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느티나무 > 호접지몽!


蝴蝶之夢

   장자가 어느날 꿈을 꾸었다. 자신은 꽃과 꽃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즐거운 나비 그 자체였다. 그러나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莊周)가 아닌가. 이는 대체 장주(莊周)인 자기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는 나비이고 나비인 자기가 꿈 속에서 장주(莊周)가 된 것일까.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추구해 나가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 <장자>

   경주임업연구소 안에 꽃과 함께 살고 있는 나비. 꽃과 나비가 정겹기만 하다. 더 없이 평화로운 '自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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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쌤 2004-01-2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님의 설명에 사족(巳足)을 덧붙인다면...

호접지몽>> 나비가 된 꿈.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의 용어로서, 사물과 내가 일체가 되는 이른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비유하는 말이다. <장자(莊子)>'제물론(濟物論)'편에 나온다.

장자는 맹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무위자연의 철학을 제창한 사상가이다. 그의 사상은 앞 시대의 노자의 사상과 함께 '노장사상'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는 특히 '제물론'편에서 사물의 시비,선악,진위,미추 등을 초월한 만물제동(萬物濟同 : 만물은 모두 자연 그대로 같은 것이다)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이 '호접몽'도 그같은 절대자유의 드넓은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장자는 도(道)의 세계에서는 '호접지몽'의 비유를 들어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와 같은 구별이 무의미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도의 세계를 거니는 사람에게 있어서 세상의 모든 것은 '물화(物化 : 끝없이 유전流轉하는 사물의 변화상 그 자체)'속에 녹아져 있는 것이며, 따라서 차별이니 구별이니 하는 것은 무의미한 말이라는 것이다.

만물제동의 절대 자유의 경지를 말하는 데 인용된 이 말은 오늘날에는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는 비유로 많이 쓰인다.


문쌤 2004-01-24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사진을 통해 장자를 다시 만나게 해준 느티나무님께 감사하며 추천과 동시에 퍼왔다.
최근 들어 부쩍 동양사상에 눈길이 많이 간다. 나도 모르게 내면 깊숙히 동양에 대한 천대와 무관심을 숨기고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호접지몽'이라는 비유로 우리네 삶을 이토록 깊게 성찰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랍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와~~