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뭐 그런대로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고
선생님들은 곧잘 내 이름을 잊었습니다. 그런 타입이었던 거죠.
그래서 나 역시 자기자신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애를 썼습니다.
체육관에 다닌다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읽은 책이나 음악 이야기도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죠.
그런 나에 비하면 아오키라는 남자는 무슨 일을 하는 뻘구덩이 속의 백조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아무튼 머리가 좋았어요. 그 점은 나도 인정합니 다. 회전이 빨라요.
상대방이 무얼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런것을 마치 자기
손바닥을 들여다 보듯 아무 어려움없이 순식간에 알아차려요.
그리고는 그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바꿉니다.
그래서 모두들 아오키 한테 감탄하고 말죠.
저 놈은 머리도 좋고 굉장한 놈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어요.
내가 보기에 아오키라는 인간은 너무 천박했습니다.
저런 녀석의 머리를 좋다고 한다면 나는 머리 따위 좋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그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어쨌든 그 남자의 머리는 칼처럼 정확하고 날카롭게 돌아가죠.
그러나 그 남자에게는 자기 자신이란 것이 없었어요.
타인에게 이것만큼은 주장하고 싶다.
뭐 그런 게 없었다는 말 입니다.
모두가 자기를 인정해 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이었죠.
그런 자신의 재능에 도취되어 있었어요.
바람 부는대로 그저 빙글빙글 돌기만 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의 그런 이면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었습니다.
아오키 쪽도 그런 나의 심리를 암암리에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눈치가 빠른 남자였으니까요.
아니 그는 나를 불길한 존재로 느끼지 않았나 싶은 기분마저 듭니다.
나도 바보는 아닙니다.
별 대수로운 인간은 아니지만, 나는 그때부터 내 자신의 세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반에서 나만큼 책을 많이 읽은 인간은 없었을 겁니다.
나자신은 표시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아직 철이 덜 든 때였기도 하니 어쩌면 그런것을
은연중에 내세우며 타인을 깔보는 구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그런 무언의 자부심 같은 것이 아오키를 자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느 날 나는 학기말 영어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습니다.
시험에서 일등을 하다니 나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그런 점수를 받은 것은 아니었죠.
그때 아주 갖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
만약 시험에서 한 과목이라도 일등을 하면 사주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영어에서 일등을 하자 마음먹고 철저하게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시험 범위를 샅샅이 훑었습니다.
틈만 나면 동사 활용을 외웠습니다.
교과서 한권을 통째로 암기할 만큼 수도 없이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백 점에 가까운 성적으로 일등이 됐다 해서 신기할 것도 이상할 것도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선생도 놀란 눈치였습니다.
그리고 아오키 역시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오키는 영어 시험에서는 줄곧 일등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죠.
선생님은 답안지를 돌려주면서 농담 비슷하게 아오키를 놀렸습니다.
아오키의 얼굴이 뻘게졌죠.
자기가 웃음거리가 된 기분이었겠죠.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며칠 후 누군가 나에게 아오키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가 커닝을 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고는 내가 일등을 할 턱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 비슷한 이야기를 몇몇 친구들한테도 들었습니다.
나는 그 소문을 듣고 상당히 화가 났습니다.
그런 소문 따위 웃음으로 묵살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러나 겨우 중학생입니다.
그렇게까지 냉정해지기는 어려 웠죠.
그래서 나는 어느 날 점심 시간에 아오키를 한적한 곳으로 불러내어,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추궁했습니다.
아오키는 시치미를 떼더군요.
야 너, 생트집 잡지 마. 라고 하더군요.
너한테 이러니 저러니 말 들을 이유 없다구, 어쩌다 일등 한 번 했다고 까불기는.
그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가볍게 툭 치듯 물리치고는 저쪽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필경 나보다 자기가 키도 크고 체력도 좋고 힘도 셀 것 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죠.
내가 반사적으로 아오키를 때린 것은 바로 그 때였습니다.
정신이 들었을때. 나는 아오키의 왼쪽 뺨에 힘껏 스트레이트를 먹이고 있었습니다.
아오키가 옆으로 픽 쓰러지고, 쓰러지는 바람에 벽에 머리가 부딪쳤습니다.
쿵 하는 소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코피가 터져 하얀 셔츠 앞으로 끈적끈적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은 채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내 주먹이 그의 턱뼈를 스치는 순간부터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런 짓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깨달 았습니다.
나는 여전히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지만 자신이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오키에게 사과할까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아오키만 아니었어도 나는 그 자리에서 정중하게 사과 했을 겁니다.
그러나 아오키라는 녀석한테만은 도무지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오키를 때린 일은 후회하고 있었지만, 아오키에게 나쁜 짓을 했다고는
털끝만큼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런 녀석은 얻 어맞아도 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놈은 해충같은 인간이다.
이런 놈은 누군가 발로 짓뭉개버려도 아무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