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껏 살아라! - 생의 끝자락에 선 아버지가 아들에게
티찌아노 테르짜니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이것이 삶이다!"에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장황하게 떠벌인 바 있지만 제대로 된 서평은 아니었다. [네 마음껏 살아라]가 한 권의 책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전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차근차근 짚어보련다. 책은 무척 재미있었고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들이 넘나들었다. 그러나 선뜻 글을 쓸 수는 없었다. 왜냐면 이 책은 한번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보관창고에 들어가야 할 그런 이야기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며칠을 생각하고 망설이다 '감상문'이란 걸 겨우 쓰고 이제야 서평을 마무리한다.
 
 이 책은  '독일의 세계적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특파원으로 싱가포르, 홍콩, 베이징, 도쿄, 방콕, 뉴델리에 주재하면서 베트남 전쟁, 캄보디아 전쟁, 문화 혁명 이후의 중국 등 아시아의 격동적인 현장을 누'비던 주인공 티찌아노 테르짜니'암으로 사망'하기 전 아들 폴코와 나누는 이야기 형식으로 펴낸 자서전이다.  ('표지 안쪽'에서)
 
 그런데 티찌아노의 젊은 날 삶이 격동기 아시아의 시사주간지 특파원이었기에 그의 삶은 평범한 직장인과는 무척 다르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세계적인 시사 주간지의 특파원에다 격변기의 아시아라니. 이제는 많이 알고들 계시지만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혼란과 격정적인 시절을 보낸 나라들이 바로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등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가 나이 들고 병들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조차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난 네가 내 얘기의 핵심을 잘 파악했으면 좋겠다. 그 핵심이란 다름이 아니라, 혁명과 정치와 과학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헛되다는 거야. 그런 믿음 때문에 나도 사회 참여를 하고, 글을 썼었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게 아무 소용없었어.  (269)
 
 마치 그냥 살아가라, 자신의 깨달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듯이 던지는 마지막 장의 이 이야기만 보면 그저 그런 영성 관련 서적처럼 느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오해할 필요는 없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할 만한 삶을 살았고 책을 만나는 내내 그가 진심으로 사회의 발전과 문제 해결의 의지를 버렸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혹 나만 이 책을 잘못 읽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지은이의 마지막 이야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326)는 이야기조차 담담히 받아들인다. 
 
 왜냐면 그가 살아온 삶 자체가 7,80년대를 관통한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의 모습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요즘의 지식인들처럼 변절하거나 배신하지 않았다. 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 맞춰갔을 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무것도 이루지 않거나 해놓은 일도 없이 그저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라'라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결코 조금 더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저 본인의 관심을 자신의 안으로 돌렸을 뿐이다. 그는 그래도 된다. 나이 예순이 넘은 노인에 암까지 걸린 환자가 아니던가. 뭐, 그렇다고 하여 그가 아파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모든 확실성은 일종의 종속이고 제약이지.
 하지만 난 언제나 제 3의 길이 있다고 확신한다. 모든 걸 포기할 필요는 없어. 모든 걸 원해서도 안 되지. 중요한 건 무엇을 하려고 하며, 그것을 위해 얼마나 타협을 할 것이냐를 스스로 잘 알아야 한다는거야.  (312)
 
 '모든 확실성'에 대한 거부는 '제 3의 길'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지고 지은이는 단지 그 길을 자신의 안에서 만났을 뿐이다. 그러니 이 책을 만나며 우리가 나눠야 될 이야기는 티찌아노의 '사회의 발전과 변화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바뀌어 갔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눈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아이들 - 자신의 아들과 딸을 넘어 손자들에게까지! - 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깨닫는 것이다. 다행히도 책 속에 직접적인 언급들이 있다.
 
 네 아이들한테 꼭 말해 주고 싶은 것은 우리 부모님이 갖고 있던 가치관이야. 그리고 그때의 문화지. 단순하지만 굳은 가치관이었다. 정직이 우선이었고, 그 다음이 품위였지.  (49)
 
 참담한 파국으로 끝난 중국이나 캄보디아의 실험을 반공주의자들이 비판하지만 그것이 공산주의의 전부라고 생각지는 마라. 공산주의는 위대한 이상이었어.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헌신했던 역사는 아직도 빛을 잃지 않아.  (65)
 
 열정과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어떤 주제에 몰두하면, 그게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그걸 통해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단다.  (96)
 
 어찌 보면 늘 만나는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지은이의 삶에서 길러진 이 말들은 묵직한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며 줄을 긋다 지치고 늘 그리하듯이 서평 아래에 옮기다 또 한 번 지쳐버린다. 그만큼 공감한 책이었다. 어쩌면 내가 좀 더 나이 들어 내 아이에게 이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을 살아낸다면 얼마나 종을까라는 생각마저 하였다. 함께 나이 들어가며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지은이의 모습은 지금 함께 살고 계신 아버지와 나를 생각하게도 하였고.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이렇게 살 수는 없지만 이처럼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가능하리라. 잊지 말고 배워두리라.  다. 짐. 한. 다. !
 
