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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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이 책 곁을 맴돌았다. 아니, 헤매었다고 하는 게 맞다. 한 권의 책 속에 담겨 있기에 그 세계는 너무나 광활했고 그들의 이야기는 무거웠다. 한강 작가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그녀의 오랜만의 소설이 반가웠고 제목마저 나를 이끌었다. 바람이 분다, 가라. 책이 출간된 건 이제 막 봄이 움트려할 때였는데, 해가 바뀐 뒤에도 여전히 제자리에 고여 있을 뿐인 내게 그것은 어떤 신호처럼 울렸다. 그리고 또 한 번, 계절들을 보내고 한 해의 막바지에 다다라 다시 책을 덮었다. 어느 새, 세 번째였다.
책 속은 여전히 깜깜하고 길은 끝없이 엇갈려 있었다. 돌아서면 다시 새로운 길. 곳곳에 놓인 어둠의 웅덩이에 빠져 잠시 멈춰야 할 때도 있었다. 잦아들 줄 모르는 슬픔이 몰아쳐 눈앞을 가렸다. 그러나 다시, 끝을 모르는 이 길로 두려움을 지고 나를 던져야 했다. 두 다리에 힘이 없으면 바닥에 배를 밀고서라도 나아가야 했다. 살아있는 자의 숙명을 이 책에서 목격하게 될 줄이야. 너무 많은 삶의 비애를 알아버린 느낌. 나는 쉽게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387페이지 속에 가볍게 담겨버린 한 여자의 그림자 같은 생과 그녀와 삶의 일부분이 포개어진 또 한 여자의 마지막을 말이다.

한강 작가는 이 소설을 연재하던 중간 연재를 멈췄고, 그 뒤 네 번의 겨울을 보내며 새로 썼다고 했다. 살얼음이 박힌 느낌으로 이 소설 곁을 서성이고 뒤척였다던 그녀가 ‘이젠 돌아보지 말아야 겠다’는 그 시간들을 어느새 내가 돌아보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며 아플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짐작되었다. 그녀를 가까이서 만났더라면 나는 덥썩 손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미술평론가 강석원이 엮은 서인주 유작 평전의 출간을 앞둔 시간에서 출발한다. 그는 촉망받던 젊은 여성 화가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 짓고 그녀의 삶과 그림들을 극적으로 포장해 사람들 앞에 내놓으려 한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아는 이정희는 그 책의 출간을 막기 위해 강석원과 맞서며 자신의 기억들을 되짚어 간다. 알콜중독인 엄마의 자살과 병으로 숨을 거둔 삼촌의 죽음을 견뎌야 했던 인주. 자신의 몸으로 아이를 품어줄 수 없었던 정희. 그리고 실패로 끝나버린 결혼생활. 그녀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왔고, 더욱이 서로에게 상처를 내보이는 일에 어색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따뜻한 음식과 물 같은 존재로 지내왔던 정희에게 인주의 죽음은 자신의 일부를 상실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인주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고 아이를 위해서라도 삶에 치열했고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정희는 끝없이 시간 속을 헤맨다. 서인주의 작업실에 몰래 들어가 그녀의 그림들과 체취를, 움직였던 공간을, 흔적을 오래 더듬는다.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강석원이 모두 움켜쥐려 했던 그녀의 삶을 놓아주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시간을 잃어버린 정희가 안간힘으로 무장할 수 있었던 건 자신과 포개어진 인주의 생을 거짓무덤에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함께 나눠온 시간을 기억을 부정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녀의 치열한 싸움 사이사이에 추억들은 환청처럼 찾아온다. 외삼촌과 인주와 함께 까먹던 계란들. 먹그림들. 우주가 담긴 책들. 결혼을 한 뒤 정희가 삶을 놓아버릴까봐 그녀 곁에 데려다놓았던 인주의 아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편안한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평온해서 현재의 그녀를 더욱 슬퍼보이게 했다. 어쩌다 이 시간을 통과하게 된 것일까. 고통으로 누군가의 부재를 바라봐야 하는 이 시간으로. 행복했던 기억들은 타고 남은 재처럼 허공으로 사라지려는 그녀를 깨우고 일으킨다. 새벽의 찬 공기속으로 등을 떠민다. 그녀는 인주를 볼 수 없었던 시간 동안 그녀에게 있었을 일들을 계속 추적해 간다.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메일을 넣고 전화를 걸면서 끊임없이, 시간과 얼굴을 내밀지 않는 상대와 싸운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모두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녀에 대한 낯선 이야기들을 만나면서 정희는 또 한 번 내면에 충돌하는 슬픔을 느낀다. 인주는 그 날 새벽, 눈발이 아득하게 날리는 미시령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었다. 눈발이 모든 것을 덮기 전에 그 전화를 받았더라면, 어쩌면 지금 인주는 살아있을까. 자책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시간 앞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남은 힘을 다해 걸음을 뗀다. 피비린내 나는 공기 속에 이야기는 부유하는 먼지처럼 질기게 온 몸으로 내려앉는다. 코와 입으로 들어와 내부에 들어차고 호흡을 방해한다. 어둠 안에 드문드문 꺼질듯 희미한 불빛들. 별처럼 작은 그 불빛을 뚫고 나가면 보일 듯한 과거의 따뜻했던 시간들. 식물을 기르듯 먹그림에 몰두하던 그들의 모습.

