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와 씨는 복싱을 배운다는 것은 별로 마음에 내키 지 않았지만 숙부는 인간적으로
좋아했고, 뭐 좀 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정 싫으면 그때 가서 그만 두어도 될 테고 싶은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하였다.
그런데 전철을 타고 한 시간이나 걸리는 숙부의 체육관으로 몇 달 다 니는 사이에
그는 그 경기에 뜻밖일 정도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가 복싱에 매력을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복싱이 기본적으로 과묵한 스포츠고
또 아주 개인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본 적도 접한 적도 없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그 세계는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들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 냄새와 가죽 글러브가 서로
스치는 팽팽한 소리와 근육을 효율적이고 민첩하게 사용하기 위 하여 몰두하는 과묵한
모습이 그의 마음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사로잡 아갔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체육관에 다니는 일이 그에게 많지 않은 즐 거움의 하나가 되었다.
"복싱이 마음에 든 까닭은, 그 운동에 깊이가 있어서였습니다.
그 깊 이가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때리고 맞고 하는 따위는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런 것은 단순한 결과에 지나지 않아요.
사람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깊이를 이해하고 있다 면 설사 졌다해도 상처 입지 않아요.
사람은 모든 것에 이길 수는 없으니 까요.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집니다.
중요한 것은 그 깊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복싱이란 -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는 말인데 - 그런 행위였습니다.
글러브를 끼고 링에 서 있다 보면, 때로 자신이 깊은 구멍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주 아주 깊은 구멍이에요.
아무도 보이지 않고, 아무에게 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깊죠.
그 속에서 나는 어둠을 상대로 싸우는 것입니다. 고독하죠. 그렇지만 슬프지는 않아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고독이라지만 실은 여러 종류의 고독이 있습니다.
신경을 갉는 것처럼 괴롭고 슬픈 고독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고독도 있어요.
그러한 고독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살을 깎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그만한 것이 되돌아옵니다.
그것이 내가 복싱에서 배운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오사와 씨는 한 20초 정도 침묵하였다.
"나는 정말 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가능하다면 그런 일은 깨끗하게 잊고 싶습니다.
그러나 물론 잊을 수 는 없지요.
잊고 싶은 것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법입니다." 오사와 씨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는 자기 손목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아직도 충분히 있었다.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오사와 씨가 때린 남자는 같은 반 학생이었다.
아오키라는 이름 이었다. 오사와 씨는 원래부터 그 남자를 싫어했다.
왜 그렇게 싫어하게 되었는지 그 자신도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 남자 가 견딜 수 없이 싫었다.
누군가를 그렇게 명료한 형태로 싫어해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런 일이 있잖습니까?"라고 그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든 일생에 한 번은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는 그런 일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무 까닭없이 그냥 싫은 것이죠.
나 자신은 아무 이유없이 타인을 싫어하는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역시 그런 상대가 있더군요.
앞뒤를 따져서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 역시 비슷한 감정을 나에게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오키는 공부도 아주 잘하는 남자였죠. 거의 늘 일등을 차지했습니 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자들만 다니는 사립고등학교였는데, 그는 인기 도 꽤 좋았습니다.
반에서도 눈에 띄었고 선생님들도 귀여워했어요.
성적 이 좋은데도 절대로 우쭐거리지 않고 성품도 시원스럽고 부담없이 농담도 하는
그런 남자였습니다. 그런 데다 조금은 정의파 같은 구석도 있어서...
하지만 나는 그 배후로 언뜻언뜻 비치는 잔꾀와 본능적인 계산벽이 못 마땅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고 물어도 대답하 기가 곤란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 수 없으니까요.
다만 나만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나는 그 남자의 몸에서 발산되는 에고와 자존심의 냄새를 생리적으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 람의 체취를 생리적으로 견디지 못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아오키는 머리가 좋은 남자라서 그런 냄새를 아주 교묘하게 감추고 있었죠.
그래서 대부분 의 반 친구들은 그를 머리가 상당히 좋은 친구라고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의견을 들을 때마다 - 물론 불필요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
어쩐 지 몹시 불쾌해졌습니다.
아오키와 나는 모든 의미에서 대조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나는 오히려 말이 없고 반에서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인간이었죠.
애당초 눈에 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고, 혼자 있어도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물론 친구도 몇 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어요.
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조숙한 인간이었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과 사귀기보 다는 혼자서 책을 읽거나 아버지의 클래식 음반을 듣거나
체육관에 다니면 서 손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 좋았습니다.
나는 보시다시피 용모 도 별로 특별한 구석이 없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