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
잉게보르크 바하만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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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한 개의 가능성 중에서 천의 가능성은 이미 사라지고 시기를 놓쳤다고는-혹은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니까 나머지 천을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18쪽

-그때에는 아마도-그녀는 이러이러하다든가, 매력이 있다, 매력이 없다, 이성적이다, 비이성적읻, 정숙하다, 부정하다, 행실이 얌전하다, 또는 거침이 없다, 접근이 어렵다든가, 불장난을 좋아한다, 등등의 방법으로는 말해질 수 없을 것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인가 어떤 카테고리 안에서 사고를 펼 수 있으며,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그러한 일을 그녀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녀는 항상 이러한 언어를 꺼려왔었다. 그녀를 향해 찍히는 모든 인장, 그녀가 누구에게인가 찍지 않으면 안 될 인장-이를 테면 실존을 말살하려는 시도를-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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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돼지를 프로듀스
시라이와 겐 지음, 양억관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9월
절판


이 거리감이 기분 좋다. 너무 멀면 외롭고, 너무 가까우면 귀찮다. 적당히 웃겨만 놓으면 풍파도 안 일어나고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다. -29쪽

이야기란 하다보면 끊이질 않는 법이다. 어색한 침묵은 대화 따위에심각한 의미를 두는 얼간이들이 어떻게든 대화의 틈을 메워야 하는데, 라는 초조감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무렴 어때, 이런 이야기, 나랑 아무 관계도 없어, 라고 생각하면 어깨에서 힘이 빠져 자연스럽게 말이 술술 풀려 나온다.-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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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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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주인공이 상실의 시대의 나오코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삶 자체가 절망이라는 여자. 나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삶의 장면장면들을 예민하게 느껴서 더 많은 의미를 찾고 더 많은 아픔을 가지는 여자. 그래서 묘한 이질감과 신비감을 가진 여자.
예전엔 이런 여자들을 동경해 왔었다. 신비감과 그녀들이 가지는 삶에 대한 확고한 무언가 때문에. 어쩐 일인지 난 절대로 이런 분위기는 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미도리처럼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증거하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건 아니다. 난 아마도 미도리와 나오코 그 어느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의 아무것도 아닌 여자다.
어렸을 때부터 삶과 세상에 묘하게 어긋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은 애인과의 만남으로 인해 삶에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차지하게 된 자리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삶에서 찾을 수 있는 자리는 그곳 뿐이기에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없다. 그래서 주인공은 차라리 애인이 없었을 때, 삶과 자신이 분리되어 있었을 때가 더 자유로웠다고 느낀다.
그러나 헤어졌던 애인은 다시 돌아오고, 주인공은 그 품에 다시 안기면서 다시 답답해한다.
그래서 삶이 곧 절망이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조금씩 죽어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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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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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온 모든 환자에게 비타민 주사를 놓으면서, 그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육감적인 간호복으로 몸매를 과시하는 간호사 마유미, 그리고 그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유쾌하게 그려진다. 이라부는 정신과 치료를 그닥 하는 것 같지 않다. 모든 정신과 환자에게 비타민 주사를 처방하지 않나, 서커스 단원에게는 공중그네를 배우겠다고 조르고, 야구 선수에게는 캐치 볼을 하자고 조르고, 작가에게는 소설을 썼으니 책으로 내 달라고 조른다. 사람들은 이런 괴팍한 이라부에게 시달리면서 자신의 정신적 문제점들을 찾아가고 해결한다.

분명 이라부는 정신과 의사들의 주류에겐 이단아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이라부에게 치료를 받으러 찾아오는 환자들도 그닥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난 어느 순간부터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글,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노래 등은 실제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하늘 전체, 숲 전체를 보면서 활을 겨누니 그 활이 무언가를 맞추는 일은 전무할 것이다. 실제로 의미있는 것은 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글이고, 한 사람을 울게 하는 노래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려 하는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사람. 모든 사람에게 의미있게 남기보다 한 사람에게 의미있게 남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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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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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은 외형은 화려하지만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이다. 유정은 세 번째의 자살 시도 뒤에 모니카 고모를 따라 간 교도소에서 사형수인 윤수를 만난다. 두 남녀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간다.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라면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저렇게 간단하게 요약할 수만은 없다. 

