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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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작가 이외수의 부담없는 에세이집, 삶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으로 이르는 소리, [하악하악]을 만나고 느닷없이 '젊은 그대, 잠깨어 오라!'라니, 이건 또 뭔가,라고 하실 분이 있을게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여보자.
 
 그냥 인터넷에 '씨부리거나', '읊조리거나' 툭툭 던진 듯한 말들이 갖가지 민물고기들의 세밀화와 함께 등장하는 이 산문집은 그냥 한 번 읽고 던져두어도 아무런 부담없는 책처럼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의 내용들은 그런 수준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라고 이 책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다. 비냄새가 섞여 있다. 나무들이 머리카락을 산발한 채 몸살을 앓고 있다. 세상은 오래전에 타락해 버렸고 낭만이 죽었다는 소문이 전염병처럼 떠돌고 있다. 그래도 지구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 나는 오늘도 집필실에 틀어박혀 진부한 그리움을 한 아름 부둥켜안은 채 그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3' ) (13)
 
 역시 그답다. '꽃노털 옵하'(17)는 솔직히 이 책의 초입부터 이야기한다. '그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는 인터넷이라는 무색무취의 세상에 '감성의 씨앗을 파종'하며 젊은이들에게 잃어버리고, 잊고 있던, 혹은 채 모르고 있던 느낌들을 직설적으로 질러준다. 그리고 그 손가락질은 달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시리즈물도, 촌철살인의 잠언들도, 정신을 버쩍 깨우는 칼질같은 글들도 모두 그의 목소리이다. 그리고 그 소리들 틈새에서 나는 벌써 삼십년이 다 되어가는 그와의 만남을 떠올린다. 벼리고 벼른 [칼](1982)하나로 다가와 [들개](1981)처럼 나의 젊은날(1983년, 고2)을 물어뜯던 그의 글들을 이제는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가 찌른 비수로 나의 감성은 꽤나 충격을 받았던 느낌만은 생생하다. 그 상처들 속에서 나 역시 잘 자랐을 터이고... 이 책에는 그런 그의 감성들이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진실하면 모두가 詩입니다 깍두기의 팔뚝에 '차카게 살자'라고 새겨진 문신. 비록 맞춤법은 틀렸지만 새길 때의 그 숙연한 마음을 생각하면 깍두기도 그 순간은 시인입니다. ( '22' ) (31)
 
 하지만 솔직히 그의 이런 멋진 말조차 이제는 나에게 그때만큼의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 왜? 나도 이제는 마흔을 넘어선, 어느정도 살아온, 나이인 것이다. 마흔, 불혹(不惑)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세파에 시달리다보니 왠만하여서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옛 성인들도 알고 계셨다는 얘기 아닌가? 하여 이 책은 나같은 '중년'이 만나서 즐기기에는 조금 심심하다. 좀 더 자극적이고 '하악하악'한 것이라면 하던 일 제쳐두고 더 깊이 덤벼들겠지만 말이다. 하아하아...^^*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진실을 못보는 것은 죄가 아니다. 진실을 보고도 개인적 이득에 눈이 멀어서 그것을 외면하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죄일 뿐이다. ( '28' ) (37)
 
 하지만 위와 같은 손가락질에는 조금 '뜨끔'해지기도 한다. 하여 이 책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만나본다면 더 좋을 그런 책이다. 지은이가 이야기한 '그대'라는 대상도 인터넷을 종횡무진 누비는 누리꾼들, 아마도 당연히 젊은이일, 그들인 것이다. 그들이, 그대들이 이 이야기들 듣고 누리고 즐기고 공유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옵하'가 바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책을 보며 웃다가, '뜨끔'해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훌쩍 책장을 다 넘겨 버린다. 어느새…. 선문답의 화두같은 그의 말들을 따라가다 욕도 얻어 먹고 같이 욕도 하며 차근차근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고개를 돌리니 그제서야 화가 정태련의 우리 민물고기 세밀화가 눈에 들어온다. 비슷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물고기들, 모양은 커녕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민물고기들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깨달음은 색다른 체험이다. 사진보다 더 정감이가는 세밀한 그림이라니….그리는 분의 노고가 오롯이 전해져 온다. 마지막에 여섯 쪽으로 총정리된 "이 책에 담긴 모든 민물고기들"(254~259)의 그림들은 참으로 고마울따름이다. 아마도 이 글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도 이 민물고기들이 살아가는 까닭과도 닮아 있으리라. 조용하게 자신의 몫을 감내하며 살아감의 소중함같은 그런 것 말이다.
 
 자, 그럼 이제 나의 분탕질을 갈무리 하여 보자. 처음 이외수라는 작가를 만나시는 분, 소설도 복잡한 것도 싫다, 좀 더 쉽고 간단한 것을 찾으시는 분들, 그냥 그의 손가락질을 따라가며 바라보고 이야기듣고 오시라. 그러면 동네 한바퀴를 그냥 수월하게 돌아본 기분을 느낄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책이지만 특히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권하고픈 이 책. 물론 '꽃노털 옵하'께서는 이리 말씀하시리라. '괜찮네, 그냥 니들 알아서 즐쳐드셈' 이라고 하시겠지만.....
 
 젊은이여. 인생이라는 여행길은 멀고도 험난하니. 그대 배낭 속을 한번 들여다보라.  욕망은 그대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소망은 그대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법.  젊었을 때부터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잡다한 욕망들을 모조리 내던져버리고 오로지 소망을 담은 큰 그릇 하나만을 간직하지 않으면 그대는 한 고개를 넘기도 전에 주저앉고 말리라. 하악하악. ( '148' ) (151)
 
 

2009.2.12. 밤, 선생님, 곱게 늙으셨더군요.

              지난 "일밤"에서 말입니다.^^*
 
들풀처럼
*2009-03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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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2-1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좋게 읽었습니다. 어떻게 글 몇 자 되지도 않는데
그토록 해악과 재기가 넘치는지...낙서 같기도하고 아폴리즘 같기도 하고.^^

들풀처럼 2009-02-13 11:35   좋아요 0 | URL
네...저도 그리 생각하였답니다..ㅎㅎ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