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데쳄버 이야기
악셀 하케 / 대원미디어 / 1996년 1월
평점 :
절판


데쳄버(12월이란 뜻) 왕은 손가락만한 크기의 왕으로 책장 뒤편에 산다. 왕과 왕비가 껴안고 창에서 뛰어내리면 바닥에서 튕겨져 올라가 밤하늘로 올라간단다. 이때 별 하나를 따와 침대에 넣어놓으면 다음날 한 사람이 누워있게 된다. 그는 다 자란 성인의 모습이며,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줄 안다. 세월이 지나면 그는 크기가 작아지고, 그가 머무는 방도 작아지고, 기억이 지워지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진다. 결국 크기가 아주 작아져 사라진다.

자라면서 아는 것이 많아지는 우리는 외부를 바라본다. 자라면서 아는 것이 적어지는 데쳄버 왕은 자신의 내부를 바라본다. 데쳄버 왕의 이야기를 읽으니, 침몰하는 배에서 구명보트에 사람을 태울 때 유럽에서는 어린아이부터 태우지만 인디언들은 노인부터 태운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인간은 채워지고 많아지다가 잃어가고 지워져서 늙는 것을 싫어하나 보다. 데쳄버 왕은 처음부터 잃어가고 지워지기 때문에 늙어가는 것을 편안히 받아들이나 보다. 데쳄버 왕처럼 늙어가는 것을,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자신을 비워내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데쳄버 왕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보이는 것만큼 큰가, 느끼는 것만큼 작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 지음 / 자유문학사 / 1989년 10월
평점 :
절판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집이다.

자유로운 성욕의 추구가 건강한 삶을 만든다는 주장이 계속된다. 그의 주장은 종종 지나쳐서 부부 삶에서 중요한 건 대화, 식사, 성생활인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성이요, 다음이 식사이고, 마지막이 대화라는 주장도 한다. 대부분 남성은 새디스트, 여성은 매저키스트 성향이 있다 주장하기도 한다.

마광수 교수는 자신에게 손톱에 대한 페티쉬가 있단다. 길게 손톱을 길러, 검은색, 파란색, 금색같은 야한 색을 칠한 손톱을 보면 온몸에 전율이 인다고 한다. 글쎄, 이것이 변태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유명한 시를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분석한 부분도 재미있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복종, 님의 침묵에서 매저키스트 성향을 읽어내는 것이 은근히 설득력 있었다. 특히 한용운은 공식적으로는 불교 개혁론자이며 독립운동가인 강한 남성이기에, 그의 내면에는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매저키스트가 존재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육체의 욕망에 솔직해지자는 마광수 교수의 말에 동감한다. 윤리와 점잖음에 욕망을 숨기고, 뒤로는 온갖 추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을 그만두고, 성에 대해서 개방하고, 솔직해지면서 건강한 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새디스트나 매저키스트 성향은 아무리 생각해도 변태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가 - 언젠가 저 길을 가보리라!
이지상 지음 / 북하우스 / 2003년 2월
장바구니담기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사회나 어른을 탓할 것이 아니라 저의 성급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생이란 머릿속에서 요리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온몸으로 살아가며 조금씩 알아가는 길고긴 여정인데 말이지요.
그 시절, 삶과 공부에 대한 완벽한 이유와 의미를 성급하게 찾으려 했던 저는 당연히 혼란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쪽

불안한 미래야말로 사람을 싱싱하게 하는 법.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정 속에서 사람은 늘 새롭게 태어난다. -.쪽

저는 그 몰락한 폐허에서 제 꿈을 반추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는 체 게바라가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쪽

처음엔 좋아서 했던 일이 자꾸 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됩니다. 어느 분야나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겁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고민을 푸는 '지혜'가, 저는 '도'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그러나 저는 산 속에서 도를 닦는 것 못지 않게, 이런 생활 속의 사소한 문제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노력도 바로 도를 닦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당당히 말하고 싶군요. -.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구판절판


그러니 이제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때의 그와 그때의 나를 이제 똑같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똑같이 말입니다. J, 실은 그를 용서하는 일보다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예감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오늘도 저를 그 기억의 언저리에서 맴돌게 하는 이유겠지요.-.쪽

한 사람을 사랑하는 작은 사랑 없이 큰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합니다. 위선이 되기 쉽지요. 작은 사랑만 보고 큰 사랑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이기적이 되고 맙니다. 저는 그래서 감남주 시인의 시를 믿었고 그를 존경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쪽

