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구판절판


어차피 이 세상에 네가 원하는 싸움은 없잖아. 몇 푼 더 벌고 몇점 더 얻기 위한 싸움은 다른 머저리 같은 녀석들이나 하라고 해. 그런 보잘것없는 싸움은 처음부터 항복해버리는 거야. 밥벌이로 저녁 6시까지만 일하고, 그다음에는 네 할 일을 하는 거야. 밴드 활동이나 작곡이나 그런 거. 그래도 하루 6시간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잖아. 네 지위에 너만 확신을 가지면 되는 거잖아-55쪽

1978년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유지, 보수자의 운명을 띠고 세상에 났다. 이 사회에서 새로 뭔가를 설계하거나 건설할 일 없이 이미 만들어진 사회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이들의 임무라는 뜻이다. 이들은 부품으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팔자다-186쪽

완성된 사회라는 것은 구성원 또는 계층 간의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사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완성된 사회는 그런 갈등과 모순이 어느 범위 이내에서 더 커지지 않는 상태로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서구 국가들과 아시아의 일본, 한국은 이런 단계에 도달했다. 한국은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성공하면서 '완성된 사회'의 초입에 접어들었다.-187쪽

완성된 사회에도 근본적인 불의와 부조리는 있으나, 완성된 사회는 한 가지 답을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그 부조리를 피해간다.
이 시스템에서는 어떤 모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또 어떤 모순도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 쌓이지 못한다. 고작해야 '선거 혁명'이다. 즉 오늘날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사이의 논쟁은 적당한 온도의 온수를 놓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관과 차가운 물이 나오는 관 사이에 레버를 어느 위치에 놓느냐를 두고 벌이는 싸움에 불과하다.-188쪽

이런 한계 속에서 표백 세대의 내면은 추하게 일그러진다. 그들은 자신의 역사적인 위치나 사명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이 없으므로 역사 의식이 희박해지며, 민족주의치럼 그들의 자존감을 손쉽게 높여줄 수 있는 불합리하고 값싼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긴다.-197쪽

박탈감과 좌절감은 뿌리 깊이 박혀 있지만 이런 좌절감은 집단적인 분노로 발전하지 못한다. 투쟁은 손해 보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 다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선배와 상사, 기성세대를 찢어죽일 것처럼 성토하다가도 면접 시험장에서는 한없이 고분고분해지고 공손해진다.-197쪽

패배를 자연스러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이들 중 몇몇은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작은 이득을 위해 아득바득 싸우는 태도를 촌스럽다고 여기게 된다. 기왕에 지는 것, 한발 물러난 자세로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와 같은 태도를 보이거나 아예 싸움을 피하는 것이 그나마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다. 그것이 '쿨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197쪽

진정으로 새로운 주장이나 사상이 없는 상태에서 조롱과 비아냥거림, 의미없는 장난이 이 세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사유와 생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표백 세대는 소비를 삶의 표현 양식으로 삼는데, 이는 여가와 사교 생활에서 문화 예술 및 창작활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 걸쳐 이들의 사고와 형태에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198쪽

물론 이들이라고 해서 바보는 아니며, '뭔가가 잘못됐다'는 느낌 정도는 갖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는 사회에 대해 그런 의심을품는 행위는 자칫 그 자신을 바보라고 인정하는 셈이 될 수 있기에, 이들은 그런 생각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 고로, 음흉함은 그들의 제 2의 천성이 된다. -199쪽

표백 세대가 완성된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은 순응, 타협, 소극적 저항, 적극적 저항의 네 가지로 분류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순응은 완성된 사회의 시스템과 경쟁 체제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삶은 사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 판검사나 의사가 되거나 좋은 기업에 취직해 '치열하게' 살다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 목표다. 존경받는 기업인이나 법조인, 정치인들의 거의 다 이 분류를 해당한다. -200쪽

그런가 하면 '고시 폐인', 범죄자와 사기꾼, 실패한 사업가나 장사꾼, '악비리' 혹은 '또순이'라는 칭찬을 듣는 저소득층도 이 유형에 속한다. -200쪽

타협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품으면서도 대체로 그에 따라가는 삶의 형태다. 이런 삶의 유형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이타적인 행위를 통해 자기 만족을 얻으며 그런 의심을 억누른다. 여가 시간에 봉사 활동을 하거나, 권력에 대한 의지없이 선의로 정당 활동에 참여하거나 기부금을 내는 행동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200쪽

그러나 그런 활동이 근본적으로 삶의 우선 순위에서 가장 앞에 오는 것이 아니며, 그런 활동들에 대한 욕구도 따지고 보면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삶의 형태는 완성된 사회에 대단한 위협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권장되기까지 한다.-200쪽