우리는 늘 삶을 의심하고 무의식중에 자신의 근원을 쫓는다. 나는 어디서 왔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와 같은 철학적 심연에 휩싸여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어떤 대답을 얻기 위해 그토록 우리는 혼돈을 자처하는 것일까. 죽음으로 종결되는 생에 어떤 제목을 붙여주고 싶은 것일까. 처음과 끝을 알고 싶었던 외삼촌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들. 그 곁에서 광활한 우주와 자신의 거리를 가늠하던 앳된 고등학생 소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는  너무나 멀어져버린 그 시간들을 눈으로 읽기 위해 끊임없이 우주의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생성과 소멸을 자신의 현실에 대입시킨다.   

과거의, 자신이 살았던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것을 바라보면 그 모든 것은 찰나의 시간일 뿐이다. 그것들은 애써 만지고 이해하려 할수록 모호한 것들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태초에 ‘소금 한 알’처럼 던져진 우주. 그 표면에 붉은 마그마가 바다를 이루었던 처음. 태고의 비가 수천만 년을 변함없이 흐르며 서서히 지구를 식혀가던 시간. 가슴에 담기엔 너무나 벅찬 그 시간을 가늠하려 애쓸수록 혼돈만이 일었다. 모호했던 삶의 ‘시작점’이 그곳에 있다면, 우리는 모두 동일한 원소로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거기서 우린 스스로의 근원과 맞닥뜨린 것은 아닐까. 인간과 우주를 연결시키며 우리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끄는 것은 결국 자신 안의 것을 진실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 때문 아닐까. 공식에 대입하면 풀리는 규정된 삶을 갖고픈, 고단한 사람들의 희망 아니었을까.



책의 표지를 장식한 그림. 한은선 작가의 「물결치다」라는 작품을 찾아 오래 보았던 일이 있다. 처음엔 아주 잠시, 전체를 드러낸 그림을 마주하기가 불편했다. 살갗 위의 상흔 같아서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것은 빙하 사이의 크레바스 같기도 했고, 어딘가로 이어진 물줄기 같기도 했다. 종이를 채운 흔들림과 비규칙적인 어둠은 불안정한 작중 인물들과 많이 닮아있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작가의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싶은 막연한 마음도 생겼다.  


외삼촌의 작업에서 서인주의 작업으로 이어진 먹그림은 어둠속에서 돋아나는 빛, 희망과 닮아있었다. 그것은 혼돈을 뚫고 나아가려는 움직임이었다. 외삼촌은 큰 한지 위에 먹을 심고 물길을 내어주면서 한지위로 자국을 밀고 나가는 먹의 길을 바라보곤 했다. 긴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물과 먹과 종이가 어울어지며 하나의 의미가 되어가는 모습은 우리내 삶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온화하고 고요한 시간인 듯 하지만 그 안에서 서로가 밀고 밀리며 치열히 다투고 있었다. 그렇게 남은 흔적들을 가까이서 볼 때는 불안정하게 느껴지지만, 멀리서 전체를 보면 아름다운 별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우리가 아등바등 하며 사는 삶도 지나와 먼 거리에서 보면, 어쩌면, 이런 모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은 별을 닮았다. 인간은 그 별로부터 떨어진 티끌일 뿐이다. 우주의 물질이 하나이듯 종이와 담벼락, 타인의 손과 손까지도 하나였다. 무엇을 이해하고 피할 수 있을까. 밤과 낮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생성과 소멸을 목격하며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을. 고요해질 수 없는 수면을 품고 끝없이 출렁이고 휩쓸리며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불쑥,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혼돈을 가슴에 담았다 덜어내길 반복하면서 ‘단박에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 는 것만으로 충분히 우리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니까.

살고싶다.
살고싶다.


불길 속에서 치열하게 그녀가 되내던 말이 곁을 맴돈다.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불길에 갇힌 그녀는 우주가 태어나던 그 시간과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녀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고 생각했다.

외따로 떨어진 유성처럼, 어디선가 누구도 모르게 차디찬 몸을 견디고 있을 사람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갈망했던 서인주와 이정희의 관계를 질투하던 강석원은 결국 온전히 자신의 것일 수 없는 서인주의 흔적에 불을 붙이며 이정희 또한 함께 죽이려 한다. 자신이 품고 있는 기억이 거짓이 될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현듯 인간의 모든 감정 앞에 관대해지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욕망과 질투, 시기, 자만의 부푼 감정들로 우리는 내일을 맞을 이유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방어하려는 것 아닐까.