그래도 당신은 내게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군요. 그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고,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쪽

나이를 먹어 좋은 일이 많습니다. 조금 무뎌졌고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그렇습니다. 이젠,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말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고통이 와도 언젠가는, 설사 조금 오래 걸려도, 그것이 지나갈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문득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학대가 일어날 수도 있고, 비겁한 위인과 순결한 배반자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다고 꼭 그대를 내 곁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쪽

잠도 오지 않고 배도 고파 냉장고를 뒤적이는데 찬장 속에 먹다 만 소주 반 병이 보였습니다. 남아 있는 소주를 작은 잔에 따랐지요. 무언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외로움에 대한 공포였을 것이고, 쓸쓸함이 그 끝으로 내려가 스스로 끝장을 내는 소리 같기도 했지요. 혼자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의 절정. 저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잘했어, 참 잘했어.
그렇게 밤을 보낸 후, 저는 다시는 그런 감정과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비슷한 순간이 또 있었겠지만 뭐랄까, 그때 그 소주 반 병으로 강력한 예방주사를 맞았다고나 할까요? 그 후로는 혼자여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쓸쓸함과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참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J, 되돌아보면 진정한 외로움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후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거리를 기웃거리는 외로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해지려고 애쓰다 보면 언제나 외롭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럴 때 그 외로움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줍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당하면 외로움이고 선택하면 고독이라고. 우리는 한참 웃었습니다만 외로우니까 글을 쓰고, 외로우니까 좋은 책을 뒤적입니다. 외로우니까 그리워하고 외로우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어떤 시인의 말대로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J, 그래서 저는 늘 사람인 모양입니다.-.쪽

신이 저를 사랑하시고 제가 진실에 가까이 근접하기를 원하셨다면 고만고만한 행복에 제가 머무르도록 허락하셨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자 할 때, 불완전만큼 더 큰 동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쪽

제가 처음 읽고 매혹당한 소설 '열정'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진정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쪽

그분의 경험에 의하면 식물이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당히 결핍되어 있는 환경에서라고 합니다. 너무 결핍되면 말라버리지만 적당히 결핍되면 아름다운 꽃도 피우고 열매도 잘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베고니아 화분을) 거기다 가져놓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는 물을 주지 않는 고통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집에 돌아와 겨우 말라죽지 않을 만큼만 물을 주었습니다. 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열흘쯤 그런 날들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느 한숨을 쉬며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내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1학년을 퇴학당한 토토가 '도모에 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교장 선생님은 4시간동안 토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후 토토의 입학을 허락한다. 도모에 학원은 전철을 교실로 사용하며, 정해진 시간표 없이 아침에 학생들이 해야 할 모든 과목의 과제를 칠판에 제시하면 학생들이 하고싶은 것부터 자유롭게 공부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수업을 하기도 하고, 벌거벗고 수영을 하기도 하고, 오후에는 근처의 신사를 산책하기도 한다. 토토가 화장실에 빠진 지갑을 찾기 위해 정화조를 온통 퍼내고 있을 때도 교장선생님은 하던 일을 끝내면 원래대로 해 놓으라는 이야기만 할 뿐 토토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는다. 이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도모에 학원에 불이 난다. 교장 선생님은 불타는 학교를 보면서 새로운 학교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충만해있다. 하지만 작가의 후기를 보면 전쟁 때문에 새로운 학교를 만들 것이라는 교장 선생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토토는 작가의 어린시절 모습으로, 작가는 일본 TV나 라디오에서 유명한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기숙의 독후감 때문에 읽어야지 생각했던 책이다. 토토의 모습을 보면서-학교 수업 내내 창가를 서성이거나 집 울타리 밑을 기어다닌다던지-기숙의 어린시절도 이랬겠거니 싶어진다. 도모에 학교는 아이들의 개성을 소중히 여기고, 아이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스스로 하는 활동을 중요시하고, 아이들을 구박하거나 혼내는 일이 없는 학교이다. 그러나 책이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있고, 도모에 학교의 교육목표나 교육과정 등이 상세히 해설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토토가 겪게 되는 학교 생활 위주로 적혀 있을 뿐이어서, 이 책을 통해 대안학교의 무언가를 얻어내려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도모에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의 모습, 아이를 키우거나 대할 때 어른으로서의 자세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