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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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이 책 곁을 맴돌았다. 아니, 헤매었다고 하는 게 맞다. 한 권의 책 속에 담겨 있기에 그 세계는 너무나 광활했고 그들의 이야기는 무거웠다. 한강 작가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그녀의 오랜만의 소설이 반가웠고 제목마저 나를 이끌었다. 바람이 분다, 가라. 책이 출간된 건 이제 막 봄이 움트려할 때였는데, 해가 바뀐 뒤에도 여전히 제자리에 고여 있을 뿐인 내게 그것은 어떤 신호처럼 울렸다. 그리고 또 한 번, 계절들을 보내고 한 해의 막바지에 다다라 다시 책을 덮었다. 어느 새, 세 번째였다.
책 속은 여전히 깜깜하고 길은 끝없이 엇갈려 있었다. 돌아서면 다시 새로운 길. 곳곳에 놓인 어둠의 웅덩이에 빠져 잠시 멈춰야 할 때도 있었다. 잦아들 줄 모르는 슬픔이 몰아쳐 눈앞을 가렸다. 그러나 다시, 끝을 모르는 이 길로 두려움을 지고 나를 던져야 했다. 두 다리에 힘이 없으면 바닥에 배를 밀고서라도 나아가야 했다. 살아있는 자의 숙명을 이 책에서 목격하게 될 줄이야. 너무 많은 삶의 비애를 알아버린 느낌. 나는 쉽게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387페이지 속에 가볍게 담겨버린 한 여자의 그림자 같은 생과 그녀와 삶의 일부분이 포개어진 또 한 여자의 마지막을 말이다.

한강 작가는 이 소설을 연재하던 중간 연재를 멈췄고, 그 뒤 네 번의 겨울을 보내며 새로 썼다고 했다. 살얼음이 박힌 느낌으로 이 소설 곁을 서성이고 뒤척였다던 그녀가 ‘이젠 돌아보지 말아야 겠다’는 그 시간들을 어느새 내가 돌아보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며 아플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짐작되었다. 그녀를 가까이서 만났더라면 나는 덥썩 손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미술평론가 강석원이 엮은 서인주 유작 평전의 출간을 앞둔 시간에서 출발한다. 그는 촉망받던 젊은 여성 화가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 짓고 그녀의 삶과 그림들을 극적으로 포장해 사람들 앞에 내놓으려 한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아는 이정희는 그 책의 출간을 막기 위해 강석원과 맞서며 자신의 기억들을 되짚어 간다. 알콜중독인 엄마의 자살과 병으로 숨을 거둔 삼촌의 죽음을 견뎌야 했던 인주. 자신의 몸으로 아이를 품어줄 수 없었던 정희. 그리고 실패로 끝나버린 결혼생활. 그녀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왔고, 더욱이 서로에게 상처를 내보이는 일에 어색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따뜻한 음식과 물 같은 존재로 지내왔던 정희에게 인주의 죽음은 자신의 일부를 상실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인주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고 아이를 위해서라도 삶에 치열했고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정희는 끝없이 시간 속을 헤맨다. 서인주의 작업실에 몰래 들어가 그녀의 그림들과 체취를, 움직였던 공간을, 흔적을 오래 더듬는다.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강석원이 모두 움켜쥐려 했던 그녀의 삶을 놓아주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시간을 잃어버린 정희가 안간힘으로 무장할 수 있었던 건 자신과 포개어진 인주의 생을 거짓무덤에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함께 나눠온 시간을 기억을 부정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녀의 치열한 싸움 사이사이에 추억들은 환청처럼 찾아온다. 외삼촌과 인주와 함께 까먹던 계란들. 먹그림들. 우주가 담긴 책들. 결혼을 한 뒤 정희가 삶을 놓아버릴까봐 그녀 곁에 데려다놓았던 인주의 아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편안한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평온해서 현재의 그녀를 더욱 슬퍼보이게 했다. 어쩌다 이 시간을 통과하게 된 것일까. 고통으로 누군가의 부재를 바라봐야 하는 이 시간으로. 행복했던 기억들은 타고 남은 재처럼 허공으로 사라지려는 그녀를 깨우고 일으킨다. 새벽의 찬 공기속으로 등을 떠민다. 그녀는 인주를 볼 수 없었던 시간 동안 그녀에게 있었을 일들을 계속 추적해 간다.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메일을 넣고 전화를 걸면서 끊임없이, 시간과 얼굴을 내밀지 않는 상대와 싸운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모두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녀에 대한 낯선 이야기들을 만나면서 정희는 또 한 번 내면에 충돌하는 슬픔을 느낀다. 인주는 그 날 새벽, 눈발이 아득하게 날리는 미시령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었다. 눈발이 모든 것을 덮기 전에 그 전화를 받았더라면, 어쩌면 지금 인주는 살아있을까. 자책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시간 앞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남은 힘을 다해 걸음을 뗀다. 피비린내 나는 공기 속에 이야기는 부유하는 먼지처럼 질기게 온 몸으로 내려앉는다. 코와 입으로 들어와 내부에 들어차고 호흡을 방해한다. 어둠 안에 드문드문 꺼질듯 희미한 불빛들. 별처럼 작은 그 불빛을 뚫고 나가면 보일 듯한 과거의 따뜻했던 시간들. 식물을 기르듯 먹그림에 몰두하던 그들의 모습.