누군가의 죽음이 한번 뚫고 나간 삶의 구멍들은 어떤 노력으로도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차라리 그 사라진 부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아 익숙해지는 편이 낫다는 것을 그때 나는 몰랐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오기 위해 달아나고, 실제로 까마득히 떨어져서 평생을 살아간다 해도, 뚫고 나간 자리는 여전히 뚫려 있으리란 것을, 다시는 감쪽같이 오므라들 수 없으리란 것을 몰랐다.
                                                                                                              - p.64


나는 늘 한강 작가의 소설에서 느껴 온 여성의 섬세한 감정과 생의 긴밀함, 풍부한 내면의 표현 들을 존경해왔다. 정오를 넘긴 새벽까지, 그 균일한 고요 속에서 그녀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넘치는 감정들에 젖어 스스로 소설가가 된 듯도 했다. 햇볕 아래서 식물이 되길 원했던 가늘고 여린 잎 같던 여자들. 그러나 정희는 달랐다. 치열하게 무언가를 갈구하며 싸워나갔다. 타인의 눈매에 위압되지 않았고 꼿꼿이 맞섰다. 당당히 진실을 요구했다. 그녀는 알 수 없이 용감했고, 알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더욱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그녀가 안타까웠고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들이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다. 삶은 이해할 수도 규정될 수도 없는 것이다. 지나온 삶의 상처들은 더더욱 그렇다. '사라진 부분을 오랫동안 들여다 보아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새로운 시간 속에 편입한다. 살아낸다는 현재형 밖에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며 어떤 것도 지나오기 전엔 무(無)의 상태일 뿐이다.

아이의 머리맡에서 자장가를 불러주다 불현듯 떠올랐던 생각이 있다.  

우주가 여기 있다는 것.

먼지의 입자 같은 한 개의 세포가 또 다른 세포를 만나 수정이 되고 분열하면서 형상과 무게, 존재를 만들었을 이 아이의 처음. 좁은 길을 다시 돌아나와 막다른 세상으로 쏟아져버린 존재. 시간의 눈금만큼 조금씩 스스로를 팽창시키는 존재. 나와 아이가 나란히 우주의 삶을 살고 있다고. 우리의 시작은 그랬고 우리는 한 개의 점저럼 계속 존재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넘어져 있던 한 여자를 일으켜 세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라도 앞으로 나아가라 재촉한 것은 작가와 우리와 나란한 삶을 살고 있는 한 여자에 대한 걱정과 위로가 아니였을지. 아이를 등에 업은 서인주가 이정희에게 건내었던 말을 적어본다.

이런 바람이 불면 말이야.
민서를 고쳐 업으며 인주는 말했다.
이만큼의 습기를 품은 바람이, 이만큼의 세기로 불면 말이야...... 

혈관 속으로 바람이 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져. 모든 것이 커다란 전체로 느껴져. 언제고 낸 다리를...... 단박에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는 게, 무섭도록 분명하게 느껴져.
                                                                                                            - p. 369 


바람이 나를 끌고 나는 곳은 어디일까. 또 어떤 삶의 심연 속으로 나를 데려다 놓을까. 어둠에 움츠러들지 않고 그 속으로 나를 밀려 한다. 어둠에서 만이 더욱 선명한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니까. 어렴풋이 삶의 윤곽을 더듬은 느낌. 손에 남은 차가운 긴장감을 움켜쥐어 본다. 시간이 모래보다 곱게 바르라져 날린다. 다시, 바람이 분다. 

 

  

  

 

 * 사진출처 :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02/h20060205173849756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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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뚜르 - 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0
한윤섭 지음, 김진화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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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나라’, 각각의 뜻을 설명하라고 할 때, 당황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봉주의 질문 앞에 선뜻 입을 땔 수 없었다. 같은 것을 지칭하는 단어이니 같은 뜻일 것도 같았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본 ‘조국’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하지만 이 책을 덮은 지금은, 설명할 수 있다. ‘조국’과 ‘나라’의 다른 뜻을. 조국이란 말이 갖고 있는 향수와 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봉주르, 뚜르』에는 5학년 봉주가 프랑스란 낯선 나라에서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돌아보고, 그리워하며, 자부심을 갖게 되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게 그려지고 있다. 이야기는 탐정소설처럼 우리를 들뜨게 하고, 끝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게 한다. 그리고 책을 덮은 뒤엔 우리가 살면서 놓치고 지나온 역사과 과오, 그리고 남겨진 과제에 눈뜨게 한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살아야한다’



낯선 땅 프랑스 뚜르에 새 보금자리를 튼 봉주네 가족. 그곳에서 봉주는 특별한 문장을 발견한다. 한글로 쓰인 두 개의 간절한 문장. 봉주는 그 문장의 주인을 찾으려한다. 그가 무사히 살아있는지,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갔는지 혹여 나쁜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자꾸만 마음이 쓰이고,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주네 가족이 이사 온 집에는 한국인은 산 적이 없다고 하고, 집과 관련된 주변 사람 누구도 쉽게 실마리를 내주지 않는다. 그 가운데 봉주는 처음으로 가슴깊이
‘조국’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책에서 본 한국의 역사 인물들과 나라, 가족에 대해서도. 

