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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한손으로 들고 읽을 수 있는 작은 무게의 책이다. 그러나 심심한 맘에 섣불리 이 책을 펼쳤다간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나는 마음의 무게에 곤욕스러워질 것이다. 두 번째로 만난 헤르타 뮐러의 책. 그녀의 문장은 막힘없이 흘러가는 작은 구슬처럼 여유롭고 또 아름답지만, 그 문장들이 늘어서서 뿜어내는 인간의 생과 사에 대한 이야기는 처절하고 묵직하기만 하다. <숨그네>의 레오에게서 삶 자체를 착취당한 자의 비애를 보았다면,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의 빈디시에게선 현실을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자책하며 선택할 수 없는 내일 앞에 발만 구르는, 무능력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전쟁 후, 전몰자 기념비 주변에 핀 ‘장미’는 아름답지만 연약한 ‘풀들’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다는 진실을 숨기고 있었다. 무성하게 자라난 권력은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내일을 억압하고 마음대로 오려내었다.
‘빈디시’는 독일로 망명할 수 있는 여권을 얻기 위해 2년 째 이장에게 밀가루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기약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어쩔 수 없었다. ‘모피가공사’는 이미 여권을 받아 떠날 채비를 하고 있고, ‘야간경비원’은 떠날 생각이 없다. 떠나려는 자와 떠나는 자, 남으려는 자가 부딪히면서 이야기는 끊임없이 빈디시의 내면을 헤집는다. 그는 이 마을의 모든 것에서 ‘멈춰선 시간’을 본다. 벗어나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 움직이지 않는 것에선 희망도 내일도 없다. 끝이 난 것이다. 바퀴를 잃고 멈춰 선 수레가 길가에 버려진 자신의 큰 덩치를 수치스러워하듯, 빈디시는 남아있는 자신을 수치스러워했고 여권을 얻지 못한다면 생은 끝난 것이라 여겼다.
그의 마을엔 생기 있는 것도, 빛나는 것도, 오고가는 미소도 없었다. 안개가 낀 듯 경계가 흐릿한 그곳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건, 죽음의 냄새였다. 흡사 죽은 자들이 사는 내세 같기도 했다. 살아서 먹고, 움직이고, 이야기하지만 시간의 목줄에 이끌려 하루를 지나칠 뿐, 누구도 그 목줄을 팽팽히 당겨 살아내는 이는 없었다. ‘관’은 이름표를 달고 그들의 곁에서 죽음을 기다렸다. ‘죽음’은 친근하게 맴돌았고, 사람들은 성당에 모여 떠나는 이를 배웅했다. 뮐러의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루마니아를 알았고, 그곳에 있었던 전쟁과 비극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쉬쉬하며 숨겨야 했던 역사와 감시당해야만 했던 삶의 고단함이 절실히 느껴졌고, 안타까웠다. 차우셰스쿠 정권에 갇혀 마음에 깊은 감옥을 지어야 했던 슈바벤 독일 마을 사람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온전히 자신을 누일 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 그들의 마을은 생활의 터전도 안식처도 아닌 ‘작은 수용소’ 같았다. 사람들의 재산과 노동, 곡식 등의 것들이 어떤 대가도 없이 정부에게 넘겨졌다. 열리지 않은 곡식과 열매마저도 그들의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훔쳐보았고, 눈길로 조롱했다.
빈디시는 바짓가랑이에 한 손을 올려놓는다. 손은 차갑고, 허벅지는 따뜻하다. “여기 사정은 점점 나빠질 거야.” 빈디시는 말한다. “저들은 닭이고, 달걀이고 닥치는 대로 빼앗아가고 있어. 심지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옥수수까지 빼앗아가는 판이야. 언젠가는 자네 집과 마당까지 뺏어갈걸.” - p.111
그런 마을의 사정에도 떠나지 않으려는 야간경비원을 빈디시는 우둔하게 여겼다. 누가 옳은 것일까.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빈디시는 살기 위해 지금의 아내에게 삶을 붙들어 매었다. 전쟁 후 남은 자들에게 사랑의 몸짓은 교환의 가치였고, 쾌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성스러움은 사라지고 그것은 인간의 욕심과 분노로만 그들 곁에 자리 잡았다. 그것은 빵이었고, 옷이었고, 여권일 뿐이었다. 아내는 빈디시를 만나기 전, 러시아에서 굶주림과 추위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남자들의 철제침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빈디시는 그 때의 아내를 두고두고 이해하지 못했다. 본문 중「풀수프」에서 그녀의 과거를 자세히 만날 수 있다. 그 문장들이 가리키는 한 여자의 잔인하고 고단했던 시간이, 굶주림 앞에 무릎 꿇은 그녀의 마음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섣불리 그녀의 판단을 비난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카타리나를 미워할 수 없었다.
처음에 빈디시는 어서 빨리 독일로 망명할 수 있는 여권을 얻고 싶었음에도, 도를 넘는 부정된 방법을 쓰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마음은 조급해졌고, 결국 딸아이의 몸을 내어주고 만다. 도시에서 유치원교사로 일하는 아말리에는 부모를 원망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화장을 한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하얀 구두를 신는다. 빈디시는 말리지 못하고 망부석이 되고 만 자신을 끝없이 자책했다. 입 밖으로 내놓을 수 없는 말들을 꾸역꾸역 삼켰다. 딸아이가 돌아올 길을 내다보면서 끝없이 길을 잃었다. 그들의 모든 감정과 판단은 여권에 묶여있었다. 어쩌면 목숨도. 그들은 그 줄을 끊지 못했다.
