지 말라던 양반이었는데, 정작 저서 절판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나 뒤돌아보니, 그토록 매끄럽지 못하고 오히려 퉁명스러웠던 절판 조치야말로 단기적으로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속세의 탐욕과 집착을 만천하에 드러낸 반면교사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어찌 보면 '무소유 대란'의 결과로 훗날에는 '풀소유'라는 유행어가 나온 것처럼 보이니까.
그런데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법정 스님도 앞서 말한 하인라인이나 아시모프(그의 사후에도 저 동료만큼 많은 '유작'이 나왔다!) 못지않게 사후에도 쉬지 않는 저자의 반열에 들었다고 할 만하다. 비록 대표작은 절판되었지만 미공개 강연이나 편지나 선집은 꾸준히 간행되었고, 이번에도 또 하나 나오기 때문이다.
저서 절판에 대한 고인의 의지를 전국민이 아는 상황에서 굳이 책을 줄줄이 간행하는 출판사에서도 합당한 명분이야 갖고 있겠지만, 나귀님 같은 평범한 독자로선 자칫 이걸 샀다간 저자의 의도에 정면으로 반하는 '풀소유'의 죄를 범하는 셈은 아닐까 싶어 살짝 주저되는 마음도 없지 않기에 찜찜해서 한 마디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