 세계는 더 이상 넓지 않다. 비행기를 타고 하루만에도 해외를 다녀오고, 거기서 한국인을 만나는 일도 잦다. 또 한국 안에서도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공부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거리가 좁아질수록 쉽게 잊게 되는 것이 바로 자국(自國)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한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 나의 나라를 갖고 있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잊어버리고 우리는 다른 나라의 문화와 생활 모습들을 동경하며 산다.
 낯선 땅에서 발견한 한글로 쓰인 문장으로부터 발현되는 봉주의 이야기는 나의 나라를 갖고 있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한다. 또 타인의 나라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얼굴색과 머리색, 모습이 다른 것이 생각과 감정 또한 다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뚜르로 이사한 뒤 등교하기 시작한 학교에서 봉주와 늘 부딪히기만 했던 ‘토시’ 수수께끼 같은 아이였다. 스스로를 일본인이라 소개한, 무뚝뚝하고 표정 없던 아이. 봉주는 처음부터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한 토시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수영도 달리기도 토시만은 꼭 이기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발표수업에서 봉주는 한국을 소개하게 되고, 거기서 토시와 작은 다툼을 하게 된다. 한국이 분단국가임을 아는 타국의 아이가 던진 질문에 봉주는 우리 모두 그렇게 알고 있는 북한에 대한 기본 정보로 대답을 해준다. 가난한 나라라는 것과 독재자로 인해 북한 사람들이 불쌍하게 살고 있다는 것. 그 때 토시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봉주에게 반문한다. “네가 북한을 어떻게 알아?”라고…… 토시는 분명히 봉주의 대답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말을 던진다.


 “넌 네가 북한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토시는 가볍게 말하고 책으로 눈을 돌렸다. 나는 정말 화가 났다.

 “내가 북한에 대해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난 그냥 사실을 말하는 거야.”
 “뭐가 사실인데? 왜 북한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데?” 

 “화낼 거 없어. 난 네가 너희 나라에 대해서 다른 아이들한테 정확히
알려 주길 바랐을 뿐이야. 그뿐이야. 다른 뜻은 없어."

 일본인인 토시가 왜 그렇게 이야기했어야 했는지, 그 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우리나라에 관심이 있어 북한을 좀 더 알고 있거나 어쩌면 남한이 가난한 북한을 돕는다는 봉주의 말이 자국만을 자랑하고 옹호하는 것으로 들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토시의 말에 나도 퍼뜩 정신이 들긴 했다. 북한에 대해 너무 빈곤과 무지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북한은 그들 나름대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진 않을까. 불행하지 않은 사람들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봉주는 ‘북한’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찾아보게 되면서 먹먹한 마음을 갖는다. 한 나라였지만 서로 땅을 가르고 점점 다른 문화와 모습을 갖추어가면서 어떤 타국보다도 먼 나라가 된 느낌이다. 북한은 가난하고, 그래서 북한사람은 프랑스로 오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핵무기 개발로 다른 나라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는 북한. 가난한 북한사람들은 매일 굶어 죽어간다…… 
 토시가 북한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한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봉주가 하는 한국말을 알아들으면서도 아는 척 할 수 없었던 이유를, 그렇게 뚜르로 와서 일본인으로 식당을 운영하게 된 가족의 이유를 토시가 한마디, 한마디 꺼낼 때마다 가슴 한쪽이 덜컹거렸다. 현재 북한의 3대 세습은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주고 있었다. 자유와 평화는 없고 권력만이 세습되고, 난무했던 결정. 국민을 외면한 정부의 오만. 뉴스가 요란하게 북한의 이야기를 전할 때마다 토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떠나온 자신의 나라를 부끄러워하기 보단 북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 그 아이의 마음이 깊이 가슴에 울렸다. 나는 북한의 결정 앞에 어떤 비난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북한 아이와 친구가 된다는 것, 그건 어떤 것일까?

“북한에 대해서 찾아봤어요. 제가 혹시 북한 아이와 친구가 되면 어때요?”
엄마 아빠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북한 아이와 친구가 되는 게 안 될 건 없는데, 북한 아이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지. 물론 요즘 한국에는 탈북자들이 많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아빠가 대답했다.
“만약 그럴 기회가 생긴다면 그게 위험한 일이에요?”

