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 - 나뉘면 넘어지고, 합하면 반드시 일어선다 산하어린이 155
전상봉 지음, 이상권 그림 / 산하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제가 몽양 여운형 선생님을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운형이라는 분을 만나고 나서는 지나간 우리 근현대사가 더욱더 안타까워졌습니다. 아마도 여운형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우리 역사는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격동의 해방정국에서 세계 정국을 제대로 바라보고 내실을 키워나가던 진짜 일꾼은 많지 않았습니다.
 
 (여운형은) 말로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실천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176)
 
 몽양 여운형의 일대기를 다룬 이 책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차분하게 선생님의 일생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몽양의 탄생에서부터 젊은 날을 거쳐 어처구니없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생애가 평전처럼 펼쳐집니다. 어쩌면 격동의 시대와 열정의 큰 뜻을 담아낸 모습으로는 너무 차분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좌우의 벽을 넘어 앞으로 전개될 국제정세까지 파악하고 해방정국의 혼돈 속을 똑바로 걸어가신 분은 몇 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장 존경해마지 않은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도 시대의 한계 속에서 벽에 부딪히고 계실때 몽양은 그 벽마저 뛰어넘어 겨레가 가야할 방향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함께 손잡고 가도 이루기 어려웠을 격동의 시대에 두 분 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십니다. 해방 후 우리 역사의 첫단추는 거기서부터 잘못 놓인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낙원을 만들기 위해 우리들은 끝까지 하나로 단결해야 합니다. 머지않아 연합국 군대가 올 것입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우리 힘으로 잘 사는 나라, 희망찬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16)
 
 역사에는 '만약에'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아쉬운 순간입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힘으로 잘 사는 나라, 희망찬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해방정국을 우리는 훌륭한 분들을 잃어버리고 친미, 친소, 친일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통령으로 들어서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였습니다. 그 뒷이야기는 오히려 지금 더 잘 아시는 이야기지요.
 
 하여 이처럼 한 시대를 격정적으로, 모범적으로 살다 떠나가신 분들의 이야기가 더 널리, 더 많이 아이들에게, 우리에게 알려져야 합니다. 역사는 직선으로 전진하지는 않을지라도 끝내는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갑갑한 현실을 어찌 버팅기겠습니까? 일순간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겨울 같은 시간 아래에서도 봄풀은 다시 피고 얼었던 냇물은 흐르는 법이지요. 우리가 이 밤을 밝혀 배우고 또 나눠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구요.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소. 남을 원망하지 않고, 나의 행동을 후회하지도 않는다오. 그러니 어찌 불평할 까닭이 있겠소?" (100)
 
 하지만 여운형을 따르는 청년들은 늘어만 갔습니다. 그가 재판에서 보여 준 당당한 자세와 말솜씨, 확신에 찬 독립 의지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97)
 
 그립습니다. '당당한 자세와 말솜씨', 역사와 앞날에 대한 '확신'을 갖춘 몽양 여운형 선생님같은 그런 지도자가 그립습니다. 그나마 비슷한 모습을 지니셨던 한 분마저 올해 봄 이곳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서, 더더욱,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기다립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손으로 일으켜, 만들어 세울, 그런 지도자를 오늘도 기다립니다. 여운형 선생님이 꿈꾸던 그런 세상, 사람사는 세상이 돌아올 그때까지 말입니다.
 
 
2009. 12. 27.  다시 찬바람 불어옵니다. 더욱 그립습니다, 몽양!
 
들풀처럼
*2009-255-12-14
 
 
*책에서 옮겨 둡니다.
 몽양(몽陽) : '태양을 꿈꾸고' 낳은 아이 (19)
 
 "신주를 모시고 허울뿐인 제사나 지내는 것이 조상에 대한 효도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조상을 올바르게 만드는 후손의 자세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합니다. 그래서 종들을 풀어 준 것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벌써 오래전에 노예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종이니 상놈이니 하는 제도가 남아 있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망하게 된 것도 우리들이 낡은 생각에 얽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44)
 
 여운형은 도쿄에서 모두 십여 차례 회담을 했습니다. 일본의 관리들은 때로는 구슬리고 때로는 협박하면서 여운형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83)
 
 우리 민족이 독립하기 위해서는 압박받는 다른 민족과 힘을 합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바탕 위에서 민족의 독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88)
 
 조선일보 사장은 자가용으로 납시고
 동아일보 사장은 인력거로 꺼떡꺼떡
 조선중앙일보 사장은 걸어서 뚜벅뚜벅 (108)
 
 "죽는 것이 무서워서야 어찌 독립운동을 한단 말인가. 이 길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았던가. 앞으로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이 길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여운형은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습니다. (124)
 
 "사람들이 뭐라 하든 화낼 필요 없네. 내가 정당하면 남이 나쁘게 말해도 정당한 법이요, 내가 정당하지 못하면 남이 나를 칭찬해도 정당할 수 없는 법이네. 그러니 세상 사람이 뭐라 한들 신경 쓸 필요 있겠나?"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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