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 출간 15주년 기념 개정증보판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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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출간 15주년 기념 개정 증보판>으로 2003년 발간된 책이 다시 복간되었다. 지난해 말에, 그리고 이제야 나는 이 책을 만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1988년 원서 출간 이후 20년 하고도 두 해가 더해진다. 문득 생각한다. 1988년, 거리를 내달리던 젊은이였을 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나는 뭐라 하였을까?  혹, 그때 만나보았는데 잊어버린 건 아닐까? 아마도 난 이렇게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였으리라. "뭐, 뻔한 이야기네." 
 
 하지만, 나 역시 스물둘에 스물둘을 더한 나이를 막 넘어선 2010년, 오늘 만나는 이야기들은 새롭지는 않아도 신선하고 상투적이지만 감동적이다. 어렵지도 않고 쉽게, 재미있게 읽히는 에세이의 모범답안이다. 게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간결하고 분명하다. 흠잡기 힘든 이야기이자 책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 생각이 사실은 '생각의 세계'라는 슈퍼마켓 선반에서 골라온 것들을 합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6)
 
 예순 다섯 살이 되어 15년 전 썼던 글에 자신의 이력을 더하는 지은이의 삶은 놀랍고 또 부럽다. 그리고 지은이의 말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고 옮겨적다가 지친다. 평범하고 소박한 이야기인데 왜 이리 재미있고 가슴에 쏙쏙 들어오는지….
 
 그것은 아마도 진실의 힘이리라. 단순한 상상력과 추론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가득 담은 이야기, 주변에서 만나고 보아온 모든 것에 대한 애정들을 적절히 조절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은이 역시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자, 모범처럼 살고 있으니 우리는 부담없이 따라가며 때론 웃고 때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버펄로 술집"(186~189)의 꼭지는 이 책을 통틀어 한 편을 뽑는다면 권해 드릴 이야기이다. 내용은 역시 간단하다. 여러 사람이 토요일 밤에 모여 어울려 마시고 시끌벅적한 술집에 누가 봐도 엄청나게 못생긴 인디언이 와서 술 한잔 마시다가 음악이 나오자 여인에게 춤을 청하고,… 놀랍도록 멋진 춤을 선사하자 사람들은 환호성과 함께 침묵에 빠져 있는데….  이윽고 인디언이 한마디 한다.
 
 "아니, 뭘 기다리고 있어요? 춤을 춥시다."  (189)
 
 그날 밤, 그 술집에 있던 모든 사람 - 밴드와 사람들, 목사인 지은이도! - 이, 모든 곳 - 테이블 사이, 무대 뒤, 화장실, 당구대 주위 등- 에서 신명나게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 그동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삶의 이야기가 앉아있던 나마저 들썩이게 한다.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들, 지은이가 직접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명징한 규칙들이 솟아난다. 유치원에서 다 배웠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지금 우리는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절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바로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자신이 치우고,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갖다놓고, 제 것이 아닌 물건은 가져가지 말라는 가르침을 잊었기 때문이다. (23)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보인다. (35)
 
 이미 "안 돼!"하고 말한 상황에서 물러서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마음을 바꾸는 일은 잘못이 아니다.  (42)
 
 그리하여 우리는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고 착각하지 마시라. 제대로 살아가지 않는 삶은 제대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우리는 배운다. 제대로 행동하기 위하여.
 
 "네가 뭘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야."  (266)
 
 
2010. 1. 12.  서늘한 밤, 공부하기 좋은 날입니다. 
 
