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백 수국 - 10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바깥에서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드립백, 수국이라니 맛도 포장만큼이나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승은 있다 - 좋은 선생도 없고 선생 운도 없는 당신에게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 민들레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우는 것’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똑같은 것일까요? 우치다 타츠루의 『스승은 있다』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배우는 것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알쏭달쏭하다. 대답을 유보한 채, 저자는 대화에 관한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정한 대화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제삼자인 것입니다. 대화할 때 제삼자가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바로 대화가 가장 뜨거울 때입니다. 말할 생각도 없던 이야기들이 끝없이 분출되는 듯한, 내 것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처음부터 형태를 갖춘 ‘내 생각’ 같은 미묘한 맛을 풍기는 말이 그 순간에는 넘쳐 나옵니다. 그런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우리는 ‘자신이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58-59쪽).”


“우리에게 깊은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대화’라는 것은 ‘말하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이 먼저 있고, 그것이 두 사람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말이 왔다갔다하고 나서야 비로소 두 사람이 ‘말하고 싶었던 것’과 ‘듣고 싶었던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68쪽).”


“대화는 아주 평범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잘 생각해보면 두 가지 지점에서 희한한 사건입니다. 한 가지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이 한 그 말을 통해서 안다는 것. 또 한 가지는 우리가 말을 하고 있을 때 그 말을 하도록 이끄는 것은 듣는 이의 욕망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89-90쪽).”


이어서 그는 소통을 언급한다. 교환되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잘 모를 때 오히려 소통은 활발해진다고.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면 소통을 계속할 의욕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통의 진정한 목적은 메시지의 정확한 전달이 아니라 메시지를 주고받는 그 자체가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인류는 소통을 계속하기 위해 ‘의사소통이 간단하게 이뤄지지 않도록 여러 장치를 숨겨’ 왔으며, ‘소통은 늘 오해의 여지가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소통에서의 오해와 관련하여 그는 자크 라캉의 말을 인용한다. “여러분은 불확실하고 애매한 위치에 멈춰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정정(訂正)의 길을 열어 두고 있는 것입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머뭇거리거나 막히고 걸리고 주저하고 고쳐 말’하는 것처럼,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머뭇거림’과 ‘막힘’이 그대로 표현된 문장은 좋은 문장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문(問, 門)이 열린’ 문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말한다. 생명이 약동하는 문장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문장을 전진시키는 힘은 말이 생각을 채워주지 못하는 데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말하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문장’. ‘버둥거리고’ 있는 만큼 ‘오해의 폭’이 확실히 확보된 문장의 예로 그는 다자이 오사무를 든다. ‘이해’와 ‘오해’가 닿을 듯 말 듯 빠듯하게 접근하면서 절대 100퍼센트 이해는 되지 않게 쓴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은 수수께끼와 같다.


‘한 권의 책에 심을 수 있는 수수께끼는 논리적으로 무한’하기에, ‘논리적으로 보자면,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발견할 수 있는 수수께끼는 무한대인 셈’이다. 인간의 창조 행위 역시 대화의 구조와 닮았다. ‘자신이 왜 작품을 만드는지,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어떤 점이 새로운지,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따위의 것들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인간은 결코 그 무엇도 창조하지 않았을’ 거라고.


저자에 따르면, 사제관계 역시 작품과 예술가, 대화와 닮은 구조다. “한 스승에게 여러 제자가 있지만 모두들 그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합니다. 바로 그 실패가 제자의 의무입니다. 실패 덕분에 스승과의 대화를(스승의 사후에도) 계속하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며 ‘수수께끼’에 관해 끊임없이 논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씩 정체성과 주체성이 기초 지어지는 것입니다(131쪽).” ‘실패하는 방식의 독창성’에 의해 다른 어떤 제자로도 대체될 수 없는 둘도 없는 사제 관계로 계보를 잇게 된다는 것.


『스승은 있다』는 제목과 달리 제자, 즉 배움에 관한 책으로 읽혔다. 소통, 소통.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소통을 문제 삼지만 정확한 정보의 전달은 오히려 소통을 단절시킨다는 것. 이해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오해의 폭을 확보함으로써 소통을 지속시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소통의 본래 목적이라는 것. 새삼스러웠다. 소통에 관해 크게 오해하고 있었던 탓이리라. 내가 끊임없이 글쓰기에 홀리는 이유 역시 소통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해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오해로 인해 촉발되고 지속되는 대화, 즉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욕망 말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확장된 나로서의 당신, 즉 타자를 알아가게 되는 것인지도. 이렇게 대화를 통해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알아가는 것. 이것이 배움의 과정 아닐까? 그러니 타츠루 선생이 앞서 던진 질문의 답은 자명해 보인다. 역시 ‘스승은 훌륭하다’(원제).


타츠루 선생님, 제 대답이 맞나요? 대답 대신 알쏭달쏭, 모호한 눈빛으로 바라볼 듯. 하여 대화는 지속되리라. 그러고 보면 독서 역시 길고 긴 대화라는 생각이 든다. ‘오해의 커뮤니케이션’! 대화가 이어지는 한, 배움 역시 계속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들의 7일 전쟁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들 스물두 명이 똘똘 뭉쳐 어른들에게 저항하는 이야기 <우리들의 7일 전쟁>. 이 소설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모두가 끝까지 함께 한다’는 사실이다.    