 사실 분단만 아니었다면 그저 다른 지역에 사는 또래의 아이가 만나 어울리게 된 것일 뿐인데 전쟁의 상처로 인해 자신을 숨기고, 어색하고 불편하게 만나야 하는 토시와 봉주의 현실이 못내 서글펐다. 봉주의 창을 때리던 토시의 돌맹이가, 둘이 숨어든 공원의 어둠이 그런 두 아이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비췄다.
 문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비밀을 얘기해 준 토시와 친구가 되면서 봉주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고, 마음이 한 뼘 성장했다. 서로를 기다리는 애틋한 친구가 된 봉주와 토시의 모습에 진한 감동이 일었다. 아이는 아이다울 때 가장 예쁘지 않은가. 의심과 미움을 버리고 만난 아이들은 정말, 천진난만했고 예뻤다. 어린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서로에 대한 걱정과 우정이 따뜻했다. 그래서 계속 이어질 수 없었던 두 아이의 마음에 안타까움은 너무 크게 일었다. 

 전쟁세대와 멀어질수록 우리는 역사를 잊어가고 있다. 교과서 속 외우기 어려운 복잡한 사건사고들로만 치부하며 외면한다. 우리의 ‘역사’를 잊는다는 것은 나라의 뿌리를 잃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역사를 전하고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할 의무는 분명 지금의 어른들에게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한다. 
 ‘봉주르, 뚜르’ 속에는 꼭 집어 역사라 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사건도 없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조국’‘나라’, ‘나의 가족’, 그리고 ‘일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낯설지만 깊이 공감되는 단어들이 가슴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역사를 선과 악으로 결정지어놓은 책으로 아이의 생각을 미리 닫아버리기 보단 열린 마음으로 역사에 대해, 나의 조국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가슴에 역사를 새기고 기억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특별한 의미로 누구의 가슴에나 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재미로 읽고 덮어도, 마음 한쪽에 들어찬 묵직한 무엇을 느끼며 책을 덮어도 한순간 느꼈던 따뜻함은 오래 남을 것이다. 문장의 주인이 드러나고 이야기는 결말을 맺지만 어쩐지 아직 비밀은 풀리지 않은 느낌이 든다. 가슴 속엔 아직 풀리지 못한 물음표들이 떠다닌다. 그 생각의 고리들에 하나씩 답을 달고 나면 아이도 나도, 불쑥, 다르게 느껴지는 오늘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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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들이 너무 많다. 손으로 더듬으며 읽고 싶고, 그 문장들 한올한올에 위로 받고 싶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들임에도 벌써부터 마음이 떨린다. 빳빳한 책의 첫장을 열며 갖는 기대감과 이제 열린 문틈으로 본 첫 문장이 가져오는 떨림은 앞으로무수한 페이지를 넘기며 내가 얻을 수 있는 감정들의 골을 예감하게 한다. 내가 익는다. 책으로 인해,  내가 두둑해지고 내 안에 새 페이지가 열린다. 까맣게 글짜들이 박힌다. 

 

제15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문학동네작가상엔 젊은 작가들의 시선이 톡톡튄다. '사라다 햄버튼'이라는 고양이와 '나'의 동거. 그리고 그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통해 변화하는 삶의 시선 같은 것을 만나고 깊이 공감하고 싶다.  

재미있게, 읽을 준비가 되어있다. :)  

  

- 8,100원

 

 

 

공선옥 작가님 만의 따뜻한 문체. 그 속에서 위로 받고 싶다. 추운 겨울 품에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만히 불러보는 그 이름 만으로도 따뜻해질 것 같은. 사랑도 사람도 그리운 지금... 작가님의 신작, 꼭 만나고 싶다. 

 

 - 9.900원 

 

 

 

나희덕 시인의 시를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주변의 것들이 환하게 눈에 들어오고  

곁에있는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체온이, 잡을 수 있는 손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를 알게 해 준다. 언젠가 빌려 읽고 오래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책. 요즘 자꾸 다시 생각나는 이 책. 꼭 만나고 싶다. 

 

 - 5,250원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서 '사랑을 믿다'를 본 후로 만나지 못했던 작가의 작품들이 모인 소설집이다. 많은 분들이 가만히 곱씹을수록 그 문장의 깊이가 되살아나고 마음에 공감이 인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다른 분들의 서평을 읽고 꼭 읽어야겠다고 더욱 마음을 굳힌 책.  

 

 - 9.000원 

 

 

조경란 작가의 팬이다. 정말, '혀'를 읽고 나서 더욱, '풍선을 샀어'를 읽고 나서 더더욱 그녀의 섬세함과 깊이 있는 문장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복어'는 작가가 오래 쓰지 못했던 글을 완성한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작가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될 작품이라고도 했고. 매일 죽음을 생각하는 여자에게서 조금씩 일어나는 변화와 '복어'라는 제목이 주는 강렬함이 어떻게 버무려져 담겨있을지 기대되는 작품이다.  