들풀처럼
*2010-003-01-03
 
 
*책에서 옮겨 둡니다.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는 말라. (6)
 
 상상력, 신화, 꿈, 희망, 웃음, 사랑은 ~ (더) 강하다. (9) 
 
 보상을 바라지 않고 좋은 일을 하는 것 (=) '미츠바'(mitzvah)  (50)
 
 바라는 것을 항상 가질 수는 없지만 때로는 필요한 것을 얻게 된다.  (62)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 아인슈타인  (82)
 
 "눈을 뜨고 살게. 판단을 유보해.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109)
 
 "내 말을 잘 듣게. 자네 예산에는 즐거움을 위한 항목이 하나도 없네. 책, 꽃, 음악, 심지어 시원한 맥주 한잔할 돈조차 없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돈이 한 푼도 들어 있지 않아. 우리는 자네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돕지 않네."  (114)
 
 어떻게든, 언젠가는, 앞으로 가다보면 닿으리라. 
 태도, 모든 것은 태도에 달려 있다.  (130)
 
 꽃은 우리가 어떤 이름을 붙여주든 신경 쓰지 않는다. 이름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148)
 
 살아 있는 것에게 소리 지르는 일은 영혼을 죽일 수 있다. 
 막대기와 돌은 우리의 뼈를 부러뜨리지만, 말은 우리의 마음을 부러뜨린다.  (160)
 
 "우리는 큰일은 못합니다. 큰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 테레사 수녀 (198)
 
 세상 모든 것은 어떤 것이 자리를 내주고 사라질 때에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 없이는 삶도 없다. 예외는 없다. 모든 것은 왔으면 가야 한다.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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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의 눈을 달랜다 -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60
김경주 지음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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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재 우리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다는 시인 김경주를 만난다. [기담]이라는 시집으로 필명을 떨치고 - 그 시집도 준비해두었지만 - 김수영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에 끌려 이 시집 [시차의 눈을 달랜다]를 먼저 보게 되었다. 왜냐고, 내게 김수영은 그냥 시인 김수영이 아니라 내 삶의 지표이자 등대인 그 '수영'이니까.
 
 김수영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에 어울리는 시집이란 아마도 수영의 詩 정신,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진정성과 시대를 이끌어가는 시의 성취'에 있다 할 것이다. 예전의 수상자들 - 정희성, 이성복, 황지우, 김광규, 최승호, 김용택, 장정일, 조정권, 유하 등 - 이 우리에게 던져주었던, 상투적인 표현을 넘어선 신선한 충격과 진지함을 이 시집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하였다.
 
 밤의 낱말들, 정교한 횡설수설이 있다 하지만 천년 전으로 바람이 눈을 감을 때 배반은 인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서사이고 ~
  - '정교한 횡설수설'에서  (32)
 
 주인이 떠난 폐가의 마루 냄새를 맡고 밤이면 이름이 없는 먼 별에서 흘러내리는 모래를 혀에 굴리다가 죽은 바람은 ~ 
 - '대필(代筆)'에서  (62)
 
 
 하지만, 시집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문장 하나하나는 심사숙고 끝에 어질러놓은 시어들이 무정형 속의 규칙을 가지고 자신의 빛깔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저 詩를 즐겨 읽기만 하는 나에게는 만만치 않은 시들이었다. 그래도 위 구절들처럼 평범한 표현과 비유를 훌쩍 뛰어넘는 시인의 눈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마치 고등학생 때 수영의 詩를 처음 읽었을 때에 비견할 만한, '어,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면서도, 끝내는 따라가게 되는 진정성의 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시를, 한 두편이 아니라 시인의 한 권의 시집을 읽을 때에는, 그 시인과 그 시집과 그 시가 씌어진 시대를 관통하는 어떤 흐름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시를 재미있게 즐기려면 그 흐름의 줄기를 찾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 맥을 찾으려 시집을 덮었다가 다시 뒤적거렸다.  그리고 겨우 찾아낸 것이 '눈'이다. 너무 자주 등장하여 오히려 놓칠뻔 하였던 말이 여러 가지 모습과 이름으로 이야기되는 그 '눈'이다. 그 눈에서 '시차'도 생겨난 것이리라. 
 
