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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그 사람과 이별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죽음 앞에서는 못 다한 사랑에 통곡을 하면서도 한순간씩 사랑과 죽음을 나누면서 지극히 태연하고 담담하다. 그것은 아마도 이 순간이 아니어도 내일, 모레 또는 내년쯤에도 지금처럼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착각과 바람 때문이리라.

이런 말이 있다.

'만일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해라. 그러면 너는 그를 사랑할 수도 있을테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랑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해라. 그러면 너는 그를 더 간절하게 더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을테니까......'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랑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열심히 사랑하자. 오늘이 지금의 그 아름다운 빛깔로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테니까.

*이성호, <나는 회계학 시간에 詩를 읽는다.> 에서.

 

 

 

내가 군에 있을 때다. 제대가 얼마 남지않은 말년 병장 시절.

일직사관이 느닷없이 대구가 고향인 사람은 집으로 전화를 해보란다.

2. 18. 대구 지하철참사가 있었던 날이었다. 그 때 생각이 난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모두 아무 일 없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며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난 마음 속으로 애타게 이런 기도를 했었다.

'부디 아무 일 없게 해 주십시오.   살아 있게 해 주십시오......

저의 모든 걸 빼앗아 가셔도 좋습니다. 그들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라고. 내 생애 이보다 더 간절한 기도는 없었다.

통화량 폭주로 인해 전화가 계속 불통이었을 때, 내 가슴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나중에 겨우 형과 통화가 된 후에야 난 안심을 했고, 난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가족들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 난 그 소중한 기억을 잠시 잊고 있었다.

'훗날 좋은 선생이 되어서, 부모님 도움없이 돈 많이 벌게 되면 효도해야지.

나중에 시간 있을 때 좀 더 잘 해야지... 이 일만 잘 끝나고 나면 내 가족을

열심히 사랑하고, 여자친구를 더 사랑하리라. 좀 더 나은 모습이 되면, 그 때

좀 더 당당히 사랑해야지......' 하고 사랑하는 것을 잊기도 하고 미루기도 하고

있다.

이건 아니다. 사랑은 미루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순간 열심히 사랑하자. 후회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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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말이야. 누구를 좋아한다는 건 몹시 귀찮은 일이지.

공연한 참견쟁이가 되고, 남의 인생 때문에 속상해 하곤 하지.

그러면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아."

  "맞아요. 엉망진창이 돼요."

 "참 이상한 일이야. 뭔가 아쉽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하면 더욱 아쉬워지게 되거든. 그래서 때때로

악당이 되어 버리지.공연히 트집을 잡고 공연히 화를 내고......"

 "정말 그래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야.

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저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속만 부글부글 끓이다가 그것 때문에 자존심 상해 하지."

 "사랑을 하면 기대하는 것이 많아 지기 때문에 그만큼

아쉬운 것도 많아지고, 그래서 공연한 투정도 부리는 건데,

상대방은 결코 그걸 이해하려 들지 않아.

단지 못된 성깔을 가졌다고만 생각하는 거야."

 

*위기철 소설 <아홉살 인생>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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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다가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 몇 송이를 골라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있다가 그 음악의 가장 가슴 저미는 부분을 모아 누군가에게 전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동강처럼 아름다운 강가에 갔다가 푸른 산을 굽이굽이 돌아내려오는 맑은 물과 한 폭의 한국화 같은 풍경 속에 꼭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지금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마음이 푸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이런 시를 읽다 말고 시집을 덮으며 편지지에 옮겨 적게 되는 사람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판대 앞에 걸음을 멈추어 서서 아주 작고 하찮아 보이는 물건 하나를 만지작 거리며 몇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단순하고 솔직한, 그래서 한편으로는 통속적이기도 한 유행가의 노랫말 몇 구절이 자신도 모르게 며칠씩 입에서 되풀이해서 흘러나오는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산수유꽃을 보러 구례로 갈까, 복사꽃을 보러 하동으로 갈까, 동해의 일출을 보러 야간열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갈까, 산목련 숲을 지나 경업대를 넘을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랑이 비록 혼자사랑일지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때처럼 아름다운 때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빗발과 나뭇가지처럼 서로 스미지 못하고 바람과 구름처럼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자기 생에 있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동안만큼 아름다운 시절은 없습니다.

그 시절 만큼 마음이 순수해지고 맑아지는 때는 없습니다. 사랑하고 있는 동안처럼 순수하게 설레고 가슴 조이는 시간은 없습니다. 생에 있어서 그렇게 설레는 때가 많이 오는 게 아닙니다.

설레임을 잊은 지 오래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문 여는 소리, 발자국 소리, 전화벨 소리, 낮은 숨소리 하나까지 온몸의 솜털이 모조리 일어서곤 하던 그 기대와 기쁨과 환희와 좌절과 실망을. 사랑의 기쁨이 왜 고통이고 사랑의 아픔이 왜 행복인지를.

천지에 꽃은 가득가득 피는데 설레임도 두근거림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도종환 <모과>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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