 

- 9,900원

 

  

 

   윤성희 작가는 단편집 '감기'를 만난 뒤 처음 만나는 작품이다. 아기 엄마여서 연재되는 당시엔 잘 읽지 못했다. 윤성희 작가의 문장이 주는 편안함은 잊지 못한다. 단편소설에서 느낀 작가의 깊은 시선들이 장편소설에서는 더욱 짙게 드리워져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를 스쳐간 모든 인연들을 돌아보게 할 책. 구경꾼들. 나의 가족과 내 주변을 사랑하게 해 줄 책, 내가 이 지구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다행이라 생각하게 해 줄 책이라 믿는다.  

 

 - 9,000원

 

 

<총 51,150원> 

쓰다보면 어느새 이 책들은 내 곁에 와 있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지금, 지독한 감기 곁에서 벗어나고 싶은 지금, 

이 여성작가들의 문장으로 위로받고 싶다.  

읽고 난 뒤에 더 많은 이야기들을 여기에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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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바구니 옆에 끼고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보니 어느새 새벽이다. 책을 고르고 펼쳐보면서 가슴 설레였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이면 행복하던 시간을 다시 되찾은 기분이었다. 이 가을, 많은 책들을 읽고 잃었던 꿈들을 되찾고 싶다. 마음에 가득 활자들을 채우고 그 풍요로움으로 누군가에게 긴 편지를 쓰고 싶다. 이 달 말일은 나의 두 번째, 결혼기념일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다. 가사일로, 아이를 키우며 잠시 멀어졌던 책. 그러나 여전히 내 곁에서 나의 꿈이고, 위로가 되는 책. 그 때의 기억들이 마음에 담은 책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준다. 제 장바구니를 꼭 들어 주시길, 소원하며.

 

여전히, 그리고 끝없이 사랑받을 책. <1Q84 1,2,3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을 기점으로 변하였으며, 분명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말한다. 

멈추기 어려운 흡인력과 속도감, 그리고 특별한 이야기가 두 개의 달이 뜨는 그곳을 향한 꿈을 꾸게 한다.  

아직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깊이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써는 많은 사람들의 추천과 끝이지 않는 리뷰들을 읽으면서도 선뜻 그의 소설을 시작하기가 망설여졌다. 도서관 내 그의 책의 서가 자리는 늘 비어있으며 나는 언론과 다른 독자들의 이야기로 그를 만나야 했다. 물론, 아줌마인 현실이 이 세 권의 책 앞에 망설임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기회에 이 책을 꼭 품에 안고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조경란 작가의 신작. <복어> 제목과 표지가 주는 느낌부터가 강렬하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많은 것들. 죽음. 사랑. 이별. 두려움. 인간의 감정이 교차하는 그 자리에서 뻗어나갈 그녀의 특별한 이야기를 꼭 만나고 싶다. <혀>를 통해 느꼈던 인간 감정의 극단과 멍이 드는 줄도 모르고 그 자리를 지키는 관계들의 섬뜩함이 이 책 안에도 분명 강한 긴장감을 품고 존재하리라 기대한다. 조경란 작가가 15년 작가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지칭한 이 작품을 이 가을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만들어보고 싶다. 

 

  

 

