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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유정은 외형은 화려하지만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이다. 유정은 세 번째의 자살 시도 뒤에 모니카 고모를 따라 간 교도소에서 사형수인 윤수를 만난다. 두 남녀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간다.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라면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저렇게 간단하게 요약할 수만은 없다.
먼저 이 책은 용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당신은 누군가를 뼛 속 깊이까지 증오해본 적 있는가? 이를 악물고 누군가를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맹세한 적 있는가? 그런 적이 없다면 당신은 용서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누군가를 끝까지 미워하고 증오하고, 한없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밤을 새워 울고 울고 또 운 다음에서야 용서라는 단어를 생각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래서 용서하는 행위는 매우 어렵고 힘겨운 것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있는 것이다. 7번씩 77번을 더 상대방을 용서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그래서 위대하다. 그러니 제발 당신이 이래본 적이 없다면 누군가에게 ‘네가 용서하라’는 말을 하지 말아라.
유정은 증오와 미움을 끝까지 발산하지 못하고 중간에 용서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방황했던 것이다. 그래서 윤수가 살해했던 여인의 어머니는 윤수를 용서하겠노라 윤수를 대면한 자리에서 윤수에게 왜 그랬냐고 물을 수 밖에 없었던 거다.
그리고 이 책은 봉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종교인들은 전도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 보통 사람들도 ‘나는 불우한 이웃을 도울 줄 아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자기 만족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온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봉사할 수는 없는거다. 이들에게 잘못을 탓할 순 없다. 그러나 봉사활동에는 엄연히 봉사를 베푸는 사람과 그것을 받는 사람이 구분되는 것이고,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보다 약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알게모르게 드러나는 주는 사람의 심리는 받는 사람에게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사형수 입을 통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봉사활동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봉사활동을 베푸는 사람이 이것을 염두에 두고 좀 더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뿐. 절대로 사람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형제도에 대한 것일게다. 이 책은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계속해서 왜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불우하고 열악한 환경이 사람을 사형수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만 그 범죄의 책임을 물어 사형시킬 순 없다’고 이야기한다. 실제 이 책은 윤수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자세히 제시해주면서 이 근거에 상당한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이 근거에 대한 반박도 살짝 실어준다. 많은 사람들이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이 모두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성실하고 강인하게 삶을 헤쳐나가며 산다. 그러므로 사형수들을 범죄자로 만든 것은 환경 탓만은 아니다. 라고.
또 다른 근거로 인간이 내리는 판단이 항상 정확하지 않다는거다. 실제로 사형선고를 내릴 만한 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다는거다. 윤수도 실제로 다른 이가 저지른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수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윤수의 설정은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은 앞부분에서 상당히 설득력있게 사형제도 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그래서 독자들은 윤수가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 흉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윤수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렸을거다. 그러나 윤수에게 이러한 변명꺼리를 제공함으로써, 자칫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 확실시되는 사람에게는 사형선고를 내려도 된다는 엉뚱한 결론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형제도를 반대해야 할까? 작가는 우리 모두가 죄를 짓고 사는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다. 이 근거는 흠잡을데 없다. 문제는 내가 기독교의 원죄설을 싫어한다는데 있다. 기독교 교리를 빌리지 않는 형태로 이 근거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또는 ‘같은 인간으로써 우리는 사형수들에게 죽음을 선고할 자격이 없다.’ 또는 ‘모든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다.’ 여전히 나는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가 라는 의문에 시달린다. 이 문장들은 휴머니즘의 기본 가치관이고, 어떤 이념이나 사상의 기본 가치관은 논쟁의 여지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근거는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거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 상당히 좋다고 이야기하고 다닐 즈음, 우리나라는 수십년간 사형을 실행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몇 명의 사람에게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의 끝의 작가의 말에 의하면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수가 처형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형수였다는 사람이 다음대 대통령으로 당선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같은 사형 선고가 실행되었다는거다. 1997년에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지나쳤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