 나의 눈에서 태어난 눈들은 모두 내가 태어난 계절에 ~  (13)
 
 ~ 밤이 오기 전, 인간의 눈 안쪽으로 넘어가야 하는 노을은 ~  (16)
 
 ~ 살짝 귀를 쥐어 줄 때 그의 눈을 사랑하기로  (20)
 
 그 별에서의 이별은 밤마다 한 눈이 다른 한쪽 눈을 구축하는 시간이어서~ (31)
 
 바람은 그 높이에선 늘 눈을 감는다 (36)
 
 화석에 잠긴 그 눈동자에 모래가 흘러내리는 꿈을 꾸게 된다 ~ (40)
 
 생이란 자신의 눈을 몸 안으로 안내하다 가는 일이라는 생각  (42)
 
 펭귄, 메아리가 돌아오는 겨울엔 새들의 눈마다 다른 냄새가 난다  (82)
 
 ~ 역어(譯語)처럼 엄마의 눈이 하나의 편물이 되어 갈 때  (84)
 
 자식의 눈이 멀게 되고 / 
 자신의 구슬 속에  아버지의 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88)
 
 수도사의 책들이 다른 눈으로 태어나는 월요일 (90)
 
 이 저녁은 '고래의 눈 속'이다  (92)
 
 하나의 눈동자에는 밤이 아직 머무르고 하나의 눈동자에는 낮이 아직 시작되고 있는 그 눈동자를 보고 있었죠 마마  (94)
 
 불빛을 보면 움직이는 곤충의 눈이었단다 (104)
 
 종이배처럼 묵직하게 젖을수록 멀리 갈 수 없는 내 눈 (107)
 
 너무 많아 각 시의 제목들은 옮겨두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자주, 시인이 '눈'을 이야기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왜 이 시집의 제목이 [시차의 눈을 달랜다]일까에 집중해 본다. 시차라는 것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공간적인 이동과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적 차이를 아우른다. - 시차(時差)와 시차(視差)를 함께 쓸 수 있으리라. 
 
 우리는 같은 눈으로 다른 곳을 보기도 하고 같은 곳을 다르게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곳을 다른 때에 보기도 한다. 이 모든 시차가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일렁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시차에 관한 이야기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일까?
 
 옛날 경영학과 3학년 때 국문학과 1학년의 <시 창작론> 강의를 한 학기 수강한 적이 있다. 그 창작론의 핵심은 '낯설게 하기' 곧 '다르게 보기'였던 것이다. 일상의 익숙하고 평범한 모습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다르게 바라보고 낯설게 표현할 수 있다면 좋은 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면에서 시인의 은 나와는 아주 큰 시차를 가지고 있고, 충분히,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 듯 보인다. 
 
 인도 향을 선물받은 날 다리를 좀 절었고 시차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집에서만 지내는데도 망각이 필요하다는 사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는 데에도 기억은 수십 종의 식물을 달고 간다 어쩐지 너의 여행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많은 종(種)의 연필이 필요할 것 같아서 흑마를 탈까? 백마를 탈까? 청기를 들까? 백기를 들까? 여행은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침묵의 차이 같아….. 
 - '시차의 건축'에서  (39)
 
 시는 그곳을 오고 가는 내 다양한 인종(人種)이다 꽃의 이름보다 꽃 냄새를 기억하려는 사람의 눈을 믿어 본다
 - '시차의 건축 2'에서  (51)
 
 '여행은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침묵의 차이 같아'라고 이야기하거나 '꽃의 이름'보다 '꽃의 냄새'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에서, 우리는 시인의 눈을 통하여 미처 모르던 또 다른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늘 보던 세상을 다시 만난다. 그렇게 '시차의 건축'을 통하여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쓰다듬을 수 있으리라.
 
