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그를 때려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것은 직관적인 진리였죠.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나는 이미 상대방을 때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는 아오키를 남겨둔 채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아오키는 오후 수업에 빠졌습니다.
아마 그 길로 집에 돌아갔나보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찜찜한 기분이 내 안에서 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들어도 책을 읽어도 조금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위 속에 묵직한 것이 똬리를 틀고 있어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벌레를 삼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주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 참으로 고독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나를 이렇게 암담한 기분에 빠지게 한 아오키라는 남자를 한층 더 격렬하게
증오하였습니다.

아오키는 이튿날부터 나를 무시하려 애썼습니다.
마치 나 같은 인간은 존재하지조차 않는다는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보면 변함없이 일등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 이후 시험 공부에 두번 다시 정열을 쏟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험 점수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래서 낙제를 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였습니다.

숙부의 체육관에도 죽 다녔습니다. 열심히 훈련에 정진했습니다.
덕분에 내 복싱 솜씨는 중학생치고는 꽤 상당한 수준에 올랐습니다.

몸이 점점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깨가 넓어지고 팔이 탄탄해지고 얼굴 살에도 탄력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어른이 돼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멋진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매일 밤 알몸으로 목욕탕 커다란 거울 앞에 섰습니다.
그 무렵에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것입니다.

신학기가 되자 아오키와 나는 다른 반으로 갈라졌습니다. 나는 안도하였죠.
매일 교실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된다는 것만으로 나는 참 다행스러웠습니다.
아오키 역시 마찬가지 였을겁니다.

그리고 이대로 저 찜찜한 기억도 영원히 멀어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사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죠.
아오키는 내게 복수의 칼을 갈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존심 센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 아오키는 복수심이 강한 남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모욕을 그렇게 쉽사리 잊어버리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는 내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줄곧 노리고 있었던 겁니다.

나와 아오키는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우리들이 다니던 학교는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는 사립학교였습니다.
해마다 반이 바뀌었는데 다행히 아오키와는 내내 다른 반이었습니다.

그런데 끝내 마지막 3학년때 그와 같은 반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실에서 그와 얼굴이 마주쳤을 때 아주 느낌이 불쾌했습니다.
또 그의 눈초리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 위 속에 무겁게 똬리를 틀고 있던 묵직한 느낌이 되살아났습니다.
불길한 예감 말이죠.


오사와 씨는 거기서 입을 다물고 눈앞에 있는 커피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얼굴을 들고 희미한 미소를 띠고는 내 얼굴을 보았다.


창 밖으로 제트기의 굉음이 들렸다.
보잉 737기 쐐기처럼 구름 속을 일직선으로 파고 들어갔다가, 그대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오사와 씨가 말을 이었다.


"1학기는 별탈없이 평온무사하게 지나갔습니다.
아오키 쪽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거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종류의 인간은 성장도 퇴보도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똑같은 일을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할 따름이죠.
아오키의 성적은 여전히 톱 클래스였습니다. 인기도 여전히 좋았습니다.

그 남자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 같은 것을 이미 10대에 터득했죠.
아마 지금도 똑같은 식으로 살고 있을 겁니다.
아무튼 우리는 가능한 한 눈길이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 했습니다.
한 교실안에 관계가 어색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죠. 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으니.

드디어 여름 방학이 왔습니다. 고교 시절의 마지막 여름 방학이었습니다.
나는 그런대로 성적도 괜찮았고 이리저리 고르지만 않는다면 어디든 적당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시 공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수업을 매일 혼자서 예습 복습하는 정도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죠. 부모님도 잔소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체육관에 가서 연습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레코드를 듣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입시에 매달렸습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중고 일관 교육을 하는 소위 명문교였습니다.

어느 대학에 몇명이 들어갔다느니, 어느 대학의 입학자 수가 몇 위였다느니 하는 것들에
선생들이 울고 웃는 그런 학교 말입니다.
학생들도 3학년이 되면 온통 입시밖에 염두에 없어, 교실 분위기도 팽팽하게 긴장되었습니다.
나는 그 학교의 그런 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들어갈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고 6년을 다녔는데도 끝내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학교 친구는 끝내 한 명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그나마 사귀었다고 하는 상대는 체육관에서 만나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고 또 이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과는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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