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1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중학교 3학년 때,국어를 담당하고 계셨던 담임선생님은 수업이 다소 지루해질 만하면 가끔 선생님이 지금 읽고 있는 또는 읽었던 책이야기를 해주곤 하셨다. 그 때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해 주신 <태백산맥>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했으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신선한 충격으로 기억된다. 그 이야기는 그 당시 빨갱이,빨치산,공산당이라는 말만 들어도 무턱대고 잔악무도하고 나쁜사람으로 치부하며 지극히 부정적인 시각만을 가졌던 내게,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감성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한민족이었다는 사실을 미약하게나마 깨닫게 한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제도권 교육의 틀 속에 갇혀 교과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또다른 진실'을 그 선생님은 재밌는 이야기로 학생들에게 친숙하게 풀어냈던 것이다.

  언젠가 나도 그 책을 꼭 한 번 읽어봐야지 했던 것이,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갔다온 후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우연히 도서관 책꽂이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불현듯 중학교 때 그 선생님이 생각났고 난 꼬박 두 주간을 <태백산맥> 열 권과 함께 숨쉬며 보냈다. 그 두 주간의 시간은 마치 내가 일제식민지에서 해방이 되고 여순사건이 일어난 후 6.25전쟁이 종결되는 약 5년간의 파란만장한 세월을 여러 등장인물들과 실제 함께 산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때론 가슴 아팠고 때론 진한 감동과 깨달음에 몸서리치기도 한 시간들이었다.

  어쩌면 평범한 소읍에 지나지 않을 '벌교'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수많은 개성있는 인물을 등장시켜 근현대사에서 좌,우익의 이념대립과 분단과정을 민중의 삶을 통해 여실히 보여준 작가의 놀라운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다소 억센 전라도 사투리가 생경하게만 느껴졌는데,읽은 책의 권 수가 늘어나면서 어느새 그들은 내 친숙한 이웃이 되어 있었다.내가 쓰고 있는 경상도 사투리처럼.

  난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 당시 왜 수많은 민중들이 빨치산이 되었는지,또 될 수밖에 없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러웠으며 책장을 넘기는 내내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대치,강동식,동기 형제,서인출,마삼수 등과 같은 소작인들은 처음부터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라는 이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인간답게 먹고 살아보겠다는 기본적인 생존본능에서 지주들과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어쩌면 살기위해,처자식을 굶기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들 중 누가 감히 그들에게 '빨갱이'라며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염상진과 염상구 형제 간의 극단적 이념대립 관계를 통해,한핏줄을 타고난 형제지만 서로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 시대상황과 잠시 잊고 있었던 우리의 분단현실을 자각하기도 했다. 또한 중도적 민족주의라는 입장에 서있는 김범우를 통해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려는 편협한 내 생각을 다잡기도 했다.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완전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진실이라고 믿어왔고 배운 것에 거짓이 숨어 있을 수 있고,또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진실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난 이 <태백산맥>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이 책을 더욱 빛나보이고 감동적이게 했던 건,작품 곳곳에 배어 있는 '사랑'이었다. 어쩌면 인륜상 이루어져서는 안 될 정하섭과 소화의 사랑에 묘한 긴장감과 애잔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안창민과 이지숙의 관계가 그러했고 심재모와 순덕이,천점바구와 김혜자,김동혁의 강경애에 대한 사랑도 그러했다. 거칠고 메마른 이념대립 속에서도 사랑은 싹트고 있었고 그 '사랑'은 내가 <태백산맥>을 손에서 쉽게 놓을 수 없었던 이유이자 원동력이기도 했다.

  이제야 중학교 때 그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왜 <태백산맥>이야기를 해 주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같다.나도 그때 그 선생님의 심정으로 이 책을 다른 이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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