 

해방구 만드는 일에 앞장을 선 에이지와 도루도 그게 신기한지 해방구에서 철수하는 날 아침, 옥상에서 강가를 내려다보며 이런 대화를 나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니까. 어떻게 모두가 함께할 마음이 되었을까.” 

“글쎄 말이야. 그리고 처음에는 좋아해도 이런 생활을 하다 보면 반드시 2, 3일 뒤에는 불평이 나오기 마련인데. 불평 한마디 나오지 않았어.” 

 

선전 포고로 시작되는 첫째 날부터 철수로 이어지는 일곱째 날까지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해 갈지 은근히 기대하면서 따라갔다. 은근한 기대란 다름 아닌 해방구 안에서 벌어질 갈등상황이었다. 조직이란 으레 당초의 결의와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등상황이 벌어지고 와해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하루하루 시간이 더해갈수록 나의 예상과 달리 아이들의 결속력은 더해갔다. 저마다 갖고 있는 특별한 재능은 함께 하자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해방구 방송을 통해 어른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도청을 통해 비리를 폭로하는가 하면 미로를 만들어 자신들을 괴롭혀온 선생들을 골탕 먹이기도 한다.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 유괴사건을 해결하는 한편 폭죽을 만들어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서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서로 힘을 실어주는 모습은 사랑스럽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러니 7일 전쟁에서 아이들은 보기 좋게 성공할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 그것도 1학년이 어떻게 해방구를 만들고 어른들과 싸울 수 있다는 말인가, 소설의 설정에 대한 의심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희미해져 가다가 말미에 이르면 깨끗하게 사라진다.  

 

“우리도 힘을 합치면 어른들이랑 싸울 수 있어.”  

 

소설의 도입부에서 도루가 에이지에게 건네는 말처럼, 각자는 힘이 없을지 몰라도 힘을 합치기만 하면 상대가 누구든 싸울 수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끝까지 함께 한다’면 예상치 못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우리들의 7일 전쟁>은 1985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그리고 2011년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시간적으로 그 간극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흥미롭게 읽힌다. 1960년대 일본과 1980년대 한국의 사회·정치적 상황, 일본의 전공투 세대와 한국의 386 세대가 서로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차별과 불평등, 모순과 불의는 오늘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7일 전쟁>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오히려 어른들이 읽어야 할 소설이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싱글을 위한 서바이벌 요리
허선양 지음 / 하서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소박한, 사람 냄새 나는 요리들이 한 상 가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틴은 행복이다
고정석 지음 / 바람구두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EBS 라디오 <성기완의 세계 음악 기행>. 이 프로를 통해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나라의 음악을 듣고 그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을 상상하곤 한다. 

매일 흥미로운 게스트 코너가 이어지는데, 화요일은 '길 위에서 듣는 음악'이다. 이 코너는 고정 게스트가 아니라 특별손님들이 초대된다. 주로 낯선 나라들을 장기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들.  

지난 주 초대 손님은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고 돌아온 고정석. 회사에서 간간히 짬을 내서 듣는지라 집중력은 떨어지지만, 잉까, 안데스, 멕시코, 페루, 콘도르... 이런 단어들만 들어도 마음이 설렌다. 

고.정.석.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이름을 써넣고 검색 버튼을 누른다. 책 코너에 <라틴은 행복이다>, 저자 고정석이라는 정보가 뜬다. OK! 

1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를 꿈꾼 사나이. 라틴아메리카로 떠나기 위해 1년간 스페인어를 배우고, 스쿠버 다이빙과 승마, 라틴아메리카의 고대 문명과 근현대사에 관한 책까지 꾸준히 읽었단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멕시코부터 아르헨티나까지 8개월간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다녀왔다는 정보 만으로도 내 마음은 사로잡히고 만다. 이런 사람의 여행기라면 굳이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는 기대.

책은 사진과 에세이가 보기 좋게 편집되어 있다. 원색적이고 이국적인 풍물사진들, 거기에 덧붙여진 다소 잔잔한 여행기.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글의 느낌은 차분함이다. 글을 통해 고정석이라는 사람의 일면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는 무척이나 차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각 나라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혹은 사색적인 여행기라기보다 관찰자적인 여행기라는 편이 적절할 듯하다.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들(주로 숙소의 주인들)이나 여행자들의 이야기도 간간히 이어지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콜롬비아와 페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페인어 배우기에 좋고, 물가도 싸고, 시간이 멈춘 듯 여유로운 나라가 콜롬비아라는 것과 세계적인 문화유적들 때문에 얻게 된 명성에 비해 외국인 여행객들을 돈줄로만 여긴다는 페루. 어디까지나 고정석의 경험적 시각일테지만 지식창고에 넣어둔다. 아쉬움이라면 나의 관심사인 아르헨티나 이야기는 거의 없다는 사실.  

어쨌거나 여행기를 읽고 나면 누군가의 발걸음을 따라 나 역시 여행을 마친 기분이 든다. 그 때문인지 책을 읽고 나면 여행을 다녀온 듯 마음이 가뿐하다. 한동안 일상이 견딜만 해지는 것이다. 여행기를 읽는 묘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