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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 언니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소설을 접했다. 주로 실용적인 도서나, 최근에 가벼운 유머류 정도의 읽기에 급급했던지라, 김정현 작(作)인 '아버지' 이후로 적당한 대상을 찾기 힘들었다. 가장 최근에 읽었던게 그 작품이니, 그 때의 감동은 지속적으로, 아하 소설의 표준은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는가 자답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소설류가 실제와 같은 느낌을 주지만, 이렇듯 감동을 주는 것은 그 극적인 면에 있을 것이다. 일상의 소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형국으로 사건이 전개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기에 시간이 부족한 독자들은 밤을 새워가면서도 한 호흡에 책 읽기를 시도할 수 밖에 없으리라. 그것은 상기에서 밝혔듯, 뭇 소설에 흠뻑 빠진 것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이 소설이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선정한 '추천도서'였는지, 결과의 선후가 어찌됐던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그 저 내겐 다소 '촌스러운 느낌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시대적 배경은 조금 시간이 흘렀겠구나 라고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단지 고루한 옛 이야기가 아닐는지, '세피아 빛 책 표지'처럼 지금은 고인이 된 누군가를 회상하는 이야기는 아니겠는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첫 페이지를 열고 책의 서두를 읽을 무렵에도, 다른 소설과 피차일반이지 않는가 하고 반문해 보았다. 사건의 개시를 위해 주변 상황들이 묘사되었는데, 흔히 접할 수 있는 필치(筆致)였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글의 운치'라고 해두자. 하지만, 이 느낌은 책을 읽어가면서 작가 특유의 생동력 있는 심적/외적 묘사감 때문에, 어느 순간 잊어버리게 되고 오직 책에만 몰입하게 된다. 72개의 연결된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다음 사건의 전개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극중 화자는 전체적으로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취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처럼 제한된 관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봉순이 언니'라는 대상에 대해 회상하면서도 '5살짜리 짱아의 사고(思考)'는 너무도 기민하고 영특해서 현재 중년인 극중 주인공의 시각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작가는 처음부터 철부지 5살짜리의 시각으로는 대상에 대해서 한정적으로 밖에 접근할 수 없어, 이런 이야기 전개 방식을 취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식모로 들어와 자신의 유년기를 같이 보내고, 그 언니가 남이 봤을 때 탐탁치 않은 임신을 하고, 또한 다른 남자를 만나 그 남자가 사별을 하기까지... 외면적으로 봤을 때, 한 시대를 고통스럽게 보낸 언니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성으로 상대적으로 불리한 사회 현실을 그려내기 위해 작가는 '어른이 된 짱아'의 생각을 '어린이 짱아'에게 주입시켰다.
소설에서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한 가지 전형적인 면이, 다른 한 쪽에 소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가, 경제 기반을 다지면서 비례적으로 가정에는 소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나, 어머니는 '봉순이 언니'라는 식모를 통해서 유년 시절에 주인공인 나와 필연적인 거리감을 둘 수밖에 없었던 점이나, 자신의 입신을 위해 상대적으로 내게 큰 존재가 되어주지 못했던 언니와, 오빠의 모습들이나 모두 인간 성향의 유한적인 면을 잘 드러낸다. 특히 패물 분실로 인해 어머니가 '봉순이 언니'를 추궁했던 장면들은 유산자(有産者)로서의 한계를 극명하게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소설 '봉순이 언니'에서 작가는 '경제 성장의 과도기' 과정을 체험하면서 급격한 사회 변화를 통해 우리가 잃어갔던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유년시절에 나의 '수호천사'였던 '봉순이 언니'를, 단지 험난한 인생을 살았다는 이유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 있을까 라고 물음을 제시하는 건 아닐까.
많은 생각들을 해 볼 수 있어 뜻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