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슈클라의 책을 구입한 것은 문재인 정권 당시 이른바 조국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법무부 장관 내정 직후 각종 의혹이 쏟아졌는데도, 과거의 자신만만하던 모습과는 달리 기자 회견이며 인사 청문회에서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변명으로만 일관하는 그의 위선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라딘 중고샵에서 <일상의 악덕>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무려 잔혹성, 위선, 속물근성, 배신, 인간혐오처럼 사소하지만 짜증나는 문제에 대해서 논의한다기에 지금 상황에서 딱 읽기 좋은 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내 예상과는 영 다른 내용이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슈클라는 일상의 악덕을 너무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려는 것이었다. 위선과 속물근성은 짜증을 불러 일으키게 마련이지만, 거기에만 집착하다 보면 인간혐오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 결과 푸틴이나 트럼프처럼 화끈하지만 실상은 잔혹한 인물이 선거로 집권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논문 제목이기도 한 "잔혹성을 우선시하기"라는 원칙을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이것이야말로 "두려움을 토대로 삼는 자유주의"라는 또 다른 원칙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위선 같은 사소한 악덕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다 보면, 자칫 잔혹성이란 큰 악덕을 과소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잔혹성을 우선시하기"는 몽테뉴의 원칙이기도 했다. 그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살벌했던 시기 중 하나였던 종교 전쟁 당시에 살았음을 감안하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 잔인무도한 성격이기보다는 차라리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성격에 그치기 바란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물론 위선과 속물근성이라고 해서 항상 받아들이기가 더 쉬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욱 분노와 환멸을 자아내는 것이 아닐까. 주디스 슈클라라고 해서 그런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으로 상황이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뿐이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었는데, 이후 지금까지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슈클라의 주장이 지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장 지난 한국 대선이며 최근 미국 대선을 보아도 현 정부와 여당의 무능과 위선과 변명에 질색한 유권자가 오히려 직설적 말투와 과감한 행동이 돋보이는 다른 후보를 선택했으니까.


문제는 그렇게 당선된 윤석열과 트럼프 같은 인물이 알고 보면 무지막지하게 잔혹한 성격이어서, 각자의 실책에 대해서 위선적인 변명조차 거부하고 도리어 무력 대응까지 불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두 대통령 모두 탄핵의 위기에 지지자를 부추겨 법원과 의회 같은 헌법기관을 공격하는 만행을 자행함으로써 입증한 상태다.


푸틴도 마찬가지인데, 옐친 정부에서 정보 기관 출신의 무명 관료였던 그가 갑작스레 대권을 잡게 된 것 역시 이전 정부의 무능과 부패와 위선과는 무관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여러 차례 과감한 조치로 화끈한 성격을 드러낸 것 역시 대중에게는 열광 요소였을지 몰라도, 결국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 전세계를 고통에 빠트렸다.


하지만 슈클라의 "잔혹성을 우선시하기" 원칙에는 뚜렷한 한계도 있으니, 누가 잔혹한지 아닌지를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선택한 유권자는 불과 수년 뒤에 비상 계엄이나 법원 습격이 벌어질 줄 미리 알았을까? 아마 그때 이재명을 선택한 사람조차도 이것까진 몰랐으리라.


거꾸로 지난 대선에서 잔혹하다는 인상을 준 인물은 윤석열이 아니라 오히려 이재명이었다. 그간 제기된 각종 의혹을 통해 위선을 넘어 잔혹성까지도 그 속성으로 간주되다 보니, 로봇 개를 밀쳐 넘어트리는 시연조차 부정적인 여론을 자아낼 정도로 나쁜 인상이 각인되어 결과적으로는 대선 패배라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이 아닐까.


지난 대선이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평가를 얻은 것도 양대 후보 모두가 잔혹성, 위선, 속물근성, 배신 같은 일상의 악덕에 모조리 연루된 혼란스러운 상황 때문이었을 법하다. 그 결과만 놓고 보면 최우선적으로는 정권 심판의 목적이 있었겠지만, 어찌 보면 그 시점까지 부정적인 면모가 비교적 덜 드러난 인물이 승리한 셈이다.


