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늦은 시각, 회사에서 가끔 예상치 못한 간식이 제공된다. 그 때마다 저녁시간을 알차게 보내야한다는 강박같은 게 발동한다. 그럴 땐 주로 극장엘 간다.

올해 한국영상자료원의 프로그램이 작년보다 훨씬 풍성해졌다. 어제 간식 때문에 김수용 감독의 1964년작 <학생부부>를 봤다. 신성일, 엄앵란 커플이 주연을 맡아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가난한 대학생 송기호(신성일)와 고아 출신 여대생 강문영(엄앵란)이 하숙비와 학비 때문에 어쩔수 없이 동거에 들어가고 송기호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여가수가 등장하면서 갈등이 생기지만 결국 갈등이 해소되면서 결혼에 이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하숙집 부부의 갈등도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제목이 알려주듯 신성일과 엄앵란의 영화다.

예전의 영화들을 보다보면 후시녹음 때문에 당시에는 심각했을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는 일이 종종 있다. 상황과 목소리를 일치시키려고 최대한 노력했겠지만 긴장감이 떨어지거나 하는 등의 장면과 목소리의 불일치 때문. 실제 배우가 아니라 성우가 녹음한 경우는 더욱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것도 옛 영화를 보는 재미라면 재미다. 이런 재미 외에도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풍경 1호는 1960년대의 '딴스홀'이다. 높은 무대가 있고 거기서 주로 관악기로 이루어진 밴드가 음악을 연주한다. 무대 앞의 넓은 홀에서 젊은이들이 음악에 맞춰 흥겹게 혹은 조금 밀착하여 춤을 춘다.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맥주나 양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거나 무대 위의 '악사'나 가수를 구경한다. 나도 한때 맛보았던 나이트클럽의 풍경과 큰 차이는 없지만 춤과 음악 그리고 춤추는 사람들은 '딴스홀'과 '나이트클럽' 만큼의 거리가 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풍경 2호는 '아파트'다.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아파트가 지어졌는지 하숙집 여주인이 친구를 찾아 나선 길에서 당시의 '아파트' 모습을 볼 수 있다(네이버 지식검색에 물어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30년에 지어졌단다. 인터넷 만세다!^^ 예상보다 훨씬 일찍 지어졌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당시 영화들에서 만날 수 있는 서울 거리 풍경들도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매우 흥미롭다.

한국영상자료원, 그 곳에 우리의 과거가 있다. 그래서 난 그 곳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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