 근본적으로 인간 본성으로부터 시작해. 인간이 질적 도약을 이루지 못하면, 물질에 대한 지배를 계속 추구하고 이윤과 사리사욕을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게 영원히 반복될 뿐이야.  (200)
 
 세계의 아름다움이란 그 다양성에 있는 것이지.  ~  그런 다양성이야말로 우리 삶의 토대인데 말이야 !  난 인류의 풍요로움이 그 다양성에 있다고 확신해.  (235)
 
 옛날에 듣던 풍월에 상부구조하부구조라는 말이 있었다. 하부구조, 즉 밑바탕인 물질적 토대를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음을 이야기하곤 하였다. 지은이는 그 토대를 '다양성', '인간 본성'으로 갈무리하였다. 물질적인, 경제적인 토대가 하부구조라면 '인간 본성'은 상부구조에 해당된다 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아무리 '아래에서부터 개혁이 시작되어도 위가 바뀌지 않으면 도루묵'이라고도 읽히는 것이다. 이 반대도 당연히 성립한다. '위가 바뀌어도 아래에서 받쳐주지 못한다면 그 역시 실패!' 한다. 우리는 이미 그 경험을 충분히 해보았다. 지은이는 이 갈림길 중 어디쯤에서 그의 길을 가고 있었을까.
 
 그래서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릴 수는 없는 거야. 인생은 결코 그대로 멈춰져 있는 게 아니니까. 누군가 네이팜탄을 떨어뜨려서 모든 생명을 말살할 수 있겠지. 그럼 한 동안 생명이라곤 씨도 안 보여. 그러다 '짜잔!' 어디선가 작은 새싹이 땅을 뜷고 나오는 거야. 다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생명이 돌아오는거지. 그런 어마어마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그 무시무시한 시절에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어.  (173)
 
 요즘 즐겨 쓰는 말로 어디선가 만난 구절이 있는데 바로 이 말이다. '인생이란 저 모퉁이를 돌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거'라는 얘기, 지은이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그 뜻을 제대로 이어받은 아들이 있어 이와 같은 책이 우리 곁에 전해진다. 젊어서도 죽어서도 행복한, 부러운 삶이다. 그가 우리에게 전한 마지막 메시지를 만나보며 이만 글을 줄이련다. 지금, 여기, 이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말이다.
 
 삶은 지금 당장 벌어지는 거란다. 바로 이 순간에.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이 순간에 사는 거고.  (328)
 
 [네 마음껏 살아라] - 이것이 삶이다 ! 
2010. 3. 14. 밤, '신기하지 않니?  자연은 그냥 제 길을 가' (332) 
 
 
들풀처럼

*2010-030-03-06

 

 

 
 
책에서 옮겨 둡니다.
 섞어서 다시 티끌로 돌아가는 것이 질료(質料)의 운명이지. 무서운 마음은 없어. 죽는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10)
 
 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 봤고, 끔찍이도 치열하게 살았다. 그래서 뭘 제대로 못해봐서 아쉽다는 감정 같은 건 없어.  (11)
 
 만약 진정한 욕망이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욕망일 거다. 유일하게 바람직한 행동은 더 이상 선택에 내몰리지 않는 거고. 진정한 결단이란 ~  자기 스스로가 되겠다는 작심이지.  (15)
 
 너에게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남겨 주고 싶구나. 어쩌면 너보다는 네 아들 녀석한테 필요할 거야. 우리 세대가 어떻게 컸는지, 인간을 묶어 주는 관계라는 게 어떤 건지, 우리 주변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녀석은 전혀 모를 테니 말이다.  (24)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씩 있는지도 다 알았지. 강한 유대감 같은 게 있었어.  (30)
 
 은행 ~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모든 일의 상징이지!  (48)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병들고 망가지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바꾸겠다는 소명 의식 때문이었어.  (55)
 
 우리가 체 게바라와 함께 자란 세대라는 걸 명심해라. ~ 그는 죽음과 함께 신화가 되었어. 나중에 우리는 그의 일기를 읽었는데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지. 그런 영웅들과 함께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았던 거야.  (59)
 
 잊어선 안 될 것이 있다. 미국인들은 자본주의와 독재를 옹호했어. 그래서 전 세계에 큰 피해를 주었지.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최악의 독재자들을 후원했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배려도 없었고, 그런 나라들은 미국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였어.  미국에서 훈련받은 암살단들이 미국을 거스르는 사람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던 시절이었지.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나 군사 평의회가 집권하던 아르헨티나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어.  그리고 체 게바라도 살해당했지.  (75)
 
 폴코야, 지금 내가 한 이야기가 나중에 책으로 나올 때, 세부 사항들이 정확한지 꼭 다시 챙겨 봐야 한다! 팩트가 틀리면 신뢰성이 떨어져. 꼭 그 시대 연대기를 구해서 내 설명이랑 대조해야 봐야 해. 내 기억도 틀릴 수가 있으니까.  (88)
 