< 총 금액 :  50,76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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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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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손으로 들고 읽을 수 있는 작은 무게의 책이다. 그러나 심심한 맘에 섣불리 이 책을 펼쳤다간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나는 마음의 무게에 곤욕스러워질 것이다. 두 번째로 만난 헤르타 뮐러의 책. 그녀의 문장은 막힘없이 흘러가는 작은 구슬처럼 여유롭고 또 아름답지만, 그 문장들이 늘어서서 뿜어내는 인간의 생과 사에 대한 이야기는 처절하고 묵직하기만 하다. <숨그네>의 레오에게서 삶 자체를 착취당한 자의 비애를 보았다면,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의 빈디시에게선 현실을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자책하며 선택할 수 없는 내일 앞에 발만 구르는, 무능력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전쟁 후, 전몰자 기념비 주변에 핀 ‘장미’는 아름답지만 연약한 ‘풀들’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다는 진실을 숨기고 있었다. 무성하게 자라난 권력은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내일을 억압하고 마음대로 오려내었다.
  ‘빈디시’는 독일로 망명할 수 있는 여권을 얻기 위해 2년 째 이장에게 밀가루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기약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어쩔 수 없었다. ‘모피가공사’는 이미 여권을 받아 떠날 채비를 하고 있고, ‘야간경비원’은 떠날 생각이 없다. 떠나려는 자와 떠나는 자, 남으려는 자가 부딪히면서 이야기는 끊임없이 빈디시의 내면을 헤집는다. 그는 이 마을의 모든 것에서 ‘멈춰선 시간’을 본다. 벗어나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 움직이지 않는 것에선 희망도 내일도 없다. 끝이 난 것이다. 바퀴를 잃고 멈춰 선 수레가 길가에 버려진 자신의 큰 덩치를 수치스러워하듯, 빈디시는 남아있는 자신을 수치스러워했고 여권을 얻지 못한다면 생은 끝난 것이라 여겼다. 
  그의 마을엔 생기 있는 것도, 빛나는 것도, 오고가는 미소도 없었다. 안개가 낀 듯 경계가 흐릿한 그곳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건, 죽음의 냄새였다. 흡사 죽은 자들이 사는 내세 같기도 했다. 살아서 먹고, 움직이고, 이야기하지만 시간의 목줄에 이끌려 하루를 지나칠 뿐, 누구도 그 목줄을 팽팽히 당겨 살아내는 이는 없었다. ‘관’은 이름표를 달고 그들의 곁에서 죽음을 기다렸다. ‘죽음’은 친근하게 맴돌았고, 사람들은 성당에 모여 떠나는 이를 배웅했다. 뮐러의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루마니아를 알았고, 그곳에 있었던 전쟁과 비극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쉬쉬하며 숨겨야 했던 역사와 감시당해야만 했던 삶의 고단함이 절실히 느껴졌고, 안타까웠다. 차우셰스쿠 정권에 갇혀 마음에 깊은 감옥을 지어야 했던 슈바벤 독일 마을 사람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온전히 자신을 누일 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 그들의 마을은 생활의 터전도 안식처도 아닌 ‘작은 수용소’ 같았다. 사람들의 재산과 노동, 곡식 등의 것들이 어떤 대가도 없이 정부에게 넘겨졌다. 열리지 않은 곡식과 열매마저도 그들의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훔쳐보았고, 눈길로 조롱했다.


빈디시는 바짓가랑이에 한 손을 올려놓는다. 손은 차갑고, 허벅지는 따뜻하다. “여기 사정은 점점 나빠질 거야.” 빈디시는 말한다. “저들은 닭이고, 달걀이고 닥치는 대로 빼앗아가고 있어. 심지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옥수수까지 빼앗아가는 판이야. 언젠가는 자네 집과 마당까지 뺏어갈걸.” - p.111

 

 그런 마을의 사정에도 떠나지 않으려는 야간경비원을 빈디시는 우둔하게 여겼다. 누가 옳은 것일까.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빈디시는 살기 위해 지금의 아내에게 삶을 붙들어 매었다. 전쟁 후 남은 자들에게 사랑의 몸짓은 교환의 가치였고, 쾌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성스러움은 사라지고 그것은 인간의 욕심과 분노로만 그들 곁에 자리 잡았다. 그것은 빵이었고, 옷이었고, 여권일 뿐이었다. 아내는 빈디시를 만나기 전, 러시아에서 굶주림과 추위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남자들의 철제침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빈디시는 그 때의 아내를 두고두고 이해하지 못했다. 본문 중「풀수프」에서 그녀의 과거를 자세히 만날 수 있다. 그 문장들이 가리키는 한 여자의 잔인하고 고단했던 시간이, 굶주림 앞에 무릎 꿇은 그녀의 마음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섣불리 그녀의 판단을 비난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카타리나를 미워할 수 없었다. 
  처음에 빈디시는 어서 빨리 독일로 망명할 수 있는 여권을 얻고 싶었음에도, 도를 넘는 부정된 방법을 쓰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마음은 조급해졌고, 결국 딸아이의 몸을 내어주고 만다. 도시에서 유치원교사로 일하는 아말리에는 부모를 원망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화장을 한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하얀 구두를 신는다. 빈디시는 말리지 못하고 망부석이 되고 만 자신을 끝없이 자책했다. 입 밖으로 내놓을 수 없는 말들을 꾸역꾸역 삼켰다. 딸아이가 돌아올 길을 내다보면서 끝없이 길을 잃었다. 그들의 모든 감정과 판단은 여권에 묶여있었다. 어쩌면 목숨도. 그들은 그 줄을 끊지 못했다. 
  힘을 가진 자들은 그늘에 숨어 약한 자를 탐하고, 제복과 수도복으로 죄를 가리고 있었다. 손도 데지 않고 약한 자를 쥐락펴락했다. 사람들은 권력으로 무장한 그들을 우러러 보면서 원하는 것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권력은 그렇게 그림자만 남은 그들을 삼켰다. 표정도, 입술도, 재산도, 가족도, 내일도 모두 삼켰다. 명명하여 부르기 이전에 그들은 한 개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어둠이 내리면 그 윤곽마저 사라지는 그림자 덩어리. 빛이 닿지 않는 그들은 축축하게 젖은 종이인형처럼 불안했다. 내밀한 삶은 서로에게 바닥까지 드러났지만 지나쳐온 많은 시간들로 모든 것을 알아버린 그들에겐 슬픔도, 동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서로에게 침묵했다.  


