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의 목표는 100권의 책, 100개의 아웃풋이다. 평소 100권 정도는 너끈히 책을 읽어왔지만 읽고 난 후에 기록으로 남긴 것은 채 10개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읽은 것은 그냥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매년 기록하기를 목표로 삼고 다이어리를 사건만 정신차리고 보면 또 한해가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럴 순 없다. 정말 이렇게 모든 것이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게 너무 아쉽다. 그래서 올해도 어김없이 시작한다. 100개의 글쓰기. 작심삼일이면 삼일에 한 번씩 계획 세우는 기분으로, 그렇게 다시 시작한다.
<즐거운 어른>은 이렇게 기록해야지, 생각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어제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켰다가 몇 줄 못 쓰고 다시 덮었다.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고, 사실 내 취향의 책이 아니다. 내 취향이 아닌 책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쨌든 이 글은 나의 페이퍼이고, 나는 이틀에 걸쳐서 이 책을 읽었고, 좋았던 경험이든 좋지 않았던 경험이든 다 내것이고, 내가 저자에게 잘 보이려고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텍스트가 저자의 생애나 저자의 의도에 의해서만 해석되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어쨌든 책은 읽게 된 순간 독자의 것이 된다고, 그 유명한 롤랑 바르트도 말하지 않았던가.
평소에는 절대 읽지 않았을 이 책을 읽게 된 건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올해 처음 시작하게 된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이였고(이 이유가 90%), 이 책이 에세이 분야에서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음을 알기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나이는 76세에 에세이는 처음 내고, 김하나 작가의 엄마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굉장한 셀럽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소소하게 재미있기는 하지만 문장이 끝내주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어쩌다 그 어렵다는 에세이 시장에서 이 책은 그렇게 선전했는가?
이 책의 저자는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인데 어쩌다 이 책을 쓰게 되었지만 쓰다보니 내 안에 할말이 많다는 걸 알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책많이 읽는 저자가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쌓아온 생활밀착적 자신의 통찰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의 입장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유명해지지 않고, 기존 가부장제의 여러 관습들에(남존여비, 제사, 결혼, 돌봄) 대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다. 나의 꿈은 고독사, 자세를 꼿꼿하게, 출산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 등 기존의 어르신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한다.(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새롭지는 않았다) 하나 인정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유머이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어르신들도 별로 없지만(특히 여성은) 호탕한 유머를 가진 여성은 더욱더 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귀한 책이다. 호탕한 유머를 가진 글 쓰는 할머니라는 새로운 여성유형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보니 나이든 여성의 책은 별로 없고, 이 책은 우리가 대상화하기 쉬운 나이든 여성 어르신(책도 꽤 읽고 호탕하고 유머가 있는 데다가 가오잡거나 멋 부리는 대신 매일 목욕탕에 가고, 고독사하길 꿈꾸며 일주일에 3번씩 요가를 하는 할머니. 오, 좀 멋진데~~!)
남성 어르신들이 출판계를 주름잡고 있는 동안 여성 어르신들은 다 사라져버린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상에서 그분들을 보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 (이옥선 여사님과 비슷한 포지셔닝으로 까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저자도 비슷한 것 같다. 이런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게 되기를 기대한다.)
책을 보면서 '즐거운 어른'이란 어떤 어른일까 생각했다. 예전에 '어른'하면 고지식한 꼰대, 지적인 통찰로 번득이는 호통, 이런거? 그런데 이옥선의 즐거운 어른은 좀 다르다. 이 어른은 좀 가볍고 자유롭다. 김하나 작가는 추천사에서 '따뜻한 할머니는 품어주지만 까칠한 할머니는 해방시킨다'고 했다. 글쎄. 이옥선 여사는 까칠한 할머니는 아닌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따뜻하지만 그것을 오지랖이나 꼰대스러움으로 표출하는 대신 자신을 사랑하고 매일 사람들과 연결되며 일상을 가볍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할머니 같다.
어쩌면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독자들이 그런 할머니를 원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저자가 쓰지만 베스트셀러는 독자가 만드니까 말이다. 이런 여성 어른의 다양한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