 이건 대단히 중요한 얘기니까 잊지 말거라.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시간과 건전한 이성과 내면적인 독립성이 모두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모든 걸 덜컥 받기 십상이지.  (90)
 
 열정과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어떤 주제에 몰두하면, 그게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그걸 통해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단다.  (96)
 
 "모래알에서 세계를 보고, 순간에서 영원을 포착한다.  (윌리엄 블레이크)  (95)
 
 팩트를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보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어. 따라서 미리 준비를 해 두는 게 중요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날도 이해할 수 없으니까. 당장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면 헛소리를 하게 돼. 현미경을 통해 본 것만 보도하게 되지. 망원경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112)
 
 기자? 기사가 될 만한 팩트를 찾아다니는 게 본질이 아니야. 삶을 들여다보러 다녀야지.  (123)
 
 팩트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어. 답은 훨씬 깊은 차원에, 역사와 문화 속에 있는 거야.  (129)
 
 각지에서 억압당하던 사람들이 처음엔 공산주의를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 추종했어. 하지만 지금은 이슬람 근본주의로 옮겨 갔지. 그걸 모르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  (153)
 
 결국에는 누구나 부딪히게 되는 문제 :
 '나는 누구인가?' 
 '인류는 어디로 가는가? 인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인류는 나아지고 있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154)
 
 전쟁에서 이기는 건 상대적으로 간단해. 평화를 이루고 나라를 다시 번영시키는 일이 훨씬 어렵지. 아량을 보이며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중요해.  (163)
 
 혁명은 마치 어린아이 같지. 처음에는 작고 귀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추하고 야비한 어른으로 변하거든. 모든 혁명의 탄생 순간에는 뭔가 황홀한 데가 있어. 혁명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약속하지.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그 거짓된 모습이 드러난단다.  (191)
 
 "사진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시오. 발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마시오."  (231)
 
 인생에는 이유도 모르고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 그 의미를 나중에야 알게 되지. 지나온 평생을 슬로비디오처럼 돌려보거나,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언덕에서 굽어보면'말이야.  (253)
 
 탁발 수도승을 존경하고, 그들의 기력을 나누기 위해 그들에게 절을 하고 먹을 것을 보시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결코 물질 만능의 사회가 될 수 없거든. 사두들은 일종의 백신이야.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행자의 맹세를 한 다음 그들처럼 유랑 수도승이 되고 싶은 열망을 계속 부추기지.  (265)
 
 인도는 천의 얼굴을 갖고 있어. 구원인 동시에 저주이고, 파멸인 동시에 창조지. 그래서 인도는 밑 빠진 독이기도 해.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방향 감각을 상실할 수 있는 곳이야.  많은 젊은이들이 제정신을 잃거나 일종의 광기에 빠져, 아니면 차란 다스처럼 사두가 되고.  (267)
 
 그 노인은 항상 이렇게 말했지. 
 "내버려라. 내버려. 네가 아는 모든 것을 내버려라. 내버려. 빈손으로 서 있는 걸 두려워하지마라. 없음이야말로 결국에는 너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니까."  (293)
 
 사람은 기자나 엔지니어나 전차 운전사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게 아니거든. 직업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갖는 거지. 난 항상 아주 행복하게 살았고.  (303)
 
 고작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매일 아침 사무실에 나가 주가 변동 그래프의 움직임을 쳐다보면서 '샀다 팔았다 샀다 팔았다' 한단 말이냐? 무슨 인생이 그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는 이유를 아니? 제일 똑똑하다는 애들이 그런 걸 하고 있어서 그런 거야!  (305)
 
 난 젊은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은 할 일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310)
 
 금욕과 쾌락주의 사이에서 항상 중도를 지켜야 돼. 향락에 빠진 채 살아도 안 되지만 무비판적으로 금욕을 추종해서도 안 돼. 길을 잘 못 든 신비주의자들이 많아. 금욕을 통해 신을 만나겠다는 열망에 이성을 잃었지.  (322)
 
 사스키아야, 넌 정말 예쁜 여자야.  가끔 멈춰 서렴! 멈춰 서서  이 세계의 경이로움에 흠뻑 빠져 보는 거야. 예를 들면 지금 이 곳의 평화로움을 보렴. 이 산을 보면서 평안을 찾는 거야. 15분 동안이라도 자리에 앉아서 저 고요함에 귀 기울여 보는 거지. 저 고요를 느껴 보라고!  (325)
 
 그러니까 문제가 있으면 바로 멈춰 서야 해. 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봐.  그리고 네 자신 속에서 답을 찾아. 네 내면 깊숙한 곳에 뭔가가 있어. 그게 너를 붙잡아 주는 거야. 마음 속의 어떤 목소리, 거기에 귀 기울여야 해.  (326)
 
 내 생각에는 여행에는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어. 네가 갈림길을 만났는데 한 길만 오르막이고, 다른 길이 모두 내리막이라고 해 보자.이럴 땐 반듯기 오르막길을 가야 해. ~ 물론 쉽지는 않지. 사물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고 지속적으로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 일이니까.  (327)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파악하게 해.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돼. 항상 주의를 집중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해라. 침묵하고 숙고하고 거리를 두는 시간을 가져야 해. 그러고 나서 뭔가를 바라 봐야지.  (327)
 