따라서 "잔혹성을 우선시하기" 원칙도 현실에서 깔끔히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다. 당장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거대 양당 모두 현재 상황에서는 강성 후보의 등판 가능성이 크니, 누구를 뽑더라도 잔혹성은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선거가 아니라 도박이라 해야 하지 않을지...




[*] <일상의 악덕>은 현재 절판인데, 비전공자 번역인 관계로 해설부터 핵심을 짚지 못하고 두루뭉실한 편이고 오역도 없지 않으니, 재판을 간행하기보다는 차라리 번역자를 교체해서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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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로 <맹자>에 나오는 소/양 교체와 백성/사직/임금 관련 인용문을 연이어 접하고 나니, 그 책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예전 명문당의 단권본 사서삼경에 수록된 번역으로 읽다 보니 문득 최근의 번역은 어떤가 궁금해서 검색한 결과, 마침 책세상 고전문고 가운데 하나인 <맹자>를 이미 갖고 있음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다. 


번역자는 정치사상사 연구자라 하는데 (비록 일부 역주에서는 살짝 의문도 없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무난하고 자연스러운 문장을 구사하는 듯하다. 책세상 고전문고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역주와 해설 외에도 참고 자료를 여럿 추천해 두었다는 점인데, <맹자>에서는 이미 갖고 있는 김승혜의 <원시유교>와 소공권의 <중국정치사상사>를 언급한 점이 흥미로웠다.


소공권의 책을 보니 맹자와 순자를 한 장에 엮어서 설명했는데, 비록 맹자의 사상에 파격적으로 민주주의의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현대의 민주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내용이므로 과대평가는 금물이며, 아울러 전국 시대 말기의 혼란한 정치 상황이라는 배경을 감안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매우 지당한 주장을 내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유독 흥미로운 점은 역자 서문에서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최명이 공역자인 서원대 정치학과 전 교수 손문호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었다. 즉 본래 최 교수가 1부만 번역해서 간행했던 것을 손 교수의 협조로 2부까지 완역하게 되었는데, 출간 직전에 손 교수가 당시 몸담고 있던 서원대 재단 비리와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해직되었다는 이야기다.


최 교수는 개인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의연했던 손 교수의 모습에 감탄한 듯 "정의가 결국은 승리한다는 가르침이 바로 사상의 역사가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손문호 교수의 조속한 복직을 바라면서"라고 역자 후기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내가 가진 책은 무려 사반세기 전인 1998년 초판이어서, 혹시 손 교수 관련 후일담이 있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했다.


서원대는 원래 청주사범대학이었던 학교가 1988년에 이름을 바꾸며 생겼는데, 이후 20년간 총장 8명이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흑역사를 겪었다. 특히 1998년에 전직 이사장이 학교 재산을 횡령해서 국외 도피에까지 나섰던 사건이 절정이라 할 만했는데, 아마도 손 교수가 재단 비리와 싸우다가 해직되었다는 사건도 이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지금 와서 '서원대 + 손문호'로 검색해 보니 희한하게도 '전 총장'이라는 직함이 함께 나온다. 알고 보니 2003년에 서원대 재단이 바뀌면서 제9대 총장으로 취임한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48세의 젊은 총장의 등장 자체가 파격이어서 큰 기대를 모았다고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재단 영입의 일등공신이어서 선거 없이 지명된 것이 의아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후의 관련 기사를 보면 애초의 큰 기대는 금세 사라져 버리고 혼탁한 상황이 펼쳐진 듯하다. 2006년에 교수회에서 총장 사퇴 결의안이 통과되며 또 갈등이 시작되었고, 2007년에 서원대 역사상 최초로 총장 임기를 완주하고 평교수로 돌아갔지만, 2008년에는 이사장의 공금 횡령 혐의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고, 결국 2011년에 재차 파면되었다.