 사람의 눈을 달래기 위해
 새벽엔 욕조를 열심히 닦지만
 오늘 밤엔 밤에 사라진다는
 사람의 눈만 달랜다 
 - '내 욕조의 입장권'에서   (57)
 
 방 안에 누워 그대가 내 머리칼들을 쓸어내려 주면 손가락 사이로 파도 소리가 난다 나는 그대의 손바닥에 가라앉는 고래의 표정, 숨 쉬는 법을 처음 배우는 머리카락들, 해변에 누워 있는데 내가 지닌 가장 쓸쓸한 지갑에서 부드러운 고래 두 마리 흘러 나온다 감은 눈이 감은 눈으로 와 서로의 눈을 비빈다 서로의 해안을 열고 들어가 물거품을 일으킨다 ~
  - '내 머리카락에 잠든 물결'에서  (46)
 
 사실 이 시집에서, 넉넉하고 살가운, 따듯한 위무의 말을 건져 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무심한 듯 시인이, 언뜻 지나치며 건네주는 '사람의 눈'을 '달랜다'라는 구절만으로도 '내 가장 아픈 저녁에'도 만나 볼 한 권의 시집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비'비고 '서로'에게 '물거품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우리는 시인의 울컥?하는 진심이 스며나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눈을 달랜다'. '바람이 되어'….
 
 눈을 감고
 당신은 스스로를 바람이라고 한 번만 생각해 보아라
 
 그대여 잘 흘러가고 있는가
 
 그곳이 어디든
 바람이 되어 돌아다니다가
 
 이제 눈을 뜨면 
 누구나 자신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바람의 시차라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 '마침내 아주 작은 책이 되어 버린 어떤 무렵'에서  (87)
 
 
2010. 1. 10.  새해, 이제서야 첫걸음입니다. 꾸벅 ^^;
 
들풀처럼
*2010-001-01-01
 
 
*책에서 옮겨 둡니다.
 연민이란 인간은 결국 자신과 가장 닮은 허구를 타인 쪽으로 열고 간다는 거다
  - '입김으로 쓴 문장'에서 (45)
 
 새들의 눈과 내 눈이 만나는 자리를 내 종이로 옮겨 온 저녁이라 부르면 나는 '이누이트 극지 모임'의 동인 같기도 하고 내가 가장 아픈 저녁에 내밀던 혀의 색깔 같기도 하다 ~ 
 - '나는 밤을 새들의 꿈에 등장하는 내 눈이라 부르지만'에서  (49)
 
 시인이 입을 벌리면 그 입안에 마르지 못한 채 몇억 년된 물방울 하나 맺혀 있다고 하자 아직 그 물방울 하나 우리가 바다 한가운데서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 주자 
 - '입안에 마르지 못한 채 몇억 년된 물방울 하나'에서  (66)
 
 
 시 때문에 울먹이는 일 좀 없었으면 하는데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 
 - '하루도 새가 떨어지지 않는 하늘이 없다'에서  (113)
 
 좋은 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좋은 바람을 상상할 줄 아는 것이 먼저다. 
 - '종이로 만든 시차 3'에서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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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 - 나뉘면 넘어지고, 합하면 반드시 일어선다 산하어린이 155
전상봉 지음, 이상권 그림 / 산하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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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몽양 여운형 선생님을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운형이라는 분을 만나고 나서는 지나간 우리 근현대사가 더욱더 안타까워졌습니다. 아마도 여운형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우리 역사는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격동의 해방정국에서 세계 정국을 제대로 바라보고 내실을 키워나가던 진짜 일꾼은 많지 않았습니다.
 
 (여운형은) 말로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실천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176)
 
 몽양 여운형의 일대기를 다룬 이 책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차분하게 선생님의 일생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몽양의 탄생에서부터 젊은 날을 거쳐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생애가 평전처럼 펼쳐집니다. 어쩌면 격동의 시대와 열정의 큰 뜻을 담아낸 모습으로는 너무 차분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좌우의 벽을 넘어 앞으로 전개될 국제정세까지 파악하고 해방정국의 혼돈 속을 똑바로 걸어가신 분은 몇 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장 존경해마지 않은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도 시대의 한계 속에서 벽에 부딪히고 계실때 몽양은 그 벽마저 뛰어넘어 겨레가 가야할 방향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함께 손잡고 가도 이루기 어려웠을 격동의 시대에 두 분 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십니다. 해방 후 우리 역사의 첫단추는 거기서부터 잘못 놓인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낙원을 만들기 위해 우리들은 끝까지 하나로 단결해야 합니다. 머지않아 연합국 군대가 올 것입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우리 힘으로 잘 사는 나라, 희망찬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16)
 
 역사에는 '만약에'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아쉬운 순간입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힘으로 잘 사는 나라, 희망찬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해방정국을 우리는 훌륭한 분들을 잃어버리고 친미, 친소, 친일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통령으로 들어서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였습니다. 그 뒷이야기는 오히려 지금 더 잘 아시는 이야기지요.
 