 신기하지 않니?  자연은 그냥 제 길을 가. 네가 죽는다고 자연이 신경이라도 쓸까? 네가 병들어 고통스러워한다고?  아니야, 폴코야. 그냥 흘러갈 뿐이야. 모든 게 흘러가. 병도 고통도.  (3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권의 책에 담긴 한 사람의 삶이라 하면 우리는 언뜻 위인전을 떠올린다. 어릴 적부터 별다른 감흥도 없이 만나 오던 그 많은 세계사 속의 인물들, 그 인물들이 살아서 한 사람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개인별 평전이라는 형식을 만나고부터이다. 한 사람의 삶을 단순히 정리, 요약하는 단계를 넘어 시대적인 배경과 인물의 역사적 의의, 그 사람의 품격까지 느끼게 해주는 평전을 통하여서 나는 제대로 된 인물들을 만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에 등장한 것이 이름없는,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자서전 혹은 구술을 정리한 인물전이다. 크게 보면 [한국사傳 1~5권]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으리라. 필요한 이야기들, 시의적절한 인물들이 어우러져 발생한 일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불러 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전 - 위인전, 평전, 자서전 등 -들에는 공통점이 있으니 적어도 그 사람의 삶이 거창하게는 세계를 바꾸거나 적어도 한 시기에 큰 영향을 끼치거나 한 분들이라는 사실이다. 해서 이름도 행적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만날 때에는 또 다른 적절한 까닭이 있어야 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만나는 인물에게서 그저, 뭐, 이런 사람도 있었네, 정도의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는 없을 테니까.

 

                   (아버지 티찌아노 와 아들 폴코)

 

 너에게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남겨 주고 싶구나. 어쩌면 너보다는 네 아들 녀석한테 필요할 거야. 우리 세대가 어떻게 컸는지, 인간을 묶어 주는 관계라는 게 어떤 건지, 우리 주변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녀석은 전혀 모를 테니 말이다.  (24)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졌다. 참, 먼저 일러두련다. 이 이야기는 서평이 아니다. 서평을 쓰기 前에 정리해두는 한 권의 책에 대한 느낌, 그 자체이다. 그러니 뭔가 새롭거나 잘 정돈된 이야기를 바라시는 분들이라면 이쯤에서 눈을 옮기셔도 되리라.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의 느낌을 겪는 경우는 흔치않기에 이번에 이처럼 따로 그 감정의 흐름을 남겨보는 것이다.
 

 "생의 끝자락에 선 아버지가 아들에게" [네 마음껏 살아라]고 이야기해주는 이 책을 손에 든 까닭은 순전히 제목 탓이다. 왜냐면 요즘 부모들치고 아이들에게 "네 마음껏 살아라!"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이들은 없을 테니까.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이제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아들이 나눈 대화라면 적어도 삶에 대한 경건한 마음가짐 정도는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그 이상이다.

 

 

           (원서 표지)

 
 네 부분으로 나뉜 이야기는 부분마다 색다른 감흥을 일으키는데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Ⅰ. 두 세계 사이에서"는 마치 우리네 부모님 세대와 다를 바 없는 공감을, "Ⅱ. 역사의 한복판"에서는 세계사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지식인의 모습에 감동을 한다. "Ⅲ. 종착역으로"에서는 일상의 차원을 넘어서 더 큰 깨달음을 만나는 기쁨을, 그리고 "Ⅳ. 이름없는 자로 떠나다" 에서는 내가 아이에게 어떠해야 하는지를 미리 돌아보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열정과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어떤 주제에 몰두하면, 그게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그걸 통해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단다.  (96)
 
 고작?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이처럼 다양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처음에는 평범한 자서전으로 느끼다가 격동의 시대 한복판을 건너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때에는 함께 그곳에 있는듯한 느낌과 나라면 어찌하였을까하는 질문을 동시에 던지기도 하였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깨달음은 어쩌면 요즘의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부분도 있지만 그러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나 그 깨달음을 자식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은 상당히 모범적이고 부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주인공이 살아낸 삶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삶이었다는 것, 거기에 더하여 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아들이 정리하여 우리에게 전할 수 있다는, 이런 사실이 더욱 주인공을 부럽고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한다.  세상에 완벽한 삶, 완전한 삶이란 게 있기나 하겠느냐마는 적어도 이 책 속의 주인공이 걸어온 삶과 떠나가는 과정의 이야기는 우리가 바라보고 따라가기에 모자람이 없는 훌륭한 삶이라고는 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이 책을, 이 책의 주인공을, 이 책의 이야기를 이렇게 한 줄로 줄여서 말해보련다.
 