 여권이 생긴 뒤엔 빈디시 가족에게도 일상의 대화가 오갔다. 집안의 것들을 팔면서 생기가 돌았다. 비행기 멀미를 걱정하면서 새 옷을 재단했다. 머리를 잘랐다. 아말리에의 잠든 얼굴이 부부의 눈에 보였다. 빈디시의 아내가 웃었다. 그렇게 죽음이 지나가고, 과거가 지나갔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아말리에를 찾아댔다. 빈디시 부부는 아무렇지 않게 아말리에의 약속을 챙겼다. 여권이 생긴 뒤의 빈디시 가족의 모습과 대비되어 이어지는 본문「은빛 십자가」는 그들이 잃은 것과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했다. 권력을 가진 자가 그 힘으로 어떻게 한 인간을 짓밟는지를, 한 사람의 생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모습이 냉정하게 그려진다. 시대를 국가를 잘못 얻은 그녀의 삶이 이렇게 훼손되는 게 안타까워서, 아말리에의 담담함이 안쓰러워서, 당연하게 그녀의 작은 가슴을 움켜쥐는 그들의 손이 두려워서, 나는 잠시 책을 덮어야 했다. 삶의 앞, 뒷면을 한 번에 보아버린 듯 그 극단 앞에 눈이 매웠다.  

  침착하게 이어지는 문장들은 차갑게 그들의 삶을 후려쳤지만 누구도 스스로의 잘못을 알진 못하는 듯 했다. 떠나는 날, 빈디시 부부는 회생 정장을 차려입었다. 때가 묻은 ‘꿩’의 모습으로 그들은 마을과 작별하려 한다. 무언가를 쟁취했다기보단 도망치는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그 사이 결혼한 ‘야간경비원’에게서 막 달아오르려는 삶의 냄새가 맡아졌다. 그들은 행복하게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들의 내일은, 오늘과 다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그림자이길 자청한 자이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스스로를 숨길 곳을 위하여, 자신이 삼켜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야.” 야간경비원은 빵을 씹으며 나지막이 말한다. 빈디시는 밀가루포대를 들어올려 자전거에 싣는다. “인간은 강해.” 그가 말한다. “짐승보다 더 강하지.” - p.15

 

  그림자는 그늘로 들어서면 사라진다. 존재가 없어지고 무의미해 진다. 그것은 안전하게 느껴졌지만, 어리석은 삶의 입구로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단 한번만이라도 땅을 딛고 서서 제 팔과 제 다리를 휘젓고,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면서 살아있음을, 스스로 존재함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면 어쩌면 그들은, 꿩보다는 나은 모습을 갖출 수 있지 않았을까. 인간은 강하게 자신의 삶을 몰아가지만, 결국 결정적인 힘이 가해지는 순간에는 약해지고 무능력해진다. 미래가 위협당하는 순간, 그들은 안전한 곳이라고 느껴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어떻게든 가야한다. 그토록 분명하게 인간은 강하다고 말했던 빈디시는 아말리에를 권력 앞에 내어주고 다른 사람들의 입술이 두려워 자신의 집을 나서지 못했었다. 스스로를 조롱하듯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야.”라고 말했다. 
  '몸집만 커다란 꿩은 어설프고 무력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을 상징’한다. 살기 위해선 도덕도 인간다움도 버려야 하는 인간의 비애가 날지 못하는 꿩의 모습과 겹쳐져 인간의 나약함을 비웃음거리로 만든다. 빈디시 뿐만 아니라 분명, 지금 우리의 삶에도 똑같이 비춰지고 있는 꿩의 모습. 안전하게 살기 위해선 권력에 편승해야만 하는 현실. 섣불리 부정하고 틀렸다 말할 수 없는 현실. 두려움이 손과 발을 묶는 현실. 살기위해 그래야만 했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스스로 면죄를 받는 잔인한 현실. 그렇게 우리도 빈디시의 마을에 살고 있다.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나는 불현듯 두려워진다. 삶을 팽팽하게 조이는 어떤 무게감에, 내게로 달려오는 내일 앞에 묵직한 책임감을 느낀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빈디시는 우리 곁에 있고, 우리 안에 살고 있다. 그가 조용히 그곳에 머물 수 있도록, 내 인간다움을 이기고 나의 밖으로 출몰하지 않도록, 팽팽하게 마음을 조율해 본다. 그러나 내 입술은, 보는데로 진실을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세상은 한 인간을 ‘꿩’으로 전락시킬 수 있지만 그 현실을 박차고 나가는가, 갇히는가, 의 선택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삶은 결국 각자가 가진 그릇만큼 담기기 마련이고, 책임은 각자의 몫일 뿐이다. 다행인 건 누구도 서로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는 사실.  나는 내가 가진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그림자 밖으로 꺼내겠다고, 그림자의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한다. 그 희망만이 내가 이 책을 덮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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