 하여 이처럼 한 시대를 격정적으로, 모범적으로 살다 떠나가신 분들의 이야기가 더 널리, 더 많이 아이들에게, 우리에게 알려져야 합니다. 역사는 직선으로 전진하지는 않을지라도 끝내는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갑갑한 현실을 어찌 버팅기겠습니까? 일순간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겨울 같은 시간 아래에서도 봄풀은 다시 피고 얼었던 냇물은 흐르는 법이지요. 우리가 이 밤을 밝혀 배우고 또 나눠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구요.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소. 남을 원망하지 않고, 나의 행동을 후회하지도 않는다오. 그러니 어찌 불평할 까닭이 있겠소?" (100)
 
 하지만 여운형을 따르는 청년들은 늘어만 갔습니다. 그가 재판에서 보여 준 당당한 자세와 말솜씨, 확신에 찬 독립 의지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97)
 
 그립습니다. '당당한 자세와 말솜씨', 역사와 앞날에 대한 '확신'을 갖춘 몽양 여운형 선생님같은 그런 지도자가 그립습니다. 그나마 비슷한 모습을 지니셨던 한 분마저 올해 봄 이곳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서, 더더욱,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기다립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손으로 일으켜, 만들어 세울, 그런 지도자를 오늘도 기다립니다. 여운형 선생님이 꿈꾸던 그런 세상, 사람사는 세상이 돌아올 그때까지 말입니다.
 
 
2009. 12. 27.  다시 찬바람 불어옵니다. 더욱 그립습니다, 몽양!
 
들풀처럼
*2009-255-12-14
 
 
*책에서 옮겨 둡니다.
 몽양(몽陽) : '태양을 꿈꾸고' 낳은 아이 (19)
 
 "신주를 모시고 허울뿐인 제사나 지내는 것이 조상에 대한 효도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조상을 올바르게 만드는 후손의 자세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합니다. 그래서 종들을 풀어 준 것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벌써 오래전에 노예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종이니 상놈이니 하는 제도가 남아 있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망하게 된 것도 우리들이 낡은 생각에 얽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44)
 
 여운형은 도쿄에서 모두 십여 차례 회담을 했습니다. 일본의 관리들은 때로는 구슬리고 때로는 협박하면서 여운형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83)
 
 우리 민족이 독립하기 위해서는 압박받는 다른 민족과 힘을 합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바탕 위에서 민족의 독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88)
 
 조선일보 사장은 자가용으로 납시고
 동아일보 사장은 인력거로 꺼떡꺼떡
 조선중앙일보 사장은 걸어서 뚜벅뚜벅 (108)
 
 "죽는 것이 무서워서야 어찌 독립운동을 한단 말인가. 이 길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았던가. 앞으로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이 길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여운형은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습니다. (124)
 
 "사람들이 뭐라 하든 화낼 필요 없네. 내가 정당하면 남이 나쁘게 말해도 정당한 법이요, 내가 정당하지 못하면 남이 나를 칭찬해도 정당할 수 없는 법이네. 그러니 세상 사람이 뭐라 한들 신경 쓸 필요 있겠나?"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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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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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라고 노골적으로 표지에 김훈은 썼다. 물은 고루 퍼져야 한다고 몇 번을 이야기하면서도 우리에겐 강을 건너지 마라 한다. 비루하고, 치사한 이 세상을 떠나 보았자 그곳 역시 던적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미련이나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그의 말이 더욱 우리를 이 세상에서 악착같이 살게 한다. 여전히 서늘하고 날카로운 그의 말이 우리를 더 깨어 있게 하고 기어코 이 강을 건너게 한다. 백화점 화재진압시 보석을 빼돌려 서울을 떠나온 전직 소방관 박옥출이나 고향 창야를 떠나온 장철수나 업무상 이들을 알게 된 기자 문정수나 모두 해망에서 만나고 풀어진다. 아니 풀어진다는 말은 착각이다. 그저 떠나간다. 
 