 [네 마음껏 살아라] - 이것이 삶이다 ! 
2010. 3. 13. 저녁, 대체 무슨 이야기냐구요? 곧 '서평'으로 돌아오겠습니다. ^^
 
 
들풀처럼

*2010-029-03-05

 

 

 



 
 
책에서 옮겨 둡니다.
 섞어서 다시 티끌로 돌아가는 것이 질료(質料)의 운명이지. 무서운 마음은 없어. 죽는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10)
 
 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 봤고, 끔찍이도 치열하게 살았다. 그래서 뭘 제대로 못해봐서 아쉽다는 감정 같은 건 없어.  (11)
 
 만약 진정한 욕망이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욕망일 거다. 유일하게 바람직한 행동은 더 이상 선택에 내몰리지 않는 거고. 진정한 결단이란 ~  자기 스스로가 되겠다는 작심이지.  (15)
 
 너에게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남겨 주고 싶구나. 어쩌면 너보다는 네 아들 녀석한테 필요할 거야. 우리 세대가 어떻게 컷는지, 인간을 묶어 주는 관계라는 게 어떤 건지, 우리 주변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녀석은 전혀 모를 테니 말이다.  (24)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씩 있는지도 다 알았지. 강한 유대감 같은 게 있었어.  (30)
 
 은행 ~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모든 일의 상징이지!  (48)
 
 네 아이들한테 꼭 말해 주고 싶은 것은 우리 부모님이 갖고 있던 가치관이야. 그리고 그때의 문화지. 단순하지만 굳은 가치관이었다. 정직이 우선이었고, 그 다음이 품위였지.  (49)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병들고 망가지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바꾸겠다는 소명 의식 때문이었어.  (55)
 
 우리가 체 게바라와 함께 자란 세대라는 걸 명심해라. ~ 그는 죽음과 함께 신화가 되었어. 나중에 우리는 그의 일기를 읽었는데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지. 그런 영웅들과 함께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았던 거야.  (59)
 
 참담한 파국으로 끝난 중국이나 캄보디아의 실험을 반공주의자들이 비판하지만 그것이 공산주의의 전부라고 생각지는 마라. 공산주의는 위대한 이상이었어. 많은 사람들이 사회를 개선시키기 위해 헌신했던 역사는 아직도 빛을 잃지 않아.  (65)
 
 잊어선 안 될 것이 있다. 미국인들은 자본주의와 독재를 옹호했어. 그래서 전 세계에 큰 피해를 주었지.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최악의 독재자들을 후원했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배려도 없었고, 그런 나라들은 미극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였어.  미국에서 훈련받은 암살단들이 미국을 거스르는 사람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던 시절이었지.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나 군사 평의회가 집권하던 아르헨티나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어.  그리고 체 게바라도 살해당했지.  (75)
 
 폴코야, 지금 내가 한 이야기가 나중에 책으로 나올 때, 세부 사항들이 정확한지 꼭 다시 챙겨 봐야 한다! 팩트가 틀리면 신뢰성이 떨어져. 꼭 그 시대 연대기를 구해서 내 설명이랑 대조해야 봐야 해. 내 기억도 틀릴 수가 있으니까.  (88)
 
 이건 대단히 중요한 얘기니까 잊지 말거라.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시간과 건전한 이성과 내면적인 독립성이 모두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모든 걸 덜컥 받기 십상이지.  (90)
 
 열정과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어떤 주제에 몰두하면, 그게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그걸 통해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단다.  (96)
 
 "모래알에서 세계를 보고, 순간에서 영원을 포착한다.  (윌리엄 블레이크)  (95)
 
 팩트를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보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어. 따라서 미리 준비를 해 두는 게 중요해.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날도 이해할 수 없으니까. 당장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면 헛소리를 하게 돼. 현미경을 통해 본 것만 보도하게 되지. 망원경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112)
 
 기자? 기사가 될 만한 팩트를 찾아다니는 게 본질이 아니야. 삶을 들여다보러 다녀야지.  (123)
 
 팩트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어. 답은 훨씬 깊은 차원에, 역사와 문화 속에 있는 거야.  (129)
 
 각지에서 억압당하던 사람들이 처음엔 공ㅅ나주의를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 추종했어. 하지만 지금은 이슬람 근본주의로 옮겨 갔지. 그걸 모르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  (153)
 
 결국에는 누구나 부딪히게 되는 문제 :
 '나는 누구인가?' 
 '인류는 어디로 가는가? 인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인류는 나아지고 있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154)
 
 전쟁에서 이기는 건 상대적으로 간단해. 평화를 이루고 나라를 다시 번영시키는 일이 훨씬 어렵지. 아량을 보이며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중요해.  (163)
 
 그래서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릴 수는 없는 거야. 인생은 결코 그대로 멈춰져 있는 게 아니니까. 누군가 네이팜탄을 떨어뜨려서 모든 생명을 말살할 수 있겠지. 그럼 한 동안 생명이라곤 씨도 안 보여. 그러다 '짜잔!' 어디선가 작은 새싹이 땅을 뜷고나오는 거야. 다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생명이 돌아오는거지. 그런 어마어마한 생명에 대한 갈망을 그 무시무시한 시절에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어.  (173)
 
