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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말이야. 누구를 좋아한다는 건 몹시 귀찮은 일이지.

공연한 참견쟁이가 되고, 남의 인생 때문에 속상해 하곤 하지.

그러면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아."

  "맞아요. 엉망진창이 돼요."

 "참 이상한 일이야. 뭔가 아쉽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하면 더욱 아쉬워지게 되거든. 그래서 때때로

악당이 되어 버리지.공연히 트집을 잡고 공연히 화를 내고......"

 "정말 그래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야.

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저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속만 부글부글 끓이다가 그것 때문에 자존심 상해 하지."

 "사랑을 하면 기대하는 것이 많아 지기 때문에 그만큼

아쉬운 것도 많아지고, 그래서 공연한 투정도 부리는 건데,

상대방은 결코 그걸 이해하려 들지 않아.

단지 못된 성깔을 가졌다고만 생각하는 거야."

 

*위기철 소설 <아홉살 인생>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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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 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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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쌤 2004-01-0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왜 시를 쓰는지, 또 왜 써야하는지 알게 한 詩...
 

들에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다가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 몇 송이를 골라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있다가 그 음악의 가장 가슴 저미는 부분을 모아 누군가에게 전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동강처럼 아름다운 강가에 갔다가 푸른 산을 굽이굽이 돌아내려오는 맑은 물과 한 폭의 한국화 같은 풍경 속에 꼭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지금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마음이 푸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이런 시를 읽다 말고 시집을 덮으며 편지지에 옮겨 적게 되는 사람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판대 앞에 걸음을 멈추어 서서 아주 작고 하찮아 보이는 물건 하나를 만지작 거리며 몇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단순하고 솔직한, 그래서 한편으로는 통속적이기도 한 유행가의 노랫말 몇 구절이 자신도 모르게 며칠씩 입에서 되풀이해서 흘러나오는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산수유꽃을 보러 구례로 갈까, 복사꽃을 보러 하동으로 갈까, 동해의 일출을 보러 야간열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갈까, 산목련 숲을 지나 경업대를 넘을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랑이 비록 혼자사랑일지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때처럼 아름다운 때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빗발과 나뭇가지처럼 서로 스미지 못하고 바람과 구름처럼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자기 생에 있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동안만큼 아름다운 시절은 없습니다.

그 시절 만큼 마음이 순수해지고 맑아지는 때는 없습니다. 사랑하고 있는 동안처럼 순수하게 설레고 가슴 조이는 시간은 없습니다. 생에 있어서 그렇게 설레는 때가 많이 오는 게 아닙니다.

설레임을 잊은 지 오래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문 여는 소리, 발자국 소리, 전화벨 소리, 낮은 숨소리 하나까지 온몸의 솜털이 모조리 일어서곤 하던 그 기대와 기쁨과 환희와 좌절과 실망을. 사랑의 기쁨이 왜 고통이고 사랑의 아픔이 왜 행복인지를.

천지에 꽃은 가득가득 피는데 설레임도 두근거림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도종환 <모과>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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