 서해의 몰락해가는 어촌, 해망에 모여드는 책 속의 인물들은 모두 정든 곳을 떠나온, 그리고 또 이곳을 떠나갈 사람들이다. 그 연결지점에 이들을 바라보고 소식을 전하는 기자 문정수와 그의 어설픈 연인이자 장철수의 대학 후배인 출판사 편집자 노목희가 있다.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해망이라는 마을을 매개체로 얽히고설키는 셈이다. 
 
 어쩌면 여기에 김훈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리라. 뻔한 이야기지만 그 속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다고,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고. 하나하나 따지고 좋아할 수는 없지만, 마침내 어우러져 바다로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해망은 특별하다. 하구가 매립으로 막혀버려 죽은 땅이 되어가고 공사중 소녀가 사고로 작업차량에 깔려 죽고…. 도대체 얼마나 더 파고들어야 우리가 모르는 낯선 이야기가 나올까?  
 
 '인간이 그가 처한 시대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쓸리고 또 넘어서면서 역사를 형성하는 한 모습 ~' (90)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개에게 자식을 잃은 못난 엄마(오금자)와 베트남에서 팔려왔다 도망쳐 오금자와 살아가는 후에와 고향을 등지고 떠나와 해망의 해저 고철을 주워 팔며 이들과 함께 기거하는 장철수가 나중에는 박옥출의 신장이식 제공자가 되고 …. 소소하거나 큰 뜻 없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벌어진다. 그렇게 사람들은 살아간다. 어떤 크낙한 목적이나 목표지점을 향해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 골고루 '퍼져'가는 것이다. 
 
 시간이 사람의 몸속에서 절여지면 이런 냄새가 날 것이라고 노목희는 생각했다. (91)
 
 그리고 그 냄새와 맛 들이 펄 위에서 삭고 또 절여져서 오래고 또 오랜 시간의 맛이 배어 있는 것이고, 그것이 해 지는 바다의 물맛일 것이라고 후에는 생각했다. (158)
 
 작가 김훈은 기자 시절 '신문에 쓸 수 없었던 세상의 바닥'(한겨레 신문 인터뷰'에서)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를 '삭히고 절여서'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처럼 우리에게 전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야기는 쓸쓸하고 또 씁쓸하다. 묵은 그 이야기에서는 사람의 냄새가 난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것 아니냐고 그는 우리에게 되묻는다. 이와 다른 어떤 삶을 당신들은 살아가느냐고, 그렇게 물은 흘러서 퍼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래서, 그 끝을 알 수 없을지라도,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모를지라도 우리는 저 물처럼 흘러가야 하리라. 그렇게 흐르고 흘러, 제 갈 길을 가다보면 바다에 닿을 수 있으리니 '사랑은 강을 건너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사람은 강을 건너가야 하리라. '바람에 흔들리고' '끄달리면서' (267)도.
 
 풀씨는 그 가벼움에 실려서 퍼졌다. 풀들의 세력은 바람 속으로 산개散開했고 풍향에 따라 전개되었다. 그것들은 바람에 올라타서 이동했고 바람의 끝자락에서 착지했다. 한 점의 솜털로 떠돌던 그 하찮은 것들은 땅 위에 재집결해서 세력을 확장했고, 뿌리를 박으면 물러서지 않았다. 바람에 흔들리고 바람에 끄달리면서 그것들은 또다른 연안에 당도했다. (267)
 
 

2009. 12. 19.  그렇지요, 따로 갈지라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그토록 간절하고 목마른' (143) 길이겠지요. 

 
들풀처럼
 

*2009-252-12-10

 



 
 
*책에서 옮겨 둡니다.
 