 혁명은 마치 어린아이 같지. 처음에는 작고 귀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추하고 야비한 어른으로 변하거든. 모든 혁명의 탄생 순간에는 뭔가 황홀한 데가 있어. 혁명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약속하지.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그 거짓된 모습이 드러난단다.  (191)
 
 근본적으로 인간 본성으로부터 시작해. 인간이 질적 도약을 이루지 못하면, 물질에 대한 지배를 계속 추구하고 이윤과 사리사욕을 포기하지 않으면, 모든 게 영원히 반복될 뿐이야.  (200)
 
 "사진 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시오. 발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마시오."  (231)
 
 세계의 아름다움이란 그 다양성에 있는 것이지.  ~  그런 다양성이야말로 우리 삶의 토대인데 말이야 !  난 인류의 풍요로움이 그 다양성에 있다고 확신해.  (235)
 
 인생에는 이유도 모르고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 그 의미를 나중에야 알게 되지. 지나온 평생을 슬로비디오처럼 돌려보거나,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언덕에서 굽어보면'말이야.  (253)
 
 탁발 수도승을 존경하고, 그들의 기력을 나누기 위해 그들에게 절을 하고 먹을 것을 보시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결코 물질 만능의 사회가 될 수 없거든. 사두들은 일종의 백신이야.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행자의 맹세를 한 다음 그들처럼 유랑 수도승이 되고 싶은 열망을 계속 부추기지.  (265)
 
 인도는 천의 얼굴을 갖고 있어. 구원인 동시에 저주이고, 파멸인 동시에 창조지. 그래서 인도는 밑 빠진 독이기도 해.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방향 감각을 상실할 수 있는 곳이야.  많은 젊은이들이 제정신을 잃거나 일종의 광기에 빠져, 아니면 차란 다스처럼 사두가 되고.  (267)
 
 난 네가 내 얘기의 핵심을 잘 파악했으면 좋겠다. 그 핵심이란 다름이 아니라, 혁명과 정치와 과학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헛되다는 거야. 그런 믿음 때문에 나도 사회 참여를 하고, 글을 썼었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게 아무 소용없었어.  (269)
 
 그 노인은 항상 이렇게 말했지. 
 "내버려라. 내버려. 네가 아는 모든 것을 내버려라. 내버려. 빈손으로 서 있는 걸 두려워하지마라. 없음이야말로 결국에는 너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니까."  (293)
 
 사람은 기자나 엔지니어나 전차 운전사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게 아니거든. 직업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갖는 거지. 난 항상 아주 행복하게 살았고.  (303)
 
 고작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매일 아침 사무실에 나가 주가 변동 그래프의 움직임을 쳐다보면서 '샀다 팔았다 샀다 팔았다' 한단 말이냐? 무슨 인생이 그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는 이유를 아니? 제일 똑똑하다는 애들이 그런 걸 하고 있어서 그런 거야!  (305)
 
 난 젊은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은 할 일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310)
 
 모든 확실성은 일종의 종속이고 제약이지.
 하지만 난 언제나 제 3의 길이 있다고 확신한다. 모든 걸 포기할 필요는 없어. 모든 걸 원해서도 안 되지. 중요하 건 무엇을 화려고 하며, 그것을 위해 얼마나 타협을 할 것이냐를 스스로 잘 알아야 한다는거야.  (312)
 
 금욕과 쾌락주의 사이에서 항상 중도를 지켜야 돼. 향락에 빠진 채 살아도 안 되지만 무비판적으로 금욕을 추종해서도 안 돼. 길을 잘 못 든 신비주의자들이 많아. 금욕을 통해 신을 만나겠다는 열망에 이성을 잃었지.  (322)
 
 사스키아야, 넌 정말 예쁜 여자야.  가끔 멈춰 서렴! 멈춰 서서  이 세계의 경이로움에 흠뻑 빠져 보는 거야. 예를 들면 지금 이 곳의 평화로움을 보렴. 이 산을 보면서 평안을 찾는 거야. 15분 동안이라도 자리에 앉아서 저 고요함에 귀 기울여 보는 거지. 저 고요를 느껴 보라고!  (325)
 
 그러니까 문제가 있으면 바로 멈춰 서야 해. 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봐.  그리고 네 자신 속에서 답을 찾아. 네 내면 깊숙한 곳에 뭔가가 있어. 그게 너를 붙잡아 주는 거야. 마음 속의 어떤 목소리, 거기에 귀 기울여야 해.  (326)
 
 내 생각에는 여행에는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어. 네가 갈림길을 만났는데 한 길만 오르막이고, 다른 길이 모두 내리막이라고 해 보자.이럴 땐 반듯기 오르막길을 가야 해. ~ 물론 쉽지는 않지. 사물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고 지속적으로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 일이니까.  (327)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파악하게 해.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돼. 항상 주의를 집중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해라. 침묵하고 숙고하고 거리를 두는 시간을 가져야 해. 그러고 나서 뭔가를 바라 봐야지.  (327)
 
 삶은 지금 당장 벌어지는 거란다. 바로 이 순간에.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이 순간에 사는 거고.  (328)
 
 신기하지 않니?  자연은 그냥 제 길을 가. 네가 죽는다고 자연이 신경이라도 쓸까? 네가 병들어 고통스러워한다고?  아니야, 폴코야. 그냥 흘러갈 뿐이야. 모든 게 흘러가. 병도 고통도.  (3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 - 마르크스 『자본』의 재구성
강신준 지음 / 길(도서출판)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다시 만나는 마르크스, 역시 길은 이 길이었던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해에 10년 살면서 처음 맞는 새벽 폭설입니다.