우리는 늘 삶을 의심하고 무의식중에 자신의 근원을 쫓는다. 나는 어디서 왔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와 같은 철학적 심연에 휩싸여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어떤 대답을 얻기 위해 그토록 우리는 혼돈을 자처하는 것일까. 죽음으로 종결되는 생에 어떤 제목을 붙여주고 싶은 것일까. 처음과 끝을 알고 싶었던 외삼촌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들. 그 곁에서 광활한 우주와 자신의 거리를 가늠하던 앳된 고등학생 소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는  너무나 멀어져버린 그 시간들을 눈으로 읽기 위해 끊임없이 우주의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생성과 소멸을 자신의 현실에 대입시킨다.   

과거의, 자신이 살았던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것을 바라보면 그 모든 것은 찰나의 시간일 뿐이다. 그것들은 애써 만지고 이해하려 할수록 모호한 것들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태초에 ‘소금 한 알’처럼 던져진 우주. 그 표면에 붉은 마그마가 바다를 이루었던 처음. 태고의 비가 수천만 년을 변함없이 흐르며 서서히 지구를 식혀가던 시간. 가슴에 담기엔 너무나 벅찬 그 시간을 가늠하려 애쓸수록 혼돈만이 일었다. 모호했던 삶의 ‘시작점’이 그곳에 있다면, 우리는 모두 동일한 원소로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거기서 우린 스스로의 근원과 맞닥뜨린 것은 아닐까. 인간과 우주를 연결시키며 우리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끄는 것은 결국 자신 안의 것을 진실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 때문 아닐까. 공식에 대입하면 풀리는 규정된 삶을 갖고픈, 고단한 사람들의 희망 아니었을까.



책의 표지를 장식한 그림. 한은선 작가의 「물결치다」라는 작품을 찾아 오래 보았던 일이 있다. 처음엔 아주 잠시, 전체를 드러낸 그림을 마주하기가 불편했다. 살갗 위의 상흔 같아서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것은 빙하 사이의 크레바스 같기도 했고, 어딘가로 이어진 물줄기 같기도 했다. 종이를 채운 흔들림과 비규칙적인 어둠은 불안정한 작중 인물들과 많이 닮아있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작가의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싶은 막연한 마음도 생겼다.  


외삼촌의 작업에서 서인주의 작업으로 이어진 먹그림은 어둠속에서 돋아나는 빛, 희망과 닮아있었다. 그것은 혼돈을 뚫고 나아가려는 움직임이었다. 외삼촌은 큰 한지 위에 먹을 심고 물길을 내어주면서 한지위로 자국을 밀고 나가는 먹의 길을 바라보곤 했다. 긴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물과 먹과 종이가 어울어지며 하나의 의미가 되어가는 모습은 우리내 삶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온화하고 고요한 시간인 듯 하지만 그 안에서 서로가 밀고 밀리며 치열히 다투고 있었다. 그렇게 남은 흔적들을 가까이서 볼 때는 불안정하게 느껴지지만, 멀리서 전체를 보면 아름다운 별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우리가 아등바등 하며 사는 삶도 지나와 먼 거리에서 보면, 어쩌면, 이런 모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은 별을 닮았다. 인간은 그 별로부터 떨어진 티끌일 뿐이다. 우주의 물질이 하나이듯 종이와 담벼락, 타인의 손과 손까지도 하나였다. 무엇을 이해하고 피할 수 있을까. 밤과 낮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생성과 소멸을 목격하며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을. 고요해질 수 없는 수면을 품고 끝없이 출렁이고 휩쓸리며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불쑥,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혼돈을 가슴에 담았다 덜어내길 반복하면서 ‘단박에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 는 것만으로 충분히 우리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니까.