 물은 수계水系를 벗어날 수 없지만, 물은 기어이 제 갈 길을 가는 것이어서 수계가 따로 없고 물이 가는 방향이 수계였다. (8)
 
 - 야, 이 씨발놈들아. 니들만 살자고 물을 남의 동네로 밀어붙여! 물은 고루 퍼져야 하는 거야. (11)
 
 그들의 그 비루하고 난폭한 말투는 세상을 들여다볼 뿐, 만질 수 없고 개입할 수 없는 자들이 겉도는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근거 없는 적개심이거나, 위악으로 연륜을 과장하려는 허세라는 것을 문정수는 모르지 않았다. (17)
 
 - 물은 고루 퍼졌습니다. 양쪽이 똑같이 잠겼지요. (18)
 
 지나간 시간과 공간들이 거기에 몸을 적시는 자의 마음을 통과해나오면서 글을 빚어내고 있었다. 폐허의 돌무더기 위에 빛이 내렸고 모든 시간과 공간이 현재의 빛을 받아 소생했는데, 그 빛의 발원지는 살아 있는 인간의 생명이었다. (25)
 
 ……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 …… (35), (161)
 
 제3자란 없다. 당사자가 있을 뿐이다. 모든 인간은 모든 인간의 당사자이다. (38)
 
 ……. 넌 왜 덤벼들지를 못하니? 뭘 그렇게 쭈빗거려. 힘을 줘서 밀어내봐. (42)
 
 - 부사와 형용사는 품사로서의 경계가 모호하고 서로 뒤섞이면서 흘러가는 언어입니다. 형용사는 자동사에 접근하려는 성질을 가진 언어일 것입니다. 정처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사진으로 정리하려는 것입니다. 
 출판사 사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문정수는 노을로 번져서 스러지고 바람으로 흘러가는 말들의 풍경을 떠올렸다. (122)
 
 - 중요하진 않지만, 막막하잖아. 답답하고 …..
 - 그래도 기사는 쓰지 마. 치사해. 막막한 쪽이 치사한 쪽보다는 견딜만한 거야. (129)
 
 죽음은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으나 문정수는 개별적인 죽음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이 세상의 헤아릴 수 없는 죽음과 끝없이 되풀이되는 죽음 중에서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죽음은 저 자신의 죽음뿐일 테지만, 그 죽음조차도 전할 수 없고 옮길 수 없어서 이해받지 못할 죽음일 것이었다. (131)
 
 청춘이 가야 할 길은 그토록 간절하고 목마른 것이어서 각자의 길을 따로따로 갈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젊은 그들(원효와 의상)은 해망의 바닷가 동굴에서 헤어졌다. (143)
 
 옛 서식지에 대한 추억의 힘으로 신생의 자리를 찾아가는 강력한 개체의 생명력이 멸절하는 중족의 운명을 넘어서는 생생한 사례를 ~  (175)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는 한 말하기를  단념할 수 없다고 ~ 말하기와 듣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고 타이웨이 교수는 썼다. (202)
 
 공항 출국장에서 그는 청바지 차림에 , 부여에서 산 흰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그는 가벼움의 힘으로 먼 길을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203)
 
 드러나기를 원치 않고 과장되기를 원치 않으며 다만 전달되기만을 바라는 선의를 느꼈다. 디자인은 장식이나 부수적 요소가 아니며, 진실을 드러내는 수단이며, 따라서 진실의 일부라고 타이웨이 교수는 추신에 적었다. (206)
 
 -몰라. 그게 그 사람 버릇이야. 대상이 누군지도 모를 욕을 늘 해대지. 
 -욕이 아닐 거야. 신음이겠지. (221)
 
 ~ 존재와 존재가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을 때 도시의 품격은 유지되는 것이며, 이 떨어짐은 전체의 실용성과 개별적 존재의 품격을 동시에 보장해주는 것 ~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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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 - 동아시아 이미지의 계보학, 정재서의 신화비평
정재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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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화,남의 신화 모두 어우러져 풀어낼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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