이후 소송을 제기한 모양이지만, 2012년에 파면 처분은 정당하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는 기사를 마지막으로 관련 보도는 찾을 수 없었다. 이후 조선 시대 문인들의 서한을 엮은 편역서를 한 권 내놓은 모양인데, 거기 나온 저자 약력을 보니 고향 경주에 머무르면서 한문을 가르치고 집필 작업을 한다는 등 교직과는 거리를 둔 채로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구체적인 맥락이며 사정까지는 모르는 상태이지만, 여러 언론 기사를 통해 드러난 바를 가지고 판단하자면, 한때나마 사학 비리에 맞서 싸우던 사람이 훗날 또 다른 사학 비리에 관여해서 체면이 실추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심지어 첫 번째 해직에 대해 항변하는 동료 학자의 말이 고전 명저의 역자 서문에까지 박제된 상황이니 더 민망스럽지 않겠나.


소공권의 <중국정치사상사>는 그 분야의 명저답게 사반세기 뒤인 지금까지도 (무려 원래 정가의 2배 가격으로 가격이 인상되어) 여전히 간행 중인데, 과연 초판 역자 후기에서 최 교수가 손 교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학교의 위상과는 상반되게 허술하기로 소문난 그 대학 출판부의 성격상 수정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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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개와 고양이 대학살에 대해 알아보려다 보니, 문득 <맹자>에서 양혜왕이 제물로 끌려가던 소를 딱하게 여겨 양으로 교체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양쪽 모두 생명인데도 한쪽은 중히 여기고 한쪽은 경히 여긴 셈이니,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동물 애호가들의 기본 입장과도 유사하다.


물론 <맹자>의 문맥에서는 값비싼 소를 저렴한 양으로 교체한 것을 놓고 인색하다는 소문이 퍼져 왕이 당황했다고만 나오며, 맹자 역시 왕의 측은지심은 인정하면서도 그처럼 좋은 의도가 좋은 정치라는 형태로 국가와 백성 같은 더 넓은 대상에게까지 적용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질책한다.


그러다가 <풍도의 길>에서도 이탁오가 <맹자>에 나오는 "백성이 우선, 사직이 다음, 군주가 마지막"이라는 구절을 가져다가 풍도를 평가했다는 설명이 나오기에, 정말 오랜만에 <맹자>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명문당 사서삼경 수록본으로 읽다가, 다시 책세상의 발췌본으로 읽었다.


앞에서 언급한 소와 양 일화의 주인공인 양혜왕과 맹자의 문답 내용에서는 전국 시대의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상당히 급진적인 민본주의가 나타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적으로 맹자는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시종일관 왕을 다그치고, 심지어 역성혁명까지 옹호하는 판이니까.


나중에 가서는 군주가 천명을 받들어 나타난다는 사고방식이 확립되었지만, 맹자도 종종 언급하는 요순과 하은주 3대의 역사만 <사기> "본기"에서 살펴보아도 군주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경우는 별로 없었고, 무도한 군주를 무력으로 쫓아내는 역성혁명이 오히려 기본값이라고 볼 만하다.


잘못된 정치로 백성의 지지를 잃어버린 군주는 이미 군주라고 할 수 없으니 쫓아내도 무방하다는 상당히 과격한 주장을 맹자가 또 다른 군주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내놓을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이전까지 역사적 선례로 미루어 쿠데타조차도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정치사를 연구한 소공권의 설명에 따르면, 맹자가 이처럼 파격적인 발언을 연이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전국 시대의 생활상이 이전보다 더 피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누가 되든 간에 하루빨리 다툼이 끝나고 안정이 오기를 바란 까닭에 군주 앞에서 왕도 실천을 촉구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맹자의 민본주의를 현대의 민주주의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소공권의 설명이지만, 그래도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에게서 오늘날의 정치 제도와 맥이 닿는 듯한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최근의 정치 상황도 있고 하니 말이다.