부랴부랴 뜨순 물 부어가며 차를 출발시킵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태어나서 처음맞는,

이 폭설에

 

부끄럽게도 저는 감상에 젖습니다.

 

 



 

 

 



견인  
 
 올 수 없다 한다  
 태백산맥 고갯길, 눈발이 거칠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답신만 되돌아온다  

 분분한 어둠속, 저리도 눈은 내리고 차는 마비돼 꼼짝도 않는데 재차 견인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출근길 풍경입니다. ^^;)

 
 
 산 것들을 모조리 끌어다 죽일 것처럼 쏟아붓는 눈과  
 눈발보다 더 무섭게 내려앉는 저 불길한 예감들을 끌어다 덮으며  
 당신도 두려운 건 아닌지 옆얼굴 바라볼 수 없다  
 
 눈보라를 헤치고 새벽이 되어서야 만항재에 도착한 늙수그레한 견인차 기사   
 안 그래도 이 자리가 아니었던가 싶었다고 한다  
 기억으로는 삼십 년 전 바로 이 자리,  
 이 고개에 큰길 내면서 수북한 눈더미를 허물어보니  
 차 안에 남자 여자 끌어안고 죽어 있었다 한다  

 

 



 

 세상 맨 마지막 고갯길, 폭설처럼 먹먹하던 사랑도 견인되었을 것이다  

 

 

 



 
 
 진종일 잦은 기침을 하던 옆자리의 당신  
 그 쪽으로 내 마음을 다 쏟아버리고  


 나도 당신 품을 따뜻해하며 나란히 식어갈 수 있는지  

 

    *이 병률,  시집 [바람의 사생활]에서

 

 

 



새벽, 출근길, 공사중인 길위의 모습들이

쌓이는 눈과 어둠과 유리창의 빛깔과 어우러져

마치 머나먼 어딘가에 잠시 떠나온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남해 고속도로 위로, 차들도 엉금엉금 기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쏟아지는 폭설을 한탄할 시간입니다.   -.-;;

 

그래도,
잠시나마
행복했습니다. 철없이.....
 

눈만큼이라도 밝은 하루 보내시기를 ~
 

2010. 3. 10.  아직도 눈은 내리고.....

 

들풀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벌써 두 해가 지나갔다. 2007년 2월에 만났던 시인의 [바람의 사생활]은 넘쳐나는 이별노래로 나를 얼마나 먹먹하게 하였던지….  그 이별의 절정이던 "견인"에서 함께 '서서히 식어가던' 사랑도 이제는 '견인'되었으리라. 그럼 이제 돌아와 우리 앞에 선 시인은 어떤  [찬란] 한 노래를 들려주려나, 자못 궁금한 시집이었다.
 시인의 말 
  불편하지 않은 것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 눈발을 만나지 않는다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2010년 2월 
  이병률 
 
 그러나 기대도 잠시, 시집을 열고 들어가는 입구에 떡하니 놓인 '시인의 말'은 아직도 그때, 그 '눈발'이 그치지 않았음을 예고한다. 다시 이어지는 먹먹한 사랑의 이야기라면 이제는 새롭지 못하리라 걱정하며 시집을 펼쳐든다.  다행히 넘쳐나던 이별 이야기는 보이지 않지만 새로운 말이 나를 기다린다. 
 
 그 산을 파내고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 '기억의 집'에서 (9)
 
 첫 번째 詩에서 '산을 파내고 동굴을 만들고' '깊숙한 움' 속으로 들어가더니 시인은 이제 '밤'거리를 헤매인다. 눈에 띄는 '밤'에 관한 이야기들을 우선 만나보자.
 
 한밤중에 끝도 없이 ~ / 걸레에 물기를 적시어 먼지를 간섭하고 있는 몇몇 밤들은  - '햄스터는 달린다'에서  (13)
 
 밤 늦게 산책을 나갔다가 - '못'에서  (14)
 
 어둠이 소금처럼 짠 밤에  - '자상한 시간'에서  (16)
 
 개벽한다는 말이 혀처럼 귀를 핥으니 / 더 잠들 수 없는 밤  - '새날'에서  (27)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 /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 -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에서  (47)
 
 좀처럼 흰 허리가 펴지지 않는 어슬한 밤  -  '다리'에서  (50)
 
 낮이 있는 만큼 밤이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시인은 자주 '밤'의 이야기를 읊조리더니 급기야 이렇게 고백까지 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밤이었다  -  '밤의 힘살'에서  (60)
 
 시인은 '밤'을 힘겨워한다. '어둠이 소금처럼 짜'기도 하고 '더 잠들 수 없는 밤'이 되기도 한다. 뒤척이는 그 '밤'들이 이윽고 시인에게는 '힘'이 되고 '삶'이 되나 보다.
 