먼저 이 책은 용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당신은 누군가를 뼛 속 깊이까지 증오해본 적 있는가?  이를 악물고 누군가를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맹세한 적 있는가? 그런 적이 없다면 당신은 용서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누군가를 끝까지 미워하고 증오하고, 한없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밤을 새워 울고 울고 또 운 다음에서야 용서라는 단어를 생각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래서 용서하는 행위는 매우 어렵고 힘겨운 것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있는 것이다. 7번씩 77번을 더 상대방을 용서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그래서 위대하다. 그러니 제발 당신이 이래본 적이 없다면 누군가에게 ‘네가 용서하라’는 말을 하지 말아라. 

유정은 증오와 미움을 끝까지 발산하지 못하고 중간에 용서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방황했던 것이다. 그래서 윤수가 살해했던 여인의 어머니는 윤수를 용서하겠노라 윤수를 대면한 자리에서 윤수에게 왜 그랬냐고 물을 수 밖에 없었던 거다. 

그리고 이 책은 봉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종교인들은 전도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 보통 사람들도 ‘나는 불우한 이웃을 도울 줄 아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자기 만족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온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봉사할 수는 없는거다. 이들에게 잘못을 탓할 순 없다. 그러나 봉사활동에는 엄연히 봉사를 베푸는 사람과 그것을 받는 사람이 구분되는 것이고,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보다 약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알게모르게 드러나는 주는 사람의 심리는 받는 사람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사형수 입을 통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봉사활동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봉사활동을 베푸는 사람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좀 더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뿐. 절대로 사람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형제도에 대한 것일게다. 이 책은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계속해서 왜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불우하고 열악한 환경이 사람을 사형수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만 그 범죄의 책임을 물어 사형시킬 순 없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이 책은 윤수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자세히 제시해주면서 이 근거에 상당한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이 근거에 대한 반박도 살짝 실어준다. 많은 사람들이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이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성실하고 강인하게 삶을 헤쳐나가며 산다. 그러므로 사형수들을 범죄자로 만든 것은 환경 탓만은 아니다. 라고. 

또 다른 근거로 인간이 내리는 판단이 항상 정확하지 않다는거다. 실제로 사형선고를 내릴 만한 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다는거다. 윤수도 실제로 다른 이가 저지른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수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윤수의 설정은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은 앞부분에서 상당히 설득력있게 사형제도 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그래서 독자들은 윤수가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 흉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윤수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렸을거다. 그러나 윤수에게 이러한 변명꺼리를 제공함으로써, 자칫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 확실시되는 사람에게는 사형선고를 내려도 된다는 엉뚱한 결론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형제도를 반대해야 할까? 작가는 우리 모두가 죄를 짓고 사는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다. 이 근거는 흠잡을데 없다. 문제는 내가 기독교의 원죄설을 싫어한다는데 있다. 기독교 교리를 빌리지 않는 형태로 이 근거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또는 ‘같은 인간으로써 우리는 사형수들에게 죽음을 선고할 자격이 없다.’ 또는 ‘모든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다.’ 여전히 나는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가 라는 의문에 시달린다. 이 문장들은 휴머니즘의 기본 가치관이고, 어떤 이념이나 사상의 기본 가치관은 논쟁의 여지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근거는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거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 상당히 좋다고 이야기하고 다닐 즈음, 우리나라는 수십년간 사형을 실행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몇 명의 사람에게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의 끝의 작가의 말에 의하면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수가 처형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형수였다는 사람이 다음대 대통령으로 당선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같은 사형 선고가 실행되었다는거다. 1997년에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지나쳤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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