살고싶다.
살고싶다.


불길 속에서 치열하게 그녀가 되내던 말이 곁을 맴돈다.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불길에 갇힌 그녀는 우주가 태어나던 그 시간과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녀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고 생각했다.

외따로 떨어진 유성처럼, 어디선가 누구도 모르게 차디찬 몸을 견디고 있을 사람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갈망했던 서인주와 이정희의 관계를 질투하던 강석원은 결국 온전히 자신의 것일 수 없는 서인주의 흔적에 불을 붙이며 이정희 또한 함께 죽이려 한다. 자신이 품고 있는 기억이 거짓이 될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현듯 인간의 모든 감정 앞에 관대해지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욕망과 질투, 시기, 자만의 부푼 감정들로 우리는 내일을 맞을 이유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방어하려는 것 아닐까.


누군가의 죽음이 한번 뚫고 나간 삶의 구멍들은 어떤 노력으로도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차라리 그 사라진 부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아 익숙해지는 편이 낫다는 것을 그때 나는 몰랐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오기 위해 달아나고, 실제로 까마득히 떨어져서 평생을 살아간다 해도, 뚫고 나간 자리는 여전히 뚫려 있으리란 것을, 다시는 감쪽같이 오므라들 수 없으리란 것을 몰랐다.
                                                                                                              - p.64


나는 늘 한강 작가의 소설에서 느껴 온 여성의 섬세한 감정과 생의 긴밀함, 풍부한 내면의 표현 들을 존경해왔다. 정오를 넘긴 새벽까지, 그 균일한 고요 속에서 그녀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넘치는 감정들에 젖어 스스로 소설가가 된 듯도 했다. 햇볕 아래서 식물이 되길 원했던 가늘고 여린 잎 같던 여자들. 그러나 정희는 달랐다. 치열하게 무언가를 갈구하며 싸워나갔다. 타인의 눈매에 위압되지 않았고 꼿꼿이 맞섰다. 당당히 진실을 요구했다. 그녀는 알 수 없이 용감했고, 알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더욱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그녀가 안타까웠고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들이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다. 삶은 이해할 수도 규정될 수도 없는 것이다. 지나온 삶의 상처들은 더더욱 그렇다. '사라진 부분을 오랫동안 들여다 보아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새로운 시간 속에 편입한다. 살아낸다는 현재형 밖에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며 어떤 것도 지나오기 전엔 무(無)의 상태일 뿐이다.

아이의 머리맡에서 자장가를 불러주다 불현듯 떠올랐던 생각이 있다.  

우주가 여기 있다는 것.

먼지의 입자 같은 한 개의 세포가 또 다른 세포를 만나 수정이 되고 분열하면서 형상과 무게, 존재를 만들었을 이 아이의 처음. 좁은 길을 다시 돌아나와 막다른 세상으로 쏟아져버린 존재. 시간의 눈금만큼 조금씩 스스로를 팽창시키는 존재. 나와 아이가 나란히 우주의 삶을 살고 있다고. 우리의 시작은 그랬고 우리는 한 개의 점저럼 계속 존재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넘어져 있던 한 여자를 일으켜 세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라도 앞으로 나아가라 재촉한 것은 작가와 우리와 나란한 삶을 살고 있는 한 여자에 대한 걱정과 위로가 아니였을지. 아이를 등에 업은 서인주가 이정희에게 건내었던 말을 적어본다.

이런 바람이 불면 말이야.
민서를 고쳐 업으며 인주는 말했다.
이만큼의 습기를 품은 바람이, 이만큼의 세기로 불면 말이야...... 

혈관 속으로 바람이 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져. 모든 것이 커다란 전체로 느껴져. 언제고 낸 다리를...... 단박에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는 게, 무섭도록 분명하게 느껴져.
                                                                                                            - p. 369 


바람이 나를 끌고 나는 곳은 어디일까. 또 어떤 삶의 심연 속으로 나를 데려다 놓을까. 어둠에 움츠러들지 않고 그 속으로 나를 밀려 한다. 어둠에서 만이 더욱 선명한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니까. 어렴풋이 삶의 윤곽을 더듬은 느낌. 손에 남은 차가운 긴장감을 움켜쥐어 본다. 시간이 모래보다 곱게 바르라져 날린다. 다시, 바람이 분다. 

 

  

  

 

 * 사진출처 :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02/h20060205173849756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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