물론 그토록 간절한 바람에도 맹자 역시 선배인 공자와 마찬가지로 등용되지는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후의 중국 역사도 비록 절대 군주가 통치하는 통일 국가가 생겨났다 사라지고, 역성혁명도 심심찮게 일어났지만 정작 두 사상가가 제시한 이상에는 한 번도 도달한 적이 없었으니.


그나저나 <맹자> 번역본에서 참고 자료로 추천한 소공권의 <중국정치사상사>를 오랜만에 다시 꺼내 뒤적이다 보니, 무려 1천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이전에 구입하자마자 발견했던 의아한 대목이 하나 기억났다. 강유위의 <대동서>를 해설하던 중에 진지함이 지나쳐서 낭패를 본 경우였다.


강유위는 <대동서>에서 국가 간의 병탄과 전쟁은 끝이 없으리라 지적하면서 중국보다 큰 세계, 또 세계보다 큰 우주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지구 너머에도 국가가 있을 터이니, "화성과 인류의 지구가 전쟁한다면 피가 수천만 리에 흐를 것이고 수천만 명이 죽을지 모른다"(1123쪽)고 썼다.


그런데 소공권은 어째서인지 이 대목에 다음과 같은 각주를 덧붙였다. "그것은 오해가 분명하다. 서양인들은 화성을 MARS라고 이름한다. 그것은 또 로마인이 전신(戰神)을 칭한 것이었다. 강유위는 그로 말미암아 화성에서 국토를 둘러싼 전쟁이 일어난다고 오해한 것일까."(1123쪽, 주 53)


하지만 강유위는 국가 간의 알력이 보편적임을 강조하기 위해, 가상의 행성인 화성과 실제의 행성인 지구의 전쟁을 상상해서 예시한 것뿐이다. 굳이 우주까지 갈 것도 없이, 문학 작품에 나오는 가상의 나라든지, 아니면 아예 허구의 나라를 예로 들어도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소공권의 문제는 비유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진지한 반론을 제기했다는 점인데,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개그를 치자 다큐로 받은' 격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런 오해의 흔적이 나중에도 수정되지 않고 원서에 남아 있다가 번역서로도 옮겨 왔으니 더욱 의아하다. 정말 아무도 몰랐던 걸까?


화성인이 나오는 소설로 가장 유명한 H. G. 웰스의 <우주전쟁>은 1898년에 간행되었고, 강유위의 <대동서>는 1901년에 완성되어 저자 사후 1935년에야 간행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당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웰스의 소설을 강유위가 생전에 직간접적으로 접해 보았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다.


물론 웰스 이전에도 천체 관측에서 비롯된 억측과 과장을 통해 화성인의 존재가 일반 대중의 뇌리에 통념으로 자리잡은 19세기의 유산일 수도 있고 말이다. 분명한 점은 소공권이 학자로서는 엄밀했을지 몰라도 상상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니, 새삼스레 사상가와 학자의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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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빙허각 이씨에 관한 글을 쓸 때 어디 두었는지 몰라 끝내 찾지 못해서 아쉬웠던 <규합총서>를 뒤늦게 찾아냈다. 분명 두어 번 훑어본 책장이었는데, 마음이 급했나 막상 필요할 때에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 책등인데, 필요 없게 되자마자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니 한심한 일이다.


내가 가진 <규합총서>는 한학자 이민수가 번역해서 1988년에 간행한 것인데, 서두의 해제 말미에 더 먼저 나온 정양완의 보진재 번역본을 거론하며 그 내용을 많이 참조했다고 적은 것으로 미루어, 아무리 한학자라도 요리나 생활에 관한 내용까지 훤할 수는 없으니 도움을 받은 듯 보인다.


<규합총서>는 전반부가 요리 관련 내용이고, 후반부는 생활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꿀팁'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중에는 태아의 성별을 알아내고 심지어 결정하는 방법이라든지, 술을 끊게 만드는 약 제조법처럼 허황되고 비과학적인 듯한 속설도 적잖이 포함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바람[風]과 사이[間]라는 글자를 적어 벽에 붙이면 모기가 사라진다든지, 숫놈 쥐를 잡아 음경을 잘라 풀어주면 다른 쥐를 깡그리 잡아 죽인다든지, 말굽을 깎아 놓아두면 바퀴벌레가 사라진다는 등의 내용은 굳이 시험해 보지 않아도 그 신빙성이 충분히 의심될 만한 내용이다.


