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7일 오후 9시가 넘어 점호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내무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제대를 이틀 남겨 놓고 있는 난,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몇 몇 밥 안
되는 병장 놈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모포말이'라는 단어를 엿들어야만 했다.
특히 태권도 사범인 박병장 목소리가 유난히 크다.( 박병장은 나보다 나이가 많
아 내가 며칠 전부터 '형'이라 불러줬다. 짬밥 없을 때 내가 무진장 가지고 논 기
억 밖에 없다.) 그렇다! 그 이름도 유명한 '모포말이'.....말년 병장들이 집으로 가
기 전 모포로 둘둘 말아 오뉴월에 개 패듯 지근지근 밟아주는 거다. 내가 짝대
기 두 개 달고 있을 때부터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 단어가 왜 지금 내무반의 지존이자 꼴통인 그 놈의 짝대기 네 개들
에게 회자되고 있단 말인가. 아~ 불안하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꼭 이 놈의 불길한 예감은 내가 진정 원치 않을 땐 적중한다. 그렇다.
일직사관인 탁중사가 모레 집에 가는 '아저씨'들은 내무반 한가운데로 모이란
다. 우~~와~~ 내무반은 축제 분위기다.(참고로 우리는 한 내무반에 50명가량이
함께 생활한다.) 몇 분 후에 다른 내무반에 있던 내 동기 두 명도 우리 내무반으
로 질질 끌려왔다. 한 번에 몰아서 깔끔(?)하게 끝낼 심상이다. 내 동기 녀석인
황병장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 저... 허리가 안 좋은디... 쪼까 빼주시면
안된다요? 밖에서 허리 쓸 일이 월매나 많은데..." 일직사관이 씩 웃으며 "안! 돼!
이 놈아, 뺀질되지 말고 모포 준비해." 여기 저기서 킥킥되는 소리가 들린다. 도
저히 이 상황을 벗어날 방도가 없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포기할 순 없
지. '용기 빼면 느끼함'(?)밖에 남 지 않는 내가 용기를 내 근엄한 표정으로 그 탁
중사에게 한마디 했다.
"침낭으로 하면 안됩니꺼?"
그래서 나는 우리 동기들이 모포로 말릴 걸 침낭으로 말리게 하는데 지대한 공
헌을 했다.(참고로 함께 전역하는 네 명의 내 동기들은 운좋게 모두 나이도 같
고 허물없이 지내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근데, 그 놈들은 날 '쓰레기'라고 부
른다. 왜? 나도 모르겠다.)
우선, 내가 침낭 속으로 꿈틀꿈틀대며 몸을 숨겼다. '엎드릴까... 똑바로 누울
까......모로 누울까............머리를 손으로 가릴까...... 그보다 중요한 곳을 가려야
하나?....' 한참 고민하며 이 자세, 저 자세 다 취하고 있는데....갑자기 적막이 흐
르는 거다. 마치 폭풍 전야인 듯.
그 적막을 살짝 깨며 애잔한 노래가 들려온다. 우리 분과 막내인 강이병 의 목소
리다. 사회에 있을 때 모 보컬그룹에서 활동했다는데,노래 솜씨가 가수 뺨치는
녀석이다. 구슬픈 노래였다. 우리가 보통 '전역가'라고 부르는 노랜데, 가사는
대충 이랬다.
< 입영 전야에 어머님은 우셨다. 이 못난 아들의 2년이 슬퍼서 우시나 보다. 첫
면회 오시던 날 내가 또 울었다.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느덧 시
간은 흐르고 흘러 나도 이제 말년 병장. 잘 있거라 연천 땅이여. 사랑하는 나의
전우여. 잘 가세요. 문병장님. 내가 또 울었다.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
다.>
빌어먹을! 갑자기 목이 메어오는 건, 이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순간 지난 군생
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발냄새,땀 냄새로 범벅이 된
텐트에서 함께 살을 맞대고 잤던 녀석들... 한 겨울 외곽보초 후 고참이 해 주던
뜨거운 봉지 라면에 흘렸던 눈물... 부대를 둘러 싼 산이 온통 울긋불긋해졌을
때마다 찾아 오든 사회에 대한 짙은 그리움들... 힘들고 고달픈 일상속에서도 옆
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 한없이 군대가 혐오스러워 지고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끝없이 맘 속으로 되내었던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 모든
것들이 어느새 지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상에 젖어 들고 있는 내가 웃겼다.
어느덧 노래가 끝나는 가 싶더니 "야! 불 꺼!!"라는 소리와 함께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때, 난 그 노래에 완전히 맛이 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무방비 상태였다. 이런 씨** 몇 초간 소나기처럼 옆구리며 다리며
등이며 사정없이 밟아대기 시작했고, 어떤 쉐이(?)는 베게를 집어 던지기도 했
다.
그렇게 우루루 밟고 나더니 금방 잠잠해졌다. 근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내가
평소에 늘 귀여워하던 은병장이 내 침낭을 잡고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가더니 또
시작하는 거다. 끝난 줄 알고 마음을 놓고 있다 또 그렇 게 겁나게 밟혀부렀다.
정말 디지는(^^::) 줄 알았다. 그래, 그렇게 해서라도 평소 내게 쌓여던 '갈굶의
부산물'들이 사라지길 빌 뿐이었다. '그래 나쁜 기억은 잊고 좋은 기억만 간직해
주렴.친구들아...'침낭말이를 끝내고 단체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며 박수를
쳐 줄 땐 그 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먹고 좋다고 배시시 웃음이 새 나오는 건
또 무슨 조화인지. 한쪽 눈망울엔 밟힐 때 흘린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ㅜ)
그 놈들에게 감격해서 내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 줬다. 아니 무슨 말이라도 해
야 할 것 같았다.
"음, 그래 다음 주부터 있는 유격훈련 자~알 뛰래이....."(참고로 그 군인아저씨
들은 다음주부터 유격훈련에 들어간다. 나는 유격에 유자만 들어 도 한번씩 경
기를 한다. PT체조는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PT 8번 준비!! 유~~격...... 온 몸이 비
틀리는 고통뿐이다. 34번 올빼미의 아픈 기억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근데...근데, 잠시나마 우리들을 밟으며 유격의 공포를 잊고 있던 그들에 게 '유
격'이란 말을 끄낸 자체가 실수였다.
누군가가 또 소리친다. "저 아저씨 아직 정신 못 차렸구만, 다시 말아~~~" 우~~
와~~~~~
으~~~~~~~~~~~~~~~~악!!!!!
...............................................
그렇게 군대에서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2003.4.17.일기 각색>
*2003년 2월 중순, 988포병대대 제 3포대 사격지휘 분대장이었을 때, 전포대장 휴대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