 삶이 여기에 있으라 했다  - '이 안'에서  (25)
 
 그리고 길고 긴 '슬픔'과 '밤'의 고단함이 부딪히고 닳아지며 "창문의 완성" 같은 詩가 탄생한다. 이 시집에서 만난 맘에 드는 몇 편의 詩중 하나이다. 일부만 옮겨본다.
 
 나중에 오는 것은 적잖이 새로운 것
 네가 먼저 온다 시간은 나중에 온다
 슬프게 뭉친 것은 나중까지 오는 것이다
 희부연 가로등 밑으로도 휑한 나뭇가지로도 온다
 한번 온 것은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시험도 결심도 않는다
 시간은 나중 오는 것이다 네가 먼저 오는 것이다  - '창문의 완성'에서  (39)
 
 하지만 아무래도 [바람의 사생활]에서 만나던 강렬함은 모자란 듯 하다. 하긴 헤어지고 이별하는 충격적인 일이 늘 있다면 어찌 하루하루를 견뎌내랴. 그리고 시인은 이렇게 한 시절을 넘어 우리에게 '찬란'의 결을 보여준다. '겨우 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로 시작되는 詩 "찬란"은 이름 그대로 '찬란'하다. 그렇지만 이 터벅터벅 밤길을 걸어가며 읊조린 듯한 시집에서 나의 가슴에 제일 깊숙이 와 닿은 노래는 이 봄에 맞는 "삼월"이다.
 
 첫눈이 나무의 아래를 덮고
 그 눈 위로 나무의 잎들이 내려앉고
 다시 그 위로 흰 눈이 덮여
 그 위로 하얀 새의 발자국이 돋고
 
 덮이면서도 지우지 않으려 애쓰는
 말이며 손등이며 흉터 
 
 밖에는 또다시 눈이 오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지요
 
 밖에는 천국이 지나가며 말을 거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눈 속에 파묻히는 줄도 모르고
 
 당신이 모르는 것은 하나가 아니었지요 
  - "삼월" 부분  (57)
 
 "견인"에 이어지는 연작으로도 다가오는 "삼월"은 여전한 시인의 감성을 드러낸다. '설산을 넘는 밤길'(120)을 걷고 또 걸어, 우리는 또 어느 고개쯤에서 '파묻히는 줄도 모르고' 함께 잠이 들 수 있을 것인지…. 그래도 '함께'라서 '행복'하고 '찬란'하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시인의 말을 빌려 이 시집을 덮는다. 이렇게….
 
 '설레이'지 않은 것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 '설레임'을 만나지 않는다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2010. 3. 8. 이른 새벽,  그대는 오늘도 설레이며 살아갑니까? 
 
 
들풀처럼
*2010-028-03-04
 
 
*책에서 옮겨 둡니다.
 어젯밤 구걸하던 이를 찾습니다 / ~ / 어둔 밤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인데  -  '불편'에서  (76)
 
 아찔하지만 그래도 괜찮단다
 지나가는 것은 아픈 것이 아니란다  -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에서  (101)
 
 고파서 손이 가는 것이 있지요 / 사랑이지요  -  '봉지밥'에서  (118)
 
 
 
 견인  
 
 올 수 없다 한다  
 태백산맥 고갯길, 눈발이 거칠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답신만 되돌아온다  
 분분한 어둠속, 저리도 눈은 내리고 차는 마비돼 꼼짝도 않는데 재차 견인해 줄 수 없다고 한다 
 
 
 산 것들을 모조리 끌어다 죽일 것처럼 쏟아붓는 눈과  
 눈발보다 더 무섭게 내려앉는 저 불길한 예감들을 끌어다 덮으며  
 당신도 두려운 건 아닌지 옆얼굴 바라볼 수 없다  
 
 눈보라를 헤치고 새벽이 되어서야 만항재에 도착한 늙수그레한 견인차 기사   
 안 그래도 이 자리가 아니었던가 싶었다고 한다  
 기억으로는 삼십 년 전 바로 이 자리,  
 이 고개에 큰길 내면서 수북한 눈더미를 허물어보니  
 차 안에 남자 여자 끌어안고 죽어 있었다 한다  
 
 세상 맨 마지막 고갯길, 폭설처럼 먹먹하던 사랑도 견인되었을 것이다  
 
 진종일 잦은 기침을 하던 옆자리의 당신  
 그 쪽으로 내 마음을 다 쏟아버리고  
 나도 당신 품을 따뜻해하며 나란히 식어갈 수 있는지  
 
[바람의 사생활] http://blog.daum.net/mrblue/109068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