그 당시의 다른 책도 마찬가지이지만 <규합총서>에도 다른 문헌에 나온 구절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한 대목이 여럿 포함되었다. 따라서 음식 관련 내용처럼 실제 확인했음직한 것뿐만 아니라, 위의 사례처럼 그저 '카더라'나 '썰'에 불과한 내용 역시 적잖이 포함되어 있음을 감안해야 되겠다.


예를 들어 개고기 조리법에서 개를 잡을 때에는 칼로 찌르지 말고 목을 매달라 설명한 것이라든지, 삶은 개고기는 칼로 썰지 말고 반드시 손으로 찢어야 한다고 설명한 것은 경험에서 비롯된 실용적 조언일 수 있지만, 누런 개가 여성에게 좋고 검은 개가 남성에게 좋다는 이야기는 미심쩍다.


그나저나 개 삶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와 유사한 고양이 삶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고리키의 에세이에서 우연히 접했던 것이 기억난다. 한 번은 고리키가 체홉을 방문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평소 작품 집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삼갔던 선배 작가가 슬며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있잖아요. 한 여선생 이야기를 써 볼까 하는데요. 무신론자에 다윈을 열렬히 숭배하고, 민중들의 편견과 미신에 대항해 싸워야만 한다고 굳게 믿는 여자이지요. 그런데 그런 여자가 밤 12시에 욕실에서 검은 고양이를 삶아요. 고리뼈를 얻으려는 거죠. 그 뼈가 남자를 끌어당기고 남자 마음에 사랑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니까."(<가난한 사람들>, 183쪽)


인간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측면을 신랄하게 꼬집는 내용으로 짐작되는데, 실제로 작품화되지는 않고 체홉이 남긴 메모로만 전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고리뼈'는 '꼬리뼈'의 오타가 아니라 척추뼈 중에서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부분을 가리키는 모양인데, 고양이의 '골반' 부분인 듯하다.


희한한 내용이다 싶어 구글링해 보니 '검은 고양이 뼈'는 '후두' 주술에서 일종의 부적처럼 사용되는 모양이다. 이 대목에서 '후두'(hoodoo)가 '부두'(voodoo)와 다르다는 것은 나귀님도 처음 알았는데, 이전에 몇 번인가 그 단어를 접했을 때에도 단순히 '부두'의 오역/오타라고 생각했었다.


후두는 부두처럼 역시나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를 중심으로 유포된 주술 위주의 신앙 체계라고 한다. 어제 쓴 글에서 언급했던 <아내가 마법을 쓴다(Conjure Wife)>라는 소설의 원제도 후두의 여성 주술사(conjure woman)라는 명칭에서 유래했다. 대략 '마녀' 대신 '마줌마' 정도 되려나.


그렇다면 체홉이 언급한 검은 고양이 뼈 주술도 아프리카에서 유래하여 미국의 후두를 거쳐 러시아까지 전래된 것일까? 구글링해 보니 후두와는 무관하지만 내용은 비슷한 주술이 유럽에도 있어서 독일을 거쳐 캐나다로 전파된 바 있다니, 체홉이 언급한 주술은 후두와는 무관할 법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후두의 '검은 고양이 뼈' 주술에 관한 보고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남긴 인물이 바로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 조라 닐 허스턴이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저명한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의 제자로서 미국 흑인의 민속을 연구했는데, 그중에는 후두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었다.


실제로 허스턴의 기행문 <노새와 인간>을 보니 '검은 고양이 뼈'를 얻는 과정을 실제로 체험했다고 나와 있었다. 즉 저자가 만난 후두 주술사가 '남의 눈에 안 보이게 하는 효험'이 있는 부적이라며 추천하자, 그의 지시를 따라서 직접 검은 고양이를 잡아서 솥에 넣고 삶았다는 이야기이다. 