힘을 가진 자들은 그늘에 숨어 약한 자를 탐하고, 제복과 수도복으로 죄를 가리고 있었다. 손도 데지 않고 약한 자를 쥐락펴락했다. 사람들은 권력으로 무장한 그들을 우러러 보면서 원하는 것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권력은 그렇게 그림자만 남은 그들을 삼켰다. 표정도, 입술도, 재산도, 가족도, 내일도 모두 삼켰다. 명명하여 부르기 이전에 그들은 한 개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어둠이 내리면 그 윤곽마저 사라지는 그림자 덩어리. 빛이 닿지 않는 그들은 축축하게 젖은 종이인형처럼 불안했다. 내밀한 삶은 서로에게 바닥까지 드러났지만 지나쳐온 많은 시간들로 모든 것을 알아버린 그들에겐 슬픔도, 동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서로에게 침묵했다.
여권이 생긴 뒤엔 빈디시 가족에게도 일상의 대화가 오갔다. 집안의 것들을 팔면서 생기가 돌았다. 비행기 멀미를 걱정하면서 새 옷을 재단했다. 머리를 잘랐다. 아말리에의 잠든 얼굴이 부부의 눈에 보였다. 빈디시의 아내가 웃었다. 그렇게 죽음이 지나가고, 과거가 지나갔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아말리에를 찾아댔다. 빈디시 부부는 아무렇지 않게 아말리에의 약속을 챙겼다. 여권이 생긴 뒤의 빈디시 가족의 모습과 대비되어 이어지는 본문「은빛 십자가」는 그들이 잃은 것과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했다. 권력을 가진 자가 그 힘으로 어떻게 한 인간을 짓밟는지를, 한 사람의 생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모습이 냉정하게 그려진다. 시대를 국가를 잘못 얻은 그녀의 삶이 이렇게 훼손되는 게 안타까워서, 아말리에의 담담함이 안쓰러워서, 당연하게 그녀의 작은 가슴을 움켜쥐는 그들의 손이 두려워서, 나는 잠시 책을 덮어야 했다. 삶의 앞, 뒷면을 한 번에 보아버린 듯 그 극단 앞에 눈이 매웠다.
침착하게 이어지는 문장들은 차갑게 그들의 삶을 후려쳤지만 누구도 스스로의 잘못을 알진 못하는 듯 했다. 떠나는 날, 빈디시 부부는 회생 정장을 차려입었다. 때가 묻은 ‘꿩’의 모습으로 그들은 마을과 작별하려 한다. 무언가를 쟁취했다기보단 도망치는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그 사이 결혼한 ‘야간경비원’에게서 막 달아오르려는 삶의 냄새가 맡아졌다. 그들은 행복하게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들의 내일은, 오늘과 다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그림자이길 자청한 자이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스스로를 숨길 곳을 위하여, 자신이 삼켜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야.” 야간경비원은 빵을 씹으며 나지막이 말한다. 빈디시는 밀가루포대를 들어올려 자전거에 싣는다. “인간은 강해.” 그가 말한다. “짐승보다 더 강하지.” - p.15
그림자는 그늘로 들어서면 사라진다. 존재가 없어지고 무의미해 진다. 그것은 안전하게 느껴졌지만, 어리석은 삶의 입구로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단 한번만이라도 땅을 딛고 서서 제 팔과 제 다리를 휘젓고,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면서 살아있음을, 스스로 존재함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면 어쩌면 그들은, 꿩보다는 나은 모습을 갖출 수 있지 않았을까. 인간은 강하게 자신의 삶을 몰아가지만, 결국 결정적인 힘이 가해지는 순간에는 약해지고 무능력해진다. 미래가 위협당하는 순간, 그들은 안전한 곳이라고 느껴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어떻게든 가야한다. 그토록 분명하게 인간은 강하다고 말했던 빈디시는 아말리에를 권력 앞에 내어주고 다른 사람들의 입술이 두려워 자신의 집을 나서지 못했었다. 스스로를 조롱하듯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야.”라고 말했다.
'몸집만 커다란 꿩은 어설프고 무력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을 상징’한다. 살기 위해선 도덕도 인간다움도 버려야 하는 인간의 비애가 날지 못하는 꿩의 모습과 겹쳐져 인간의 나약함을 비웃음거리로 만든다. 빈디시 뿐만 아니라 분명, 지금 우리의 삶에도 똑같이 비춰지고 있는 꿩의 모습. 안전하게 살기 위해선 권력에 편승해야만 하는 현실. 섣불리 부정하고 틀렸다 말할 수 없는 현실. 두려움이 손과 발을 묶는 현실. 살기위해 그래야만 했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스스로 면죄를 받는 잔인한 현실. 그렇게 우리도 빈디시의 마을에 살고 있다.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나는 불현듯 두려워진다. 삶을 팽팽하게 조이는 어떤 무게감에, 내게로 달려오는 내일 앞에 묵직한 책임감을 느낀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빈디시는 우리 곁에 있고, 우리 안에 살고 있다. 그가 조용히 그곳에 머물 수 있도록, 내 인간다움을 이기고 나의 밖으로 출몰하지 않도록, 팽팽하게 마음을 조율해 본다. 그러나 내 입술은, 보는데로 진실을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세상은 한 인간을 ‘꿩’으로 전락시킬 수 있지만 그 현실을 박차고 나가는가, 갇히는가, 의 선택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삶은 결국 각자가 가진 그릇만큼 담기기 마련이고, 책임은 각자의 몫일 뿐이다. 다행인 건 누구도 서로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는 사실. 나는 내가 가진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그림자 밖으로 꺼내겠다고, 그림자의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한다. 그 희망만이 내가 이 책을 덮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