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본 책을 두어 달 가까이 놓아두었다가 다시 바라보는 일은 약간은 괴로움이다. 훌쩍 지나버린 시간을 되짚어서 이야기와 느낌을 갈무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 [015. 검은 새]는 지난번 만난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014. 콩고의 판도라]를 능가하는 재미와 속도감으로 단숨에 읽어내려간 추리소설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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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범행증거, 침묵하는 남편, 증폭되는 의혹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반전의 순간, 놀라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늘어가던 심장박동!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는 자제하련다. 다만, 아이를 갖지 못하는 아내이자 나중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어버린 나와 범인으로 의심받으면서도 끝끝내 진실의 한 측면을 부여잡고도 말하지 않던 도입부의 화자(話者)이자 주인공인 나,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주검과 목격자, 경찰, 실험실, 마약… 그리고 부부 사이의 믿음... 모든 게 사라져 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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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뜻이 없는 건 하나도 없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세세한 것들까지도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어.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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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기본이라 할 위의 말처럼 이 책에는 가까이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되씹고 사실적으로 추론할 수 있어야만 살인사건의 진상을 알아낼 수 있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이 책을 만나는 큰 즐거움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이 왜 추리소설로 소개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작가>시리즈로 소개되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책읽기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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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살인사건을 둘러싼 아내와 남편 사이의 심리상황,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갖지 못하는 사람의 정서 등이 어울려 미묘하고 복잡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추리소설의 흥미에, 더하여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재미를 건네준다. 물론 '기막힌 사건의 결말'이 이 모든 이야기를 받쳐주고 있는 셈이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성을 쌓아두고 그 틀 속에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나중에 큰 역할을 하게 된 목격자의 증언조차도 바라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르게 다가옴을 새삼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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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또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뒷이야기는 각자 살아나가는 모습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우리는 잠시나마 이야기 속에서 즐겁고 행복했다. 그로써 넉넉하리라.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또 한 사람의 행복한 독자를 위하여 말을 아끼고 삼가련다. 이 책의 재미는 마지막 결말을 조금이라도 알면 반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서들 이 [검은 새]를 붙들어 잡으시라. 우리 속에 머물며 오락가락하는 그 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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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가 오고, 새해가 시작될 것이고, 내가 죽는 날까지도 밤과 낮은 엄격한 순서에 따라 계속 이어질 것이며,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하루에 세 번 밥을 먹고 밤에는 다시 잠들 것이다. 엄청난 사건을 경험했지만, 뭐가 크게 바뀌거나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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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 1. 새롭게 시작합니다. "1日1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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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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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43-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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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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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을 받는다는 건, 음……. 다리가 쑤시는 것과 비슷해. 하지만 일어나는 곳은 다리가 아니라 머릿속이야."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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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인용한다오. 고통이 없다면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겠습니까?"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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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내가 대답했다. "함께 의자에 앉아서 얘기하는 거지." (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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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통과 근심과 괴로움을 통해서만 무언가를 배운다. 불행만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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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는 덴마크인과 노르웨이인이 침략하던 시절의 잔재라고 한다. 정복자들은 남자들에게 넥타이를 매게 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아무 때나 목을 조르기 위해서였다. 그때부터 이걸 매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지만, 그 끔찍스런 기원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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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대부분은 가장 가까운 일을 잘 보지 못하고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