우선 허스턴은 주술사의 지시대로 24시간 굶으면서 특수 제조한 술만 마셔서 몸에 감각이 없고 정신만 멀쩡해졌다. 그 상태로 한밤중에 밖에 나가 검은 고양이를 찾아내 잡았고 (이게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회고한다) 물이 펄펄 끓는 솥에다 고양이를 산 채로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이후 허스턴은 주술사의 지시대로 고양이를 향해 저주를 내렸고, 그러자 고양이는 세 번쯤 크게 울더니 이내 잠잠해졌다고 한다. 그녀는 다 삶은 고양이에서 발라낸 뼈를 하나하나 직접 맛보며 쓴맛 나는 것을 골라냈고, "날이 밝기 전에 작고 하얀 뼈를 하나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고 적었다.


인권을 동물권으로까지 확대적용하자는 주장마저 나오는 요즘 같으면 허스턴은 물론이고 체홉이나 고리키, 심지어 빙허각 이씨조차도 동물 학대와 조장 및 방조 혐의로 누군가에게 고발당하지 않을까. 심지어 여성계와 교육계와 집사계에서도 해당 집단을 폄하했다고 노발대발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언젠가 <던전밥>에 관해서 쓴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개고기는 음식 문화의 일부분이니, 오늘날 기호가 많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폄하하는 것은 곤란하다. 고양이 주술은 훨씬 기묘하지만, <톰 소여의 모험>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했으니 한때나마 흔했던 미신이 아니었을까.


물론 빙허각 이씨나 허스턴이 지금까지 유명한 것은 단순히 개와 고양이 삶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서만이 아닐 것이다. 비록 엉뚱하고 미심쩍은 이야기도 적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시대의 생활과 심성에 대해 가감 없는 증언을 남겼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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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라이버가 1953년에 간행한 공포 소설 <아내가 마법을 쓴다>의 주인공은 미국의 소도시에 자리한 대학에 재직하는 젊은 교수다. 예쁜 아내와 안정적인 일자리를 이미 가졌고, 조만간 승진까지 앞두고 있어서 정말로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이상한 일에 연이어 휘말리게 된 것은 겁도 없이 아내의 화장대를 함부로 뒤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내가 외출한 사이에 무심코 화장대 서랍을 열어본 남편은 액막이에 사용하는 갖가지 주술 용품이 즐비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를 추궁하니, 여자는 모두 마법을 쓰게 마련이고, 자신도 마찬가지라는 식의 눈물 섞인 변명이 나왔다. 이성을 신봉하는 지식인임을 자부하는 남편은 미신에 현혹되지 말라고 타이르고, 아내도 그 말을 받아들여 주술 용품을 모두 버린다.


그런데 아내가 마법을 포기하고 액막이를 제거하자마자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운이 남편에게 연이어 닥친다.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인간 관계에서도 연이어 말썽과 갈등이 생겨나자, 남편은 뒤늦게야 아내의 주술이 자신의 경력을 유지해 주었음을 깨닫게 된다.


머지않아 두 사람을 포위한 적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남편의 대학 동료들인 조교수와 부교수와 학과장의 아내들도 저마다 주술을 이용해 남편들의 성공을 도모했으며, 강력한 경쟁자인 주인공 부부에게 빈틈이 생겼음을 알자마자 합세해 총공세에 나선 것이다.


결국 남편은 주술에 효험이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뛰어난 주술사인 아내를 보조함으로써 동료 부인들의 공격을 저지하며 차례대로 굴복시킨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적수인 학과장 부인과의 치열한 대결에서 아내는 결국 영혼을 빼앗기고 만다.


