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역시 사는 맛! 이라고 말하며 미친듯이 책을 사모으기만 하는(읽지는 않는) 삶에서 청산하고 싶어 동네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건 비리는데로, 사는 거 사는데로, 또 각각의 책들이 집에 널려 있다는 것--;;
정재승의 <열두발자국>은 동네도서관에서 빌려와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가장 감동깊던 장면을 꼽으라면, 저자가 터키의 학회로부터 강연 초청을 받았던 사연.
이스탄불 옆에 테키르다라는 작은 도시에서 학회가 열리는데, 이스탄불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공항에서 차를 빌리고 운전해서 가기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학회가 테키르다에서 열린다는 건 알겠는데 테키르다 어디에서 열리는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물어본 적도, 주최 즉으로부터 들어본 적도 없었다는 것!
그리고 저자는 그 도시를 미친듯이 헤매고 또 헤매다 결국 학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다. 다음날 그는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혹시 도시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으세요?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그래서 미친 듯이 돌아다녔더니 그 도시를 잘 알게 되는, 저에게는 바로 그게 인생의 큰 경험이었어요.
우리는 평소 길을 잃어본 경험이 별로 없죠. 길을 잃어본 순간,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도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를 알려면 세상에 대한 지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어디에서 뭘 하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지 내가 그린 그 지도 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학교는 젊은이들에게 지도 기호와 지도 읽는 법을 가르쳐주고,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착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하려고 길 찾기를 열심히 훈련시켜 세상에 내보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세상에 나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도를 그리는 일입니다. 누구도 여러분에게 지도를 건네주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한 지도는 여러분 스스로 그려야 합니다.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나는 어디에 가서 누구와 함께 일할지,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10년 후 지도는 어떤 모습일지, 나는 누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갈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지도 위 어디에 있는지,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야 합니다. 아무도 여러분에게 지도를 주지 않아요. "59
나는 정말 이 부분을 읽고 감동을 받았는데,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이 책을 이미 읽었음에도 소장하려고 장바구니에 넣고 있었다.
내가 세상에 대한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아마도 처음 전업주부가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아이, 육아, 살림이라는 지도. 그리고 조금씩 그 지도의 영역을 넓히고 키워왔다.
심리학과 사주라는 영역, 마케팅과 전략이라는 영역, 페미니즘이라는 영역, 돈과 투자라는 영역 등.
나는 계속해서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지도를 그리게 될지 나또한 너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