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명상록>을 몇 번 읽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원서로. 아는 작가님이 런던도서전에 갔다 오면서 선물이라고 주셨는데, 이럴수가. 영어로 선명하게 써있던 <meditation> 작가님이 저를 생각해서 선물로 사주신 거라 너무 감사하긴 했지만, 작가님 저를 원서를 읽는 사람으로 봐주신건 고맙기는 한데요... 저는 그런 사람 아닌데요. 하고 말했더니 그분은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제가 원서를 읽는 이유가 그거예요. 천천히 읽으려고요. 한 글자 한 글자 사전을 찾아가면서요." 그래서 나 또한 그 말에 혹해 원서를 냉큼 받았고 매일 새벽마다 한 단어, 한 단어 점점이 읽다가 결국 3일만에 포기해버리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그 후에 그래도 내용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번역본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아아, 이 팍팍한 노인네를 어쩔거야. 밑도 끝도 없이 계속해서 나오는 잔소리가 어떤 맥락에서 왜 나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어서 패쓰. 이후에는 명상록 인생 수업 같은 느낌의 자기계발서도 읽었지만 이게 도대체 원작에 있는 내용이지 저자가 만든 내용인지 잘 모르겠고, 너무 쉽게 떠먹여주는 것 같아서 패쓰. 그렇게 나만의 명상록을 찾아다니기를 몇 년. 이번에 드디어 마음에 쏙 드는 명상록을 찾았으니 바로 이책 그레고리 헤이스의 <명상록>이다.
우선 이 책은 고전학자 교수이자 고전 해설의 최고 권위자인 그레고리 헤이스가 앞에 해제를 붙였는데 그 부분을 읽는 것만으로 이 책이 어떤 상황에서 왜 쓰여졌는지 등의 배겨설명과 흔히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스토아학파에 관한 설명 등이 있어 한층 풍부하게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뒷부분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나온다.
몇 개의 판본을 거치며 명상록을 읽었지만 첫느낌은 항상 아우렐리우스 이 사람 거참, 빡빡하다. 이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우렐리우스의 세계가 보였다. 이 사람 좌절이 많았겠구나. 매일 번뇌했겠구나. 사람들 사이에서 괴로웠겠구나. 왜냐하면 책에도 나오지만 황제는 이론적으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 정책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은 훨씬 제한ㄷ적이었고, 대부분의 시간은 문제를 처리하는 데 소요되었다고 하니까. 로마제국의 대도시에서 온 사절단을 영접하고, 형사사건의 항소를 심리하고, 지방 총독의 고충에 응답하고. 개인의 청원을 처리하고, 그 와중에 화가 나고 불화통이 터지고 좌절하는 사람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듯...
이 책의 제목은 원래 "자기 자신에게" 이다. 그런데 일기는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일기는 시시콜콜 사건과 인무리 있고 그에 따른 이야기가 있다. 미쳐버릴 것 같지만 미쳐지지 않기에 미쳐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는 다양한 사건과 사람들, 그에 얽힌 불만과 불평, 짜증과 화, 체념과 냉소, 그리고 아주 가끔 기쁨과 행복이 있기 마련인데 여기에는 그런 디테일한 사건과 인물이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자신에게 가하는 채찍질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제목이 "자기 자신에게"라는 것을 보면, 이 모든 명령문은 자신에게 향하는 말들이다. 상대를 포용하고 더 큰 것을 보고, 그들의 행동에 반응하지 말고. 관대하지 못한 자신을 다그치고 안이해지려는 자신을 혼낸다. 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늦게 일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가 스소레에게 만나는 사람에게 관대해지라고 말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그들 때문에 화가 나고 관대해지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 때문이다.
그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나는 아마도 그가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태도로 이루고 싶은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 되니까 괴로운거다. 번뇌하면서 좌절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잡으며 그 시간을 버텨나갔을 거다. 이런 그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다, 나에겐.
그리고 끊임없이 죽음을 떠올린다. 이 세상은 순간이라는 것, 지금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만다는 것. 그 이후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지 우리는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이 지금의 그 모습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나는 일기를 쓰는 모든 사람을 존경한다. -아우렐리우스. 다산. 이순신. 일기를 쓰는 것은 매일 완결하고 매일 나아간다는 뜻이다. 이것이 복기의 힘이 아닐까. 반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디브리핑하고 복기하고 완결하는 삶. 그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아마도 나라는 작은 존재를 넘어서서 무언가 이루고 싶은게 있어서 그럴거다. 매일 살아가는 당면하는 순간에는 울고 싶은데 그 와중에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을 깨닫고 울면서 웃는 사람.
김연수 작가는 <소설가의 일>에서 이렇게 말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이 좌절됐다는 것을 깨달았으면서도 꿈에 대해서 한번 더 말할 때, 우는 얼굴로 어둠 속에 서서 뭔가 다른 좋은 생각을 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을 때, 바로 그때 이 우주가 달라진다는 말. "(257p)
나는 아우렐리우스의 글을 보면서 그가 우는 얼굴로 어둠 속에 서서 억지로 미소 짓는 것을 떠올렸다. 바로 그래서 그의 글이 2000년 동안 살아남아서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아우렐리우스의 글을 이 책을 통해 깊고 넓게 가져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