여자가 마법을 쓴다는 이야기는 고대부터 전해지니 그리 놀랄 것도 아니다. 당장 주기적으로 맞이하는 생리 현상도 '마법'이라 지칭하고 있으니, 마녀 사냥을 비롯해서 역사 내내 여성에 대한 박해와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잡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과 마법사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잘 아는 페미니스트 문학의 대모 어슐러 르귄조차도 남자 마법사에 비해 여자 마법사, 즉 마녀는 더 저열하고 악랄하며 음험한 존재로 줄곧 묘사해 왔으니, 이쯤 되면 여자와 마법의 조합이야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여자들은 마법 능력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화장대와 싱크대처럼 자신들의 고유 영역으로 간주된 공간에 그 무궁무진한 능력을 압축해 넣어두었다가, 화장이나 요리나 인테리어처럼 지극히 무해해 보이는 활동으로 위장해 은근슬쩍 실천해 왔다.


예를 들어 여자가 커튼을 바꾸거나, 가구를 옮기거나, 화분이나 소품을 배열하는 일 역시 주술 행위의 일환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싱크대를 어지르거나, 냉동실의 저 비닐 봉지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아내가 짜증을 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상에 나온 지 무려 70년이 넘은 저 소설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된 것은 당연히 현직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 때문이었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적어놓는가 하면, 무려 무속인을 멘토로 삼았다는 등의 주술 관련 뉴스가 줄줄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흥미를 끌었던 대목은 물론 대통령 후보 배우자가 각별히 주술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는 점인데, 박사 학위 논문부터 무려 '운세'에 대한 내용이고, 저 유명한 YUJI 논문 역시 '운세 콘텐츠'에 대한 내용이어서 양쪽 모두 대놓고 주술을 주제로 삼았다.


심지어 자질 여부를 놓고 숱한 논란이 이어졌음에도 현직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보면, 그 배우자의 주술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외부 전문가인 각종 무속인까지 영입함으로써 그 파괴력을 한층 높였던 것이 승리의 요인은 아니었을까.


물론 이것은 어느 한쪽의 문제만도 아니었던 것이, 민주당 대선 후보의 부인 역시 평소에 점을 많이 보러 다녔다는 증언이 무려 그 아들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한국 여성 사이에서 페미니즘 못지않게 주술 능력이 보편화된 증거라고 하겠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배우자를 중심으로 숱한 논란에 시달리다가 결국 비상 계엄이라는 자충수를 두고 탄핵과 체포까지 당하게 되었으니, 나귀님이 보기에는 그 배우자의 액막이 주술이 어딘가 교란된 것이 가장 큰 이유는 아닐까 추측된다.


일각에서는 갑작스러운 집무실과 관저 이전으로 풍수적으로 액운이 낀 것은 아니냐고 추측하지만, 그 배우자의 탁월한 주술 능력을 감안하면 상당히 견고하게 구축해 두었을 각종 액막이가 단순히 이사 몇 번 했다고 깨지거나 흔들렸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따라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할 만한 불안 요소는 바로 현직 대통령 본인이다. 평소에도 워낙 제멋대로이고 독불장군이어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데, 심지어 비상 계엄 발표 때도 국무위원에게 상의조차 하지 않았다니 평소 성격을 알 만하다.


결국 아내가 알뜰살뜰 마련한 각종 주술 도구를 남편이 멋대로 내다 버렸든지, 아니면 아내가 교묘하게 배치해 놓은 가구와 화분과 접시와 식칼의 위치를 남편이 함부로 옮겨 버렸든지 해서 사사건건 방해를 하다 보니 스스로 올가미를 조이게 된 것이 아닐까.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는 최근 두 번이나 있었던 공수처의 체포 시도에서 나타난 상반된 결과이다. 1차 시도 때에는 완강한 저항으로 절대 뚫리지 않고 버틴 저지선이 2차 시도 때에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져서 체포조의 진입을 허락해 버리지 않았나.


새벽부터 뉴스를 보던 나귀님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또다시 남편이 아내의 화장대를 뒤졌거나, 아니면 싱크대를 어질렀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뉴스에서 체포 직전 샌드위치를 직접 만드느라 부산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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