소극적 저항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없으나 적어도 그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닌 삶의 형태다. 예술가, 종교인, 전업 NGO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직업인, "패배자라도 불러도 좋으니 아등바등 살지 않고 속 편하게 생활하고 싶다"라며 교직원이나 하급 공무원, 카페 사장 따위를 꿈꾸는 부류도 이에 속한다.-201쪽

이들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을 따르는 일을 경멸하지만, 자신들이 완성된 사회로부터 제대로 된 존경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들 중 일부는 경쟁 시스템에서 도피하기 위해 이런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세속적인 성공을 거머쥐게 되면 언제든지 '순응형'이나 '타협형'으로 태도를 바꿀 준비가 돼 있다.-202쪽

소극적 저항자들은 대체로 연대를 하지 않으며 사회 시스템을 전복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수가 너무 많아지지 않는 한 완성된 사회의 관점에서 대체로 무해하다.-202쪽

적극적 저항은 사회에 대한 폭력적인 타도를 시도하는 것이다. 정의에 따라, 완성된 사회에서 적극적인 저항은 이념적 근거를 가질 수 없다. 적극적인 저항자들은 처참할 정도로 논리가 없거나 아니면 일반일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극단적인 원리주이를 자신들의 이념으로 채택한다. -202쪽

프랑스나 그리스 등에서 간혹 보는 방향성 없는 학생 폭동이 전자의 예이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나 대단히 공격적이고 반체제적인 환경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그룹 등이 후자의 예이다.
완성된 사회는 이들을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는 데 망설임 없으며 이념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적극적 저항자들의 성공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기껏해야 기억에 남은 테러를 몇 건 저지를 수 있을 따름이다. -202쪽

두 번째는 작가를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제안이다(중략)장편소설을 쓰는 작업은 마라톤 풀코스 완주와 비슷했다. 처음 시작할 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하고 자신이 없었던 게 그랬고, 매번 3분의 1 지점쯤에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게 그랬다.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게 두 가지 있다. '계속 쓰다 보면 끝까지 쓸 수 있다'는 것과 '계속 쓰면 점점 나아진다'는 것이다. 3분의 2 지점을 통과하면 그 다음부터는 저절로 끝까지 가게 된다는 점도 글쓰기와 마라톤의 공통점이다.-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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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3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 저자가 같고 제목이 비스무레한 <한나라 이야기 1,2,3권>을 구매하자..마자 3권이 나와버렸다. 뭐 어차피 <십자군 이야기>는 읽은 지 오래돼서 다시 사 보려고 계획했으니. 근데 나는 왜 이리 역사에 무지할까??   

 1. 한나라 이야기 1,2,3권/ 김태권 글,그림/ 비아북

  

 

 

 

  

 

 

2.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돌베개  

 

 

 

 

 

 

 

 

 

3. 해방일기 1/ 김기협 지음/ 너머북스 

 

 

 

 

 

 

 

  

4. 두근두근 내인생/ 김애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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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 사계절 출판사 

   

 

 

 

 

 

 

 

 

 

 2. 상처 받지 않을 권리/ 강신주/ 프로네시스(웅진) 

 

 

 

 

 

 

 

 

3. 이완용 평전/ 김윤희/ 한겨레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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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연초 올해는 블로그 활동 열심히 하기로 다짐했건만, 내 이럴 줄 알았다. 독서량도 빈약하고 내 자신에 엄청 실망하는 중.  4월 독서에도 어김없이 강유원님의 저작은 포함되어 있다.  

 1. 빛의 제국/김영하/ 문학동네 

 

 

 

 

 

 

 

  

 

2. 오이디푸스왕,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 

  

 

 

 

 

 

 

 

 

 3.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강유원 지음, 정훈이 그림/뿌리와 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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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스때문인지 잘되던 넷북이 갑자기 부팅이 안된다. 말로만 듣던 좀비 PC가 된거란 말인가. 경칩이 지났다지만 여전히 개구리를 움츠리게 하는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근데 추위와 독서가 은근 어울린다는 사실을 올 겨울 알게 되었다.  

제레미 리프킨, 선대인의 현실인식과 강유원의 앎의 깊이, 김선주의 삶의 태도를 닮고 싶다. 

 

 1.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세종연구원 / 2000년 5월  

 

 

 

 

 

 

 

2. 서구 정치사상 고전 읽기/ 강유원 지음/ 라티오/ 2008년 4월  

 

 

 

 

 

 

 

3. 프리라이더/ 선대인 지음/ 더팩트/ 2010년 12월

 

 

 

 

 

 

  

  

4.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김선주 지음/ 한겨레출판/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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