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두 해가 지나갔다. 2007년 2월에 만났던 시인의 [바람의 사생활]은 넘쳐나는 이별노래로 나를 얼마나 먹먹하게 하였던지…. 그 이별의 절정이던 "견인"에서 함께 '서서히 식어가던' 사랑도 이제는 '견인'되었으리라. 그럼 이제 돌아와 우리 앞에 선 시인은 어떤 [찬란] 한 노래를 들려주려나, 자못 궁금한 시집이었다. |
|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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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하지 않은 것은 |
|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
| 마음에 |
| 휘몰아치는 눈발을 만나지 않는다면 |
|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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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2월 |
| 이병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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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기대도 잠시, 시집을 열고 들어가는 입구에 떡하니 놓인 '시인의 말'은 아직도 그때, 그 '눈발'이 그치지 않았음을 예고한다. 다시 이어지는 먹먹한 사랑의 이야기라면 이제는 새롭지 못하리라 걱정하며 시집을 펼쳐든다. 다행히 넘쳐나던 이별 이야기는 보이지 않지만 새로운 말이 나를 기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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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산을 파내고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 '기억의 집'에서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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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詩에서 '산을 파내고 동굴을 만들고' '깊숙한 움' 속으로 들어가더니 시인은 이제 '밤'거리를 헤매인다. 눈에 띄는 '밤'에 관한 이야기들을 우선 만나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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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중에 끝도 없이 ~ / 걸레에 물기를 적시어 먼지를 간섭하고 있는 몇몇 밤들은 - '햄스터는 달린다'에서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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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늦게 산책을 나갔다가 - '못'에서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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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이 소금처럼 짠 밤에 - '자상한 시간'에서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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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벽한다는 말이 혀처럼 귀를 핥으니 / 더 잠들 수 없는 밤 - '새날'에서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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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 /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 -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에서 (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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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처럼 흰 허리가 펴지지 않는 어슬한 밤 - '다리'에서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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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이 있는 만큼 밤이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시인은 자주 '밤'의 이야기를 읊조리더니 급기야 이렇게 고백까지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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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밤이었다 - '밤의 힘살'에서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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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밤'을 힘겨워한다. '어둠이 소금처럼 짜'기도 하고 '더 잠들 수 없는 밤'이 되기도 한다. 뒤척이는 그 '밤'들이 이윽고 시인에게는 '힘'이 되고 '삶'이 되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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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여기에 있으라 했다 - '이 안'에서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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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길고 긴 '슬픔'과 '밤'의 고단함이 부딪히고 닳아지며 "창문의 완성" 같은 詩가 탄생한다. 이 시집에서 만난 맘에 드는 몇 편의 詩중 하나이다. 일부만 옮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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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오는 것은 적잖이 새로운 것 |
| 네가 먼저 온다 시간은 나중에 온다 |
| 슬프게 뭉친 것은 나중까지 오는 것이다 |
| 희부연 가로등 밑으로도 휑한 나뭇가지로도 온다 |
| 한번 온 것은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으며 |
| 어떤 시험도 결심도 않는다 |
| 시간은 나중 오는 것이다 네가 먼저 오는 것이다 - '창문의 완성'에서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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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아무래도 [바람의 사생활]에서 만나던 강렬함은 모자란 듯 하다. 하긴 헤어지고 이별하는 충격적인 일이 늘 있다면 어찌 하루하루를 견뎌내랴. 그리고 시인은 이렇게 한 시절을 넘어 우리에게 '찬란'의 결을 보여준다. '겨우 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로 시작되는 詩 "찬란"은 이름 그대로 '찬란'하다. 그렇지만 이 터벅터벅 밤길을 걸어가며 읊조린 듯한 시집에서 나의 가슴에 제일 깊숙이 와 닿은 노래는 이 봄에 맞는 "삼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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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이 나무의 아래를 덮고 |
| 그 눈 위로 나무의 잎들이 내려앉고 |
| 다시 그 위로 흰 눈이 덮여 |
| 그 위로 하얀 새의 발자국이 돋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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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덮이면서도 지우지 않으려 애쓰는 |
| 말이며 손등이며 흉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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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에는 또다시 눈이 오는데 |
|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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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에는 천국이 지나가며 말을 거는데 |
|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
| 눈 속에 파묻히는 줄도 모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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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모르는 것은 하나가 아니었지요 |
| - "삼월" 부분 (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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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인"에 이어지는 연작으로도 다가오는 "삼월"은 여전한 시인의 감성을 드러낸다. '설산을 넘는 밤길'(120)을 걷고 또 걸어, 우리는 또 어느 고개쯤에서 '파묻히는 줄도 모르고' 함께 잠이 들 수 있을 것인지…. 그래도 '함께'라서 '행복'하고 '찬란'하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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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을 빌려 이 시집을 덮는다.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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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레이'지 않은 것은 |
|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
| 마음에 |
| 휘몰아치는 '설레임'을 만나지 않는다면 |
|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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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3. 8. 이른 새벽, 그대는 오늘도 설레이며 살아갑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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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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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8-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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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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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젯밤 구걸하던 이를 찾습니다 / ~ / 어둔 밤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인데 - '불편'에서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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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찔하지만 그래도 괜찮단다 |
| 지나가는 것은 아픈 것이 아니란다 -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에서 (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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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파서 손이 가는 것이 있지요 / 사랑이지요 - '봉지밥'에서 (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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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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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수 없다 한다 |
| 태백산맥 고갯길, 눈발이 거칠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답신만 되돌아온다 |
| 분분한 어둠속, 저리도 눈은 내리고 차는 마비돼 꼼짝도 않는데 재차 견인해 줄 수 없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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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것들을 모조리 끌어다 죽일 것처럼 쏟아붓는 눈과 |
| 눈발보다 더 무섭게 내려앉는 저 불길한 예감들을 끌어다 덮으며 |
| 당신도 두려운 건 아닌지 옆얼굴 바라볼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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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보라를 헤치고 새벽이 되어서야 만항재에 도착한 늙수그레한 견인차 기사 |
| 안 그래도 이 자리가 아니었던가 싶었다고 한다 |
| 기억으로는 삼십 년 전 바로 이 자리, |
| 이 고개에 큰길 내면서 수북한 눈더미를 허물어보니 |
| 차 안에 남자 여자 끌어안고 죽어 있었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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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맨 마지막 고갯길, 폭설처럼 먹먹하던 사랑도 견인되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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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종일 잦은 기침을 하던 옆자리의 당신 |
| 그 쪽으로 내 마음을 다 쏟아버리고 |
| 나도 당신 품을 따뜻해하며 나란히 식어갈 수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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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사생활] http://blog.daum.net/mrblue/10906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